퍼스트레이디가 중저가 옷을 입고 나타난 이유 - 미셸 오바마 MICHELLE OBAMA
지난 2월 말, 미국의 미디어들은 다시 한 번 일제히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방송에 입고 나온 의상에 대한 기사를 대량으로 쏟아냈다. 평소에도 미국 언론들이 퍼스트레이디의 스타일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새로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경우는 전과 다른 특별한 면이 있었다…
글ㆍ사진 조엘 킴벡
2012.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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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말, 미국의 미디어들은 다시 한 번 일제히 영부인 미셸 오바마가 방송에 입고 나온 의상에 대한 기사를 대량으로 쏟아냈다. 평소에도 미국 언론들이 퍼스트레이디의 스타일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새로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경우는 전과 다른 특별한 면이 있었다. 이전까지 미셸 오바마가 입어 선보였던 대부분의 스타일이 미국에 기반을 둔 패션 디자이너나 브랜드 의상이었던 것에 반해, 이번에는 미국이 아닌 스웨덴을 기반으로 한 거대 패스트패션Fast Fashion 리테일 브랜드인 H&M의 신상품 드레스를 입고 나왔기 때문이다.




그녀의 스타일이 세간의 이목을 끌고 그로 인해 의상 하나하나가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감안할 때, 미셸 오바마가 아침 토크쇼 프로그램 중에서도 시청률이 가장 높은 NBC 방송의 <투데이쇼Today Show>에 출연하면서 저가에 트렌드를 추구하는 H&M의 하얀색 물방울무늬 블랙 시폰 드레스를 입었다는 것은 분명 이례적인 일이었다. 특히 입이 쩍 벌어지게 놀라운 부분은, TV 화면에 비친 우아하고 멋져 보이던 드레스가 지금 당장에라도 H&M 매장에 가서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가격 35달러의 신상품이라는 것이었다. 그 기품 있어 보이는 퍼스트레이디의 드레스가 고작 35달러라는 사실은 수많은 미디어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일대 ‘사건’이었다.

유수의 정론지를 비롯한 뉴스 프로그램들은 미셸 오바마가 불경기에 그녀만의 기품과 스타일로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저렴한 의상을 격조 있게 표현함으로써, 대중의 마음을 읽고 그들에게 더욱 접근해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거창한 칭송을 늘어놓았다. 반면에 여성지와 패션 및 스타일 관련 미디어들은 미셸 오바마의 패션 감각에 초점을 맞춰 탁월한 선택과 표현력에 높은 점수를 매기고, 다시 한 번 그녀를 이 시대의 스타일 아이콘이라 명명했다.

그런데 사실 미셸 오바마가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아닌 대중 브랜드 의상을 입고 대중 앞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녀의 남편이자 현 미국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대통령에 취임하기 바로 직전인 2008년 10월 말, NBC 인기 토크쇼 프로그램인 <제이 르노 쇼Jay Leno Show>에 미국의 대중적인 브랜드 제이크루J.Crew의 카디건을 입고 나온 적이 있다. 이는 당시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는데, 이전까지의 상식으로는 어떤 퍼스트레이디도 대중 브랜드의 옷을 입고 대중 앞에 나선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일명 ‘제이크루 사건’이라고까지 불리며 각종 미디어에 오르내렸다.




<타임>을 비롯한 정론지들은 미래의 퍼스트레이디가 죽어가는 미국의 리테일 시장을 살리기 위해 솔선수범해서 값비싼 디자이너 의상이 아닌 누구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친근한 브랜드로 스타일을 연출했다는 분석을 주로 내놓았으며, <허핑턴 포스 Huffington Post> 같은 좌파 성향 미디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숨은 전략가인 미셸 오바마가 대통령 취임 직전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포석 중 하나이지 않겠냐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보그>나 <뉴욕타임스>의 스타일 섹션 등 패션과 스타일을 주로 다루는 매체들은 설령 그런 정치적 의도가 있더라도 상관없다는 듯, 그저 미셸 오바마의 과감한 선택과 그녀만이 표현해낼 수 있는 스타일에 힘찬 박수를 보낼 뿐이었다.

특히 당시 대선에서 버락 오마바의 상대 진영이었던 공화당 부통령 후보 세라 루이즈 페일린Sarah Louise Palin이 뉴욕의 대형 백화점인 바니스 뉴욕Barneys NewYork, 삭스 피프스 애비뉴, 버그도르프 굿맨Bergdorf Goodman 등을 돌며 15만 달러 어치의 명품 의상을 쇼핑했다는 소위 ‘15만 불 사건’으로 세간의 뭇매를 맞고 있을 때였기에, 미셸 오바마의 제이크루 카디건은 더욱 빛을 발했다.

실제로 미셸 오바마가 입은 125달러짜리 카디건은 페일린의 15만 달러 어치 명품 옷보다 더 세련된 느낌과 컬러 매치를 보여주었으며, 당시 트렌드였던 아메리칸 트래드 스타일이 하버드 출신인 그녀의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져 값비싼 의상으로 그저 우아함만을 강조한 패일린의 클래식 스타일을 오히려 작위적으로 보이게 했다.

한편 이 사건 이후 제이크루의 브랜드 매출은 급신장했고, 미국 내에서만 판매되는 브랜드임에도 전 세계에서 구매가 쇄도하는 바람에 웹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하는 등 한차례 유쾌한 소동을 겪었다.

미셸 오바마가 이렇게 단숨에 정치인의 부인을 넘어서 시대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180센티미터가 넘는 모델 부럽지 않은 훤칠한 키와 잘 가꾸어진 몸매 때문만이 아니라 그녀만의 스타일링 안목 때문이다. 그녀는 그간 미국 패션계를 이끌고 있던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각종 행사와 TV 프로그램들을 통해 대중 앞에 선보였으며, 그로 인해 많은 디자이너들이 더욱 각광받고 새롭게 주목받는 계기를 얻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그녀는 세계 패션계를 이끄는 미국의 대표 패션 컬렉션인 뉴욕 패션위크에서 주목받는 신예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눈여겨보고 그들의 의상을 공식석상에 입고 등장함으로써 패션계에서 이들의 이름을 직간접적으로 드높이는 역할을 해주었다. 디자이너 타쿤Thakoon과 제이슨 우Jason Wu의 예가 그랬고, 선거결과 발표 당시에 입었던 나르시소 로드리게즈Narciso Rodriguez의 레드 드레스와 취임식에서 입었던 이자벨 톨레도Isabel Toledo의 드레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중저가 브랜드 제이크루와 탈보트Talbot가 그러하다. 결국 그녀가 연출한 스타일로 인해 전보다 인지도를 높이고 입지도 탄탄해진 디자이너와 브랜드들이 다수 생겨난 셈이다.

여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하나 있다. 앞서 언급한 디자이너와 브랜드의 의상이 이미 훌륭한 덕도 있지만, 미셸 오바마 자신이 다양한 스타일의 옷들을 개성있게 재해석해서 연출할 줄 아는 패션 센스가 있었기에 이 시대 패션 아이콘으로 명명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최근 H&M 드레스의 경우만 봐도 그렇다. 그저 H&M에서 파는 드레스만 입고 TV 프로그램에 나왔다면 정치가의 부인으로서 숨은 전략이 있지 않겠나 하는 예상에 더 힘이 실렸을 것이다. 하지만 미셸 오바마는 이 드레스에 허리 전체를 감싸는 오렌지 빛 굵은 벨트로 마무리해서 새로운 스타일로 완성하는 면모를 보여주었기에 패션 전문가들까지도 그 스타일에 탄복을 금치 못한 것이다(방송 직후 옥션사이트 이베이에 그녀의 H&M 드레스가 올라왔고 즉시 판매완료되었다고 한다).

미셸 오바마를 위해 디자이너 타쿤의 스타일을 연출해준 유명 스타일리스트 티나 차이는 그녀가 스타일에 관해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 쓰는지 말해주었다.

“미셸은 디자이너가 왜 이런 룩을 만들게 되었는지부터 알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그것을 먼저 알아야지만 그 다음 단계인 자신이 어떤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을지를 전문가처럼 판단할 수 있다는 거죠. 그 점이 놀라운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스타일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는 말도 되고요. 그렇기 때문에 세간에서 말하는 미셸이 패션을 전략적으로 이용한다는 말들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저 패션을 사랑하고 어떻게 스타일링해야 자기에게 잘 어울리는지를 알 뿐이죠.”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와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배우 사라 제시카 파커, 그 밖에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 다이앤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stenberg, 베라 왕Vera Wang 등 미국 패션계를 대표하는 인물 대부분은 오바마 캠프의 후원자이자 미셸 오바마의 열렬한 팬일 정도로, 그녀를 향한 패션계의 신망은 아주 두텁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배우 할리 베리Halle Berry 등 할리우드 스타들의 의상을 담당하고 있는 유명 스타일리스트 필립 블로치Phillip Bloch는 미셸 오바마에 대해 “값비싼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지 않고도 자신의 나이에 맞고 품위 있으며 세련된 스타일을 창출할 줄 아는 여인”이라고 치켜세웠다. 또한 “그녀야말로 시대의 아이콘이던 재클린 케네디Jaqueline Kennedy를 가장 많이 닮은 퍼스트레이디”라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이전까지 패션계의 신망을 온몸에 받은 퍼스트레이디는 미국 역사상 단 한 사람, 바로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인 재클린 케네디뿐이었다. 그래선지 미셸 오바마는 자주 재클린 케네디와 비교되곤 한다. 마치 그녀들의 남편인 케네디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이 그런 것처럼.

어쩌면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의 패션계가 재클린 케네디를 추억하듯이, 훗날의 패션계는 미셸 오바마를 재클린 케네디 못지않게 스타일리시했던 역대 최고의 퍼스트레이디로 기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아니, 어쩌면 미셸 오바마는 그저 스타일리시한 퍼스트레이디를 넘어서 스타일리시한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에게 쏟아지는 찬사와 대중적 인기를 감안할 때 감히 상상해볼 만한 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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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뮤즈 조엘 킴벡 저 | 미래의창

조엘 킴벡, 그가 드디어 자신의 책을 펴냈다. 현재 뉴욕 패션가에서 가장 핫한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며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인 그는 전 세계 패션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진정한 ‘글로벌 노마드(Global Nomad)’다. 요즘 제일 잘 나가는 할리우드 여배우부터 미국의 퍼스트레이디인 미셸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세계적인 스타일 셀럽 30인의 솔직담백한 백스테이지 인터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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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 #H&M #제이크루 #J.Crew #재클린 케네디
1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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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1318

2013.01.31

비싼 옷을 입는다고 그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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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er08

2012.12.31

진정한 영부인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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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2012.12.29

에이치엔엠 대박 낫겠다 ㅋㅋ 영부인과 같은 옷을 내가...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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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킴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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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킴벡

뉴욕, 서울, 도쿄, 파리, 밀라노 등을 오가며 글로벌 패션·뷰티 트렌드의 프로듀서가 된 한국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0년 뉴욕에 설립한, 패션·뷰티 브랜드 전문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인 스튜디오 핸섬의 공동대표이자, 질 샌더, 메종키츠네, 메종 마르지엘라, 베라 왕, 모스키노, 라프 시몬스, 로베르토 카발리, 리모와, 캘빈 클라인 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로레알 그룹의 슈에무라, 시세이도 그룹의 끌레드뽀 등 뷰티 브랜드의 전략 수립부터 비주얼 작업 및 광고 캠페인까지 브랜딩 전반을 책임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글로벌 패션 매거진인 <보그>, <보그 재팬>, <보그 차이나>, <보그 코리아>, 등의 커버 및 화보 촬영을 진행하며, 기네스 팰트로, 니콜 키드먼, 아만다 사이프리드, 앤 해서웨이와 같은 헐리우드 스타부터, 케이트 모스, 지젤 번천, 미란다 커, 킴 카다시안을 비롯한 슈퍼 모델까지 수많은 컬래버레이터들과 함께 해왔다. 국내에선 삼성물산 빈폴의 브랜드 컬래보레이션 및 광고 캠페인을 시작으로, CJ오쇼핑의 베라 왕 등 여러 패션 브랜드 론칭, 문화체육관광부의 ‘컨셉 코리아’ 초기 컨설팅 및 론칭을 진행했으며, 최근 신세계인터내셔널의 뽀아레(POIRET) 론칭과 스타일 난다의 3CE 프로젝트까지 패션, 뷰티 브랜드를 오가며 활약하고 있다. 전 세계 패션·뷰티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패션·뷰티 트렌드와 커머셜 인사이트에 정통해 , , 등의 패션 매거진, <월간 디자인>, <주간동아> 등의 다양한 지면에 컬럼을 기고하며 ‘포털에서 찾을 수 없는’ 브랜드, 트렌드, 마케팅에 관한 솔직하고 리얼한 이슈와 흐름들을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