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에게 필요한 건 마음은 중년, 몸은 소년인 남자! - (나보다) 젊은 사람들에 대한 예찬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던 밤, 그러므로 나는 이 소설의 조금 다른 측면들에 주목해 읽기 시작했다. 오스카 와일드식의 그 지독한 탐미주의를 넘어, 젊음에 대한 강박이라는 지점에서 말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바질’이라는 화가의 모델인 ‘도리언’이 ‘헨리’라는 탐미주의자와 만나 자신의 아름다움에 눈뜨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기는 이야기다.
2012.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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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본 텔레비전 드라마의 한 장면. 한 여자가 자신을 짝사랑하는 잘 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미안한데, 그쪽은 내 취향이 아니에요!” 여자의 말에 당황스런 표정을 짓던 남자가 그럼 어떤 취향이냐고 묻자, 여자가 진지한 얼굴로 똑 부러지게 말한다. “나 연하 사귈 거예요. 보기보다 신여성이에요, 저.” 취향을 묻는데 그저 ‘연하’라고 대답한 여자가 어이없어서 남자가 다시 되묻는다. 그냥 연하? 아무 조건 없이 연하면 되는 거냐고 말이다. 여자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연하인데 뭘 더 바래요?”
이 남자의 나이 41살 (참고로 남자는 장동건!). 젊은 날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꽤나 멋진 포즈를 가지게 된 성공한 남자지만 억만금을 준다 해도 생물학적 나이를 줄일 수는 없으니, 이 여자(참고로 여자는 김하늘!)의 고백은 통탄할 만한 것이다.
소설 『스타일』에는 (참고로 작가는 백영옥!)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자신의 애인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길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이는 많지만 멋있고 예쁜 여자? 모르는 소리하지 마. 남자들은 자기 여자 어려지는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냥 어린 여자를 좋아하는 거지!” 물론 이런 대화가 나오게 된 배경은 취재를 통한 것이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 ‘젊음에 대한 강박’은 더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나이가 들었음을 절감하게 되는 건 자신이 ‘아름답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이 좋고, ‘예쁘다’는 말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더 좋아하게 되는 순간 불현듯 찾아온다. 어느 작가의 출간 기념회 뒷풀이 자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누나’ 내지는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도대체 쟤들은 왜 나를 그렇게 부르지?”라고 깨달았다는 B의 이야기는 사실 내 얘기다. 맞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가치명제일 뿐이지만 ‘노화는 우리의 미래다’는 말할 것도 없는 사실명제인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던 밤, 그러므로 나는 이 소설의 조금 다른 측면들에 주목해 읽기 시작했다. 오스카 와일드식의 그 지독한 탐미주의를 넘어, 젊음에 대한 강박이라는 지점에서 말이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바질’이라는 화가의 모델인 ‘도리언’이 ‘헨리’라는 탐미주의자와 만나 자신의 아름다움에 눈뜨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기는 이야기다.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이 세월과 함께 변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 대신 자신을 그린 초상화가 대신 늙길 바라게 된다. 도덕과 양심과 경험을 넘어선 욕망. 이룰 수 없는 욕망을 욕망하면서부터 비극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는데, 오스카 와일드가 그리는 ‘어둡고 고딕적인 분위기’는 처절하고 아름답게 이야기의 섬세한 맥박을 만든다.
은밀한 비밀을 감추기 위한 살인, 자신을 흠모하고 사랑한 여배우를 자살하게 만드는 지독한 독설, 삶에 대한 거칠 것 없는 호기심과 탐닉이 가져다주는 파탄들, 결국 모든 것의 원흉이 된 초상화 속의 아름다운 얼굴을 스스로 칼로 찌르는 순간, 초상화는 젊음을 되찾고, 도리언 그레이 자신은 늙고 흉측한 얼굴로 죽게 되고 만다.
‘선’이 이기고 ‘악’이 실패할 것이라고 믿던 순진한 ‘빅토리아 시대’에 누구보다 ‘악’과 ‘욕망’의 실체에 대해 접근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실제 삶은 비극적이었다. 그는 사랑했지만 아이가 둘이나 있던 남자 (여자가 아니라!)에게 버림받았고, 가난 때문에 길거리에서 친구들에게 구걸했으며, 병들고 황폐하게 죽어갔다. 자기 욕망은 대부분 절제하고 살아야 한다고 믿던 시대에 이토록 계몽적인 죽음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그의 소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건 인간의 욕망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시대의 ‘젊음에 대한 욕망’을 읽는 데 ‘도리언 그레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올 봄 나는 『은교』를 다시 읽었다. 작가의 말처럼 밤에 썼으니 밤에 읽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을 읽을 때쯤 어쩐지 마음이 점점 심란해졌다. 어째서 성공적인 시절을 보냈던 노인은 열일곱 어린 소녀와 사랑에 빠지는 걸까. 일흔 두 살의 대작가 괴테가 열아홉 울리케와 사랑에 빠져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혼했던 것처럼.
결국 늙음은 젊음을 흠모하고, 찰나의 순간에 아름다움의 절정을 찍는 청춘을 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마르틴 발저의 『불안의 꽃』은 나무들도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되면 화려한 꽃을 피워서 자기 흔적을 남기려는 어떤 경향성에 대해 얘기한다. 진화생물학적으로 그것은 우리가 자연이라 말하는 것, 즉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죽을힘을 다해 씨를 뿌리라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은교』가 말하는 건, 몸이 늙는다고 해서 욕망이 늘어진 피부처럼 늙고, 시들어 버리는 게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인 것이다. 그저 아름다운 것을 보면 만지고 싶고, 안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망에 대한 것 말이다.
미국의 트렌드 전문가 페이스 팝콘이 펴낸 『미래생활사전』에는 ‘코스메틱 언더클래스(cosmetic underclass)’라는 말이 등장한다. 성형 수술을 할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자기 나이만큼 살아가야 하는 하위 계층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곧 노화 방지 언더클래스(anti-aging underclass)라는 신조어가 생길 판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나이를 굳이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든 건 아닐까. 생물학적 나이와 미용학적 나이. 피부가 여자의 권력이 되고, 계층을 나누기 시작했다는 건 어느 모로 보나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언젠가 보았던 어느 ‘노화방지 클리닉’ 의사의 “노화는 필연적인 현상이 아닌 개선할 수 있는 질병이다”라는 호언장담이었다. 이곳의 이름 역시 무척 상징적이어서, 이름 하여 SF클리닉. 병원 입구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잡티하나 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듯 팽팽한 피부를 얻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줄 것 같다.
여자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21세기에 능력 있는 여자들이 연하의 남자들과 사귀는 현상이 그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것 같진 않다. 여자보다 예쁜 꽃미남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맥락을 살펴보면, 한 시대의 욕망이 잘 보이게 마련이다.
문득 언젠가 햇볕 좋은 카페에서 한 선배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른두 살 먹은 그가 내 나이를 묻는 게 난 좀 웃겼었어. 그래서 마흔 다섯의 내가 이렇게 말했지. 반가워요. 동갑이네요!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 어머,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시네요!” 이 얘길 듣다가 나는 박장대소했었다. 동안을 자랑하는 선배가 자신의 얼굴을 과시하는 귀여운 방법이나, 동시에 젊음을 비꼬는 말투가 너무 시니컬해서였다.
샷을 추가한 에스프레소 한 잔 더 마실 즈음, 그가 내게 한 인상적인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나이 든 여자가 젊은 남자와 연애하면 그 남자를 빨리 늙게 해. 여자는 남자의 젊음과 시간을 질투하거든.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하지를 못해. 그런데 말이야, 남자는 좀 달라. 남자는 여자가 더 젊어지길 바라거든. 남자는 여자의 젊음과 시간을 질투하지 않아. 그래서 여자는 나이 든 남자를 만나면 더 젊어지는 거야.”
일본 작가 ‘다이라 아즈코’의 이 말은 언제 들어도 웃음이 난다. 아마도 많은 여자들이 이 문장을 읽다가 크게 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 『은교』에 인용된 보들레르의 「노파의 절망」을 읽으면 어쩐지 코끝이 찡해진다.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은 이 싯구에 마음을 크게 다쳐 남몰래 울었을지도 모른다.
슬펐다. 마음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에서 이 문장을 찾아낸 밤, 나는 이제 곧 아흔이 될 나의 시어머니를 떠올렸다. 자신의 몸 안에 5년째 암 종양을 데리고 사는 나의 늙은 어머니, 그녀의 따뜻한 숭늉 같은 회색빛 눈을. 그리고 때때로 그녀가 헐거운 이를 조금씩 드러내며 아이처럼 웃는다는 것도 기억해냈다. 치아 없는 아이로 태어나 치아 없는 노인으로 늙는 것의 이토록 기가 막힌 삶의 수미일관. 그날 나는 꿈속에서 폭설처럼 머리카락이 새고, 몸이 휘고, 그래서 벌레처럼 웅크린 나를 바라보았다. 꿈속이어서 그랬을까. 그것이 꼭 슬프지만은 않은 밤이었다.
이 남자의 나이 41살 (참고로 남자는 장동건!). 젊은 날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꽤나 멋진 포즈를 가지게 된 성공한 남자지만 억만금을 준다 해도 생물학적 나이를 줄일 수는 없으니, 이 여자(참고로 여자는 김하늘!)의 고백은 통탄할 만한 것이다.
나이가 들었음을 절감하게 되는 건 자신이 ‘아름답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말이 좋고, ‘예쁘다’는 말보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더 좋아하게 되는 순간 불현듯 찾아온다. 어느 작가의 출간 기념회 뒷풀이 자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모든 남자들이 자신을 ‘누나’ 내지는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 “도대체 쟤들은 왜 나를 그렇게 부르지?”라고 깨달았다는 B의 이야기는 사실 내 얘기다. 맞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는 가치명제일 뿐이지만 ‘노화는 우리의 미래다’는 말할 것도 없는 사실명제인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읽던 밤, 그러므로 나는 이 소설의 조금 다른 측면들에 주목해 읽기 시작했다. 오스카 와일드식의 그 지독한 탐미주의를 넘어, 젊음에 대한 강박이라는 지점에서 말이다.『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바질’이라는 화가의 모델인 ‘도리언’이 ‘헨리’라는 탐미주의자와 만나 자신의 아름다움에 눈뜨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기는 이야기다.
미모는 천재성의 한 형태라네……아니, 사실상 천재성보다 훨씬 우월하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야. 햇빛처럼, 봄날처럼, 검은 물속에 비친 우리가 달이라고 부르는 저 은빛 조가비의 그림자처럼,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위대한 요소 가운데 하나야. 그건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네.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서 신성한 주권을 지니고 있지. 그래서 아름다움은 그것을 간직한 사람들을 일인자로 만든다네. 자네 지금 웃고 있나? 아! 하지만 자네가 미모를 모두 잃었을 땐, 미소 지을 일도 없을 걸세… 사람들은 때때로 이렇게 말하지. 아름다움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피상적인 것은 아니라네. 내게 아름다움은 그 모든 경이로움 가운데에서도 경이로운 것이지. 사물을 외양으로 판단하지 않는 사람은 얕은 사람들뿐이라네. 세상의 진짜 신비는 명명백백 눈에 보이는 것에 있지. 눈으로 봐서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그래, 그레이군. 신은 자네에게 가장 완전한 모습을 부여해주었어. 하지만 신이 준 것은 신이 냉큼 앗아가 버리고 말지. 자네가 진정으로, 완벽하게, 그리고 충만하게 살 수 있는 날도 몇 년 남지 않았다네. | ||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이 세월과 함께 변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 도리언 그레이는 자신 대신 자신을 그린 초상화가 대신 늙길 바라게 된다. 도덕과 양심과 경험을 넘어선 욕망. 이룰 수 없는 욕망을 욕망하면서부터 비극의 씨앗은 자라기 시작하는데, 오스카 와일드가 그리는 ‘어둡고 고딕적인 분위기’는 처절하고 아름답게 이야기의 섬세한 맥박을 만든다.
이를테면 우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오해하며 타인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경험에는 윤리적인 가치가 없다. 경험이란 단지 인간이 자신의 실수에 갖다 붙인 이름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도덕가들은 경험을 경고의 방식으로 간주해왔고, 성격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경험에 어떤 윤리적 효과를 요구했으며, 경험이란 우리가 무엇을 따라야 하는지 가르쳐주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무언가라며 칭송해 왔다. 하지만 경험에는 동기가 되는 힘이 없었다. 양심이 워낙 그렇듯이 경험 역시 거의 적극적인 원인이 될 수 없었다. 사실상 경험이 우리에게 증명해 보인 것은 우리의 미래가 과거와 다를 바 없으며, 우리가 한때는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질색하지만 나중엔 기꺼이 수시로 죄악을 저지르게 되리라는 것뿐이었다. | ||
‘선’이 이기고 ‘악’이 실패할 것이라고 믿던 순진한 ‘빅토리아 시대’에 누구보다 ‘악’과 ‘욕망’의 실체에 대해 접근했던 오스카 와일드의 실제 삶은 비극적이었다. 그는 사랑했지만 아이가 둘이나 있던 남자 (여자가 아니라!)에게 버림받았고, 가난 때문에 길거리에서 친구들에게 구걸했으며, 병들고 황폐하게 죽어갔다. 자기 욕망은 대부분 절제하고 살아야 한다고 믿던 시대에 이토록 계몽적인 죽음도 없는 셈이다. 하지만 그의 소설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여전히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는 건 인간의 욕망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시대의 ‘젊음에 대한 욕망’을 읽는 데 ‘도리언 그레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올 봄 나는 『은교』를 다시 읽었다. 작가의 말처럼 밤에 썼으니 밤에 읽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라고, 소리 없이 소리쳐, 나는 말했다. | ||
결국 늙음은 젊음을 흠모하고, 찰나의 순간에 아름다움의 절정을 찍는 청춘을 기릴 수밖에 없다는 것일까. 마르틴 발저의 『불안의 꽃』은 나무들도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되면 화려한 꽃을 피워서 자기 흔적을 남기려는 어떤 경향성에 대해 얘기한다. 진화생물학적으로 그것은 우리가 자연이라 말하는 것, 즉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죽을힘을 다해 씨를 뿌리라는 유전자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은교』가 말하는 건, 몸이 늙는다고 해서 욕망이 늘어진 피부처럼 늙고, 시들어 버리는 게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인 것이다. 그저 아름다운 것을 보면 만지고 싶고, 안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망에 대한 것 말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나이를 굳이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든 건 아닐까. 생물학적 나이와 미용학적 나이. 피부가 여자의 권력이 되고, 계층을 나누기 시작했다는 건 어느 모로 보나 무시무시한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언젠가 보았던 어느 ‘노화방지 클리닉’ 의사의 “노화는 필연적인 현상이 아닌 개선할 수 있는 질병이다”라는 호언장담이었다. 이곳의 이름 역시 무척 상징적이어서, 이름 하여 SF클리닉. 병원 입구에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잡티하나 없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듯 팽팽한 피부를 얻을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줄 것 같다.
여자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한 21세기에 능력 있는 여자들이 연하의 남자들과 사귀는 현상이 그저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것 같진 않다. 여자보다 예쁜 꽃미남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맥락을 살펴보면, 한 시대의 욕망이 잘 보이게 마련이다.
문득 언젠가 햇볕 좋은 카페에서 한 선배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서른두 살 먹은 그가 내 나이를 묻는 게 난 좀 웃겼었어. 그래서 마흔 다섯의 내가 이렇게 말했지. 반가워요. 동갑이네요! 그랬더니 그가 이렇게 말하더군. 어머,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시네요!” 이 얘길 듣다가 나는 박장대소했었다. 동안을 자랑하는 선배가 자신의 얼굴을 과시하는 귀여운 방법이나, 동시에 젊음을 비꼬는 말투가 너무 시니컬해서였다.
샷을 추가한 에스프레소 한 잔 더 마실 즈음, 그가 내게 한 인상적인 얘기는 이런 것이었다. “나이 든 여자가 젊은 남자와 연애하면 그 남자를 빨리 늙게 해. 여자는 남자의 젊음과 시간을 질투하거든.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여자는 그렇게 하지를 못해. 그런데 말이야, 남자는 좀 달라. 남자는 여자가 더 젊어지길 바라거든. 남자는 여자의 젊음과 시간을 질투하지 않아. 그래서 여자는 나이 든 남자를 만나면 더 젊어지는 거야.”
중년 남자가 좋지 않은 건 말야. 체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마음만이라도 소년으로 되돌아가려 한다는 점이야. 마음은 소년인데, 몸은 아저씨. 이렇게 도움이 안 되는 건 세상에 없다구! 여자에게 필요한 건 마음은 중년 몸은 소년인 남자라구. | ||
일본 작가 ‘다이라 아즈코’의 이 말은 언제 들어도 웃음이 난다. 아마도 많은 여자들이 이 문장을 읽다가 크게 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 『은교』에 인용된 보들레르의 「노파의 절망」을 읽으면 어쩐지 코끝이 찡해진다. 아마도 더 많은 사람들은 이 싯구에 마음을 크게 다쳐 남몰래 울었을지도 모른다.
쭈글거리는 노파는 귀여운 아기를 보자 마음이 참 기뻤다 모두가, 좋아하고 뜻을 받아주는 그 귀여운 아기는 노파처럼 이가 없고 머리털도 없었다. | ||
슬펐다. 마음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흔 살이 지나면, 오십대나 육십대와는 다르게 늙는다. 서글픔이나 원망 없이 늙는다. 니니의 주름진 얼굴은 장밋빛이었다. 고귀한 천, 가족 모두 힘을 합해 온갖 정성과 꿈을 엮어 만든 몇 백 년 묵은 비단이 그렇게 늙는다. 일 년 전, 그녀의 한쪽 눈이 백내장에 걸렸다. 그 눈은 이제 슬픈 회색빛으로 보였다. 나머지 눈은 원래 그대로 푸른빛, 8월의 산중 호수처럼 시간을 초월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다. 미소 짓는 눈, 니니는 언제나처럼 짙푸른색 옷을 입고 있었다. 짙푸른색의 모직 치마와 수수한 블라우스. 칠십 오 년 동안 새 옷을 입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 ||
-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저/서민아 역 | 예담
완벽하게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는 어느 날, 화가가 그려준 초상화를 통해 자신의 미모에 눈을 뜨게 되고, 이를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는 허황된 소망을 품는다. 그러나 허황된 것이라고만 여겼던 그의 소망이 이루진다. 도리언 그레이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하고, 대신 초상화가 늙어가면서 더불어 그가 지은 죄의 흔적까지 모두 짊어지고 추하게 변해가는 것이다…
1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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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백영옥
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idream3
2019.10.11
지금 나이의 영혼에 소년의 몸으로 돌아 갈 수 있다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젊음을 가지고 있을 땐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서 젊음을 향유하지 못하고, 마음에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을 때쯤엔 젊음은 이미 지나가고 없네요.
잃어버린 것에 집착하기 보단 늙는다는 것에 대해 긍정할 수 있어야 할듯 합니다.
did826
2013.04.30
만다
201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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