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 알랭 드 보통 『사랑의 기초 한 남자』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서문에서 “한 남자의 시선으로 그 남자의 관심과 고민을 통해 사랑을 탐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려 애썼다, 남자들이 얼마나 쉽게 사랑에 빠지고 또 쉽게 싫증을 내는지를 깨달았다.”면서 오래된 관계에 대한 얘기, 최초의 행복감이 사라진 다음의 사랑,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하였다고 밝혔다.
글ㆍ사진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2012.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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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흥미로운 소설 두 권이 출간되었다. 소설가 정이현과 알랭 드 보통이 『사랑의 기초』라는 하나의 주제로 ‘연인들’과 ‘한 남자’라는 소설을 각자 쓴 것이다. 2000년 출간 된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 Blu와 Rosso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 책이 두 작가가 한 이야기를 릴레이로 남자와 여자의 관점에서 같은 주인공들로 써내려 간것과 달리 이 책은 20대에서 30대를 바라보는 미혼 남녀의 사랑과 30대 후반에서 40으로 넘어가는 결혼 중년기의 사랑을 대조하는 두 권의 다른 소설로 이루어져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그 나이여서 그런지 ‘한 남자’에 공감을 하며 읽었다.

저자 알랭 드 보통은 서문에서 “한 남자의 시선으로 그 남자의 관심과 고민을 통해 사랑을 탐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려 애썼다, 남자들이 얼마나 쉽게 사랑에 빠지고 또 쉽게 싫증을 내는지를 깨달았다”면서 오래된 관계에 대한 얘기, 최초의 행복감이 사라진 다음의 사랑,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하였다고 밝혔다. 보통은 철저히 남자의 시선에서 결혼에 빠지는 심리, 그리고 결혼이 안정기에 접어드는 순간 객관적으로는 불만을 가질 일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불만거리가 생기고, 만족하지 못하는 면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섬세하고 미시적으로 묘사하면서 동시에 저자 특유의 철학적 사유를 소설 곳곳에 박아놓아 소설을 읽다 멈추고 밑줄을 긋고 싶게 만든다. 그의 첫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 걸까』가 1993년에 발간된후 20년만에 나온 책인데, 1969년인 저자가 20대 중반의 사랑에 빠지는 설레는 마음을 철학적으로 전작에서 풀었다면 이 책에서는 중년이 된 생활인이자 결혼제도에 대해 몸소 경험을 한 바를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추측하게도 된다.

이 책은 39세로 런던북부 주택가에서 두 아이를 아내 엘로이즈와 키우며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 벤이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일주일에 한번 자잘하게, 보름에 한 번은 크게 싸운다.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에 가는 중에 길을 잃었다. 아내는 길을 묻자고 하고, 남편은 물어보기를 거부하고 만일 물어보라고 하면 그냥 집에 가겠다고 버틴다.

부부관계도 갈등이다. 남성은 부족하다고 느끼고, 여성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긴장과 대치속에 있다. 침대에서 로맨틱한 면은 하나도 없이 타월을 두른 채 피부손질을 하는 아내, 몇 주째 관계를 갖지 못해 불만인 벤은 눈치를 주지만 엘로이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벤이 “당신 졸린가봐”라고 넌지시 말하자,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그런가 피곤하네”라면서 바로 등을 돌리고 누워버린다. 몇 년전 처음 술집에서 처음 만나 관심사가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사랑을 느꼈던 날, 두 사람만의 집을 사서 함께 계획을 세울 때의 흥분은 까마득한 옛날 얘기가 되었을 뿐이다.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아닌가? 바다건너 한국의 부부와 너무 비슷해서 놀랄 정도였다. 사람사는 것이 다 비슷하고, 고민하는 것도 다 비슷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들었다. 그런 과정에 벤에게도 흥분할 우연이 발생했다. 우연히 알게 된 25세 여성 베키와 세미나를 갔다가 하룻밤을 보낸다. 만일 드라마적 구성의 소설이라면 여기서부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독자들의 환상을 충족시켜줘야 했을 것이다. 벤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통상적인 시각에서 약간 비켜나면, 외도 자체는 죄가 아니다. 외도가 거부감을 주는 이유는 그 부조리한 천진난만함, 그 속에 담긴 희망, 그것의 감상주의때문이다. 즉, 그것에 깃든 낭만성이 거슬리는 것이다.”

하지만 보통은 딱 여기서 멈춘다. 너무나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벤은 죄책감을 갖고, 불안해하며 다시는 만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현실을 이렇게 고백한다.

“결혼한 사람이 기회가 될때마다 바람을 피우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얼마나 비겁한 사람인지 정확히 아는데서 오는 겸손함때문이다. 결혼생활이 그들에게 주는 통찰이다.”

비겁하지만 평범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중년의 심리를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이어 벤은 출장에서 돌아오는 공항에서 갑자기 자신의 위치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또렷히 깨닫고, 거듭된 실수와 자만심때문에 결국 이렇게 별볼일 없는 중년이 되어버린 것에 대해 어린 날 그를 믿어준 모든 이에게 사과하고 싶어졌다. 더 멋지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자신의 현재가 초라하게 느껴졌고, 나아가 그러리라 기대했던 모든 이들에게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이런 평범함의 틀을 깨기 위해 벤은 40살이 되는 생일에 자신에게 선물을 준다. 바로 헬리콥터를 타 본 것이다. 헬리콥터에서 바라본 세상을 보며 벤은 평범한 삶을 유지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생에서 영웅이 될 기회를 제공한다 역설적 진리를 깨닫는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것, 이것이 진짜 용기이고 영웅주의라는 것이다.

소설의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는 무척 밋밋한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끌고 나가는 힘은 사이사이 나오는 보통의 결혼, 육아, 사랑에 대한 경구들이었다. 그러던 중 벤이 이 평범한 삶이 영웅주의라는 것을 깨닫는 장면으로 페이지를 넘기면서 갖고 있던 다소의 불만이 한 번에 사라졌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가 영웅이 되고, 뉴스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또 그래서도 안된다. 그보다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것은 아주 평범하고 지루하고, 그저 보통의 삶일 것 같아보이나, 그것을 그래도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영웅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고 자평하고 만족해나가는 것이 아닐까. 알랭 드 보통이 ‘보통의 평범한 삶이 영웅적이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그의 이름을 생각하면 웃기기도 하지만, 정신과 의사인 내 입장에서는 공감이 가는 면이었다. 사랑 다음에 또 다른 사랑이 있을 것을 우리는 기대하지만, 대부분 우리가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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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초 한 남자 알랭 드 보통 저/우달임 역 | 톨

『사랑의 기초_한 남자』는 알랭 드 보통이 『키스&텔』(1995) 이후 17년 만에 쓴 소설로, 서로를 열렬히 사랑하여 결혼에 성공한 부부인 벤과 엘로이즈를 중심으로 그들의 가정생활, 자녀양육, 사랑과 섹스 등에 관한 고민을 그린 작품이다. 저자는 지금껏 우리가 섣불리 입 밖에 꺼내놓지 못했던 결혼의 일상성과 그 그늘을 밀도 깊게 탐구하고, 행복한 부부로 사는 법은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연습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에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사랑의 기초 #알랭 드 보통 #정이현
9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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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adori

2012.10.04

사랑.. 그 사랑 알랭드 보통의 책 속의 사랑에 대해서 더 알아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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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2012.10.01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정말 읽을때마다 다른 느낌.
남자의 입장이라니 더 더욱 읽어보고 싶은 책!
남자의 입장을 알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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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hovah511

2012.06.25

알랭드보통의 책은 정말 다 읽고 싶네요..
이번엔 어떤 내용일지, 어떻게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는지
너무나도 기대됩니다. 저도 사람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알랭드보통의 책을 읽으면
사람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는 듯해서 너무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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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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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에 능통하다. 알랭 드 보통은 스물세 살에 쓴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여러 나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의 책들은 현재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2003년 2월에 드 보통은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부터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명예인 예술문화훈장을 받았으며, 「슈발리에 드 로드르 데자르 에 레트르」라는 기사 작위를 받았다. 같은 해 11월에는 츠베탕 토도로프, 로베르토 칼라소, 티모시 가튼 애쉬, 장 스타로뱅스키 등과 같이 유럽 전역의 뛰어난 문장가에게 수여되는 「샤를르 베이옹 유럽 에세이 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 내용에 바탕을 둔 TV 다큐멘터리 제작에 오랫동안 관여해왔다. 『프루스트는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꿨나』는 BBC 영화제작팀에서 랄프 파인즈와 펠리시티 켄들을 주연으로 하여 제작됐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영국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동시에 영국에서 「철학: 행복으로의 안내」라는 제목으로 6부작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방영됐다. 그의 대표작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는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놀랍도록 기이한 첫 만남에서부터 점차 시들해지고 서로를 더이상 운명으로 느끼지 않게 되는 이별까지, 연애에 대한 남녀의 심리와 그 메카니즘이 철학적 사유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기술되어 있는 작품이다. 알랭 드 보통은 미국에서는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는데, 20대의 재기와 30대의 깊이가 뛰어난 조화를 이룬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로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새로운 글쓰기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이 책은 전기 형식으로 문학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저자 특유의 유머와 상상력으로 버무린 인생학 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비롯한 프루스트의 편지와 메모들을 인용하며, 프루스트가 겪은 잡다한 사건들은 물론 사생활까지도 인정 사정 없이 들춰낸다. 그는 또한 일상적인 주제에 대한 철학적인 접근으로 철학의 대중화를 시도해왔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서는 철학사 속에서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다룬 가장 탁월한 여섯 명의 정신에 눈길을 돌린다. 그리하여 돈의 결핍, 사랑의 고통, 부당한 대우, 불안, 실패에 대한 공포와 순응에의 압력 등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세네카, 몽테뉴, 쇼펜하우어, 니체의 처방전이 소개된다. 2009년에 출간된 『일의 기쁨과 슬픔』은 로켓 과학자에서 비스킷 공장 노동자, 유조선 일등 항해사부터 택배 배달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그는 특유의 위트와 통찰력을 바탕으로 자주 도망치고 싶은 이 ‘일’의 세계가 결국 우리 삶에 근본적인 ‘의미’를 주는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런던 히드로 공항에 상주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담은 『공항에서 일주일을』은 우리가 볼 수 없었던 공항의 다양하고 매력적인 면면들을 흥미롭게 들려준다. 2012년에는 한국의 젊은 작가 정이현과 ‘사랑, 결혼, 가족’이라는 공통의 주제 아래, 각각 젊은 연인들의 싱그러운 사랑과 긴 시간을 함께한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장편소설을 집필했다. 2010년 4월부터 2012년 4월까지 꼬박 2년 동안, 작가들은 함께 고민하고, 메일을 주고받고, 상대 작가의 원고를 읽고, 서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원고를 수정하여 알랭 드 보통은 『사랑의 기초 한 남자』를, 정이현은 『사랑의 기초 연인들』을 내놓는다. 이외에도 유머와 통찰력으로 가득한 철학적 연애소설 『우리는 사랑일까』,『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여행에 관한 에세이『여행의 기술』, 독특한 문학평론서 『프루스트 선생에게 물어보세요』, 불안에 관한 인간의 상념을 고찰한 에세이『불안』, 다양한 건축물을 조명한 『행복의 건축』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