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식당과 음식이 사치로 느껴지다 - 티숍의 나라, 버마
티숍은 버마인들이 빈약한 자원으로 만들어낸 가장 소박한 형태의 위로 공간이다. 이마저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 생존과 관련된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버마식 해답이다. 배고픔과 피로, 사교에 대한 욕구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과 음식들. 세상에 존재하는 이 이상의 식당과 카페들을 단번에 사치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졌다.
201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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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 저녁에 뭘 먹을까.
랑군(양곤) 공항의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면서, 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것이다. 식도락보다는 정치적 상황으로 더 잘 알려진 나라다. 군사독재정권, 아웅산 폭파 사건, 아웅산 수치 여사, 버마 또는 미얀마. 동남아시아에서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비밀스러운 나라다. 버마로 가는 사람도, 버마에서 오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양에 두둥실 떠 있는 섬처럼 고독한 그곳.
우울하고 초라한 도시다. 영국의 식민 시절 세워진 유럽풍 건물들이 보수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로 서서히 썩어가고 있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비슷한 몰골이다. 만들어진 지 20년 아니 30년은 족히 지난 헌털뱅이 차들.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라면 진작 폐기되고도 남았을 물건들이 팔려와 간신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여기가 바로 버마. 군부가 바꾼 이름으로는 미얀마라고 한다.
버마의 명물로 ‘티숍(Teashop)’이 있다. 도시와 시골 어디에나 있는 티숍. 말 그대로 차(Tea)를 파는 가게다. 제대로 된 식당처럼 꽤 규모를 갖춘 티숍도 있지만 대개는 도로 옆 나무그늘 아래 소박하게 판을 벌인 간이 찻집이다. 강대 이웃인 인디아와 중국, 그리고 한때 버마를 점령했던 영국의 영향이 뒤섞인, 이 나라 고유한 형태의 카페이자 시민들의 휴식처.
호화로운 다과를 원한다면 길거리 티숍이 아니라 랑군의 스트레인드 호텔(Strand Hotel)로 가야 한다. 싱가포르의 래플스(Raffles)와 더불어 한때 동남아시아에서 고전적 고급호텔의 양 날개를 형성했던 아름답고 우아한 호텔.
종업원이라기보다는 시종에 가까운 느낌을 풍기는 하얀 제복 차림의 종업원이 정중하게 현관문을 열어준다. 티크와 대리석, 실크로 꾸며진 공간이 펼쳐진다. 1층 카페 겸 바에서는 하이티를 마실 수 있다. 파나마모자를 비스듬하게 쓰고 시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서머싯 몸이 칵테일을 마셨음직한 분위기 있는 공간이다.
이런 고급 호텔의 카페는 돈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간다. 현지인들의 선택은 길거리 티숍이다. 유치원생들이나 앉으면 맞을 듯 다리가 짤막한 테이블에 한국에서는 목욕탕에서나 쓰는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를 옹기종기 늘어놓았다.
러펫예(차)를 한 잔 합시다. 미니 의자에 위태롭게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낡은 보온병을 들어 흐린 찻물을 따른다. 다도를 논할 자리는 아니다. 질 좋은 찻잎은 대부분 외화벌이를 위해 수출하고 최하급 찻잎 부스러기를 약간 넣어 우려낸 차다. 설탕과 우유를 넣어 인디안 식으로 마신다.
배가 고프면 테이블 구석에 미리 비치된 기름에 전 튀김이나 빵 등 스낵을 먹거나 새로 주문한다. 인디아풍 사모사도 있고 중국풍 만두를 쪄내 팔기도 한다. 서구식 카페나 스낵바의 버마 버전이다. 값은 아주 싸다. 차 한 잔에 200원 정도.
티숍은 버마인들이 빈약한 자원으로 만들어낸 가장 소박한 형태의 위로 공간이다. 이마저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 생존과 관련된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버마식 해답이다. 배고픔과 피로, 사교에 대한 욕구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과 음식들. 세상에 존재하는 이 이상의 식당과 카페들을 단번에 사치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졌다.
여기서 잠깐 숨을 돌리도록 하자. 불편한 자세로 쪼그리고 앉았지만 그래도 다시 그늘 밖 열기 속으로, 힘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까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종지만 한 찻잔을 이따금 입에 가져가면서, 내 옆에 앉은 버마인들은 편안해 보였다.
랑군(양곤) 공항의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면서, 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몇 명 없을 것이다. 식도락보다는 정치적 상황으로 더 잘 알려진 나라다. 군사독재정권, 아웅산 폭파 사건, 아웅산 수치 여사, 버마 또는 미얀마. 동남아시아에서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비밀스러운 나라다. 버마로 가는 사람도, 버마에서 오는 사람도 거의 없다. 대양에 두둥실 떠 있는 섬처럼 고독한 그곳.
우울하고 초라한 도시다. 영국의 식민 시절 세워진 유럽풍 건물들이 보수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로 서서히 썩어가고 있다.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비슷한 몰골이다. 만들어진 지 20년 아니 30년은 족히 지난 헌털뱅이 차들. 지구상의 다른 곳에서라면 진작 폐기되고도 남았을 물건들이 팔려와 간신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여기가 바로 버마. 군부가 바꾼 이름으로는 미얀마라고 한다.
버마의 명물로 ‘티숍(Teashop)’이 있다. 도시와 시골 어디에나 있는 티숍. 말 그대로 차(Tea)를 파는 가게다. 제대로 된 식당처럼 꽤 규모를 갖춘 티숍도 있지만 대개는 도로 옆 나무그늘 아래 소박하게 판을 벌인 간이 찻집이다. 강대 이웃인 인디아와 중국, 그리고 한때 버마를 점령했던 영국의 영향이 뒤섞인, 이 나라 고유한 형태의 카페이자 시민들의 휴식처.
호화로운 다과를 원한다면 길거리 티숍이 아니라 랑군의 스트레인드 호텔(Strand Hotel)로 가야 한다. 싱가포르의 래플스(Raffles)와 더불어 한때 동남아시아에서 고전적 고급호텔의 양 날개를 형성했던 아름답고 우아한 호텔.
종업원이라기보다는 시종에 가까운 느낌을 풍기는 하얀 제복 차림의 종업원이 정중하게 현관문을 열어준다. 티크와 대리석, 실크로 꾸며진 공간이 펼쳐진다. 1층 카페 겸 바에서는 하이티를 마실 수 있다. 파나마모자를 비스듬하게 쓰고 시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서머싯 몸이 칵테일을 마셨음직한 분위기 있는 공간이다.
이런 고급 호텔의 카페는 돈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간다. 현지인들의 선택은 길거리 티숍이다. 유치원생들이나 앉으면 맞을 듯 다리가 짤막한 테이블에 한국에서는 목욕탕에서나 쓰는 조그만 플라스틱 의자를 옹기종기 늘어놓았다.
러펫예(차)를 한 잔 합시다. 미니 의자에 위태롭게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낡은 보온병을 들어 흐린 찻물을 따른다. 다도를 논할 자리는 아니다. 질 좋은 찻잎은 대부분 외화벌이를 위해 수출하고 최하급 찻잎 부스러기를 약간 넣어 우려낸 차다. 설탕과 우유를 넣어 인디안 식으로 마신다.
배가 고프면 테이블 구석에 미리 비치된 기름에 전 튀김이나 빵 등 스낵을 먹거나 새로 주문한다. 인디아풍 사모사도 있고 중국풍 만두를 쪄내 팔기도 한다. 서구식 카페나 스낵바의 버마 버전이다. 값은 아주 싸다. 차 한 잔에 200원 정도.
티숍은 버마인들이 빈약한 자원으로 만들어낸 가장 소박한 형태의 위로 공간이다. 이마저 없다면 살아갈 수 없다. 생존과 관련된 기본적인 욕구에 대한 버마식 해답이다. 배고픔과 피로, 사교에 대한 욕구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최소한의 시설과 음식들. 세상에 존재하는 이 이상의 식당과 카페들을 단번에 사치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가졌다.
여기서 잠깐 숨을 돌리도록 하자. 불편한 자세로 쪼그리고 앉았지만 그래도 다시 그늘 밖 열기 속으로, 힘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까지, 아주 잠깐만이라도.
종지만 한 찻잔을 이따금 입에 가져가면서, 내 옆에 앉은 버마인들은 편안해 보였다.
- 열대식당 박정석 저 | 시공사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태국과 베트남은 서민이 즐겨 먹는 메뉴를, 가장 와일드한 나라 인도네시아에서는 모험적인 미식 경험을, 가장 불쌍한 나라 버마에서는 변변한 요리 없이 힘겹게 끼니를 이어가는 그곳의 상황을 소재로 인간애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음식은 직접 먹고, 냄새를 맡아야 제맛이지, 그에 대한 글을 읽는 것으로 좀처럼 감동을 얻기는 어렵다는 편견이 『열대식당』에는 통하지 않겠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의 역량은 '상상하게 만드는 문장'에서 정점을 찍는다…
8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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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정석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노스웨스턴대학교와 플로리다대학교에서 영화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문학사상》으로 등단하고 소설 『33번째 남자』를 발표했다. 남미와 발리, 아프리카 등 60여 나라를 여행했고 그 기록을 담은 『쉬 트래블스』, 『용을 찾아서』, 『내 지도의 열두 방향』 등을 출간했다. 윌리엄 포크너의 영향을 받아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며 여가 시간에는 존 스타인벡, 조지 오웰 등이 쓴 책들과 요리 서적을 번역하고 바다낚시를 한다. 술 내놓으라는 말을 10여 개 언어로 할 수 있다. 우연히 찾아간 동해안 마을에 반해 그곳에 집을 한 채 직접 짓는 이야기인 『하우스』를 썼다. 현재 그 집에서 3년 넘게 살고 있다.
yerim49
2012.08.29
달의여신
2012.08.27
그런데 저는...아무리 그래도 그런 열기나는 곳은..참지 못할 것 같네요 ㅠㅠ
prognose
201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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