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하면서도 명랑한 연애시집으로 불러주세요”
전혀 다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왠지 같은 친근함으로 다가 오는 두 시인이 봄을 알리는 신작을 사이좋게 발표했다. 기대감 가득한 팬들의 눈빛들과 뮤지션의 감미로운 음악은 상상마당 북콘서트 현장을 찾은 두 시인을 충분히 설레게 했다.
글ㆍ사진 황정호
2012.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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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이 넘치는 홍대 앞거리, 상상마당에서 모처럼 새로운 시집을 들고 나선 문태준, 김선우 시인을 만났다. 음악으로 시인들의 시를 더욱 아름답게 한 초대 손님도 있었다. 남다른 매력의 보이스와 개성 있는 음악의 소유자 장차식과 수상한 커튼이 그 주인공. 두 뮤지션의 음악 속에 시인들과 나눈 감성 충만 토크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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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왠지 같은 친근함으로 다가 오는 두 시인이 봄을 알리는 신작을 사이좋게 발표했다. 기대감 가득한 팬들의 눈빛들과 뮤지션의 감미로운 음악은 상상마당 북콘서트 현장을 찾은 두 시인을 충분히 설레게 했다. 조금은 어색한 미소와 약간의 긴장된 흥분을 숨기지 못한 문태준, 김선우 시인. 그러나 이내 콘서트장의 분위기에 녹아들며 시어와 다름없는 감미로운 언어들로 시 창작의 고민과 그간의 소식들을 쏟아놓는다. 봄날의 꽃잎 같은 두 시인과의 대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 보자.


첫 번째 만남
처절하고 명랑한 연애시라고 해주었으면…… 김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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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정차식과 함께 무대에 자리 잡은 김선우 시인은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상기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1996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를 통해 등단한 그녀는 이후 여러 편의 시집을 발표하며 한동안 시인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다. 그러다 언젠가 부터는 소설가, 동화작가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런 그녀가 5년 만에 새로운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를 발표하고 오랜만에 시인의 모습으로 무대에 선 셈이니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시인에게 창작이란 그녀의 표현처럼 “겨우내 죽은 듯 잠들어 있다가 되살아나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질문

시집의 말미에 작가의 글을 통해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가 ‘처절하면서도 명랑한 연애시집으로 불리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언뜻 어울리지 않는 표현처럼 느껴지는데요.

답변

잘 안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되는 것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글 쓰는 사람이잖아요. 처절하면서도 명랑할 수 있는 것이 삶의 모습인 것 같아요(웃음). 인생의 모습이라는 것이 주야장창 슬프거나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 양면들이 시인에게는 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거죠. 이런 언어들이 자꾸 확산되고, 우리 모두가 인생의 다양한 명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면 좀 더 세상이 평화로워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질문

시를 쓰실 때는 한 순간 밀려오는 영감을 잡는 편인가요.

답변

뜻밖에도 많은 독자 분들께서 제가 시를 그렇게 쓴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웃음). 그건 시마다 달라요. 한 번에 쑴뿍 낳듯 세상에 나오는 시도 분명 있죠. 그냥 나와서 많이 손대지 않고 그대로 시집으로 들어오는 시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시들이 아주 어렵게 끙끙거리는 과정을 거치고 정말 많은 퇴고를 하게 되요. 어쩌면 대부분이 그렇죠. 이번 시집을 보시고 어떤 분은 굉장히 속도감이 느껴지는 리듬을 이야기하시며 비결을 묻기도 했는데요. 결국 답은 끊임없는 퇴고인 것 같아요. 계속 입에 붙여서 중얼거리며 퇴고를 하죠. 그 중얼거림이 어느 순간 시의 몸이 되었다 싶을 때 퇴고가 끝나는 거예요. 쑴뿍 잘 낳은 시도 예쁘지만, 어렵게 퇴고를 거쳐 예뻐진 시도 각별해요. 예쁜 것들 투성이죠(웃음).


질문

시를 읽다보면 왠지 누군가가 옆에서 툭툭 가볍게, 그러면서도 뭔가 의미를 가득 담아 이야기하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답변

시가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시라고 하면 아무튼 너무 진지하고 추상적이라 생각하는 일종의 벽이죠. ‘이 벽을 좀 자연스럽게 녹여볼 순 없을까, 친한 친구와 눈 마주치며 손잡고 이야기하듯 하는 말들은 왜 시적일 수 없나’ 이런 물음이 제 시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대로 다 한 셈이죠(웃음). 물론 처음에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퇴고할 때 걷어내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일단 가장 자유로운 상태로 내 몸과 피가 말하는 것을 따라갔던 것이 지난 5년의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질문

조곤조곤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왠지 학창시절 문학소녀였을 듯한 작가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답변

문학소녀의 이미지가 어떤 건지 조금은 두렵네요(웃음). 저는 정말 평범했어요. 적어도 고등학교 때 까지는 조금 조숙한 독서광이었던 것이 약간 차이라고 할까요. 그보다 훨씬 전 유년기, 발가벗고 바닷가와 숲속에서 놀던 시절이 제 인생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죠. 그때가 가장 특별했던 것 같아요. 대자연이라는 어머니의 품속에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유와 행복감을 맛보며 자랐던 시기였죠. 어쩌면 제 인생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 볼 수 있어요. 평범한 일상이 주는 스트레스를 단지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풀었던 거죠.

질문

문학소녀 맞으셨네요. 그렇다면 인생의 처절함을 느낀 것은 언제부터였나요.

답변

고등학교 때 까지는 그랬고요(웃음). 제 세계가 확 바뀌었던 것은 대학교 1학년 여름에 학교 광장에 걸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사진을 보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너무나 평범하고 소극적이면서 사교성이 없던 한 소녀였는데, 그때까지는 세상을 인간이 꿈꾸는 선하고 아름다운 의지로 예쁘게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런 소녀의 세계가 한 번에 박살난 거죠. 의식적인 처절함은 그때부터 생겼던 것 같아요. 문학소녀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죠. 대학 때는 문학소녀처럼 살지 않았거든요. 그때부터 삶이 꽤 거칠게 변했죠.

옛 기억을 떠올리는 시인에게 낭독을 청했다. 시인이 선택한 시는 여름 날 나무 아래 벤치에서 한 마리의 작은 딱정벌레와 죽은 척하는 게임을 독특한 감성으로 풀어 낸 ‘시체놀이’. 시를 낭독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친근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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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놀이

배롱나무 아래 나무 벤치
내 발소리 들었는지
딱정벌레 한 마리 죽은 척한다
나도 가만 죽은 척한다 바람 한소끔 지나가자
딱정벌레가 살살 더듬이를 움직인다
눈꺼풀에 덮인 허물을 떼어내듯 어설픈 몸짓

어라, 얘 좀 봐, 잠깐 죽은 척했던 게 분명한데
정말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 같다
그럼 나는 어떡한담?
햇빛 부서지며 그림자 일렁인다
아이참, 체면 구기는 일이긴 하지만
나도 새로 태어나는 척한다
태어나 처음 햇빛 본 아기처럼 초승달 눈을 만들어 하늘을 본다

바람 한소끔 물 한 종지 햇빛 한 바구니 흙 한 줌 고요 한 서랍……
아, 문득 누가 날 치고 간다
언젠가 내가 죽는 날, 내가 죽은 척하게 되는 거란 걸!

나의 부음 후 얼마 지나 새로 돋는 올리브 잎새라든지
나팔꽃 오이넝쿨 물새알 산새알 같은 게 껍질을 깰 때
내 옆에 있던 기척들이 소곤댈 거라는걸
어라, 얘, 새로 태어나는 척하는 것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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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유쾌함이 느껴지는 시인데요. 제목 또한 독특합니다. ‘시체놀이’라는 제목을 지은 이유가 뭔가요.

답변

소설을 쓸 때는 안 그런데, 유독 시를 쓸 때는 대부분 제가 경험 한 것들, 제 몸에 한 번 씩 들어왔다가 나간 체험들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시체놀이’도 실제로 어느 날 나무 밑에서 일을 하다가 딱정벌레를 발견하며 경험한 것을 쓴 거예요. 조그만 벌레가 그렇잖아요. 큰 움직임이 있으면 위협을 느끼면서 죽은 척 멈추는 거……. 그러면서 딱정벌레와 죽은척하는 게임이 시작된 거죠(웃음). 그것이 고스란히 시 속에 들어온 거예요. 이렇게 큰 몸을 가진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필요로 하면서 살고 있지만 작은 딱정벌레가 보여주는 잠깐의 삶과 죽음이 인간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순간 저를 스치고 지난 간 거죠. 제 곁에 머물렀던 햇빛, 바람, 나뭇잎 소리, 구름의 사각거리는 소리들이 딱정벌레와의 시체놀이 속에 들어와 있었어요. ‘산다는 게 뭘까’ 이런 생각들이 자유로웠으면 좋겠어요.

질문

세 번 째 시집 이후 5년 만에 나온 시집인데요. 지난 시간들은 어땠나요.

답변

지나간 5년을 이렇게 덩어리로 물으시면 당황스러워요(웃음). 요즘에는 사실 바로 어제 일도 기억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오직 오늘만 있는 것 같죠. 오늘 잠에서 딱 깨어나면서 ‘새로운 삶이다, 새로 태어났다’ 싶고, 오늘 하루 동안 뭘 해야지 마음먹은 것들만 하고 딱 잠이 들고 나면 잊게 되요. 굳이 생각해보자면 지난 5년 동안 많은 일이 있긴 했네요(웃음). 시만 쓰던 제가 두 권의 소설을 세상에 내놨고, 지난해에는 오로빌 여행 에세이가 나오기도 했고요. 그 사이에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으로서, 글 쓰는 저를 자극했던 2008년 촛불 집회 같은 것도 있었고요. 사람이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아야 아름다운지를 끊임없이 고민한 시간들도 굉장히 유의미했죠.

시를 몰아서 쓴다는 김선우 시인은 평소 오랫동안 몸에 시를 붙여뒀다가 ‘써야겠다’는 느낌이 오는 날이면 목욕재계하는 독특한 버릇을 공개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5년 만에 새로운 시집을 발표하기 바쁘게 올 여름 새로운 소설을 발표하기 위해 퇴고에 골몰하고 있다는 그녀. ‘일상을 매일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람처럼 사는 것이 계획’이라는 시인의 마지막 말과 함께 북콘서트의 첫 번째 만남을 마무리하는 정차식 뮤지션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두 번 째 만남
삶과 죽음을 향한 끊임없는 질문,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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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많이 풀렸죠. 아침저녁으로는 그래도 쌀쌀한 기운이 없지 않았는데……. 문득 오기원 시인께서 살아계실 때 꽃이 피고 새잎이 돋는 것을 ‘나뭇가지에 꽃과 잎이 폭폭 박힌다’라고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새싹이 움트고 돋아서 세상에 자신의 몸을 내미는 신춘에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돼서 대단히 반갑습니다”

최근 『먼 곳』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발표한 문태준 시인의 인사말은 특별하게 다가왔다. 라디오 프로듀서이자 시인이라는 두 가지 삶을 살고 있는 독특한 이력.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뇌와 물음을 쏟아놓은 여러 편의 시집을 발표해 온 그는 여러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이력과 상관없이 검은 뿔테 안경에 천진한 미소는 순수한 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함께 자리한 뮤지션은 감미로운 보이스와 서정적인 음악으로 주목받고 있는 여성 싱어송라이터 수상한 커튼. 세대를 뛰어넘은 음악과 시의 조화가 이처럼 절묘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질문

무대 위에 이런 자리보다는 뒤에 서 있는 프로듀서의 자리가 더 익숙할 것 같네요.

답변

17년 째 라디오 PD를 하고 있는데요. 여기 서니 마치 링에 올라선 선수 같아서 부담이 되네요. 떨리기도 하고요(웃음).

질문

『먼 곳』이라는 시집을 3년 만에 내 놓으셨는데, 기존 작품과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답변

약간의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바깥이 변하니까 제 몸도 변하고 흐느끼는 영혼도 순간순간 바뀌죠. 거기에 맞춰서 시를 짓는 안목도 바뀌고요. 이번 시집의 시를 쓰면서 생각한 것들이에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타관객지 같다는 생각도 했고요. 내가 몸을 받아서 이 세상에 온 것이 객지로 온 것 같은, 슬픈 생각이죠. 어쩌면 거듭해서 우리는 목숨을 받고 어딘가로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는, 순환하는 시간의 바퀴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그렇다고 꼭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에요.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있죠.


질문

작가님의 시는 읽다보면 유난히 생각을 깊이 하게 된다는 독자들이 많은데요.

답변

시가 원래 그런 거잖아요. 우리 몸속에 가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의식구조를 드러내는 거죠. 그래도 제 시는 좀 쉬운 편에 속하지 않나요. 다만 시를 지을 때 조금의 오해조차 허락하지 않는, 내 생각과 합치되는 언어를 찾기가 어렵네요. 우리가 발굴하고 캐내는 모든 언어들은 많은 오해를 가진 채 창작되어 쏟아져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질문

‘강을 따라갔다 돌아왔다’는 시는 우리 삶과 죽음에 대한 가슴 아픈 과정을 담담히 풀어내고 있어 유난히 인상 깊었는데요. 어떻게 창작되었는지 말씀해주신다면.

답변

지난해 1월 즈음부터 살을 빼기 시작했어요. 배가 나오고 해서 줄여야겠다 싶어 밥을 적게 먹고 면을 끊었죠. 그리고 매일 한강변을 따라 무턱대고 나서 걷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반복했어요. 그런 체험을 해보니 사람 사는 모양새가 어느 곳까지 도달했다가 쇠하면서 기운이 쭉 빠지고 소멸하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제가 살며 죽을 고비가 몇 차례 있었어요. 특히 중학교 2학년 때는 ‘아 이제 죽는구나’ 싶을 정도로 심각했죠. 어머니가 저를 업고 용하다는 의원을 찾아다녔던 기억이 나요. 또 아버지는 저를 땅에 매장하는 의식을 하시기도 했죠. 일종의 민간신앙이었어요. 그런 체험이 이런 시들을 자꾸 태어나게 하는 것 같아요. 죽음과 마주한 순간에 살고 죽는 일에 대해 내가 질문하는 것일 수도 있겠구나 싶죠.

질문

시가 써지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자신만의 비결이 있나요.

답변

저는 가만히 앉아 있어요. 걷기도 하고요. 잠을 자기도 하고……. 예민해지는 것 같아요. 긴장된 감각상태가 되죠. 예를 들어 이곳과 저곳에 줄을 하나 걸쳐놨는데 너무 팽팽하면 끊어지지만 또 느슨하면 안 되는 긴장감 같은 거죠.

질문

시를 쓸 때의 영감은 어떻게 얻으시는지요.

답변

그쪽으로 쑥 들어가는 거예요. 심상치 않은 느낌이 있는 대상이 있어요. 아이들이 비탈을 뛰어내려오는 모습이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 딸과 통화하는 어머니의 대화 같은 것이죠. 그런 것과 마주하게 되면 갑자기 쑥 들어가게 되요. 메모를 하기도 하고요. 시의 느낌을 만드는 씨앗 같은 생각, 한 줌의 문장을 늘 지니고 다니며, 그것이 어떻게 시의 성체가 되는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거죠. 지방에 갈 때면 저는 꼭 시장에 가요. 홀로 술을 한잔하면서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주고받는 말들 속에 앉아 있어요. 그런 것들이 다 생활 속에서 태어난 시라고 봐야죠.

시집의 표제작이자 시인의 시 중에서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먼 곳’ 은 유난히 읽는 이의 눈길을 잡는다. 느린 음성으로 낭송하는 시인의 시어가 콘서트장의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이별을 단순한 헤어짐만으로 보지 않고 사랑했던 이가 그 모든 것을 거둬가는 느낌을 풀어낸 시는 남다른 애절함의 깊이를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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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움쿰, 한움쿰,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들고 내 앞을 지나간다
나목은 다 벗고 다 벗고 바위는 돌 그림자의 먹빛을 거느리고
갈 데 없는 벤치는 종일 누구도 앉힌 적이 없는 몸으로 한곳에 앉아 있다
손은 떨리고 눈언저리는 젖고 말문은 막혔다
모두가 이별을 말할 때
먼 곳은 생겨난다
헤아려 내다볼 수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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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번 시집을 독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읽었으면 하는 바람인가요.

답변

잘 읽어주시면 좋죠. 그리고 뜨거운 것을 받치는 용도로 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웃음). 한 계절 정도만 가까운 곳에 두고 살며 누군가는 위로를 받았으면 해요. 누군가는 또 다른 사랑을 시작했으면 좋겠고요.

질문

창작을 하다보면 누군가의 무엇과 좀 닮아있지 않나하는 고민을 갖는 순간도 있을 텐데요.

답변

서툰 사람은 모방을 하고 잘 지은 시는 훔친다는 말이 있어요. 저는 모든 창작이 모방에서 영향을 받는다고 봐요. 제 경우 신경림 선생님의 시를 읽으면서 그 그늘에서 굉장히 여러 해를 살았던 것 같아요. 그 속에서 신경림 선생님과 가상의 삶을 사는 거죠.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늘 밖으로 나가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제 세계가 열렸어요. 자기 목소리는 나중에 나오는 것 같아요.

질문

유년 시절이 궁금한데요. 장난기 어린 모습을 보면 사랑을 많이 받고 사셨을 것 같아요.

답변

제 고향은 시골이어서 사방이 산이었어요. 소나 염소를 몰고 돌아다니곤 했죠. 해가 떨어지고 아버지께서 돌아오실 때는 마중을 나갔어요. ‘소 받아라’ 하시면 받아서 끌고 오는 게 일이었죠. 그렇게 자연 속에서 살았어요. 한 시인이 젊은 시인들을 위해 쓴 글을 보면 위대한 자연에게 조언을 구하라고 했어요. 저 역시 그런 유년기가 시를 쓰게 한 계기였던 것 같아요. 작은 생명부터 큰 생명까지 키워보면서 죽음도 같이 봤죠. 갓 낳은 새끼염소가 어미의 발에 밟혀 죽기 직전이었는데, 기억나는 한 풍경이 아버지께서 온기가 남아있는 아궁이의 재를 새끼의 몸에 덮어주는 거였어요. 결국 새끼는 죽었고 저는 목 놓아 울었죠. 모욕감을 느낀 기억도 있어요. 큰 마당이 있는 집에 동네 형들이 권투 글러브를 준비해 와서 저보다 어린 동생들과 시합을 붙이곤 했는데, 전 체구가 작고 힘이 없어서 늘 맞는 입장이었죠. 그래서 크면 제압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웃음).

시간이 깊은 밤을 향해 가며 수상한 커튼의 노래가 콘서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자리를 떠나는 문태준 시인은 “간간히 좋은 시가 나를 허락했으면 한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깊어가는 봄날의 밤은 진한 여운을 남기며 그렇게 조용히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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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김선우 저 | 창비

생동하는 시어와 발랄한 상상력으로 아름답고 따뜻한 시세계를 보여준 김선우 시인의 네번째 시집. 세 번째 시집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연인으로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비루한 삶 속에서도 생의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하는 긍정의 마음을 펼쳐 보인다. 가혹한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들의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지며 타자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애잔한 사랑의 시편들은 가슴 한켠을 촉촉이 적셔준다…

 



#김선우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문태준 #먼 곳
5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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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5.04

만물이 생동하는 싱그러운 봄을 맞아서 김선우, 문태준의 신작 시집이 독자들에게 선 보였나 봅니다. 때로는 텍스트가 빼곡한 책들을 벗어나서 함축적인 맛이 돋보이는 시집을 읽어보아도 꽤 유익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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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u

2012.04.04

북콘서트를 가보지 않았는데, 한 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그리고 그 자리에 내가 있다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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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em

2012.04.04

좋은 시가 나를 허락했으면 좋겠다... 시인이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구나 했습니다. 시를 어렵게만 생각했었는데, 이 코너를 통해서 많이 가깝게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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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호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언제나 꿈꾸는 사람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