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움은 상상의 친구입니다. 상상에 의해 공포가 생기고, 공포에 의해 상상은 날개를 펼칩니다. 갖가지 공포는 풍요로움과 깊이, 그리고 강렬한 흡입력을 갖고 있습니다. 일견 무서운 것이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은 그림일지라도 그 시대와 문화와 관련된 사람들 사이에 얽힌 여러 관계를 알아가는 사이에, 공포는 서서히 화면에서 스며 나와 그림의 모습을 바꾸어 놓습니다.” (p.6) | ||
와세다 대학에서 서양 문화사를 강의하고 있는 나카노 교코는 그림 속 ‘공포’를 주제로 꾸준히 책을 내고 있는 저자다. 지난 해 출간된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는 NHK 교육방송의 ‘아는 즐거움, 이 세계를 탐구한다’의 대본으로 편집한 책이다. 일본이지만 서양미술 강사답게 이 책은 고야, 엘 그레코, 브뢰헬 등 외국 작가들의 그림 속에 담긴 공포에 관해 이야기한다.
신촌 토즈 센터에서 진행된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 강연회에는 이 책의 역자이자 미술사가인 이연식 작가가 독자들 앞에 나섰다.
“일본 에도 시대에 사람들은 밤에 초를 들고 집에 모이곤 했어요. 각자가 아는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씩 할 때마다 촛불을 끄는 겁니다. 그러다 마지막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나면, 모든 촛불이 꺼지겠죠. 그 순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귀신이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 마지막 촛불이 꺼지는 순간을 생각하면 누구도 초연할 수 없습니다.”
에도 사람들은 왜 그렇게 모여 무서운 이야기를 즐겼을까? “에도 사람들 속담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지루함은 귀신보다 무섭다’ 오늘 제가 지루한 강연을 한다면, 귀신보다 더 무서운 강의를 하게 될 겁니다.(좌중 웃음)”
과연 공포, 두려움이란 무엇일까? 저자 나카노 교코는 끔찍한 것을 주로 공포라고 표현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무섭다’와 ‘끔찍하다’ ‘징그럽다’는 말을 한꺼번에 쓰는 것 같습니다. 이 말들에는 인지 자체가 주는 강렬한 것, 자신을 사로잡는 어떤 것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죠. 나카노 교코 씨가 일관되게 말합니다. 그림이 무서운 건 그림의 배후에 있는 것 때문이라고요.”
이연식 저자는 이날, 책에 실린 그림이 아니라 일본의 무서운 그림을 슬라이드로 준비해왔다. 무서운 그림이라 하면, 일본의 그림을 빼놓을 수 없는 법. 일본 작가 나카노 교코가 말하는 ‘배후로 인해 무서워지는’ 시각으로 일본의 그림을 이연식 저자의 설명으로 살펴보았다. “서양의 이야기는 배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무서워지는 그림이 많은데, 일본의 그림은 그 자체로도 끔찍하고, 배후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더 끔찍한 그림이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유발하는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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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서운 그림을 살펴보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첫 번째는 우라(Ura). 배후, 보이지 않는 뒤쪽을 의미하는 말이다. 일본어 ‘우라기리’는 뒤를 벤다는 뜻으로 배신이라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안감을 지칭할 때 쓰는 ‘우라’ 역시 마찬가지 용어다. ‘우라’는 그림 속에서 공포를 유발하는 효과적인 장치다.
“일본인들은 모든 것이 하나의 막으로 쌓여 있다는 세계관이 강합니다. 한꺼풀 벗겨내야 실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림 속에 덮여진 얇은 막은 신비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일본의 유명한 목판화가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돌아온 남편>. 위의 해골바가지가 끌어내리고 있는 것은 모기장이다. 남편이 죽은 줄 알고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재미를 보는데, 죽은 남편이 나타나 쳐다보고 있는 그림이다. 19세기 그림임에도 박진감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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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도 막장 드라마 같은 설화가 많다. “전통 판화에서 많이 재생되는 이야기가 있다. 사주 받고 끔찍하게 죽인 여자가 알고 보니 자기 딸이었다는 오이와와의 이야기는 여러 작가들의 영감을 자극해 다양한 작품으로 남았다.”
위의 그림은 쓰키오카 요시토시의 <접시 귀신>이다. 애도 시대, 부잣집에 아리따운 하녀가 있었는데 주인 남자의 애정을 매몰차게 거절했다. 남자가 앙심을 품고 있다가, 하녀가 접시를 깨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이를 빌미로 때려 죽여, 시체를 우물에 파묻는다. 그랬더니 밤마다 우물 곁에서 접시 세는 소리가 들렸다는 것. “마지막에 한 장이 모자란다는 한탄을 했다고 해요. 이 이야기도 많은 작가들이 그림으로 그린 이야기입니다.”
일상감각을 흔드는 모순과 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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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공포의 특징은 모순이다. “게이샤 고양이와 뱃사공과 호스트가 보입니다. 놀이 배를 띄워놓고 놀고 있는데, 다 고양이로 바꾸어 놓았어요. 일상의 정서를 전복해놓고 있죠. 일상의 정서를 전복한 상상력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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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감각에 교란을 일으키는 변형. 누가 진짜 사람이고, 누가 진짜 괴물인가. 이 점이 보는 이로 하여금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장치라고 이연식 작가는 말했다. “위에 봤던 끔찍한 귀신의 모습은 아니지만, 일상에 침투한 괴상한 이미지는 일상 감각을 교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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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홍상수 영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대사를 읊어주었다. “우리 괴물은 되지 말자. 그리고 생각을 해야 한다, 생각을. 이런 대사가 나오죠.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붙들 수 있는 게 생각밖에 없다는 맥락에서 나온 대사입니다. 생각이라는 게 이외로 무섭습니다. 나카노 고쿄 씨가 말하는 무서운 도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것 역시, 생각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바깥으로 나오려고 하는 그림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무서운 그림들은 그들만의 세계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어떨 때는 무서운 이야기가 바깥 세계로 나오려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런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사람들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나름의 입장을 작품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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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이 기요타다의 <가부키 극장> 겉보기에는 에도 시대에 평범한 회화작품이다. 공연이 펼쳐지고 있고, 관객들은 무대를 쳐다보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면, 맨 아래쪽에 몇몇 인물들은 그림 밖으로 나오려고 시도하고 있다. “화가가 이 그림 속의 의자 색깔과 족자 바깥 색깔을 맞춰 혼동을 일으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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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맥락의 그림으로 무리요의 <자화상>, 페레보렐 델카소의 <비평으로부터 도망치기>를 들 수 있다. “이런 그림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나는 그림 안에만 갇혀 있지 않는다. 나는 바깥 세계에도 개입하련다. 그림인데 그림이 아닌 것이 되려고 욕망하는 것이죠.”
무서운 이야기를 계속 하는 까닭은
다른 그림을 살펴볼 때도 이러한 도식으로 들여다보면, 이제까지 말해지지 않은 그림의 공포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연식 저자는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무서운 그림을 보고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관해 말했다.
“왜 악마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야 할까요? 영화 <나이트 메어>의 감독이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멈추면 악마가 밖으로 나올 것이기 때문에, 무서운 이야기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게 아닐까?라고요. 마치 비디오 속에서 걸어 나오는 링처럼요. 악마를 이야기 속에 가두기 위해서 계속 얘기하는 거라고요.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할 수도 없을 것 같아요. 악마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악마가 나타날 때를 준비하기 위해 그런 게 아닐까요? 악마로 대변되는 부조리, 인생의 모순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기 때문에, 이 논리적이지 않은 악마와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말하고 듣는 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 나카노 교코 저/이연식 역 | 이봄
〈무서운 그림〉시리즈로 미술감상에 새로운 지평을 연 나카노 교코의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 일본의 유명한 미술 에세이스트인 그는 그림 속에 숨겨진 인간의 두려움 그 일곱 가지를 테마로 이 책을 완성했다. 인간의 삶에서 두려운 것은 무엇인가. 운명, 저주, 증오, 광기, 상실, 분노, 죽음을 테마로 미술작품이 그린 인간의 두려움에 대하여 쉽고 재미있는 필체로 풀어나간다…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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