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칭기스칸의 전쟁영웅서사를 쓴 게 아닙니다. 성곽의 역사로만 알려진 중세사의 본질을 찾는 작업이었죠. 골방의 중세가 아닌 광야의 중세 말이에요”
중세라고 하면 흔히 성을 중심으로 뺏고 빼앗는 전쟁의 역사가 떠오른다. 이른바 유럽중심의 중세사다. 작가 김형수는 이러한 시각을 편협한 것으로 규정한다. 외로운 초원의 도망자에서 13세기 세계사에 결정적인 주인공으로 등장한 칭기스칸의 흔적에서 작가는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
꽃샘추위가 기세등등한 오후, 민족문학작가회의 일원으로서 시대적인 담론을 작품에 반영해 온 시인이자 논객 김형수 작가와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했다. 민족문학을 이끌어 오며 남북한 분단 상황에 관심을 쏟기도 했던 작가였기에 그의 신작 소식은 반가움과 함께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조드’라는 작품의 제목이 생경하다. 더구나 칭기스칸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서사라고 한다.
무려 10개월을 몽골에 머무르며 완성해 낸 작품은 우리나라 독자들은 물론 이미 몽골 사회에서도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몽골이라는 나라에 가지고 있는 상식은 지극히 단편적인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한국 작가인 그가 몽골 고원을 중심으로 대제국을 일궈낸 유목민의 삶과 그들의 영웅에게 관심을 쏟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연은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처음 몽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무렵이에요. 당시 저는 꽤 힘든 상황이었죠. 제가 생각했던 가치체계나 신념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제 경우는 22살 때 광주에서 5.18을 겪었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거든요. 문학도 그런 관심에서 이어졌고요. 그 무렵 저는 현실 사회주의권을 꽤 의미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대한 신념체계가 붕괴되는 것을 보면서 삶의 회의가 생기더군요. ‘과연 인류가 전망 있는 족속인가’하는 고민이 생겼어요. 그런 상황에서 한 번 마주친 사람을 한 평생 다시 볼 수 없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우편배달원도 필요 없고 이웃조차도 지평선 안에 보이지 않는 곳. 차는 물론 사람과 동물, 나무 한 그루도 눈에 띄지 않아 보이는 대로 갈 수 있는 곳이 몽골이라더군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치열한 경쟁 속에 각박한 삶이 이어지는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어요. ‘나를 수정하고 싶다’는 욕구로 몽골을 처음 찾은 것이 1998년이에요.”
가슴 가득 답답함을 머금은 채로 몽골에 첫 발을 디딘 그의 눈에 펼쳐진 유목민들의 삶은 듣던 그대로였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은 그의 답답함을 일순간에 사그라지게 했고, 자연을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는 순박한 사람들의 미소는 지쳐있던 마음에 여유를 가져다주었던 것. 이후 그는 적어도 1년에 한 번 이상을 몽골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초원을 걷고 대자연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목격하며 점차 그의 관심은 ‘몽골의 자연이 생명체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가’에 집중됐다. 그렇게 시작된 관심은 점차 문화와 역사로 그 영역을 넓혀가게 됐다. 칭기스칸의 흔적과 마주하게 된 것도 그러한 과정 중 하나였다. 한 때 세계를 평정했던 인물, 주변국에게는 정복자, 침략자의 이미지로 평가되던 유목 영웅의 흔적을 찾아가며 그는 칭기스칸을 둘러 싼 기존의 관념들이 왜곡됐음을 직감했다. 새로운 작품을 떠올린 것은 그 즈음 부터다.
“유럽중심의 중세를 벗어나 아시아 중심의 세계관에서 삼국지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들었어요. 그러나 제일 큰 장애물은 역시 칭기스칸이 제국주의자라는 인식이었어요. 마치 정복자의 표상처럼 일컬어져 왔지만, 사실 실제 칭기스칸의 흔적과 발언 등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거든요. 삼국지는 내부 경쟁자들 속에서 승리를 하는 이야기인데 반해 칭기스칸은 광활한 초원에서 가장 외로웠던 자가 가장 많은 친구를 만들어내는 대서사였어요. 집필을 결심한 것은 그러한 칭기스칸에 대한 인류의 관심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유목의 정서를 꿰뚫은 작품
집필을 결심한 그는 오랜 시간 몽골을 방문하며 칭기스칸과 관련된 수많은 민담과 설화를 수집했다. 처음 YES블로그에 작품이 연재되면서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역시 몽골 작가들이었다. 지난 2월 17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몽골작가협회 주최로 열린 심포지엄은 김형수 작가의 작품 『조드-가난한 성자들』을 주제로 한 것이었다. 심포지엄의 소식은 몽골 유력 일간지 ‘어더린 쇼당’ 1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더구나 오는 7월부터는 이 신문에 연재될 예정이라 한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몽골의 시인이자 영화감독 직지드 수렝은 작가의 작품을 두고 “몽골의 정서가 정확히 담겨있다. 몽골의 문체와 심장이 들어있는 소설”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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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연재한 작품이 몽골 현지에서 더 화제가 된 것은 조금 아이러니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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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포지엄에서도 한국 소재가 아니라는 데 대한 질문이 많았어요(웃음). 사실은 연재를 하고 나서 얼마 뒤에 현지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하더군요. 제가 연재를 하고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신기해서 물어보니 이미 현지 신문에서 한국의 YES블로그에 몽골과 관련된 작품이 연재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이 한 면에 걸쳐 기사화 됐다더군요. 그런데 제 작품 내용에 의문이 생겼나봐요. ‘왜 이 사람은 칭기스칸이 아니라 조드인가’하는……. 유목민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이 관심을 모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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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삶과 그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 초점을 맞춘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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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칭기스칸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도 하지만 그와 관련된 질문에는 항상 수정을 요청했어요. 저는 칭기스칸이라는 전쟁영웅서사를 쓴 게 아니거든요. 중세사를 성곽의 역사라고 하는데 그런 시각은 우리 머릿속에 로마사와 중국사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사실 인류사의 본체는 그게 아니었거든요. 유목민과 정착민의 싸움이 역사에 큰 줄기였고 그로 인해 근대가 도래했죠. 저의 관심은 전쟁에서 몇 번 이겼냐가 아니라 ‘왜 유목민은 당시 그러한 삶을 살았고 그것이 인간에게 남긴 숙제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에 인간은 어떻게 반응했나’였어요. 우연찮게도 작품이 끝나갈 무렵에 일본에서 원전 사태가 발생했더군요. 그것을 보면서 칭기스칸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다시 한 번 돌이키게 됐어요. 그런 시련은 인류가 처음 맞는 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되풀이 됐던 것이에요. 그런 시련에 직면했을 때 가장 올바르고 진지한 응답으로 풀어갔던 사례를 칭기스칸이 보여줬어요. 제가 매료됐던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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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가 부각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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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는 사실 유목민사 연구에서 한 담론이 될지도 모른다고 봐요. 저는 분명 전쟁의 원인을 자연에다 두고 있거든요. 칭기스칸의 정복욕이 아니었어요. 강물은 발원지에서 샘솟을 때 바다로 갈 것을 계획하지 않잖아요. 그저 낮은 곳으로 흐를 뿐이죠. 맨 앞에 흐르는 강물을 지도력이라고 봤을 때 지도자는 계획하고 큰 야심으로 설계하는 자가 아니라 집단이 부딪힌 문제를 가장 슬기롭게 헤쳐나간 자에요. 칭기스칸은 당시 가장 뛰어난 자가 아니었어요. 상속 받은 재산이나 권력도 없었죠. 오히려 지도자가 되려는 야욕이 가장 없었던 자였어요. 단지 친구의 소중함을 가장 깊이 알고 있었죠. 가족과 친구를 위해 문제를 해결해 하고 정답을 찾으려고 노력을 한 자에요. 즉 조드가 발생하며 피해야 하는데, 성을 쌓아놓고 피하지 못하게 하면 전쟁을 했던 거죠. 칭기스칸 전쟁의 실체는 성이라는 장애물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지 일본 제국주의처럼 성씨를 바꾸게 하거나 풍속을 뒤집는 것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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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삶을 장대한 서사로 풀어나가기 위해서, 그리고 그 안에 그들의 정서와 사상을 담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몽골에서 유목민들과 함께 보냈을 것 같네요.
- 사실 제가 좀 내성적이에요(웃음). 한국에서도 그렇고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질문을 잘 못하는 편이죠. 하지만 그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어요. 몽골에 대한 지식은 대부분 그렇게 습득했죠. 울란바토르가 몽골의 수도이기는 하지만 저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유목민의 미덕은 도시가 아니라 초원이니까요. 저의 몽골여행은 그래서 오롯이 초원에 바쳐졌다고 보면 되요. 초원은 참 감동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곳이에요. 유목 문명이 이제는 거의 끝자락이라고 하지만, 그런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과 존재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짐을 느끼죠. 예컨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보고 판타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가 봤을 때는 리얼리즘이에요. 초원에 서면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되죠. 풀포기만 봐도 반갑고 말을 걸고 싶고……. 게르(유목민들의 주거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잠이 들면서 얻는 느낌과 경험은 제 소설을 보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것은 특별히 취재를 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접한 거죠. 한편으로는 고향과 같은 느낌이었어요. 문화나 풍속, 사람들의 마음씨까지도 1960년대 전라도 함평 들판과 비슷했죠.
“오논 강 찬바람 속에 우리는 서 있었지 |
작품 속에는 간간히 인물들이 읊는 시가 등장한다. 옛 문헌을 참고하기도 했지만 꽤 많은 것이 시인이기도 한 김형수 작가의 창작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품을 집필하며 풀리지 않는 의문의 답을 찾기 위해 수소문해 만난 칭기스칸 연구 권위자인 수바타르 선생은 그러한 작가의 시를 보고 “몽골의 작가도 이렇게는 쓰기 힘들다. 오직 유목민만이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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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마유주(말의 젖을 원료로 만든 술)가 궁금하더군요. 포브스는 세계 10대 혐오음식 1위에 선정하기도 했는데, 작가님의 경험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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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막걸리집 아들인데 이제까지 마신 막걸리와 마유주의 양이 비슷할 거예요(웃음). 육식 위주인 유목민의 식생활에도 마유주는 장 건강에 중요한 음료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로 치면 전라도의 삭힌 홍어와 비슷하다 할 수 있죠. 세계 혐오식품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 세계가 무엇이냐가 중요해요. 이번 소설을 쓴 목적이 바로 그 세계를 뒤집기 위해서죠. 소수의 서양을 세계라고 칭하고 앞도적인 다수를 촌놈으로 칭하는 것은 말이 안되죠.
현대인에게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작품의 주된 흐름이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유목민의 삶을 조명했다지만, 역시 이야기의 한편에는 칭기스칸과 대립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친구이자 경쟁자였던 자무카를 비롯해 칭기스칸이 아버지로 대접하며 섬겼던 옹 칸이 그들이다. 칭기스칸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적으로 돌아 선 그들을 포용하며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칭기스칸과 이들의 관계를 풀어나가며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가치를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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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존의 가치관을 고집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기득권에 편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부류, 이들과는 완연히 다른 혁명적 가치관을 정립하는 인물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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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너무 자기 마음을 드러내면 안되는데, 제 역량이 부족해서 잘 안된 거 같네요(웃음). 저는 독자들이 13세기의 역사적 지식을 충족하는 것보다 지금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길 바랐어요. 사람들이 삼국지를 많이 읽었던 이유는 유비형 인간, 조조형 인간과 같이 그 안에 인간 군상을 읽기 위해서죠. 그러나 제 생각에 이제는 삼국지의 공소시효는 만료된 것 같아요. 지금은 삼국지의 인간형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거든요. 그걸 설명하기 위해 등장인물의 성격을 놓치지 않으려 굉장히 노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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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칭기스칸은 신분의 차별을 금하고 능력에 따른 역할을 부여하며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한 사회를 꿈꿨습니다. 문득 칭기스칸이 추구한 가치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는 듯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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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에 그 때 시작한 일들이 정돈되지 못했다보기 보단, 그때 실험 된 중요한 가치를 인류가 계속 놓치고 훼손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절대빈곤이라는 아수라장을 막 벗어난 시점에서 이제야 뒤늦게 정신이 들어 그 옛날을 되돌아보고 있는 거죠. 13세기 칭기스칸이 선택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건강한 시민들이 추구하는 것들이에요. 그 옛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는지……. 자기중심으로 세계를 해석하지 않고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찾아낸 인간의 길이 바로 칭기스칸이 추구했던 길이 아니었나 싶어요.
자연과 인간의 관계 속에 또 다른 세계관을 찾다
작품 속에서 조드는 칭기스칸을 비롯해 갈등관계에 있는 모두에게 두려움을 주는 자연의 대재앙이었다. 기세등등하던 권력도 조드 앞에서는 한 없이 볼품없는 것이 되고 마는 상황을 보여주며 작가는 독자들에게 자연과 분리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적인 숙명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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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구조가 이어지는 곳곳에 조드가 발생하며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가님이 조드에 함축한 생각은 어떤 것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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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시 오늘처럼 추운 날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지만, 많은 현대인이 자연의 움직임을 거의 느끼지 못한 채 ‘이 위대한 문명이 얼마든지 컨트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 같아요. 일본은 세계에서 안전과 관련 된 기술과 질서의식이 높은 나라로 손꼽히죠.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보면 문명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 인간이 왜 자연에 속해 있는 존재인지를 알 수 있어요. 인간은 자연의 시련을 숙명적으로 안고 가는 존재 임에도 불구하고 왜 자꾸 그 사실을 잊는 걸까요. 왜 그것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외면할까요. 알고보면 이러한 생각이 바로 칭기스칸 아래 모여들었던 사람들의 가치였고 의미였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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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정복하는 대상으로 보는 서양 중심의 세계관에서는 그러한 동양적 세계관을 오리엔탈리즘으로 치부 하는데요. 작품에서는 그러한 시각을 꼬집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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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은 유럽 사람들이 동양을 바라보며 어떤 부분은 멋있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보다는 못하다’는 폄하의 시선이 섞여있는 거죠. 노마디즘이라는 표현 역시 20세기 말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어요. 현대인의 정체를 가장 근접하게 설명하는 말이 디지털 노마디즘이니까요. 하지만 이 역시도 오리엔탈리즘의 오해를 기초로 해서 생겨난 것이라고 봐요. 초원의 멋만을 생각하면서 문명 속 삶은 유지하는 거죠. 그러나 실질적인 유목민들의 세계 인식은 파괴되고 있어요. 그런 점들이 참 곤혹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될 것 같아요. 중요한 것은 칭기스칸 시대부터 집단의 이해와 요구가 최우선인 사람들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거죠. 지금까지도 그런 사람들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고요. 그들이 어떻게 자신의 생각들을 체제로 만들었고 또 실패해서 파괴 돼 가는지를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교과서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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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고민과 탐구는 앞으로 이어질 작품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듯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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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최종적인 목표는 칭기스칸의 말년을 그리는 거예요. 칭기스칸은 말년에 자신이 예측하지 못했던 많은 것에 직면하며 속수무책의 회의 속에 사라져갔거든요. 물론 여건이 된다면 쓰고 싶은 이야기는 또 있어요. 이 작품이 13세기 소재라면 21세기의 소재를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쓸 수도 있겠죠. 예컨대 ‘촛불시위’ 당시의 이야기도 좋고요. 모국어라는 장벽 탓에 각 국의 문학은 가려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개인들의 삶은 이미 국경을 초월해서 진행되고 있고 서사도 마찬가지에요. 한국 문학도 이 속에서 그렇게 성장해 나가는 길 밖에 없어요. 이제 자기들만의 울타리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은 없으니까요. 그러한 흐름 속에서 문학이 성장하고 독자와 작가의 관계가 이어졌으면 해요.
김형수 작가는 인터뷰 말미에 독자들에 전하는 고마움을 강조했다. 처음 인터넷을 통해 연재를 시작했을 때 작품을 접한 독자들의 댓글에 일일이 답글을 달기도 했던 작가. 소통은 칭기스칸의 발자취를 쫒던 그가 얻은 교훈 중 하나인 듯싶다.
“글을 쓰기 전에는 몇 시간 씩 블로그에 올라온 댓글을 보곤 했어요. 다른 블로그에서 제 작품을 평가한 글도 포함해서요. 새로운 글이 올라오면 꼭 읽고 댓글을 남기는 독자들을 보며 성의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연재를 하는 동안 응원해 주신 독자들 모두가 『조드-가난한 성자들』이 탄생하는데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정말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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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 유라시아 내륙 평원에서 일어나는 대재앙. 물이 부족한 건조지대에서 겨울철 가뭄과 추위가 겹치며 정점에 이르렀을 때, 유목민의 생명줄인 가축이 한꺼번에 수천 마리씩 죽어나가는 사태를 지칭한다.
- 조드 세트 김형수 저 | 자음과모음(이룸)
테무진(칭기스칸)이 광활한 몽골 초원을 누비며 칸이 되기까지 겪었던 유목민의 생활과 삶에 대한 이야기다. 테무진의 어린 시절, 늑대와의 싸움에 대한 묘사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테무진과 자무카, 그리고 다수의 등장인물이 등장하며 13세기 유목민의 생활모습과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피할 수 없었던 전쟁, 사냥 등의 생생한 모습이 3인칭으로 전개된다.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펼쳐지는 테무진과 자무카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챕터별로 전개되는 것이 이 소설의 주된 서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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