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악하고 요부 같은 팜므파탈 기대하세요”
사생아로 태어나 영부인이 되기까지 에바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국내에서 지난 2006년 초연됐는데, 기자도 배해선 씨가 열연하는 <에비타>를 봤던 기억이 난다.
글ㆍ사진 윤하정
201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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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롤은 처음 맡았어요. 지금껏 항상 주인공만 맡아왔지만 대부분 남자 배우들한테 기댔는데, 이번에는 ‘정선아’라는 이름이 제일 앞에 나와요. 제 인생 최고의 작품인 것이죠. 그만큼 부담되고 책임감도 두 배로 커졌고요.”

<에비타> 하면 바로 떠오르는 노래 ‘Don't Cry For Me Argentina'. 에비타는 194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 대통령의 부인 에바 페론의 애칭으로, 사생아로 태어나 영부인이 되기까지 에바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국내에서 지난 2006년 초연됐는데, 기자도 배해선 씨가 열연하는 <에비타>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성녀 이미지가 많이 부각됐다고 들었는데, 저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물론이고 팜므파탈 에바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온, 영악하고 요부 같은 면도 끄집어내고 싶거든요. 연출님이 ‘너는 연기할 생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하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본 모습이 <아가씨와 건달들>의 사라여서 그런지, 앞에 앉아 있는 통통 튀고 거침없는 여인이 같은 인물인지 헷갈렸다. 그래서 성녀에서 악녀까지 넘나드는 에바에 정선아 씨가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섹시하고 거친 여자들을 분석하고 연기하는 게 재밌었어요. 그래서 <지킬 앤 하이드>에서 엠마와 루시가 있다면 당연히 루시가 더 재밌고 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여러 작품을 하면서 제 안에 귀엽고 여성적인 면도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가씨와 건달들>의 사라도 제 안에 있는 순수함을 끄집어냈을 뿐인데, 사람들은 ‘뭐야 정선아!”라고 하죠(웃음).”

그러고 보니 <지킬 앤 하이드>의 루시, <드림걸즈>의 디나, <나인>의 칼라, <아이다>의 암네리스, <모차르트>의 콘스탄체, <아가씨와 건달들>의 사라 등 무대 위 그녀의 모습을 종잡을 수가 없다.

“원래 성격은 솔직하고 당당하고 남자처럼 털털해요. 안으로 삭히기 보다는 밖으로 표현하는 편이고요. 그래서 여성스러운 인물을 연기하면 ‘무대 위에서 가식적인 배우 1위’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사실 모두 저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참 암네리스 공주와는 좀 달라요. 저는 아이다와 라다메스 장군에게 엄벌을 내렸을 거예요. 같이 못 묻어주죠, 그 꼴은 못 봐요(웃음).”

12월 9일부터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될 <에비타>에는 정선아 씨와 함께 가수 리사가 에바로 캐스팅됐다.

“많이 다르죠. 저는 항상 고조된 기분에 힘이 넘친다면, 리사 언니는 좀 더 품위 있고 묵직한 면이 있어요. 음악적으로 언니는 저음이 풍성하고, 저는 고음이 화려한 편이고요. 그래서 서로 배울 게 많아요.”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더블 캐스팅이다. 항상 단독 캐스팅을 고집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고집하지는 않아요. <에비타>는 특히 더블이어야 해요. 작품의 2/3 동안 무대 위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불가능하거든요. 관객들에게 좋은 무대를 보여드리기 위해서도 더블이 필요한 거죠. 그런데 ‘겹치기’는 하지 않는 편이에요. 월수금은 이 캐릭터, 화목토는 저 캐릭터에 어떻게 몰입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맡은 캐릭터에게 미안해서 앞으로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 같고요. 그래서인지 저는 항상 단독 캐스팅이었어요. 단독으로 하면 이 작품의 이 캐릭터는 내 것, 온전히 정선아 만의 것으로 확고해지거든요.”

그녀는 드라마나 영화 쪽 러브콜도 사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체를 넘나들며 연기하는 것이 많은 배우들의 희망사항인 요즘, 그녀는 파수꾼처럼 무대를 지키고 있다.

“한치 앞도 모르는 세상이니 저도 5년 뒤에는 드라마나 영화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죠(웃음). 그런데 지금은 무대가 정말 좋고 아직도 할 게 너무 많아요. 고갈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아 붓고 싶지 않아요. 저를 롤 모델로 삼고 꿈을 꾸는 친구들에게 무대에서의 자존심도 지켜주고 싶고요. 저는 무대가 최고라고 생각하거든요.”

이렇게 화통한 그녀가 한 작품을 위해 두 달을 꼬박 연습하고 또 다시 두 달을 매일처럼 무대에 오르는 일을 10년이나 했다니 믿기지 않는다. 요즘처럼 스마트한 시대에 그토록 원시적인 무대를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유 말이다.

“꿈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고, 그 꿈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았거든요. 정말 뮤지컬만 보고 달렸어요. 그 뿌리가 얕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내던지겠다는 마음가짐이 저도 모르게 깊이 박힌 것 같아요. 꿈이 현실이 됐고 또 저의 미래잖아요. 그래서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그러나 앞서 말했듯 대극장을 채울 에너지 넘치고 끼 충만한 여배우가 생각보다 없다. 그래서 정선아 씨는 아직은 어린 나이에 후배양성에 생각이 많다.

“요즘 가장 두려운 건 ‘후배들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까?’예요. 후배들이 도전해서 무대에 빨리 나왔으면 좋겠어요. 만날 똑같은 사람이 주인공하면 지겹잖아요. 지금도 막내지만, 저 역시 선배님들이 잘 이끌어주셔서 여기까지 왔거든요. 이제 저도 후배들에게 갚아줘야죠. 후배들이 잘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예쁠 것 같고, 시샘하지 않을 여유는 이제 생긴 것 같아요(웃음)”

무대에서 10년. 그녀는 모난 자신감을 깎아 둥근 겸손함으로 채웠다. 항상 무대의 중심에 있었지만, 갈수록 무대는 더 높고 위대해 보인다.

“제가 최고인줄 알았어요. 항상 저 잘난 맛에 살았는데, 무대에서 만큼은 오를수록 무섭고 그래서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뮤지컬계에 필요한 여배우’라는 인식을 갖고, 그 믿음에 어긋나지 않도록 더 노력해야죠.”


오토바이를 타고 거리를 질주할 듯 자극적인 에너지를 지닌 그녀는 뮤지컬을 얘기할 때면 오솔길을 달리는 자전거 위의 소녀처럼 청량했다. 청국장을 좋아하는 서양인처럼, 화려한 외모 안에 숨은 묵직한 생각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꿈을 향해, 그 꿈을 지켜내기 위해 힘껏 달려왔기에 이토록 순도 높은 당돌함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모든 꿈과 노력, 열정과 고통이 녹아들었기에 무대 위에서 그녀가 뿜어내는 에너지는 강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에너지가 <에바타>에서는 어떻게 표현될지, 객석에서 확인해야겠다.











#정선아 #에비타 #팜므파탈 #뮤지컬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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샨티샨티

2011.12.28

에비타의 새로운 얼굴이 열연하는 무대 앞에서 그녀의 명품 연기에 몰입하고 싶네요. 정선아 씨의 열정이 기대되는 멋진 연극을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만큼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그녀의 연기를 보렵니다. 한 작품 공연을 위해 두 달을 꼬박 연기연습하고 두 달 동안 무대 위에 오른다니 참으로 균형잡힌 배우 정선아 씨입니다. 그녀와 연기하는 배우는 박상원 씨인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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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em

2011.11.24

예전에는 주인공은 무조건 선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세월이 흐르니 사람이 선할 수만은 없는데 어찌 그럴 수 있나 싶고 양면성이 있는 드라마나 영화에 더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오랜 시간 무대만을 고집했기에 나올 수 있는 정선아씨의 열정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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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11.23

에비타의 새얼굴, 정선아씨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어떻게 슬픔으로 극대화 하실지 궁금해지네요. 상대역이 박상원씨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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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