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동우, 시력장애 인정까지 고통속에 보낸 5년
“‘망막색소변성증’은 40세를 전후로 시력을 아예 잃는다고 나오는데, 저도 지난해 법적으로 실명 선고를 받았어요. 라디오 진행도 원고는 파트너가 소화하고 저는 100% 애드리브죠.”
글ㆍ사진 윤하정
201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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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성 난치병은 계속해서 나빠지는 거예요. ‘망막색소변성증’은 40세를 전후로 시력을 아예 잃는다고 나오는데, 저도 지난해 법적으로 실명 선고를 받았어요. 라디오 진행도 원고는 파트너가 소화하고 저는 100% 애드리브죠.”

지금 상황을 물어봐도 되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더니, 그는 덤덤히 그리고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너무나 당연하게 잘 보이던 세상이 점점 흐려졌으니 그 고통이 오죽했겠는가. 그는 5년이라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겪은 뒤에야 자신의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무척 힘들고 불편하지만, 인정하고 나면 일정 부분 편해지는 게 있어요. 보통 중도 장애를 입게 되면 받아들이기까지 4단계의 심리적인 변화를 거쳐요. 그런데 연예인들이 사실은 심성이 연약해서, 저도 4단계를 거치는 데 무려 5년이 걸린 거죠.”

대중들에게 자신을 내보이는 일, 활동적인 일을 했기에 초반에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기에 다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연예인이라는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원래 보여주고 들려주는 사람이잖아요. 내가 볼 수 없는 것은 불편하지만 나머지 기능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여전히 보여줄 수 있거든요. 2009년 방송에서 병을 공개한 것도, 다시 세상과 소통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에요.”

그를 일으킨 것은 역시 사랑이다. 극복할 수 있었던 특별한 계기를 물었더니, 그는 ‘사랑’을 연거푸 세 번이나 읊조렸다.
“사랑 없이는 아무것도 안 돼요. 아내의 사랑,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 보내주는 사랑을 경험하면서 정말 많이 놀랐어요. 장애를 얻고 진실한 사랑을 정말 처음 알게 된 것 같아요.”

뮤직 드라마 <오픈 유어 아이즈>는 세상과 소통하고픈 그의 강렬한 소망이 자연스레 묻어난 작품이다.
“이 무대는 생각한 대로 이뤄진다는 걸 절감한 경우예요. 팔다리 기능이 있고 아직도 노래하고 말할 수 있는데, 그걸 펼쳐 보일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니까 무대더라고요. 하지만 누구에게 매달리거나 적극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저의 꿈이 굉장히 절박했는지, 자연스레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모인 거예요. 돈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저마다 바쁜 사람들인데 정말 신비로웠죠.”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무대가 아니었기에 시작은 매우 소박했다. 그의 바람은 관객들과 소통하는, 평생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연극이었다.
“지난해 11월 19일에 첫 공연을 시작했는데, 벌써 시즌3입니다. 투자를 받는다거나 크게 욕심 내지 않았어요. 하지만 시즌이 거듭될수록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초심만 잃지 않는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바라고 꿈꾸던 모습이죠.”

나란히 앉은 이동우 씨는 참 건강해 보인다. 하지만 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그는 무려 20kg을 감량했다.
“힘들 때 폭식에 폭음이 계속돼서, 눈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기관들이 다 고장 났어요. 그러다 힘을 내보자 마음먹고 운동을 시작했죠. 100일 만에 20kg을 빼고 첫 무대에 올랐어요(웃음). 예전에는 남들과 경쟁했는데, 이제는 나와 싸울 일이 정말 많아요.”

매일의 공연 역시 자신과의 싸움이다.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은 물론, 특히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니 지칠 때가 많다.
“장민호 역할은 제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에 대한 자부심은 있어요. 하지만 자부심만으로 에너지가 생기지는 않거든요. 원 캐스트라서, 강연에 방송까지 이미 녹초가 된 상태에서 무대에 오를 때가 많아요. 하루 정도는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죠. 하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에 또 다른 심장을 가동해요. 스스로 독려하고 최면을 거는 거예요. 그렇지 않았다면 먼 길을 걸어오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가기 힘들 것 같아요.”


같은 일을 반복하기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느낄 때면 전율하게 된다. 이제는 그야말로 피부로 느끼는 감흥인 것이다.
“관객들의 호응을 느끼는 정도는 예전보다 훨씬 더, 정말 몇 배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아요. ‘좋은 작품 봤다, 감동 많이 받고 간다’ 칭찬들 해주시는데, 사실은 제가 더 전율하거든요. ‘너 지금 행복하지 않니?’ 스스로 되묻게 되죠.”

그는 장애뿐만 아니라 힘든 일을 겪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오픈 유어 아이즈>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도 사랑과 희망이다.
“욕망이 아니라 희망이에요. 사람들은 욕망과 희망을 헷갈려 해요. 스스로 욕망으로 살아왔고 아직도 욕망이 가득한데 입으로는 희망이라고 말하죠. 그러니까 금방 좌절하는 거예요. 희망이 있는 사람들은 좌절하지 않거든요. 저도 예전에는 바라는 것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제 저에게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아요. 빨간색 스포츠카 줘봐야 저 못 몰아요(웃음). 이제는 욕망을 담을 그릇 자체가 없어진 거죠. 물론 사람인지라 시시때때로 욕심은 부리지만, 궁극적으로 의미가 없음을 바로 깨달아요. 중요한 건 희망, 실망하지 않는 것. 희망을 가슴에 담고 난 뒤에는 작은 것에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게 됐어요. 스트레스가 많이 없어진 거죠.”

웅크린 만큼 많은 것을 깨달았고, 오랜만에 세상과 소통하는 만큼 계획하는 일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이제 일을 쫒지 않는다고 했다. 일보다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예전에는 사람을 보지 않고 일을 봤어요. 일을 봤다는 건 돈을 봤다는 얘기죠. 그래서 늘 쫓겼고 궁극적으로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본질적으로 가치관과 인생관이 바뀌었어요. 이제는 일을 둘러싼 사람들이 중요해요. 그래서 좋은 기운이 도는 일에 뜻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있다면 제 마음의 문도 열어두고 싶어요.”



 


우려했던 것과 달리 편한 마음으로 인터뷰를 끝낸 뒤 기자는 용기를 내서 물어봤다.
“지금 제가...”
“전혀 안 보입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얘기한다는 게... “그래도 저 보이시죠?”
“그럼요, 무척 아름다우십니다.”
“맞아요!”
멀찌감치 앉아 있던 매니저까지 껄껄 웃었다.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유쾌했다. 그는 ‘제대로 바닥을 쳤더니 편안해졌고 새로운 희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만큼 힘들었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우리에게 웃음으로 기쁨을 줬던 이동우 씨는 이제 희망의 메시지로 새로운 기쁨을 전달하고 있다. 한편, 담도암 3차 수술을 앞둔 프로레슬링의 전설 이왕표가 유서를 공개하면서 수술이 잘못되면 이동우에게 눈 기증을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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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 #시력장애 #연극 #오픈유어아이즈 #하지원
1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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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팡

2012.12.17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사실 가장 힘들었던 일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봅니다.. 희망의 아이콘으로 늘 우리 곁에 있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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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11.19

이동우씨가 전하는 사랑의 메세지 모든이들에게 따스한 감동이 됩니다. 이동우씨 앞으로도 많은 활동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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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캔

2011.11.10

사람들이 욕망과 희망을 헷갈려한다는 말... 굉장히 의미심장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건강하던 사람이 장애를 얻으면 더 힘들다고 하죠. 인정하기까지 참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하더라구요. 시력이 사라졌어도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 정말 멋집니다. 계속 이동우씨 응원할게요.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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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