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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 가는 길, 당신에게 닿는 길 - 전남 고흥 우도 포구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선명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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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바다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시간은 하루에 3분밖에 되지 않았다. 그 노래는 그녀와 남편을 하나로 이어주기에 충분했다. 삶과 죽음을, 이생과 후생의, 섬과 육지를, 별과 별을, 사랑과 그리고 사람을 이어주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섬으로 가는 길

전남 고흥의 ‘우도(牛島)’를 소개하고자 한다. 소머리를 닮은 암석이 있어 우도라고 붙여졌다는 유래, 임진왜란 때 대나무를 꺾어 만든 화살을 나라에 바쳤다고 해서 우죽도(牛竹島)라 불렸다는 이야기, 조류가 빠르고 물이 깨끗해 자연산 굴로 으뜸이라는 자부심, 갯벌에서 낙지를 잡고 조개를 캐며 하루를 보내는 할머니들……. 우도를 소개할 수식은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그 중 제일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길이다. 그리고 그 길 건너, 작은 섬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바로 우도의 모습이다.

우도로 통하는 길은 하루에 단 두 번만 얼굴을 드러냈다. 간조의 시간. 섬과 육지 사이를 갈라놓고 있던 바닷물이 빠지는 시간이면 광활한 갯벌이 드러난다. 갯벌 한 가운데에는 길고 좁은 콘크리트길이 나 있다. 트럭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였지만 오토바이나 경운기의 길로는 그만이었다. 길이 놓이기 전까지 갯벌 위로 걸어 다녔다는 섬마을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통행로다. 대개 소중한 것들은 희소가치가 높기 마련이었다. 이 길 역시 다르지 않았다.

길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다시 말해 섬과 육지 사이로 물이 들기 시작하는 시간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게다가 안전하게 통행이 허락된 시간은 겨우 40분 정도. 그렇다고 통행 시간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달의 인력과 지구의 자전으로 인해 간조는 매일 50분씩 늦어졌다. 나머지 시간은 바다다. 섬과 육지 사이의 바다는 수심이 3m 이상 된다고 하니 그냥 바다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우도 사람들은 매일 길이 열리는 시간에 맞춰서 하루의 일과를 짜야 했다. 평소에는 길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첫물에 한번 끝물에 한번, 그 길은 하루에 두 시간이 되지 않는 동안만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존재를 증명해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선명할 때가 있다

오후 4시 정도가 되었을까. 우도를 다 둘러보지도 않았는데, 바다가 서둘러 길을 삼켰다. 당장에 나가지 않으면 다음 물때까지 섬을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물론 갯벌에 물이 차면 배로 다닐 수 있었지만 급한 일을 제외하고는 섬사람들은 모두 길을 이용했다. 결국 하룻밤을 섬에서 지내기로 했다. 섬 안에서는 딱히 묵을 숙소를 찾을 수 없었던 터라 이장님께 조언을 구했다. 이장님은 다른 포구의 청년회장들처럼 젊었다. 얼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이도 30대 중반이었다. 젊은 이장님은 마을회관에 이부자리를 내주었다. 마을 회관은 산중턱에 있어서 여러 집의 지붕들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집은 이장님의 댁이었다. 이장님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눈꺼풀과 낮은 코, 통통한 볼과 웃는 인상까지 모자(母子)가 꼭 닮아 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녀 역시 이장과 마찬가지로 여행자에게 친절했고, 손수 저녁상까지 차려주었다. 밥 냄새를 맡은 개들이 주인을 부르며 짖는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포구의 밤은 언제나 일찍 찾아온다. 마을 회관 마당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았다. 수만 개의 별이 나를 향해 쏟아질 것처럼 빛나고 있었다. 언젠가 저 별의 탄생에 관한 가설을 들은 적이 있다. 별은 수소가 분자 상태로 존재하는 분자운 속에서 태어나는데, 이 수소가 어디에서 나온 것이냐는 이야기였다. 그 가설에 따르면 생명체에서 수소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다. 별의 성분과 인간의 성분이 비슷하다고 한다. 인간의 죽음이 밤하늘의 별을 빛나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저 별이 죽어 당신이 태어났다는 말도 가능하게 된다. 저 별은 너, 저 별은 나. 밤하늘을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낭만을 그리는 한 연인들의 대화가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가설일 뿐이지만 이런 저런 생각 후에 하늘을 바라보니 별은 더 가까워진 것만 같았다. 가끔은 보이는 것 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선명할 때가 있다.




당신에게 닿는 길

다음날 물때에 맞춰 새벽길이 열렸고, 우도 사람들은 그보다 빨리 눈을 떴다. 이른 아침부터 바다에 나간다는 이장님 댁의 소식을 듣고 염치없는 부탁을 했다. 결국 이장의 어머니가 오래된 목선으로 이끌었다. 노란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진 오래된 목선이었다. 배의 크기는 작았지만 고인이 된 남편과 함께 탔던 배라는 말 덕분인지 안심이 되었다. 내가 배에 오르려 하자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톱은 조개껍질처럼 단단했고, 손가락의 뼈마디는 굵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홀로 이 목선을 운용한 것일까. 내가 한쪽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그녀는 양편에 난 노를 잡았다.

노는 힘이 아닌 기술로 젓는 거리고는 하지만 여자가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오른발을 축으로 삼고 단단히 고정시켰다. 허리는 넘어질 듯 뒤로 기울였지만 뒷발이 지탱해주어 오히려 안정되어 보이기도 했다. 두꺼운 손으로 노를 움켜쥐고 가슴 쪽으로 가득 당겼다. 그러자 뒷발과 허리, 등과 어깨가 하나의 완만한 곡선이 되었다. 그녀가 있는 힘껏 노를 밀자 배는 순식간에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한 번 당기고, 밀어내고,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녀의 입과 코에서 거센 숨소리가 새나왔다. 배가 점점 앞으로 달려 나갔다. 잔잔했던 바다에 물결이 일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칼이 날렸다.

나는 그녀에게 힘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힘이 들 때는 노래를 부른다고 했다.

‘참을 수가 없도록 괴로워도 슬퍼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곡조, 나는 한참이나 숨을 감추고 있었다. 마지막 가사를 듣고서야 노래의 제목을 알게 되었다.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었다. 기 드 모파상의 소설이 『여자의 일생』으로 국내에 번역되기도 했기에 친숙한 제목이었다. 그러다 내 앞에서 노를 젓고 있는 그녀의 일생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 생각이라는 것은 엄숙한 것이어서, 나는 당당하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지 못했다. 나의 어머니보다 연세가 많은 그녀, 남편을 여의고 이제는 홀로 오래된 목선에서 노를 젓는 그녀, 이장의 어머니이자, 이 마을에 시집와 한 평생을 우도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녀.

여자의 일생이란 무엇일까.

“아들도 모르고 자식도 몰라 나의 혼자 마음으로 바다에 오면 노래를 불러.”

그러고 보니, 그녀가 부르는 노래를 아무도 듣지 못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니다. 결코 아니다. 오래된 목선만은 그녀의 노래를 기억할 것이 아닌가.

노를 쥐고 부르는 구슬픈 곡조는 바다에 물결을 그려나갔다. 느리고 부드럽게 바다를 일렁이는 물결은 해수면으로 뻗어나갔다. 물결은 어디에 닿으려고 끝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물결은 앞선 결을 지우며, 더 멀리 퍼져나갔다. 그녀는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단단하게 입술을 모으며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물결이 되어 바다를 일렁였다. 밀려나가고, 다시 들어오는 파도는 그녀의 노래를 실어 날랐다. 노래는 뭍에 닿았다. 흙과 돌과 풀과 나무가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작은 벌레의 움직임이었다. 새들의 지저귐이고 풀들이 소곤대는 그것이었다. 익어가는 곡물들 너머 바람이 부는 언덕이 나왔다. 그곳에 묘지가 있었다.

“여기 신랑이 가까운 데 있어서 웃고 즐거우라고.”

그것이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이유였다. 그녀가 바다에 나가 노래를 부르는 시간은 하루에 3분밖에 되지 않았다. 그 노래는 그녀와 남편을 하나로 이어주기에 충분했다. 삶과 죽음을, 이생과 후생의, 섬과 육지를, 별과 별을, 사랑과 그리고 사람을 이어주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길이 있다. 당신에게 닿는 길이, 분명히 있다. 그 길은 보이지 않음으로써 더욱 선명한, 그러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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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오성은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씨네필
문학청년
어쿠스틱 밴드 'Brujimao'의 리더.

여자의 일생

<기 드 모파상> 저/<유필> 역12,6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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