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를 중심으로 살펴 본 사회고발 영화들
공지영의 원작소설 <도가니> 속의 무진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하고 악랄한 일들을 모조리 품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아주 오랫동안 끊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장을 넘길 수 없는 그 먹먹한 상처와 분노 때문에 소설 <도가니>는 아주 오랫동안 큰 결심을 하고서야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영화 <도가니>를 본다는 것은 조금 더 큰 용기가 필요한 행위였다. 두 시간 동안 끊지 못하고 이어지는 영상의 충격은 소설을 덮었을 때의 그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리는 눈앞에서 아이들이 악마를 겪어야 하는 그 끔찍한 광경을 참아내야 한다.
2011.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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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사태, 촛불집회 무력해산, 대통령 자살, 곽노현 교육감 구속, 제주 강정마을 무력진압, 언론 파업, 4대강 사업 비리은폐 의혹, 고대 성추행 사건,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동성애자임을 밝힌 군인이 동성애자임을 증명하기 위해 성행위 사진 제출 강요를 받는 등 지금의 공권력은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의견을 무자비하게 밟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극악의 길을 걷고 있다.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사람들은 떵떵거리면서 살고, 정작 피해자는 피눈물을 흘리면서 숨어살아야 하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쌓이고 있다. 이러한 억울한 공분(公憤)의 시절에 영화 <도가니>가 터졌다. 여론이 들끓고 움직이는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강력하고 재빠르다. 참아왔던 여러 분노가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폭행 사건의 이 놀라운 진실 앞에서 함께 폭발했고, 그 여파는 상당히 고무적이다. 우리가 아직도 이렇게 미개하고 무지막지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악마를 옹호하는 세상 속에 산다
: 영화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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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원작소설 <도가니> 속의 무진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하고 악랄한 일들을 모조리 품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아주 오랫동안 끊어 읽을 수밖에 없었다. 책장을 넘길 수 없는 그 먹먹한 상처와 분노 때문에 소설 <도가니>는 아주 오랫동안 큰 결심을 하고서야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소설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영화 <도가니>를 본다는 것은 조금 더 큰 용기가 필요한 행위였다. 두 시간 동안 끊지 못하고 이어지는 영상의 충격은 소설을 덮었을 때의 그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우리는 눈앞에서 아이들이 악마를 겪어야 하는 그 끔찍한 광경을 참아내야 한다.
영화 <도가니>는 영화의 극적 장치대신 원작과 사건이 가지고 있는 사실 자체를 전달하는데 힘을 싣는다. 그 과정을 바라보는 일이 힘든 것은 그 악마가 충분히 처벌받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며, 그 악마를 옹호하는 사회 기득권층의 무신경함과 이기주의는 극에 달했다. 학교는 미쳤고, 법원은 부패했고, 종교에 신과 구원은 없었다. 게다가 이 영화가 실화이며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은 과연 이 땅에 정의와 희망이 있는지 절망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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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교사 강인호(공유)는 안개가 많은 도시 무진의 자애학원으로 향한다. 인호의 도착과 동시에 한 어린 소년이 기찻길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첫 수업에서 인호는 아이들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걸 직감한다. 겉으로는 점잖은 척하면서 선생이 된 도리로 학교발전기금을 내라는 교장과 행정실장도 어딘가 의심쩍다. 그러던 어느 날, 인호는 복도의 화장실에서 희미한 비명소리를 듣는다. 교장에게 성폭행을 당하던 연두의 비명이었다. 인호는 무진의 인권운동가인 유진(정유미)과 함께 사건의 전모를 파헤친다.
연두의 증언, 친구인 유리의 증언, 그리고 민수의 증언이 더해지면서 무진 교육청 선정 최우수 학원인 자애학원의 감춰진 진실이 드러난다. 교장과 행정실장, 선생이 학생들의 성별과 나이를 가리지 않고 성폭행을 해왔다는 것. 그에 대한 충격으로 민수의 동생 영수가 기찻길에서 자살에 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추악한 진실은 사건이 세상이 알려진 이후부터 모습을 드러낸다. 아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와 시청, 교육청, 경찰, 검찰, 교회 등등이 한데 엮여 나뒹구는 ‘도가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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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엄밀히 말해서 영화 <도가니>를 통해서 우리가 새롭게 안 사실은 없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이렇게 썩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그 무력함은 영화의 도입부에서 그저 멍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꼬마의 심정 그대로일 것이다. 사회의 부패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관객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순간, 영화는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온갖 비리와 현실을 중첩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도가니>는 자애학원을 둘러싼 아동 성폭력 사건을 다룬 법정영화가 아니라, 그 사건을 둘러싼 온갖 사회의 비리를 고발하는 영화가 된다.
성폭력 가해자가 처벌받지 않는 과정에 연루된 그 수많은 기관과 권력이 얽혀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사립학원의 선생이 되기 위해 학교발전기금이라는 뇌물, 학원 비리를 눈감아주는 비리 경찰, 법조계의 전관예우라는 특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서로 미루는 시청과 교육청, 안하무인의 기독교 교단, 최루탄과 물대포로 선량한 시민을 무력 진압하는 공권력…….이 모든 사회의 비리가 합쳐져 선량한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그들을 악마에게 유린당하게 만드는 과정을 묵도한다. 더욱 절망적인 사실은 영화 <도가니>는 이 사건을 고발하고 사회의 공분을 끌어낼 수 있지만, 그 어린 아이들이 당한 그 억울함과 분노를 풀어줄 수는 없다는 그 사실이다. 이들의 분노는 가해자를 처벌하고, 법이 개정되고, 이들이 더 이상 숨어 지내지 않게 공정한 사회가 되지 않는 한, 이 불쌍한 아이들은 평생을 그 잔인한 기억과 함께 몸서리치며 살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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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혁 감독은 실화를 다룬 따뜻한 영화 <마이 파더> 보다 더 정직한 스타일로 <도가니>를 연출한다. 그는 공지영의 원작에 충실하게, 영화적 장치를 위한 사건의 가감 없이 우리가 이 사건을 바라보게 만든다. 영화는 관찰자이자 조력자인 공유와 정유미를 통해 대화를 풀어가지만, 영화는 아이들의 캐릭터를 이들보다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킨다. 그 생생하게 살아있는 아이들의 눈빛과 몸짓이 진실이 외면당한 순간에 겪었을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아이들의 울부짖는 표정과 그들을 바라보는 가해자의 표정은 공포스럽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성폭행의 생생한 묘사는 도저히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혐오스럽다.
영화는 실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내면서, 사건 자체를 왜곡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세상의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묵묵히 끝까지 밀어붙인다. 그 진심어린 힘이 대중영화가 아닌 사회고발 영화를 흥행영화가 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다. 게다가 2011년 촛불시위와 파업현장에서 다시 부활한 물대포는 영화 <도가니>의 사건이 발생한 과거와 2011년 우리나라의 피비린내 나는 인권유린의 현장을 하나로 엮는다. 짙은 안개가 낀 소설 속 무진은 그렇게 진실을 은폐하고, 거대한 물대포는 그 진실을 파헤치려는 현재를 압박한다. <도가니>가 더욱 끔찍하게 여겨지는 것은, 과거의 은폐된 사실이 아니라 이렇듯 우리의 현실은 이토록 먹먹하고 잔인하게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분노를 넘어 눈물이 나오게 하는 사실은 영화의 배경이 된 실제 인화학교의 특수교사는 성폭력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형사 처분을 받지 않았고 이후 복직해 교사로 일하고 있고, 성범죄 은폐혐의로 고발된 교사 2명도 버젓이 복직됐다는 그 사실이다. 게다가 연고자가 없는 일부 학생(총 재학생 22명)들은 아직 재학 중이다.당시 사건을 맡은 판사는 그 뒤 수원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거쳤으며 현재는 국내 유명 로펌에서 변호사로 재직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에 대한 진심어린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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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학교의 진실을 처음 파헤친 것은 MBC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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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는 2010년에 개봉한 <어둠의 아이들>은 태국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소아성학대, 인신매매, 불법장기매매의 잔인한 현실을 영화에 담고 있다. <피와 뼈>로 유명한 양석일 작가의 <어둠의 아이들>이라는 작품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정말 지구 어딘가에 아이들에게 저토록 참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만드는 영화다. 일본 최고의 사회파 감독이라 불리는 사카모토 준지 감독은 태국의 아이들이 처한 비극을 감상적으로 그리기에 앞서,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이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이러한 현실은 태국에서 벌어지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벌어지는 공공연한 현실이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함을 떨쳐낼 수가 없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는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추악한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사회 고발적 영화이다. 이창동 감독은 이미 그의 전작들을 통해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한 개인의 삶이 파괴되는 모습을 잔인할 정도로 세밀하게 들여다보았다. 영화 <시>는 살인사건과 그 가해자의 부모들이 모여서, 합의를 보는 과정을 그려낸다. 죽은 여학생의 부모에게 어느 누구도 사과하지 않으며, 부모들이 합의를 보는 중에 가해 학생들은 멀쩡히 일상을 살아간다. 가해자 중에 자신의 손주가 있음에도 미자 할머니는 사회의 부도덕한 현실을 ‘시’로 고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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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검열이 강했던 우리나라에서 보다 해외에서는 사회고발성 영화들이 많았는데, 성폭행에 대해 사회적 함의를 불러일으킨 영화는 조디 포스터가 주연을 맡은 1988년 <피고인>이었다. 이 영화는 성폭행에 대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편견과 이기심, 방관과 동조라는 이름의 또 다른 범죄를 지적하는 사회 고발 영화이다. 사라가 강간을 당하자 검사는 사라에게 이런 저런 것을 물어 본다. 그 당시에 팬티는 입고 있었는지 음주량은 어느 정도였는지 옷차림은 어땠는지, 게다가 사라가 음주와 마약을 한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는 합의를 하자고 종용하기까지 한다. 흔히 여성들의 옷차림과 태도 때문에 성폭행이 일어난다는 남성 중심의 비열함을 영화는 속속들이 까밝히면서, 피해자이지만 여전히 위협 받는 사라를 통해 이러한 사회적 편견을 고발한다.
실제로 사라가 성폭행을 당하는 동안 술집에 있던 수많은 남자들이 성폭행을 부추기는 장면은 끔찍하고 노골적이다. 83년도에 벌어졌던 유사한 상황을 소재로 만들었다고 한다. 비슷한 국내영화로는 성폭행을 막기 위해 상대방의 혀를 잘라버린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에 의해 고소, 구속된 실화를 다룬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가 있다. 밤늦은 여성의 귀가가 여성의 사생활이 방종했다는 증거가 되고, 숨기고 싶었던 여성의 과거가 고스란히 밝혀지는 조사과정에서 인권은 잔인하게 유린된다. 20년 전에 제작된 영화이지만, 20년 전이 지난 지금도 성폭행 사건에 대한 사람들이 태도와 솜방망이 처벌은 그때로부터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실화는 아니지만, 이러한 성폭행 사건에 대한 미온적 결말 때문에 피해자들을 잔인하게 죽일 수밖에 없는 <어미>와 <오로라 공주>는 그렇게 먹먹한 현실을 향해 외롭게 싸우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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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정의를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개인의 문제를 다룬 영화도 있다. 실종된 아들의 존재를 밝히기 위한 엄마의 사투를 그린 <체인질링>이 있다. 사회문제를 지속적으로 다룬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뮤직 박스>는 자식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해 아버지를 고발하는 딸의 이야기다. 헝가리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앤은 이혼 후에도 전남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어린 아들과 살고 있는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다. 평범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노령의 부친 라즐로가 유대인 학살에 직접 관여했었던 전범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사건이 벌어진다. 앤은 자상하고 훌륭한 자신의 아버지가 유대인 학살 전범이리라 절대 믿지 않고, 스스로 사건을 맡아 결백을 증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마지막 ‘뮤직박스’를 발견하는 순간 판도라의 상자처럼 진실이 밝혀진다. 진실을 위한 딸의 마지막 선택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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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도가니>를 되짚으면서 우리가 심각하게 자문해봐야 할 내용이 있다. 실제로 나의 아버지가 유대인 학살의 전범이었다면, 내가 영화 속 미술선생이라면 우리는 <뮤직 박스>의 주인공처럼, <도가니>의 주인공처럼 정의로운 행동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취할 수 있을까? 그 무서운 현실 앞에서 주춤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나약함을 탓할 의도는 아니다. 연예인의 비리를 앞에 두고 그보다 더 부도덕한 말로 쌍욕을 활자화 하는 사람들과, 동기를 성폭행하고서도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를 인격 장애자로 몰아가기 위한 설문지를 돌린 학생들과 그리고 그 설문에 응한 고대학생들 사이에서 자행되고 있는 도덕적 불감증을 경계해야 한다.
나 자신이 그런 안타까운 현실을 방관하고 만들어가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반성에서 작지만 꾸준한 실천까지 이어지면서 사회를 바꾸지 않는 한, 이 단단하고 험한 구조적 모순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도가니>를 통해 냄비처럼 들끓고 있는 사회현상을 언론이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마지막까지 카메라를 들이대고, 사건을 파헤칠 끈기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것 또한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지만, <도가니> 영화가 낳은 이 파장이 ‘도가니법’으로 이어져, 다시는 이 땅에 억울한 피눈물을 흘리는 사회적 약자가 없는 세상을 꿈꿔보는 것도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9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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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did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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