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기 “죽은 아내와 대화가 제일 힘들어요”
목요일 낮 공연을 끝낸 객석에서 남편 안중기 역을 맡은 이광기 씨를 만났다. 공연에 참여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오랜만에 찾은 연극 무대는 여전히 긴장의 연속이다.
글ㆍ사진 윤하정
201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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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 반응이 뜨거워요. 연인들, 특히 부부가 많이들 오시는데, 공연장에서 함께 웃다 울다 가시면 새삼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고 해요. 가족애나 부부 간의 사랑 같은,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방치됐던 감정들을 이 작품을 통해 꺼내보고 챙기는 계기가 되는 거죠.”

목요일 낮 공연을 끝낸 객석에서 남편 안중기 역을 맡은 이광기 씨를 만났다. 공연에 참여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오랜만에 찾은 연극 무대는 여전히 긴장의 연속이다.

“연극은 20대 때 조금 한 뒤로 드라마하면서는 거의 못했죠. 그러다 5년 전에 <아트>를 하면서 다시 연극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 조재현 선배가 <민들레 바람되어>를 함께 하자고 하시는데, 대본을 보니까 드라마도 탄탄하고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데 보기에는 편한 작품이지만, 배우 입장에서는 편한 작품이 아니라서 긴장을 놓을 수가 없어요. 배우 4명이 이 극장을 다 채워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 긴장이 연극의 끊어낼 수 없는 매력이기도 하다.

“드라마나 영화는 전파를 타야 대중들에게 보이지만, 연극은 무대에서 관객들과 직접 호흡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관객의 반응에 따라 무대가 미세하게 달라집니다. 그런 부분까지 신경 써야 하니까 연극이 어렵지만, 또 완성했을 때는 성취감이나 만족감이 남다르죠. 물론 안 되는 날도 있어요. 그런 날은 분장실에서 신세 한탄하고 좌절하는데(웃음), 그러면서 조금씩 성숙해지고 완성돼가는 것 같아요.”

남편 안중기 역에는 이광기 씨 외에도 정보석, 조재현 씨가 열연하고 있고, 아내 오지영 역에는 김성미, 손희승, 김혜지 씨가 참여하고 있다. 거의 매일 남편과 아내가 바뀌는 터라 배우들은 익숙해질 틈이 없다. 덕분에 관객들은 매번 조금씩 다른 <민들레 바람되어>를 볼 수 있다.

“재현 형이 연기하는 안중기은 저와는 굉장히 다르죠. 아주 괴팍한 사람이랄까. 아무튼 그 형은 정말 놀랍습니다. 이 공연을 몇 년 전부터 해왔는데, 어떻게 매일 그렇게 감정을 짜낼 수 있는지 신기해요. 저도 처음에 연습할 때는 눈물이 수도꼭지 틀어놓은 것처럼 나왔어요. 그런데 막상 공연 때는 눈물이 안 나올 때도 있더라고요(웃음). 재현 형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보석이 형도 매력적이죠. 밝고 약간 어수룩한 안중기인데, 어수룩하지 않은 사람이 그런 연기를 하니까 재밌어요.”

<민들레 바람되어>의 가장 힘든 점은 역시 감정씬이다. 극이 죽은 아내와의 대화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부분 엇박자인 데다, 30대에서 70대까지 흘러가는 빠른 세월은 많은 것을 효과적으로 집약해야 한다.

“1장은 많은 배우들이 힘들어해요. 쉬운 장면 같지만, 죽은 아내와 대사를 주고받다 보니까 서로 다른 말들을 하고 있거든요. 따로따로 얘기를 하니까 조금만 놓쳐도 훅 건너뛸 수가 있어요. 그래서 1장 끝나면 배우들이 한시름 놓습니다. 2막은 죽은 아내의 영혼과 교감하다 갑자기 격정적으로 아내를 그리워하는 장면이 있는데, 감정의 변화가 크니까 힘들죠.”

그래서 극 중에 마시는 소주는 큰 도움이 된다. 그것이 알코올이든 무알코올이든 말이다(^^).

“소주 안 마시면 4장의 감정을 연기할 수가 없어요, 2회 공연 있는 날은 술 때문에 저녁 공연은 정신이 없습니다(웃음). 우리도 그렇지만 술기운을 빌려서 그동안 얘기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잖아요. 이 작품에서도 마지막에 죽은 아내에게 술을 건네면서,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응집해서 보여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기자는 안중기가 가여웠다. 일찍 아내를 여의었고, 다시 결혼했지만 죽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은 사랑이 자라날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죽은 아내와 자신을 연결해주는 외동딸마저 사연이 있다. 평생 과거에 묶여 있는 안중기. 객석에서 봤을 때는 절절한 그리움인지 몰라도, 달리 보면 한평생 정말 불쌍한 사람이 아닌가?

“현실에 적응을 못하니까 기댈 곳이 과거의 아내밖에 없는 것이죠. 분명한 건 과거가 지금보다 행복했기 때문에, 그 시간이 현재를 버틸 수 있는 버팀목이 되는 거예요. 우리가 자주 접할 수 있는 일상은 아니지만, 사실 우리에게도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고, 하기 싫은 일도 하면서 살아가잖아요. 안중기라는 인물을 통해서 관객들이 스스로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아요. 지금의 나는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것이죠.”

그는 민들레 바람이 치유의 바람 같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박수홍 씨가 연극을 보고 부모님께도 보여드렸대요. 며칠 후에 전화가 왔어요, 아버지가 달라지셨다고. 어머니한테 잘하신답니다(웃음). 저는 민들레 바람이 치유의 바람이 아닐까 생각해요. 정말 아프고 그립고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이 작품이 홀씨가 돼서 가슴에 작은 민들레꽃을 피우는 거죠. 그렇게 다시 한 번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힘든 일을 겪었던 이광기 씨의 가슴 속에는 이미 연기와 봉사라는 민들레 꽃밭이 들어차 있다.

“연기와 봉사만 할 수 있는 사명을 주시라고 기도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좋은 작품도 하게 되고, 이 공연이 끝나면 바로 다른 연극에도 들어갑니다.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이번에 자연스럽게 아이티 돕기 자선콘서트도 하게 됐는데, 김태원 씨가 동참해서 ‘누구나 사랑할 수 있다’ 뮤직비디오를 제작했어요. 세상에 있는 아이들에게 해줄 게 많아요.”

관객들이 빠져나간 무대에서는 풀 냄새가 났다. 잔디를 새로 깔아 더욱 파릇파릇한 무대. 공연장으로 옮겨놓은 잔디가 더욱 진한 내음을 드리우듯, 무대에서 펼쳐지는 남편과 아내의 닿지 않는 사랑은 더 애틋했다.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는 5월 29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된다. 어느 노랫말처럼 이 넓은 세상, 이렇게 긴 시간 속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 속에 부부로 만난 인연의 소중함을 되새겨보기 바란다.








#이광기 #아내 #민들레바람되어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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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1.11.20

무대를 잔디밭으로 꾸미고 배우들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민들레 홀씨가 되어 꽃을 피우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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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정

"공연 보느라 영화 볼 시간이 없다.."는 공연 칼럼니스트, 문화전문기자. 저서로는 <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공연을 보러 떠나는 유럽> ,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축제를 즐기러 떠나는 유럽>, 공연 소개하는 여자 윤하정의 <예술이 좋아 떠나는 유럽> 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