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엔형제 또 일 냈네!
각자의 이름은 조엘 코엔, 에단 코엔. 개인으로도 충분히 멋지지만, 형제라는 이름으로 뭉쳤을 때 더욱 빛나는 이들을 우리는 코엔 형제라고 부른다
2011.02.18
작게
크게
공유
<더 브레이브> |
각자의 이름은 조엘 코엔, 에단 코엔. 개인으로도 충분히 멋지지만, 형제라는 이름으로 뭉쳤을 때 더욱 빛나는 이들을 우리는 코엔 형제라고 부른다. 감독상, 작품상 등 10개의 후보에 올라 아카데미를 들썩이게 하는 그들의 신작 <더 브레이브>는 2010년 전미비평가협회 선정 세계10대영화로 선정되었으며 제61회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면서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작품이다.
<더 브레이브>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 코엔 형제가 도전한 두 번째 서부극으로 1969년 헨리 헤서웨이 감독, 존 웨인 주연의 영화 <진정한 용기>를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서부극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영화의 성격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확연히 다르다. 이 영화는 좀 더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
원작의 구성을 따라, <더 브레이브>는 인디언 구역으로 도망친 아버지의 살인범을 쫓는 열네 살 소녀를 보안관 일행이 돕는 모험담을 그려낸다. 제프 브리지스가 존 웨인이 맡았던 보안관 역을, 맷 데이먼과 조시 브롤린이 각각 그 동료와 악당을 연기한다. 영화는 신예 헤일리 스테인펠드가 연기하는 소녀의 관점으로 진행된다.
지난 북미에서 2010년 12월 22일 2위로 개봉한 <더 브레이브>는 평단의 호평에 이어, 관객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으며 뒤늦게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면서 코엔 형제의 영화 중 가장 높은 수익을 창출해낸 영화로 기록 되었다. 코엔 형제는 1969년 영화의 리메이크가 아니라 찰스 포티스의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옮기는 데 주력했다고 밝힌 것처럼 쫓고 쫓기는 자의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원작을 세밀하게 담아내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고전적 형식 비틀어 보기, 그 시작 : <블러드 심플>
|
코엔 형제의 프로필은 1984년 <블러드 심플>에서 시작된다. 1981년 문제작 <이블 데드>의 샘 레이미 감독의 편집 조수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은 조엘 코엔이 동생 에단 코엔을 끌어들여 처음으로 감독하고, 제작한 영화가 <블러드 심플>이다. 이 인상적인 데뷔작을 통해 형제는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젊은 영화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내놓은 야심작 제 1회 선댄스 영화제는 <블러드 심플>에게 심사위원 대상을 안겨주었고, 코엔 형제는 명성을 얻었고 동시에 선댄스 영화제는 그 영화제의 특성을 참신하고 독창적인 문제작 <블러드 심플>을 통해 확인시켜 주었다. <블러드 심플>을 시작으로 선댄스 영화제는 재기발랄한 젊은 영화인의 양성소로 그 이름을 새겨나가기 시작했다.
원제 대신 <분노의 저격자>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국내 비디오는 ‘컬트’가 되어 영화팬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이 영화는 결국 코엔 형제의 시작이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어떤 장르의 영화를 선택하던 장르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형식을 비틀어서, 스릴과 재미를 창출해내는 코엔 형제의 장기가 이 영화를 통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코엔 형제의 영화를 유심히 살펴본 팬이라면 금세 알아차렸겠지만, 코엔 형제의 영화의 대부분은 커다란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에 얽힌 사람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 사건을 둘러싼 인간들의 움직임이 사건 자체를 왜곡시키기도 하고, 해결해 나가기도 하면서 영화 속 이야기는 미궁 속으로 빠져나간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하나의 사건과 얽히면서 충돌하는 사이, 이야기는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얽힌 이야기 속에서 영화 속 인물들은 처절한 지옥을 경험하지만, 그 과정에서 관객들의 웃음이 비집고 올라온다.
<블러드 심플>을 살펴보자.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는 남자가 청부살인을 의뢰하는 것이 기본적인 사건이다. 사건의 개요만으로 보면 뻔한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지만, 이 영화는 다르다. 사건이 진행되고 사람이 얽히면서 남자의 의도와 달리 아내와 청부살인업자와 남자는 얽히고설킨다.
|
이러한 코엔 형제만의 독특한 이야기 비틀기의 특징은 차기작에서도 나타난다. 1991년 <바톤 핑크>의 시작은 시나리오 작가 핑크가 옆방 투숙객 찰리와 만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예상치 못한 결말을 향해 치닫는 첫 걸음이 된다.
1996년 <파고>의 시작은 돈을 노린 남편이 아내를 유괴하는 사건이다. 이 단순한 시작이 파국으로 치닫는 과정을 등장인물들 간의 세밀한 행동을 통해 뻗어가면서 예상치 못한 스릴과 웃음을 유발했다.
이러한 코엔 형제만의 특징은 심각한 드라마였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선 돈 가방으로, <번 애프터 리딩>에서는 CIA의 일급비밀이 담긴 CD가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 된다. 이렇게 사소한 사건과 물건이 촉발시키는 이야기의 소동 속에서 코엔 형제는 소소한 물건 혹은 욕심에 휘둘리는 인간의 허황된 욕심과 어리석음을 관조적으로 묵도한다.
|
비틀어 본 시점에서 코엔 형제의 영화는 다른 영화가 가지지 못한 독특한 스릴과 함께 마냥 낄낄댈 수는 없지만, 웃어버리게 만드는 코믹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코엔 형제만의 독특한 리듬 속에서, 코미디적 요소는 때론 깃털처럼 가볍게 터져 나오기도 하고, 텅 빈 내장에서부터 울리는 짙은 기침처럼 묵직하게 흐르기도 한다.
코엔 형제는 다층적인 카메라 시점과 경쾌한 편집을 통해 낯선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리듬 속에 코엔 형제의 장기 중의 하나인 스릴러적인 요소와 코미디의 요소가 꿈틀거린다. 1987년 두 번째 연출 작품인 <아리조나 유괴사건>은 아기 유괴라는 흥미로운 요소에 블랙 코미디의 기운을 불어 넣었다. 동시에 가벼운 코미디 속에,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잔인한 장면을 녹여낸다. 비명 대신 웃음이 나오는 낯선 장면 속에서 관객들은 눈을 질끈 감고, 곁눈질로 보면서도 금세 낄낄거리게 된다. 긴장의 강약이 관객의 감정보다 앞서기에, 관객들은 계속 낯선 감정으로 영화를 지켜보게 된다.
변화 혹은 성숙 : <시리어스 맨>,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레이디 킬러>
|
2009년 <시리어스 맨>은 코엔 형제만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면서도 조금은 다른 정서로 이어진다. 이 영화는 그의 많은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잔혹한 폭력’으로 긴장감을 조성하지 않고, 딱딱한 긴장감 대신 관조적인 편안함을 내세운다.
이 영화는 한 유대인 가정의 가장 래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코엔 형제의 이전 작품들이 범죄와 살인에 이르는 파국을 그린다면, <시리어스 맨>은 우리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법한 사건들을 통해 주인공 래리를 괴롭힌다. 영화의 배경이 된 1960년대의 미네소타 주는 코엔 형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고 하니, 이 영화는 그들의 고향에 대한 추억이 오롯이 담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영화들처럼 극단적인 사건이 없다고 해서, 이 영화가 제목처럼 심각하고 무거운 것은 아니다. 코엔 형제 특유의 리드미컬한 편집과 기대를 엇나가는 영화의 전개는 그들이 소소한 주제로 얼마나 독특한 영화를 만들어내고, 그 속에 생동감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
코맥 매카시의 2005년 원작을 바탕으로 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의 영화 중 지나치게 무겁고 조용하지만, 가장 잔혹하고 무서운 영화다. 자신의 영화에 영감을 준 동료,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아 집대성한 영화다.
그들의 영화가 장르를 비웃으며 지나치게 가볍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그들이 언제든 소름끼치는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2004년 <레이디 킬러> 이후 꽤 오랜만에 내놓은 이 영화는 <파고> 이후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전작들 대부분이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하거나, 감상적인 화면으로 시작했던 것과 달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오프닝은 코엔 영화가 맞나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또한 그의 영화 속에 악당들은 많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어수룩했던 것과 달리 주인공 하비에르 바르뎀은 진정한 악역을 맡아 잔혹한 장면 속에서 섬뜩할 정도로 빛난다.
<밀러스 크로싱> 다음으로 잔혹한 살인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주인공의 비명을 생략한 잔혹한 장면 때문에, 피튀기는 장면의 서정성(?)이 더욱 부각된다. 이 영화에는 ‘비명’도 없고, 대사는 최소한으로 생략한대도 음악도 거의 없다. 거의 모든 것을 생략한 간결한 흐름 속에 부각되는 것은 이야기와 그 이야기 속을 유영하는 인물들이다.
늘 미국적 색채를 강하게 지닌 코엔 형제가 첫 번째 서부극을 통해 전달하는 서부의 쇠락한 기운은 또 다른 주인공이 되어, 세 명의 주인공의 일상에 문신처럼 가로새겨졌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낙관적’ 시선을 잃지 않던 코엔 형제가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본다는 관점에서 그의 다른 작품들과 이질적인 냄새를 풍긴다. 동시에 코엔 형제는 원숙해졌다. 이 영화는 적은 말을 통해 더욱 많은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을 터득한 학자 같은 냄새를 풍긴다. 코맥 맥카시의 영화 같은 원작을 더욱 영화적인 감성으로 풀어낸 코엔 형제의 재능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
주로 제작을 맡았던 에단 코엔이 나란히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앞선 영화 <레이디 킬러>는 주류 스타인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코미디였다. 이 영화는 1955년 동명의 영국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는데, 독특한 장르 영화를 구축해 온 코엔 형제의 영화와는 조금 다른 노선을 걷는다.
이 영화는 원작의 수순과 형식을 최대한 차용하면서, 코엔 형제만의 독특한 창조성은 다소 빛을 잃은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중의 한 명인 톰 행크스의 기용은 영화 자체에 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코엔 형제의 색채를 지우니, 영화의 오락성은 그들의 전작들에 비해 훨씬 관객들에게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잔혹하지도 않고, 이야기의 순서는 복잡하지 않았다. 어떤 점에서 <레이디 킬러>는 작가주의 노선과 대중성의 노선 사이에서 살짝 대중적인 노선으로 치중한 영화였다. 또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보인 냉소적인 시선을 이 영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
다시 <더 브레이브>로 돌아가서 코엔 형제 영화 중 가장 대중적 성공을 거둔 이 영화는 코엔 형제의 대중을 향한 시선과 영화적 완성도가 탄탄하게 유기적으로 엮인 작품이다. 긴 작품 활동 중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발전해 나가는 것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형제라고 하더라도 두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고 하나로 맞춰나가는 과정 역시 지난하리라 예상된다.
그 모든 과정을 겪고 코엔 형제는 유사하지만 늘 또 새로운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선댄스가 선택했고, 세계 영화계가 사랑한 코엔 형제의 작품이 아카데미의 선택을 받게 될 지는 곧 밝혀질 예정이다. 영화의 수상여부와 상관없이 코엔 형제의 작품을 기다리는 마음은 관객 입장에서는 수상을 앞둔 영화인의 마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특별한 이견이 없다면, 늘 기대이상의 결과를 낳아주는 코엔 형제는 늘 관객에게 선물을 주고, 관객들은 늘 그 선물에 대해 늘 기대와 만족으로 보답했다. 코엔 형제의 나라는 여전히 건재하고 번창해나가고 있다.
|
1개의 댓글
필자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앙ㅋ
2011.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