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두 번째 취미생활②]당신의 베란다를 채소밭으로 꾸미는 비법! -『베란다 채소밭』박희란
부산에 사는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가, 취미로 시작한 베란다 농사 덕분에 ‘베란다 농부’가 됐습니다. 농사를 직업으로 한 부모 밑에서 농사란, 가장 고달픈 노역으로 인식하고 자랐던 그녀였습니다.
201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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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묻고 싶어요. 당신은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왜 이런 질문을 하냐고요? 하나에 관심을 두면 세계가 바뀝니다. 우주가 변합니다. 취미활동은 때론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겐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그렇다고 심각하게 취미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당신 각자의 취미, 어쨌든 좋습니다.
이건 어떨까요. 농사. 저 널따란 논밭에 작물을 심고 가꾸는 일. 그게 무슨 취미야, 하고 반문하실지 모르겠네요. 자그만 텃밭을 가꾸는 일을 떠올리는 분도 있겠죠. 집안에서 행하는 농사라면 어떠세요? ‘베란다 농사’입니다. 취미로 베란다 채소밭을 가꾸면서 놀라운 변화를 체험한 사람이 있습니다. 박희란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회색빛 공간이었던 베란다가 초록별로 바뀌었듯, 그녀에게도 숱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취미가 바꾼 세계. 취미로 인해 변한 삶. 오늘 저녁은 뭘 먹지? 가 아니라, 오늘 수확한 채소로 무엇을 해볼까를 고민하는 주부가 됐습니다. 작은 씨앗이 채소의 모습으로 자라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 자연의 신비를 직접 눈과 몸으로 확인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덕분에 매일 씨를 뿌리는 재미를 알았고, 물과 햇빛, 바람에 덧붙여 농부의 정성이 만드는 채소가 만든 초록숲이 집안에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아이와 함께 집안에서 자연을 가꾸고 환경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채소를 키워먹는 문제에서 올바르게 채소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방법, 유통 등을 고민하는 채소소믈리에도 됐습니다. 뭣보다, 이런 경험과 노하우를 묶은 『베란다 채소밭』을 펴낸 저자가 됐습니다. 느닷없이 배추가 금값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이상기후 작렬로 농작물 수급에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시대.
그녀는 자급자족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덤까지 얻을 수 있는 베란다 농사를 당신의 취미생활로 권합니다. 집안에 초록빛 자연을 가꾸고, 아이의 자연놀이터가 됨은 물론, 안전하고 맛있는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베란다 채소밭. 특히, 농사에 대한 당신의 편견을 바꿔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흙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농사. 농사는 그래서 창조적이며 전문적인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자연이 주는 기적 같은 선물.
베란다 농사꾼이 되어보라고 권하는의 저자 박희란 씨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녀는 일단 질러 보라고 합니다. “‘안 되는 게 어디 있어요. 일단 심어보세요!’”(p.7) 맞아요, 인생 뭐 있어. 대한민국에 안 되는 게 어딨어. 도시에서도, 집안에서도 자급자족의 기쁨을 만끽하고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베란다 농부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미친 짓, 베란다 채소밭.
베란다에서 채소가 자라요~
‘베란다 채소밭’. 이름만 들어도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고 참 좋은 호명 같아요. 직접 만든 건가요?
“네. 블로그(바키의 베란다 채소밭, http://blog.naver.com/vakivaki)를 시작하면서 대문 이름으로 만든 거랍니다. 블로그는 닉네임을 덧붙여 ‘바키의 베란다 채소밭’ 이라는 제목이에요. 특별히 고민을 한 건 아니었어요. 베란다에서 채소를 키우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만든 블로그였기 때문에 가장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이름이 아니었나 싶어요.”
대파를 흙에 꽂아 먹는 단순한 일에서 채소밭이 시작됐다고 했는데, 어떤 계기로 베란다에 채소밭을 꾸릴 생각을 했어요?
“대파를 흙에 꽂는 건, 어릴 적 엄마가 하시는 걸 본 기억이 있어요. 머리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실천은 하지 못하고 있었죠. 결혼 전에는 사회생활로 바빴고 간편한 것만 즐기다보니 직접 키워먹는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결혼 후에도 무공해 채소와 유기농 재배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있진 않았어요.
그러다 아이가 태어나고 밥을 먹을 시기가 되면서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어요. 아이 반찬으로 쓸 채소는 직접 길러보자 마음먹게 된 거죠. 처음 씨앗을 뿌려 키운 채소는 청경채였어요. 그때가 지금과 같은 가을날이었어요. 가을에 시작된 베란다 농사가 겨울과 봄을 지나고, 여러 채소를 심어 기르다보니 더욱 풍성해졌어요. 밖은 영하의 한파가 몰아쳐도 베란다 안은 봄처럼 푸르렀죠.”
“베란다에 채소를 심는다는 것, 농사를 짓는다는 것, 처음에는 왠지 어렵고 거창하게만 느껴질지 몰라요. 그런데,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 시작이 어려울 뿐 두 번 세 번은 아무것도 아니랍니다. 일단, 하나의 채소라도 심어보는 것이 베란다 농사의 시작이 되어 줄 거예요.”(p.35)
지금 베란다 채소밭에서 몇 종의 채소를 가꾸고 계세요? 한 해 심고 가꾸는 채소는 대략 몇 종이나 정도나 될까요?
“현재 가꾸는 채소는 30~40여 종이에요. 소량 다품종으로 길러 다양한 채소를 먹자는 쪽이어서 채소 씨앗이란 씨앗은 다 심어보는 편이에요. 쌈채소도 가장 흔한 상추 뿐 아니라 치커리, 근대, 청경채, 쑥갓, 깻잎 등 다양한 종류로 심어요. 가을과 겨울에는 김장채소 위주로, 봄과 여름에는 모종으로 나오는 열매채소를 집중적으로 기르죠. 물론 쌈채소와 허브류는 연중 재배가 가능해요.
한해 가꿀 수 있는 채소를 꼽자면 책에 소개된 채소의 가짓수만 해도 80여 종이나 돼요. 우리가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해 먹는 채소의 종류보다 훨씬 더 다양한 채소를 길러 먹을 수 있는 셈이죠.”
베란다에서 채소를 가꾼다는 것
베란다에서 채소밭을 가꾸는 기쁨이라면?
“베란다에서 채소를 기른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채소값은 걱정 없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물론 경제적으로 절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 다른 곳에서 더 큰 의미를 찾고 있어요. 3살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와 함께 채소밭을 꾸려 나가다보니 베란다의 채소밭은 아이에게 훌륭한 자연학습의 장이 됐어요. 채소와 친해지고 햇살아래서 엄마와 함께 자연을 공부하는 체험놀이터가 되기도 하고요.
저 역시 집안에서 가장 햇살이 좋은 공간에서 초록의 식물들과 숨 쉬며 소꿉놀이 같은 농사일을 하는 동안 마음의 휴식을 취하며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는 느낌을 받아요. 무공해 채소를 먹을 수 있다는 장점보다도 풍요로운 자연을 내 집에 품고 있다는 사실이 훨씬 큰 매력이에요.”
“베란다에 만드는 채소밭은 그대로 생활의 일부가 돼요. 몇 발자국 곁에 있는 채소밭은 문만 열면 들여다 볼 수 있고, 필요한 도구나 재료를 근처에서 쉽게 가져다 쓰기도 용이해서 시간이나 노동이 크게 소모되지 않아요. 그래서 베란다 농사는 고된 농삿일이 아니라, 화초를 가꾸듯 초록의 공간을 꾸며가는 가드닝처럼 느껴지죠.”(p.15)
“채소밭을 가꾸면서 얻은 가장 큰 보물은 바로 아이와의 놀이터가 하나 더 생겼다는 것이?요. 한참 말을 배우고 호기심에 부푼 2~3살 아이에게 채소밭은 안성맞춤의 학습공간입니다. 흙에 씨앗을 심고 물을 주며 무당벌레와 지렁이를 관찰하고 수확의 기쁨도 함께 누리죠. 직접적으로 자연학습을 한다는 의미 외에도 엄마와 자연을 통해 교감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정서적으로 얻는 안정감도 클 춰 같아요. 다행히 엄마의 채소밭을 망가뜨리지 않고 잘 도와주는 아이에게도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답니다.”
“도시에 살면서 도시의 모든 것을 배제한 채 아이를 키우기란 어려운 일, 아이를 위한 작은 초록별을 만들어 아이의 감성과 지능 발달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으로 활용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장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p.16)
베란다 채소밭 때문에 소외감을 느낀 남편이 주정을 했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어쨌든 가족들이 가장 큰 응원군이자 공로자라고 하셨습니다. 베란다 채소밭을 가꾸면서 가족마다 역할이 있을 것 같은데, 소개 해주세요.
“제가 베란다채소밭의 총책임자라면 아이는 수석정원사의 역할을 했어요. 때때로 물을 주고 씨앗도 심고 청소를 하기도 했죠. 남편은 제가 며칠 집을 비워야할 때 창문을 열고 닫으며 물을 주는 등 꼭 필요한 관리를 해주는 일일 도우미였다고 할까요. 그리고 두 남자 모두 베란다에서 수확한 채소를 갖고, 없는 솜씨 발휘해 요리한 밥상을 맛있게 먹어주는 ‘베란다 채소밭 식당’의 유일한 손님이랄 수 있죠.”
“단연 꼬맹이의 활약이 두드러져요. 엄마의 채소밭에서 장난을 치면서 망가뜨릴 법도 한데 도리어 물을 주고 심부름을 하는 꼬마정원사 역할을 톡톡하게 해냈으니까요.”(p.6)
베란다, 원래 다양한 용도로 쓰이잖아요. 채소밭을 가꾸기 전에는 주로 어떤 용도로 베란다를 활용하셨어요?
“책에도 소개돼 있지만, 채소를 키우기 전까지는 회색의 공간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어요. 바다 근처라서 경치를 보거나 간혹 빨래를 말리는 공간으로 사용했어요. 한 쪽에는 커다란 선인장을 하나 키우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물을 제때 주지 못해서 시들시들 말라갔죠. 사실 저는 식물을 특별히 잘 키우는 사람도 부지런하거나 꼼꼼한 살림꾼도 아니었답니다.
하지만 채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변하기 시작했어요. 작은 씨앗이 내가 알고 있는 채소의 모습으로 점점 자라나는 것이 신기했어요. 매일매일 씨를 뿌렸고 물과 햇볕, 바람만으로도 채소들은 쑥쑥 자라나 회색의 베란다를 초록숲으로 바꾸어 놓았죠.”
“채소를 키우기 가장 좋은 베란다는 어떤 곳일까요? 전면이 샷시로 된 구조에 바깥으로 화분을 내어 놓을 선반이 있고 남향의 집이라면 좋아요. 바람도 잘 통하고 기후도 무난한 곳이라면 금상첨화이겠고요. 천정이 유리로 되어 있는 베란다라면 더할 나위 없겠네요.”(p.14)
베란다에서 채소 키우기, 5가지를 강조했습니다. 물주기, 거름주기, 병충해관리, 지주대세우기, 인공수분이 그것인데요, 가장 어려운 것과 다섯 가지 중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아무래도 물주기가 모든 ‘채소 키우기’의 기본이 아닌가 싶어요. 거름, 병충해, 지주대, 인공수분은 채소마다 해당되지 않는 것들도 있거든요. 블로그를 통해서도 가장 많이 물어 오시는 것 중 하나가 ‘물은 얼마나 며칠에 한 번 줘야 해요?’였어요.
채소마다 물을 많이 먹고 적게 먹는 게 있지만, 며칠에 한 번이라고 정의하긴 어려워요. 각자의 환경에 맞추어 물을 주는 것이 정확하죠. 다만, 한 가지 원칙은 있어요. 바로, ‘겉흙이 말랐다 싶으면 흠뻑 준다’에요. 어떤 베란다에는 햇볕이 많이 들고 바람도 많이 들어와 흙이 쉽게 건조해 질 수 있는 반면, 또 어떤 베란다엔 햇볕과 바람이 적어 흙이 금방 마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죠.”
물주기 외에 다른 요소들에 대해서도 알려주신다면.
“물주기만 잘해도 특별한 거름 없이 대부분의 잎채소는 어느 정도 크기로 키워낼 수 있지만, 열매를 맺슴 채소나 뿌리가 달리는 채소의 경우, 거름이 필요해요. 벌레가 생기면 채소가 잘 자라지 못할 수 훀어서 수시로 살펴서 잡아주는 노력이 필요해요. 요즘은 친환경 살충제 등이 잘 나와 있어 쉽게 퇴치할 수 있어요.
지주대는 열매채소의 경우 필수적인데, 쓰러지지 않게 나무를 꽂아 잘 세우고 잡아 주면 되는 것이라 크게 까다롭지 않아요. 베란다에서 채소를 키우면서 가장 고난이도의 관리항?은 인공수분이 아닌가 싶어요. 바깥에선 나비나 벌 등에 의해 수분 공급이 이뤄질 수 있지만, 실내에서는 그런 매개체가 없기 때문이죠. 인공적으로 붓이나 면봉 등을 이용해 꽃가루를 묻혀 수분을 유도해야하는데 처음 인공수분을 시도하는 초보자라면 어려울 수 있어요.
다만 인공수분을 해줘야 하는 채소는 딸기, 수박, 가지 등 극히 일부분이에요. 방울토마토, 강낭콩, 완두콩, 고추, 파프리카처럼 바람이나 물에 의해 자연적으로 수분이 이루어지는 열매채소도 많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답니다.”
뿌려 본 씨앗만 100가지를 훌쩍 넘는다고 하셨는데, 베란다에서 키우기 좋은 씨앗들을 고르기 위해 검토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어떤 물건을 사면, 패키지의 설명서를 훑어보듯 씨앗도 마찬가지에요. 제품 설명을 잘 살펴보면 실패를 줄일 수 있어요. 씨앗을 사면, 봉투 뒷면에 재배방법이나 품종의 특징이 설명돼 있는데, 텃밭을 기준으로 한 설명이라서 베란다에 100% 완벽하게 적용되진 않지만 참고할 만해요.
텃밭에서 키우기 쉬운 채소가 베란다에서도 키우기 쉽답니다. 설명서에 까다로운 문구가 없다면 쉬운 씨앗으로 보면 돼요. 베란다에서는 대부분 연중 재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파종 시기는 큰 의미가 없어요. 다만 서늘하게 키우라고 한다면 여름은 피해서 심는 게 좋답니다.”
일단 시도를 한다면, ‘내 베란다 채소밭에 무엇을 키울지’가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 아닐까 싶은데요. 책에선 쉽고 만만한 베란다 채소 10가지도 소개해주셨는데, 키우기 쉬울 뿐 아니라, 키우는 재미도 있었던 채소들이 있었다면 어떤 것들이 있나요.
“많은 분들이 상추가 가장 키우기 쉽지 않을까, 생각하세요. 우리나라 채소 중 소비량이 1위인 채소이기도 한 상추지만, 사실 씨앗부터 기르기가 만만치 않은 채소에요. 잎이 연한 채소들은 실내에서 재배할 때, 어린 싹이 매우 여려서 흙에 파묻히거나 잘 쓰러져 관리가 어려운 편이에요. 근대, 쑥갓, 청경채처럼 잎이 제법 굵고 힘이 있는 채소들은 무리 없이 키울 수가 있죠.
제가 베란다 재배에서 가장 추천하는 채소는 바로 적근대랍니다. 붉은색의 근대인데, 키우기도 쉽고 잘 클뿐만 아니라 모양과 빛깔이 무척 예뻐요. 근대는 국을 끓이는 재료로만 인식돼 있지만 최근에는 적근대가 쌈채소로도 많이 애용되고 있어요. 강한 맛이 없고 아삭하며 색도 예뻐서 샐러드, 쌈채소, 된장국 등 어떤 요리에도 활용이 가능해요. 적근대부터 베란다채소밭을 시작한다면 누구나 쉽게 채소가드닝에 흠뻑 빠질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해요.”
아무리 작고 소소한 베란다 채소밭이지만, 병충해는 고민이 될 것 같아요. 초기에 관리만 잘 해주면 된다고 하셨는데, 병충해 때문에 고생하거나 고민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아니면 병충해와 관련,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베란다 채소밭의 장점 중 하나는 병충해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이랍니다. 물론 진딧물이나 기타 몇몇 해충들이 생기긴 하지만, 바깥의 텃밭에 출몰하는 해충과는 비교가 안 된답니다.
처음에는 상추나 청경채 등에 생긴 진딧물을 손으로 눌러 잡았어요. 처음엔 징그럽다고 느꼈던 것도 점점 무뎌져서 진딧물 잡는 걸 즐기는 수준까지 이르렀어요. 그러다? 진딧물은 물엿을 탄 물이나 우유를 분무해 쉽게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친환경 살충제 등도 알게 되면서 해충은 더 이상 베란다 채소밭의 고민거리가 되지 않았어요.
병충해는 채소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 채소가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긴 하지만 하루하루 들여다보고 살피면서 덜 생기도록 방제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답니다.”
“해충만 없어도 베란다농사는 2배 더 풍성하고 할 일은 절반으로 줄어들 거예요.… 그런데 베란다의 해충들은 초기에 관리만 잘 해주면 걱정 없답니다.” (p.46)
베란다 농사, 삶과 사유를 넓히다
채소와 관련된 다양한 영역으로 관심의 폭이 넓어졌다고 하셨어요. 어떤 영역에까지 관심이 넓어지고 옮겨갔나요.
“채소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채소농사에 대한 것 외에도 채소 자체의 영양과 맛, 유통 등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채소소믈리에’라는 일본에서 도입된 자격코스를 알게 됐고 지난 겨울, 한국채소소믈리에협회의 강좌를 이수하고 시험을 패스했어요. 채소소믈리에 자격을 얻게 된 거죠. 채소소믈리에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 각지의 좋은 농산물들을 체험하고 소개하는 활동도 블로그를 통해 하게 됐어요. 그 후 채소를 키워먹는 문제에서 올바르게 채소를 선택하고 소비하는 방법까지 고민하게 되었죠.”
한국채소소믈리에 1기라고 하시던데, 채소소믈리에, 어떤 건지 좀 더 설명 부탁드려요.
“채소소믈리에는 채소의 맛과 영양을 알리고 올바른 섭취를 위한 레시피나 보관, 유통에 관한 조언을 하는, 이른바 채소전문가 집단이에요. 일본에는 전문적인 직업으로 정착돼 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도입단계에요.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유기농채소에 대한 니즈가 커지면서 점점 직업적으로도 결합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을 것이라 생각해요.”
시골에서 자라 웬만한 채소들이 자라는 걸 어깨 너머로 보아왔다고 하셨습니다. 어릴 때 보던 채소와 직접 베란다에서 키우는 채소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요즘은 제철 채소의 의미가 많이 퇴색됐죠. 비닐하우스 등에서 시설재배를 하기 때문에 사시사철 농가에서 모든 채소를 재배해 출하하고 있어요. 요즘 마트나 시장에서 사 먹는 채소는 제가 어릴 적 시골 텃밭에서 수확해 먹던 채소와는 조금 다른 거예요. 시골에서는 대량으로 재배하는 작물이 아닌 이상 가족의 소소한 먹을거리는 작은 텃밭에서 무공해로 길러내곤 했는데, 시장이나 마트의 농작물들 대부분은 대량생산을 위해 여러 화학제재들이 사용될 수밖에 없어요. 뿐만 아니라 바깥에서 추위와 더위를 견뎌내고 자란 채소들은 자연의 맛을 간직해 힘이 있고 향이 강한 반면, 시설재배된 것들은 그게 약하죠.
말씀드리고 싶은 건, 시골에서 어릴 적 먹던 것과 요즘 시장에서 사먹는 것과 베란다에서 키워 먹는 것은 모두 조금씩 달라요. 아마도 베란다에서 직접 키우는 채소는 시골텃밭과 하우스재배의 중간정도라고 봐야 할 거예요. 무공해로 직접 키운다는 건, 어릴 적의 시골텃밭과 닮았지만 실내재배를 하기 때문에 시골에서보단 연하게 자라거든요.
채소값이 비싼 요즘, 더욱 풍요롭던 그 시절의 채소밭이 제게 위대한 유산처럼 느껴져요. 직접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하는, 순수하고 소박한 즐거움이 베란다 채소밭과 꼭 닮아 있거든요.”
작지만 직접 농사를 짓는 ‘베란다 농부’가 되니, 평소 농사에 대해 가졌던 생각도 달라졌나요? 달라졌다면 어떤 점이?
“부모님에게 농사란 그야말로 평생의 직업이셨어요. 그것밖에 몰랐고 그것만이 전부셨죠. 제 기억 속에 농사란 검게 그을린 피부와 땀에 찌든 옷으로 기억되는 가장 고달픈 노역이었답니다. 농사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제가 훗날 작게나마, 이렇게라도 농사를 지으리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럼에도 제 ‘베란다 농사’에 가장 큰 힘이 된 건, 그렇게 30년 농사를 지어오신 엄마였어요. 어떤 전문서적이나 전문가의 조언보다 베란다 농사에 빛을 발한 건 엄마의 한마디였고요. 엄마쟀 한마디 한마디가 베란다 채소밭에 채소들이 자라게 했어요. 그저 오랜 세월 우직하게 땅을 일구셨다고만 생각했던 그 모습 속에 실은 대단한 내공이 숨어 있었던 거죠. 아직도 베란다 농사에서 엄마보다 더 나은 스승은 없다고 생각해요. ‘베란다 채소밭은 된다’라고 말해준 것도 엄마였고, 계속 다양한 채소를 길러보게 된 이면에도 엄마라는 숨은 공로자가 있었죠.
엄마에게 조언을 얻으며 베란다 농사를 일구면서, 농사에 대한 생각이 확 바뀌었어요. 즉,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제 농사는 굉장히 전문적이고 창조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베란다에서 짓는 농사는, 사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신 분들에게 명함도 내밀지 못할 소소한 소꿉놀이긴 하지만 흙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건 같아요. 화초를 가꾸듯 채소를 키우며, 땀방울 제대로 흘리지 않고 일구는 조그만 농사지만 항상 자연이 주는 기적 같은 선물에 감사하며 살아요.”
베란다에서 채소를 키울 때 주의할 점
‘안되는 게 어디 있어’ 정신으로 무장한 채소밭이라고 했어요. 그런데도 안 되는 것도 있었을 것 같은데, 몇 번이나 해봤는데도 안 된 채소가 있었나요?
“안 되는 채소는 주로 열매채소들이었어요. 아무래도 비좁은 공간에서 자라기가 어려운 채소들이 잘 안 됐죠. 옥수수, 참외, 양배추, 양파, 마늘 등은 2~3번 심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어요. 하지만 실패를 거울삼아서 다시 심고 또 심고를 반복하고 있답니다. 안 되는 원인을 하나씩 없애다보면 베란다에서도 재배가 가능할 날이 오겠죠? ‘안되는 게 어딨어’정신으로 무장하면 불가능은 가능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믿어요.”
책에는 140개 채소가 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채소, 가장 키우기 힘든 채소는 뭔가요.
“가장 애착이 가는 채소는 허브중 하나인 바질이에요. 피자나 스파게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시겠지만 생바질을 시중에서 구입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적은 양이라도 맛을 크게 업그레이드 시키는 바질은, 키우기에도 아주 간편해요. 조금씩 잎을 수확해 먹어도 금세 다시 자라고 물만 주면 잘 자라거든요.
책에 소개된 것 중 가장 키우기 힘든 채소는 수박을 꼽을 수 있어요. 아니, 어렵다기보다는 베란다에서는 한계가 있어요. 수박은 일조량이 넉넉해야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베란다의 제한된 일조량으로는 열매를 잘 맺지 못했어요. 그래서 중간에 덩굴하나를 바깥으로 옮겨서 키워냈어요. 멜론 정도 크기였지만, 직접 키워낸 수박은 정말 꿀맛이었어요. 한 번 꼭 해보세요.”
베란다 채소밭을 가꾸는데 있어 가장 주의할 점이 있다면 뭐가 있어요?
“흔히 햇볕만 잘 들게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베란다의 창문을 꽁꽁 닫아두는 경우가 있어요. 사람도 밀폐된 공간에서는 숨을 잘 쉬지 못하고 갑갑한 것처럼 채소도 마찬가지에요. 게다가 봄이나 여름처럼 베란다의 온도가 올라가는 계절엔 몇 시간만 문을 꽁꽁 닫아도 채소에겐 치명타가 될 수 있어요.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밤이나 낮이나 베란다의 창문은 조금이라도 열어두어야만 해요. 만약 외출을 해야 해서 창문을 잠가야한다면 거실과 베란다 사이의 문이라도 열어서 공기가 대류하게 해줘야 채소가 잘 자란답니다.”
“봄가을은 기온이 적당해 베란다에서 채소를 키우기 가장 적합한 시즌이에요.… 특히 여름이 끝나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은 적당한 온기와 습기를 머금은 기후라서 씨앗을 파종하기 좋은 조건이 된답니다.… 봄에는 열매채소를, 가을에는 김장채소를 주로 파종해보세요.”(p.22)
베란다 채소밭을 좀 더 넓은 텃밭 등으로 넓히고 싶은 욕심도 있나요?
“그런 욕심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요. 베란다 채소밭의 가장 큰 장점은 생활반경에 있어서 관리가 쉽다는 거예요. 만약 주말농장이나 실외 텃밭을 따로 가꾸게 된다면 굉장한 수고와 시간이 들어가겠죠.
저는 지금 이대로 채소가드닝의 여유롭고 소소한 느낌이 좋아요. 거대한 농사가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 그리 부지런한 사람이 아닌 저로써는 지금의 베란다 텃밭이 가장 적합한 공간인 것 같아요.
농사와 책, 창작의 결과물
첫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을 낸 소회는 어떠세요?
“처음에는 블로그에 올렸던 내용을 담아내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집필 작업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에서 열까지 백지상태에서 빼곡한 200여 페이지의 지면을 채워갈 생각을 하니 앞이 깜깜했어요. 소설이나 수필처럼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 해야 하는 책은 아니지만 어렴풋이 뼈를 깎는 창작의 고통이란 것도 경험할 수 있었죠.
채소재배 일기와 사진, 듣고 묻고 수집한 여러 가지 노하우 등 1년간의 기록이 빼곡하게 담아낸 책이라서 다른 사람의 책을 볼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에요. 나의 1년과 엄마의 30년, 또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의 시간과 경험이 모인 소중한 세월의 집대성이란 의미도 나름대로 부여하고 싶어요.”
“다음 책이 곧 출간을 앞두고 있어요. 아이와 함께 채소를 재배했던 짧은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이랍니다. 아이와 실제로 키웠던 채소, 주고받은 이야기, 함께 했던 체험들이 그대로 녹아 있어서 정말 개인적으로도 기대하는 책이에요.
이후로도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하면서 채소 재배를 기본으로 채소에 관련된 책을 꾸준히 집필하고자 계획을 하고 있어요. 이번 책도 쉬운 채소 키우기의 방법을 담아낸 것이지만, 채소 재배가 아주 흔한 것이 되고, 누구나 요리하듯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가이드가 되는 책을 집필하고 싶어요.”
블로그 이웃들에 대한 고마움도 표했는데, 기억나는 혹은 인상적인 블로그 이웃이 있다면요?
“블로그 초기부터 자주 방문을 해주셨던 분인데, 몸이 편찮으셔서 우울증까지 앓다가 채소 키우기를 통해 활력을 찾고 지금은 텃밭강사를 하고 계신 분이 있어요. 그 분의 이야기를 들을 때만다 채소 키우기의 매력을 알려 새로운 삶의 디딤돌을 놓아 드린 것 같아 참 뿌듯해요.”
“제게 많은 채소를 기르도록 하는 원동력이 된 것은 바로 여러 블로그이웃님들이었답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채소가 자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다른 분들도 집에서 채소를 키워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p.5)
베란다에서 채소밭을 키우고 싶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다면 부탁드려요.
“항상 드리는 말씀인데, 한 가지만 일단 키워보시면 누구나 저처럼 여러 가지 채소가 가득한 채소밭을 일굴 수 있어요. 물론 첫 채소를 어떤 걸로 택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답니다. 처음엔 쉬운 채소를 시작해 자신감을 높이고 점점 다양한 채소들에 도전해 볼 것을 권하고 싶어요.
대한민국 방방곡곡 실내에서 텃밭을 가꾸게 됐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 꾸준히 블로그나 매체를 통해 1가구 1텃밭 캠페인을 벌여 이 감동과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베란다에 채소를 심는다는 것, 농사를 짓는다는 것, 처음에는 왠지 어렵고 거창하게만 느껴질지 몰라요. 그런데, 모든 일이 그렇듯 처음 시작이 어려울 뿐 두 번 세 번은 아무 것도 아니랍니다. 일단, 하나의 채소라도 심어 보는 것이 베란다 농사의 시작이 되어 줄 거예요.”(p.35)
* 해당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3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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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에브라임
2010.11.03
너무 알차기도하거니와
정말 따라해보고 싶은 욕심을 불러 일으키는 책이네요.
좋아요!!!
가봉이
2010.11.01
0820jhn
2010.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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