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 언론이 선정한 ‘No. 5 지식인’을 굳이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 1949- )의 이력으로 앞세울 필요가 있었을까? 히친스 책의 한국어판 저자 소개글을 종합하면, 그는 영국 출신인 것 같다. 옥스퍼드 대학을 나와 주간지 <뉴 스테이츠먼> 등에서 기자로 일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문학평론가, 저널리스트, 저술가, 정치학자가 그의 직함이다.
‘신과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수식하는 표현 네 가지는 내게 부적절하다. 믿음이 없는 나로선 히친스의 통렬한 종교비판이 불편하기는커녕 속 시원할 뿐이다. 나는 히친스가 말하는 ‘우리’의 일원이다. “블레즈 파스칼은 ‘나는 원래 믿음을 가질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하는 사람을 위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나는 개신교회의 예배와 천주교의 미사, 그리고 불교의 법회에 참석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결혼 미사는 한두 번 참관했다. 군 복무 중 ‘종교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군 복무 중의 ‘종교 활동’은 히친스처럼 다분히 정략적인 행동이었다. “내가 그리스 정교의 신자가 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어떤 종교의 신자임을 표방할 때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즉 그리스 출신인 장인 장모님께 잘 보이고 싶다는 것.”
내무반의 우락부락하게 생긴 고참 병사는 의외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나는 그에게 잘 보이면 한 대라도 덜 얻어맞고 욕지거리를 덜 얻어먹을까 싶어, 단 몇 십 분이라도 일요일의 ‘평안’을 얻고 싶어 겉만 멀쩡한, 목사가 없는 교회에 나갔다. 하지만 나의 교회 출입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군대의 속성상 겉치레 행사는 꾸준히 이어지지 않거니와 ‘짬밥’이 늘면서 내무반이 더 ‘편안’해졌기 때문이다.
“종교는 언제나 신자가 아닌 사람, 이단자,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의 삶에 끼어들려고 한다. 황홀하기 짝이 없는 내세를 이야기하면서도 이승에서 권력을 잡고 싶어 한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종교는 결국 속속들이 인간이 만드는 것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종교는 자신의 다양한 가르침을 스스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종교와의 공존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전에 살던 동네의 어떤 아저씨(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자라는 뜻)는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며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데 그치지 않고 목욕탕에서 때를 밀고 있는 내게 다가와 상기한 구호를 읊조렸다. 이 정도면 똥오줌을 못 가린다고 해야 하지 않는가. 적어도 2인 1조로 다니며 남의 집 초인종을 마구 눌러대는 대체로 여성분들의 표정은 득의에 차 있다.
“종교는 신이 사람들 하나하나를 모두 보살피고 있다며, 우주를 창조할 때에도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여봐란 듯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거만한 표정을 짓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겸손한 사람이라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느라 바쁘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이렇게 써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은 물론이고 종교의 ‘주적’이다. 마르크스가 자본과 종교의 주적 취급을 받는 것은 그것들의 본질을 간파하여 발설한 ‘죄’다. 마르크스는 ‘종교는 아편’이라 했다. 이에 대한 비난, 특히 맥락을 사상(捨象)한 채 일방적으로 가해진 아래와 같은 비난은 유치하고 졸렬하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은 레닌이나 마르크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세계관은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듯이 레닌이나 마르크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노발리스에게서 나왔다. “당신들이 말하는 종교는 아편으로 만든 마취약과 같은 작용만 할 뿐이다. 매혹시키고, 달래주고, 허약함에서 오는 고통을 잠재워줄 뿐이다”라고 노발리스는 1789년에 기록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한 것으로 생각하는 다른 유명한 말들도 알고 보면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이미 한 말들이다. ‘노동자는 쇠사슬밖에 잃을 게 없다’라는 말은 원래 욕조에서 암살된 것으로 유명한 장 폴 마라가 한 말이다. ‘온 세계의 프롤레타리아들이여, 단결하라!’는 카를 샤퍼,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블랑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소비한다’는 루이 블랑이 먼저 한 말이다. 이런 문장들은 그 밖에도 많다.”(『상식의 오류 사전 747』, 532쪽)
히친스가 인용한 마르크스의 ‘종교는 아편’ 관련 발언은 노발리스의 원안과 다르다. “종교적인 고뇌는 진짜 고뇌의 표현이자 진짜 고뇌에 대한 ‘항의’이기도 하다. 종교는 억압받는 창조물의 한숨, 무정한 세상의 정이다. 종교가 생기 없는 상황에서 생기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사람들에게 환상 속의 행복을 가져다주는 종교를 폐지하는 것은 진정한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현실에 대한 환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곧 환상이 필요한 현실을 포기하라는 뜻이다. 따라서 종교비판은 아직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지만 고뇌의 계곡에 대한 비판이며, 그 후광이 바로 종교이다. 비판은 사슬 속에서 진짜가 아닌 상상 속의 꽃들을 솎아냈다. 인간이 환상도 위안도 얻지 못하고 사슬에 묶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슬을 떨쳐버리고 진짜 꽃을 딸 수 있게 하려고.”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좋은 말로 하는 종교비판이 사실은 가장 급진적이고 가장 파괴적인 비판이기도 하다”며 부연한다. 그리고 이 책을 관류하는 중심 논지가 이어진다. “종교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종교는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 ‘종교 인간창안 론’은 마르크스 역시 개진한 바 있다. “인간이 종교를 만들지,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서설」,『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 선집 제1권』)
히친스가 제시한 종교를 인간이 만들었다는 ‘물증’ 가운데 ‘교부(敎父)는 있지만 교모(敎母)는 없다’는 일갈이 와 닿는다. “종교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종교가 대개 남성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가장 오래전부터 경전으로 쓰이고 있는 탈무드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매일 조물주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 땅의 영어공용화론이 극(極)보수주의와 상통하는 까닭을 말해준다. “(텍사스 주지사는 성경을 스페인어로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예수님이 영어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셨다면, 나 역시 같은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무지하다고 하는 것은 정말로 옳은 말이다).”
“나는 단 한 권의 책의 소산이다. -토마스 아퀴나스”(99쪽) 책 한 권을 거듭 읽는 사람은 두려운 존재다. 나는 신선이 되고 싶지도 않지만, 신선 길잡이 만회 독(萬回讀) 같은 건 사양하련다. 그러느니 차라리 잡다한 책 만 권을 읽겠다. 토마스 아퀴나스를 낳은 책은 바이블이다. 모든 책은 오탈자와 비문(非文), 그리고 오류가 있다.
바이블도 예외가 아니다. “복음서들이 어떤 면에서 문자 그대로 진실을 담고 있거나, 아니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사기, 그것도 부도덕한 사기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복음서들이 문자 그대로의 진실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만은 확신을 갖고 단언할 수 있다. 복음서들 안에 이미 증거가 들어 있으니까.”
근본주의 신학교 두 곳을 다녔으며 훗날 종교계의 권위 있는 자리에 오른 바튼 어먼(Barton Ehrman)은 젊어서 자신의 근본주의적 사고방식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예수의 널리 알려진 일화 가운데 일부가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대충 정전에 포함되었으며, 가장 널리 알려진 일화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란다. 다음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와 관련된 어먼의 결론이다.
“현존하는 <요한복음> 원고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훌륭한 원고들에는 이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 이야기의 문체는 <요한복음>의 다른 부분(이 이야기 직전과 직후의 상황을 다룬 부분도 포함)과 매우 다르다. 또한 여기에는 복음서에 잘 등장하지 않는 단어와 구절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하다. 처음에는 이 이야기가 복음서에 포함되어있지 않았다는 것.”
<창세기>의 필자는 신이 아니라 무지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단 한 문단으로” 증명된다. “인간이 모든 짐승과 새와 물고기를 ‘지배할 권리’를 얻었다는 점이 바로 그 증거이다. 성경에 예를 들어 공룡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것은, 저자들이 공룡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다. 성경에 유대류가 언급되지 않은 것도 오스트레일리아(중앙아메리카의 뒤를 이어 ‘에덴동산’의 새로운 후보지)가 지도상에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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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빛나는 전통과 전설적인 역사의 기원은 대체로 가까운 과거에 확정되곤 한다. “이 장엄하고 독창적인 교리가 선포된 날짜가 흥미롭다. 순결한 잉태는 1852년에 로마가 선포, 또는 발견했으며, 성모승천 교리는 1951년에 선포되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항상 멍청하지는 않다. 이 영웅적인 구조 노력 역시 조금은 공을 인정받을 만하다. 비록 처음부터 물이 새던 배는 우리가 바라보는 가운데 흔적도 없이 가라앉아버렸지만 말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종교에 반대하는 주장 중에서 결코 물리칠 수 없는 것으로 다음 네 가지를 든다. “종교가 인간과 우주의 기원을 완전히 잘못 설명하고 있다는 것. 이 첫 번째 잘못 때문에 최대한의 노예근성과 최대한의 유아독존을 결합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 종교가 위험스러운 성적 억압의 결과이자 원인이라는 것. 종교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희망사항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
이러한 종교의 한계점은 종교가 만들어진 시기의 시대적 한계에서 온 것이다. “이제 분명히 말해야 한다. 종교는 아무도, 심지어 모든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졌다는 결론을 내렸던 저 훌륭한 데모크리토스조차도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전혀 깨닫지 못하던 원시적인 시대에 생겨났다. 종교는 인류가 겁에 질려 울어대던 유아기에 생겨났으며, 우리가 도저히 도망칠 수 없는 지식욕을(그리고 위안과 확신 등 유아적인 욕구들도) 충족시키기 위해 고안해낸 유치한 방법이다.”
그리고 “종교를 과학 및 이성과 화해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실패해서 조롱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히친스의 단언에 나는 백배 공감한다. 종교와 과학은 별개의 것이다. 종교와 이성 또한 마찬가지다. 84쪽에서 히친스는 세 가지 잠정적인 결론을 내린다.
“첫째, 종교와 교회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이 사실이 너무나 뻔히 드러나 있어서 무시할 수가 없다. 둘째, 윤리와 도덕은 신앙과 그다지 결부되어 있지 않으며, 신앙에서 유래할 수 없다. 셋째, 종교는 자신의 행위와 믿음 덕분에 신에게서 특별한 면죄부를 받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무도덕적일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기도 하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뻑’에 가까운 선민의식과 무자비한 소명의식에 경종을 울린다. “무자비하기 때문에 자기 자녀를 학대하는 정신병자나 짐승 같은 놈들은 처벌받아 마땅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잔인한 행동을 하면서 천국의 허락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미 악에 물들었으므로 훨씬 더 위험하다.”
나는 특정한 이념을 받든 적도 없다. 한때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신봉한 이념에 대해선 여전히 꽤 우호적이긴 하다. 한때 마르크스주의자였던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이렇다.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 이 책을 여기까지 읽고서 (바라건대) 여러분 자신의 믿음도 흔들리고 있다면, 여러분이 지금 무슨 일을 겪고 있을지 내가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기꺼이 말할 수 있다.
나도 가끔은 확신이 있던 과거가 그립다. 마치 내 몸에서 잘려나간 다리를 그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지금이 더 낫다. 덜 급진적이기도 하다. 여러분도 이론가들의 주장을 버리고, 아무런 속박도 받지 않는 여러분 자신의 머리로 스스로 생각하게 된다면, 예전보다 이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227쪽)
히친스는 1989년 2월 14일 그의 친구이기도 한 작가 살만 루시디에게 호메이니‘옹’이 내린 사형 및 종신형 선고가 천부당만부당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첩보소설가 존 르 카레는 그렇다 쳐도 마르크스주의 저술가인 존 버거마저 “루시디가 문제를 자초했다고 단언했다”는 것은 실망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토머스 페인과 함께 높이 평가하는 토머스 제퍼슨은 내게 비호감형이다. 제퍼슨은 인디언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히친스의 반종교론에 공감한다 하여 그의 개인적 취향까지 동조할 이유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 충직한 신앙인이라 하여 나도 굳은 믿음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키신저 재판(The Trial of Henry Kissinger)』(안철흥 옮김, 아침이슬, 2001)은 미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 보좌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에 대한 ‘기소장’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공소장에 나열할 수 있는 키신저가 저지른 식별 가능한 범죄들을 여섯 가지로 간추린다.
1. 인도차이나 민중에 대한 무차별 대량 학살 계획 입안
2. 방글라데시에서 저지른 대량 학살과 암살 공모
3. 미국과 교전 상태에 있지 않은 민주주의 국가 칠레에서 저지른 합법적 대통령에 대한 살해 계획과 은폐
4. 민주주의 국가 키프로스의 국가수반을 살해하는 계획에 개인적으로 관여한 사실
5. 동티모르에서 학살을 선동하고 유도한 행위
6. 워싱턴에 거주하는 언론인을 납치하여 살해하는 계획에 개인적으로 관여한 사실
“키신저의 공범들 가운데 많은 수가 현재 감옥에 갇혀 있거나 재판 계류 중에 있다. 키신저 혼자서만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정말로 역겨운 일이다. 우리가 그처럼 역겨운 상황을 방치한다면, 법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만 강한 거미줄과 같다는 고대 철학자 아나카르시스의 주장을 옹호하는 수치스러운 꼴밖에 안 된다. 이제 유명 무명의 수많은 희생자들의 이름으로 법의 심판을 가할 때가 되었다.”
사실 나는 크리스토퍼 히친스 책의 한국어판 리뷰를 꽤 오랫동안 망설였다. 그는 내가 선호하는 유형의 인물이 아니다. 내가 왜 그를 별로 안 좋아하는지 살피기에 앞서 그의 마더 데레사 비판을 살짝 짚어본다. 『자비를 팔다(The Missionary Position)』(김정환 옮김, 모멘토, 2008)의 원제목이 지닌 이중적 의미는 논란을 불러왔다(앞표지날개 참조).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리뷰로 종교비판은 충분하다. 이를 재론하는 것은 동어반복이며 종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몇 년 전, 본란을 통해 마더 데레사 관련서를 ‘평범하게’ 리뷰한 바 있기에 다른 말을 하는 게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신은 위대하지 않다』에서 알게 된 마더 데레사의 쓸데없이 넓은 오지랖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테레사 수녀는 캘커타에서부터 아일랜드까지 날아와서 가톨릭교회의 강경론자들과 함께 헌법 개정 반대 운동을 벌였다.”(『신은 위대하지 않다』, 34쪽) 아일랜드에선 1996년까지 이혼 금지를 헌법으로 강제한 모양이다. 아무튼 『자비를 팔다』의 개요는 번역자의 말에 기댄다.
“내 나이에, 더군다나 한국 같은 나라에서, 이 같은 모종의 신성모독을 읽는다는 것은 썩 유쾌하거나 신기하지는 않는 일이고, 더군다나 그 번역은 우선 ‘근력상’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 책 저자의 의도가, 단순한 폭로 혹은 야유가 아니라 마더 테레사의 ‘잘못된’ (세속사에) 따스한 수녀의 인상에서 ‘올바른’ (세속사에) 냉혈의 근본주의 종교-사업가 인상으로의 교정이었다면, 그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적이고, 논리적이며, 객관적이다.”(「옮긴이의 말」전문)
이제 『자비를 팔다』 한국어판을 펴낸 출판사 편집부가 작성한 ‘권말부록’ 「크리스토퍼 히친스에 대한 메모」를 근거로 “자신의 관심과 열정이 가닿은 세상 모든 일에 대해 ‘이의 제기자’ 노릇을 하며 평생을 살아왔다”는 인물에게 이의를 제기한다. “1949년 4월 13일 영국생”인 그는 “지금까지 60여 나라를 돌아다녔다.” 세계분쟁지역을 마다하지 않은 건 미국 보수논객 로버트 카플란과 비슷하다.
나는 회절한 지식인이 싫다. 자신의 옛 생각을 180도 바꿨다면 조용히 지내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개종자가 목소리를 드높이는 법. 아무리 친구에 대한 살해 위협과 9.11 테러의 영향을 받았다 해도 그의 전향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히친스는 1990년 걸프전을 일으킨 아버지 부시는 비난했지만, 2003년 아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은 편든다.
“(2005년 어느 토론에서 이 비일관성에 대해 질문을 받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페르시아 만 전쟁 후 쿠르드족 지역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그때 이라크 일대의 위기가 근본적으로 사담 후세인 탓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2002년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더 네이션>의 필진에서 물러나는데 “이 잡지의 편집자들과 독자, 기고자들이 오사마 빈 라덴보다 존 애시크로프트 미 법무장관을 더 큰 위협으로 보며, 이슬람의 테러리즘을 두둔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한반도 허리께의 대도시 어느 방구석에 거의 늘 틀어박혀 지내는 나는 빈 라덴의 위협은 체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빈 라덴과 이름이 비슷한 어느 나라 대통령은 되게 겁난다.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트로츠키주의자임을 자부했던 그는 요즘 네오콘으로 분류되는 모양이다. 그는 물론 이를 인정하지 않지만, 그의 기이한 착종은 그가 존경하는 인물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조지 오웰과 토머스 제퍼슨을 존경한다. 오웰과 제퍼슨은 어울리지 않는 한 쌍이다.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 오웰은 그의 좌파적 기질을 대변하고, 제퍼슨은 그의 우파적 성향을 상징한다.
2005년 대서양 양편에서 ‘100대 공적 지식인’을 선정한 두 주체는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 정치 평론지 <프로스펙트>다. 순위 결정은 “두 잡지가 선정한 지식인 100명의 명단을 놓고 독자들이 온라인으로 각기 5명씩을 고르는 방식이었다. 2만여 명이 참여한 투표 결과”는 이렇다. 1위 노엄 촘스키, 2위 움베르토 에코, 3위 리처드 도킨스, 4위 바츨라프 하벨, 5위 크리스토퍼 히친스.
“내가 예전에는-그러니까 독재자와 정신병적 살인자들, CIA에 관한 이류 몽상가들을 두둔하는 데 넌더리를 내기 전에는-아주 멋진 친구였다는 메스꺼운 말들이 이젠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차라리 내가 본디부터 천하의 못된 놈이었으며 배신자였다는 알렉산더 코번(<더 네이션> 동료 칼럼니스트)의 말이 더 그럴듯하다.”(크리스토퍼 히친스)
최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