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즘 선정 2000년대 베스트 앨범 20(팝)
1990년대 말부터 빌보드는 흑인 음악 세상이 되었고 주류 음악의 패권은 백인에서 흑인으로 넘어갔다. ‘상업적으로 변질되었다.’ ‘더 이상 훌륭한 작가가 나오지 않는다.’ 비판도 뒤따랐지만 흑인 문법 힙합 음악의 경제적 부흥기를 도모한 것은 사실. 결국 힙합은 자신이 미국 사회 전반을 장악했음을 선포하는 ‘백인 래퍼 슈퍼스타’를 탄생시킨다. 에미넴은 스스로를 ‘백인 쓰레기’로 규정하고 세상에 온갖 독설과 삿대질을 퍼부었다.
2010.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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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넴(Eminem) (2000년 5월)
1990년대 말부터 빌보드는 흑인 음악 세상이 되었고 주류 음악의 패권은 백인에서 흑인으로 넘어갔다. ‘상업적으로 변질되었다.’ ‘더 이상 훌륭한 작가가 나오지 않는다.’ 비판도 뒤따랐지만 흑인 문법 힙합 음악의 경제적 부흥기를 도모한 것은 사실. 결국 힙합은 자신이 미국 사회 전반을 장악했음을 선포하는 ‘백인 래퍼 슈퍼스타’를 탄생시킨다. 에미넴은 스스로를 ‘백인 쓰레기’로 규정하고 세상에 온갖 독설과 삿대질을 퍼부었다.
라디오헤드(Radiohead) (2000년 10월)
세기말의 록계는 이 앨범 하나로 크게 흔들렸다. ‘록의 지존’ 라디오헤드가 기타를 버리고 전자음과 스튜디오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록의 종언과 함께 새로운 세기가 도래했다. 새 시대의 로커들은 결코 기타, 베이스, 드럼 앙상블에 매달리지 않았다.
유투(U2) (2000년 10월)
2000년대 초반 그래미 시상식.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를 필두로 아이돌들이 전성기를 맞아 10대들이 음악계를 주무를 때, 그래미는 역으로 거장을 특대했다. 2000년 ‘올해의 앨범’ 산타나(Santana)의 , 2001년 ‘올해의 앨범’ 스틸리 댄(Steely Dan)의<Two Against Nature>, 2000년 ‘올해의 레코드’ 「Smooth」, 2001년 ‘올해의 레코드’ 유투의 「Beautiful day」, 2002년 ‘올해의 레코드’ 유투의 「Walk on」, 유투는 한 앨범에서만 ‘올해의 레코드’를 2년 연속 재패했다. 2000년대는 이렇듯 초입부터 현재 아이돌 음악의 과잉 상업성에 넌더리를 치며 시작했다. 그러한 당대 비평 흐름의 최대 수혜자는 유투였다.
스트록스(The Strokes) (2001년 7월)
마초적이고 우악스러운 음악. 2000년대 무렵 뉴 메탈의 이미지다. 덩치 큰 기타와 육중함만 내세웠고, 마치 ‘힘의 곡예’처럼 되어갔다. 이때 스트록스가 등장했다. 정장 차림의 불량한 뉴요커 이미지였던 그들은 문신과 근육질로 대변되었던 이전 록의 청사진과 완전히 결별했다. 펑크에 영향받은 음악 스타일은 단순하게 연주했고, 스케일 큰 사운드 대신 지하실에서 녹음한 원초적 노이즈를 즐겨 썼다. 스트록스는 으로 “다시금 소녀들이 록에 열광하게 만들었다.” 이를 가리켜 당시 록 언론들은 “새로운 록의 혁명”이라고 불렀다.
제이-지(Jay-Z) (2001년 9월)
제이지는 유려한 플로우와 정교한 라이밍 등 빼어난 능력으로 투팍(Tupac)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 이후 힙합 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래퍼로 등극했다. 물론, 사업가로서의 수완이나 미모의 가수를 아내로 둔 사실도 어깨에 힘을 실어 주는 요소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이지는 음악 안에서 빛났다. 어마어마한 스타덤에 오른 뮤지션들 대부분은 음악적으로 곤두박질 치는 순서를 밟곤 하지만 그는 단단한 매무새의 음악으로 매번 힙합 팬들을 결집시켰다. 판매량은 이전에 발표한 의 절반에 달해 상업적인 성과는 그리 좋지 못했으나 힙합 음악의 전통적인 제작 방식인 샘플링의 부흥을 꾀했으며 새천년의 작가로 등극한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의 프로듀싱 재능을 가장 크게 드러낸 자리가 되기도 했다.
존 메이어(John Mayer) (2001년 9월)
존 메이어가 기타를 잡은 계기는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도, 너바나(Nirvana)도 아닌 ‘블루스 명인’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n)이었다. 1977년생 젊은 천재 기타리스트는 당대의 록 트렌드보다는 그것에 선행하는 뿌리, 바로 ‘블루스’에 정체성을 못 박은 것이다. 우리들도 그를 따라 다시 고음(古音) 블루스를 듣게 되었다. 2007년 <롤링 스톤>은 그를 ‘새로운 기타의 신’으로 추대했다. 2000년대는 확실히 누가 가장 옛날 것을 능숙하게 다루느냐의 경쟁이었다.
노라 존스(Norah Jones) (2002년 2월)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는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사건 자체의 충격도 컸지만 워낙 급작스러운 비극이었기에 사람들은 급속도로 흥분했다. 통곡, 분노, 복수의 감정들이 미국을 뒤덮었다. 노라 존스가 등장한 것은 이때였다. 「Don't know why」는 달콤한 무드의 컨템포러리 재즈로 격앙된 미국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위로했다. 이 덕분에 노라 존스는 2003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겨우 앨범 하나 내놓은 신출내기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4개 부문을 모두 싹쓸이하는 이변의 쾌거를 이룩했다. 웬만해선 나오기 힘든 ‘아름다운 이완’은 9/11 충격에 시달린 미국인들을 위로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콜드플레이(Coldplay) (2002년 8월)
아무리 스트록스,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가 인기가 있었다고 한들 2000년대 음악계의 주인공은 흑인들이었다. 록은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 은폐되었다. 콜드플레이는 ‘위대한 예외’였다. 「In my place」와 「Viva la vida」를 모르는 팝 팬들도 있을까? 는 영국 내에서 21세기 들어 7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 싱글 「Clocks」는 200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비욘세(Beyonce)의 「Crazy in love」를 꺾고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했다. ‘라디오헤드의 아류’라고 놀림 받던 늦깎이 브릿 팝 주자가 예상 밖의 급성장을 거듭, 2000년대 내내 줄줄이 수작들을 쏟아냈다.
화이트 스트라입스(The White Stripes) (2003년 4월)
‘개러지 록 리바이벌’의 뒷모습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씁쓸하다. ‘혁명’ 운운하던 열광은 1년도 안 되어 차갑게 식어 버렸고 대표 주자들은 거의 1집 이후로 맥을 못 추었다. 바로 이은 포스트 펑크의 붐, 그리고 잇따른 뉴 웨이브의 범람으로 개러지 록은 짧고 굵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 중 화이트 스트라입스는 끝까지 살아남아 지금도 광채를 발하고 있다. 잭 화이트(Jack White)는 화이트 스트라입스로도 부족해 래콘터스(Raconteurs), 데드 웨더(Dead Weather)로 갈아타고 다니며 끝까지 고전적인 블루지 록을 탐닉하고 있다. 여전히 록의 ‘본질’과 ?름하는 개러지 록의 마지막 적자. 은 그들의 베스트이자 2000년대의 걸작이다.
아웃캐스트(Outkast) (2003년 9월)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했던 남부 힙합을 주류로 견인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은 스카페이스(Scarface)나 구디 몹(Goodie Mob)이 아닌 바로 아웃캐스트였다. 이들은 리드미컬한 래핑, 다양한 소재로 구성한 이야기, 보컬을 충실히 혼합함으로써 단순하고 지루하다는 대중에게 은연중에 각인된 랩 음악의 편견을 깨며 대중성을 획득했고 남부를 음악계에서 돌출하게 했다. 두 멤버의 솔로 작품을 합친 이 앨범은 힙합의 고유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소울, 펑크(funk), 재즈, 록 등 다양한 요소를 혼합해 다수가 지지하는 하이브리드 힙합을 창조했다. 이로써 1990년대의 랩 스타인 엠시 해머(MC Hammer)의 의 판매량을 능가하는 현재까지 가장 많이 팔린 랩 앨범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알리샤 키스(Alicia Keys) (2003년 12월)
2000년대 들어 빌보드를 장악하자마자 흑인 음악은 자꾸만 ‘매끈한’ 곡들의 양산에만 주력했다. 히트 메이커들은 많았지만 작가들, 특히 신감각의 동시대 작가가 빈곤했다. 알리샤 키스가 이때 대안으로 등장했다. 스스로 곡을 썼고, 출중한 가창력을 가졌으며, 가스펠과 힙합 비트를 같이 구사했다. 실력파이자 중후함까지 갖춘 미모의 소울 여가수 등장에 음악계는 환호했다. 는 그녀의 최고작이다.
킬러스(The Killers) (2004년 6월)
프란츠 퍼디난드와 킬러스에 와서 새천년 록은 뉴 웨이브와 접속한다. 신시사이저가 자극적으로 울리며 시작하는 「Somebody told me」는 록의 전면적인 ‘전자화’를 촉구했다. 이제 일렉트로닉 색깔의 여부는 록을 신식과 구식으로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그린 데이(Green Day) (2004년 9월)
9/11 테러 이후 미국은 급격히 우경화로 치달았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했고,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을 시작했다. 미국은 곧 국제 사회의 비난은 물론이고 내부의 거센 반발에도 직면해야 했다. 뮤지션들의 저항은 특히 거셌다. 제목부터 신랄한 ‘미국의 얼간이’ 은 이 시기 ‘안티 부시’를 표방한 록 음악의 대표적 걸작이다. 장대한 구성의 펑크록 오페라를 시도해 잇따른 콘셉트 앨범의 붐을 견인한 주인공이다.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2004년 9월)
2000년대 록은 ‘단순함의 회복’을 내걸고 출발한 이면에 화려함과 판타지가 성행했다. 포스트 록의 광활한 공간감, 그린 데이가 촉발한 오페라 록, 사이키델릭의 부활, 그리고 아케이드 파이어의 ‘에픽’ 인디 록을 빼놓을 수 없다. 은 악기들을 층층이 쌓고, 극적으로 고조시켰으며, 반전으로 놀라게 했다. 연이은 에선 풀 오케스트라와 대형 파이프 오르간도 등장했다. 장대하고, 숙연하며, 스케일 큰 인디 록이었다. 2000년대 인디 록의 태도는 더 이상 하드코어, 로-파이처럼 ‘해체’가 아니었다.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2005년 8월)
카니예 웨스트는 기존의 래퍼들이 휘감고 있던 클리셰들과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헐렁한 바지에 번쩍거리는 장신구로 도배한 래퍼들 가운데, 단정한 폴로 티셔츠에 루이뷔통 가방을 멘 웨스트는 중산층 청취자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 모범생 이미지를 구축했다. 2집 에서도 섹스와 폭력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그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부터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인권 착취까지 가사에 녹아내며 대중적이면서도 개념 있는 래퍼의 존재 가능성을 증명했다. 또한 고전에 대한 경외심이 함축된 고급화된 샘플링은 보수적인 평론계의 호응까지 이끌어 내며 2006년 3개의 그래미상을 움켜쥐게 만들었다.
뮤즈(Muse) (2006년 7월)
라디오헤드가 ‘기타’ 시절에 남긴 명반들은 그 여운이 길고도 강렬했다. 그들을 동경해 기타를 잡은 밴드들은 2000년대 내내 이것을 하나의 계보로 이어갔다. 이전 10년에서 우울한 록의 씨앗이 뿌려지고, 이후 10년에서 각자의 토양에 따라 색다른 개성들이 펼쳐졌다. 피아노와 아련함을 강조한 콜드플레이, 서정적인 팝 감성을 중시한 킨(Keane), 이들 중 가장 록적인 뮤즈는 섬뜩하고 관능적인 사이키델릭 하드록을 선보였다. 4집 는 뮤즈의 ‘치명적인’ 독기가 완전한 스타일로 자리한 앨범이자 하나의 콘셉트 앨범으로 스케일을 도약시킨 앨범이다.
밥 딜런(Bob Dylan) (2006년 8월)
레이 찰스(Ray Charles), 자니 캐시(Johnny Cash),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밥 딜런……. 몇 명은 고인이 되어 떠났고 몇 명은 살아있는 전설의 위상을 더욱 굳혔다. 새 시대에도 대중음악 전성기의 거장들은 드높은 완숙함으로 커다란 존재감을 재확인시켰다. 2000년대에 그들이 뿌리고 간 흔적들에서 과거란 단지 지나간 것이 아니라 늘 재발견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된다. 65세에 발표한 로 30년 만에 전미 차트 정상에 오른 밥 딜런은 어린 시절 듣던 미국의 뿌리 음악을 찾아 블루스 전도사가 되어 돌아왔다. 그 자체로 역사인 고목에 기대앉은 느낌. 편안하고, 사색적이며, 묵시록적이다.
존 레전드(John Legend) ?ART_CH=4201" target="new"> (2006년 10월)
릴 존(Lil Jon)의 크런크 앤 비가 커다란 유행을 몰고 올수록 한편에선 소울 고전들의 부활이 빠르게 지지를 얻어갔다. 파티, 클럽 음악만이 흑인 음악의 전부가 아님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새천년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라 불리는 존 레전드는 2005년 등장해 「Ordinary people」로 피아노 소울의 아늑한 아름다움을 일깨웠다. 차기작에서도 그는 자극적으로 치닫는 시류에 도도하게 대응했다. 깊고, 진정성 있으며, 은은한 음악으로 승부했다. 이러한 고전 소울에 대한 존경과 완숙한 구사는 2006년 2집 < 에서 정점을 맞고 있다.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2006년 10월)
새천년 최대의 화두였던 ‘소울의 부활’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와서 정점을 찍는다. ‘고전 소울의 완벽한 재현’이라 할 을 놓고 음악팬들이 일제히 들썩였다. 보수적이기로 정평 난 그래미까지 술, 마약으로 입국조차 금지된 그녀에게 위성 생중계까지 동원해 ‘그래미 퀸’의 영예를 안겼다. 영국 출신인 그녀의 성공으로 이젠 미국 아닌 영국에서도 소울 열풍이 거세다. 더피(Duffy), 아델(Adele)을 비롯해 실력파 후속 주자들이 연이어 데뷔하고 있다.
엠.아이.에이(M.I.A) (2007년 8월)
아주 기묘한 음악. 엠.아이.에이의 등장으로 팝계는 지금껏 듣지 못한 놀랍게 독특한 음악과 조우한다. 힙합, 일렉트로니카, 인도 음악, 펑크(Punk), 정치적 선동을 한데 섞어 스리랑카 혈통의 독특한 억양과 비주얼에서 뿜어낸다.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출산 전날 그래미 무대에 서는가 하면 민감한 정치 사안에 급진적으로 개입한다. 새로운 세기가 도래했으나 막상 새로운 것을 찾지 못한 팝계는 엠.아이.에이에게 필사적인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타임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위에 들면서 음악계 테두리를 넘어 지구적인 보편적 인정을 얻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빌보드는 흑인 음악 세상이 되었고 주류 음악의 패권은 백인에서 흑인으로 넘어갔다. ‘상업적으로 변질되었다.’ ‘더 이상 훌륭한 작가가 나오지 않는다.’ 비판도 뒤따랐지만 흑인 문법 힙합 음악의 경제적 부흥기를 도모한 것은 사실. 결국 힙합은 자신이 미국 사회 전반을 장악했음을 선포하는 ‘백인 래퍼 슈퍼스타’를 탄생시킨다. 에미넴은 스스로를 ‘백인 쓰레기’로 규정하고 세상에 온갖 독설과 삿대질을 퍼부었다.
라디오헤드(Radiohead)
세기말의 록계는 이 앨범 하나로 크게 흔들렸다. ‘록의 지존’ 라디오헤드가 기타를 버리고 전자음과 스튜디오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록의 종언과 함께 새로운 세기가 도래했다. 새 시대의 로커들은 결코 기타, 베이스, 드럼 앙상블에 매달리지 않았다.
유투(U2)
2000년대 초반 그래미 시상식.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를 필두로 아이돌들이 전성기를 맞아 10대들이 음악계를 주무를 때, 그래미는 역으로 거장을 특대했다. 2000년 ‘올해의 앨범’ 산타나(Santana)의
스트록스(The Strokes)
마초적이고 우악스러운 음악. 2000년대 무렵 뉴 메탈의 이미지다. 덩치 큰 기타와 육중함만 내세웠고, 마치 ‘힘의 곡예’처럼 되어갔다. 이때 스트록스가 등장했다. 정장 차림의 불량한 뉴요커 이미지였던 그들은 문신과 근육질로 대변되었던 이전 록의 청사진과 완전히 결별했다. 펑크에 영향받은 음악 스타일은 단순하게 연주했고, 스케일 큰 사운드 대신 지하실에서 녹음한 원초적 노이즈를 즐겨 썼다. 스트록스는
제이-지(Jay-Z)
제이지는 유려한 플로우와 정교한 라이밍 등 빼어난 능력으로 투팍(Tupac)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The Notorious B.I.G.) 이후 힙합 신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래퍼로 등극했다. 물론, 사업가로서의 수완이나 미모의 가수를 아내로 둔 사실도 어깨에 힘을 실어 주는 요소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이지는 음악 안에서 빛났다. 어마어마한 스타덤에 오른 뮤지션들 대부분은 음악적으로 곤두박질 치는 순서를 밟곤 하지만 그는 단단한 매무새의 음악으로 매번 힙합 팬들을 결집시켰다. 판매량은 이전에 발표한
존 메이어(John Mayer)
존 메이어가 기타를 잡은 계기는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도, 너바나(Nirvana)도 아닌 ‘블루스 명인’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n)이었다. 1977년생 젊은 천재 기타리스트는 당대의 록 트렌드보다는 그것에 선행하는 뿌리, 바로 ‘블루스’에 정체성을 못 박은 것이다. 우리들도 그를 따라 다시 고음(古音) 블루스를 듣게 되었다. 2007년 <롤링 스톤>은 그를 ‘새로운 기타의 신’으로 추대했다. 2000년대는 확실히 누가 가장 옛날 것을 능숙하게 다루느냐의 경쟁이었다.
노라 존스(Norah Jones)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는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사건 자체의 충격도 컸지만 워낙 급작스러운 비극이었기에 사람들은 급속도로 흥분했다. 통곡, 분노, 복수의 감정들이 미국을 뒤덮었다. 노라 존스가 등장한 것은 이때였다. 「Don't know why」는 달콤한 무드의 컨템포러리 재즈로 격앙된 미국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고 위로했다. 이 덕분에 노라 존스는 2003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겨우 앨범 하나 내놓은 신출내기임에도 불구하고 주요 4개 부문을 모두 싹쓸이하는 이변의 쾌거를 이룩했다. 웬만해선 나오기 힘든 ‘아름다운 이완’은 9/11 충격에 시달린 미국인들을 위로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콜드플레이(Coldplay) (2002년 8월)
아무리 스트록스, 프란츠 퍼디난드(Franz Ferdinand)가 인기가 있었다고 한들 2000년대 음악계의 주인공은 흑인들이었다. 록은 몇몇을 제외하고 대부분 은폐되었다. 콜드플레이는 ‘위대한 예외’였다. 「In my place」와 「Viva la vida」를 모르는 팝 팬들도 있을까? 는 영국 내에서 21세기 들어 7번째로 많이 팔린 앨범이 되었다. 싱글 「Clocks」는 200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비욘세(Beyonce)의 「Crazy in love」를 꺾고 ‘올해의 레코드’를 수상했다. ‘라디오헤드의 아류’라고 놀림 받던 늦깎이 브릿 팝 주자가 예상 밖의 급성장을 거듭, 2000년대 내내 줄줄이 수작들을 쏟아냈다.
화이트 스트라입스(The White Stripes)
‘개러지 록 리바이벌’의 뒷모습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씁쓸하다. ‘혁명’ 운운하던 열광은 1년도 안 되어 차갑게 식어 버렸고 대표 주자들은 거의 1집 이후로 맥을 못 추었다. 바로 이은 포스트 펑크의 붐, 그리고 잇따른 뉴 웨이브의 범람으로 개러지 록은 짧고 굵게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 중 화이트 스트라입스는 끝까지 살아남아 지금도 광채를 발하고 있다. 잭 화이트(Jack White)는 화이트 스트라입스로도 부족해 래콘터스(Raconteurs), 데드 웨더(Dead Weather)로 갈아타고 다니며 끝까지 고전적인 블루지 록을 탐닉하고 있다. 여전히 록의 ‘본질’과 ?름하는 개러지 록의 마지막 적자.
아웃캐스트(Outkast)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했던 남부 힙합을 주류로 견인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은 스카페이스(Scarface)나 구디 몹(Goodie Mob)이 아닌 바로 아웃캐스트였다. 이들은 리드미컬한 래핑, 다양한 소재로 구성한 이야기, 보컬을 충실히 혼합함으로써 단순하고 지루하다는 대중에게 은연중에 각인된 랩 음악의 편견을 깨며 대중성을 획득했고 남부를 음악계에서 돌출하게 했다. 두 멤버의 솔로 작품을 합친 이 앨범은 힙합의 고유 문법에 충실하면서도 소울, 펑크(funk), 재즈, 록 등 다양한 요소를 혼합해 다수가 지지하는 하이브리드 힙합을 창조했다. 이로써 1990년대의 랩 스타인 엠시 해머(MC Hammer)의
알리샤 키스(Alicia Keys)
2000년대 들어 빌보드를 장악하자마자 흑인 음악은 자꾸만 ‘매끈한’ 곡들의 양산에만 주력했다. 히트 메이커들은 많았지만 작가들, 특히 신감각의 동시대 작가가 빈곤했다. 알리샤 키스가 이때 대안으로 등장했다. 스스로 곡을 썼고, 출중한 가창력을 가졌으며, 가스펠과 힙합 비트를 같이 구사했다. 실력파이자 중후함까지 갖춘 미모의 소울 여가수 등장에 음악계는 환호했다.
킬러스(The Killers)
프란츠 퍼디난드와 킬러스에 와서 새천년 록은 뉴 웨이브와 접속한다. 신시사이저가 자극적으로 울리며 시작하는 「Somebody told me」는 록의 전면적인 ‘전자화’를 촉구했다. 이제 일렉트로닉 색깔의 여부는 록을 신식과 구식으로 가르는 기준이 되었다.
그린 데이(Green Day)
9/11 테러 이후 미국은 급격히 우경화로 치달았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침공했고, 국내 거주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을 시작했다. 미국은 곧 국제 사회의 비난은 물론이고 내부의 거센 반발에도 직면해야 했다. 뮤지션들의 저항은 특히 거셌다. 제목부터 신랄한 ‘미국의 얼간이’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2000년대 록은 ‘단순함의 회복’을 내걸고 출발한 이면에 화려함과 판타지가 성행했다. 포스트 록의 광활한 공간감, 그린 데이가 촉발한 오페라 록, 사이키델릭의 부활, 그리고 아케이드 파이어의 ‘에픽’ 인디 록을 빼놓을 수 없다.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카니예 웨스트는 기존의 래퍼들이 휘감고 있던 클리셰들과 동떨어진 인물이었다. 헐렁한 바지에 번쩍거리는 장신구로 도배한 래퍼들 가운데, 단정한 폴로 티셔츠에 루이뷔통 가방을 멘 웨스트는 중산층 청취자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는 모범생 이미지를 구축했다. 2집
뮤즈(Muse)
라디오헤드가 ‘기타’ 시절에 남긴 명반들은 그 여운이 길고도 강렬했다. 그들을 동경해 기타를 잡은 밴드들은 2000년대 내내 이것을 하나의 계보로 이어갔다. 이전 10년에서 우울한 록의 씨앗이 뿌려지고, 이후 10년에서 각자의 토양에 따라 색다른 개성들이 펼쳐졌다. 피아노와 아련함을 강조한 콜드플레이, 서정적인 팝 감성을 중시한 킨(Keane), 이들 중 가장 록적인 뮤즈는 섬뜩하고 관능적인 사이키델릭 하드록을 선보였다. 4집
밥 딜런(Bob Dylan)
레이 찰스(Ray Charles), 자니 캐시(Johnny Cash),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밥 딜런……. 몇 명은 고인이 되어 떠났고 몇 명은 살아있는 전설의 위상을 더욱 굳혔다. 새 시대에도 대중음악 전성기의 거장들은 드높은 완숙함으로 커다란 존재감을 재확인시켰다. 2000년대에 그들이 뿌리고 간 흔적들에서 과거란 단지 지나간 것이 아니라 늘 재발견해야 할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된다. 65세에 발표한
존 레전드(John Legend) ?ART_CH=4201" target="new">
릴 존(Lil Jon)의 크런크 앤 비가 커다란 유행을 몰고 올수록 한편에선 소울 고전들의 부활이 빠르게 지지를 얻어갔다. 파티, 클럽 음악만이 흑인 음악의 전부가 아님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새천년의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라 불리는 존 레전드는 2005년 등장해 「Ordinary people」로 피아노 소울의 아늑한 아름다움을 일깨웠다. 차기작에서도 그는 자극적으로 치닫는 시류에 도도하게 대응했다. 깊고, 진정성 있으며, 은은한 음악으로 승부했다. 이러한 고전 소울에 대한 존경과 완숙한 구사는 2006년 2집 <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새천년 최대의 화두였던 ‘소울의 부활’은 에이미 와인하우스에 와서 정점을 찍는다. ‘고전 소울의 완벽한 재현’이라 할
엠.아이.에이(M.I.A)
아주 기묘한 음악. 엠.아이.에이의 등장으로 팝계는 지금껏 듣지 못한 놀랍게 독특한 음악과 조우한다. 힙합, 일렉트로니카, 인도 음악, 펑크(Punk), 정치적 선동을 한데 섞어 스리랑카 혈통의 독특한 억양과 비주얼에서 뿜어낸다.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출산 전날 그래미 무대에 서는가 하면 민감한 정치 사안에 급진적으로 개입한다. 새로운 세기가 도래했으나 막상 새로운 것을 찾지 못한 팝계는 엠.아이.에이에게 필사적인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타임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위에 들면서 음악계 테두리를 넘어 지구적인 보편적 인정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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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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