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콘서트]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불량한 자전거 여행』 김남중
성우 서혜정의 목소리와 가수 하림의 목소리로, 『엄마를 부탁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대표적인 두 대목이 낭독됐다. 특히 하림은 고향이 해남이라 했는데, 전라도 사투리의 억양을 살려가며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 있을 법한 분위기로 낭독을 시작했는데, 이 역시 뭉클했다. 뭉클한 기분이 삽시간에 사람들 사이를 휘돌았다.
200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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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 ‘진한 땀’의 감동적인 의미를 환기하다 - 『불량한 자전거 여행』
『불량한 자전거 여행』의 김남중 작가. ‘몸은 서른여덟, 마음은 스물두 살. 먼 곳에 가면 동화가 더 잘 써진다고 믿기에 일 년에 서너 달은 여행 중인 동화 작가’라고 책날개에 소개돼 있고, 북 콘서트의 사회자도 그렇게 말했다. 과연 그는 유수의 동화 작가이고(그가 2006년 『자존심』으로 올해의 예술상을 받은 것은 많은 수상 경력 중 작은 예의 하나이다), 매년 5월과 8월에는 팀을 결성해(주로 대학생들)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자전거 여행 전문가이다. 한 달 반쯤 전에 독도에 다녀왔고, 행사 전날에는 전남 장흥 일대를 다녀왔다는 것으로 작가는 말문을 열었다. “학원이라는 게 아예 없어서, 아이들이 학원 한번 다녀보고 싶어 하는 그런 곳”이라고 작가는 장흥을 짧게 표현했다. 좋았다는 뜻일 거다. 이 짧은 말에서 그의 많은 것들이 전해졌다. 닮았구나, 나와. 책을 읽을 때도 동질감 같은 걸 느꼈던 게 우연은 아니었구나 싶었다.
자전거 여행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새들이 알에서 깨어나오면 처음 보는 것이 엄마인 줄 알고 따라다니는 것처럼, 내게는 어린 시절 이래 늘 눈앞에 있던 자전거가 그런 존재였다.” 과장하면 운명처럼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자전거와 만났던 것이다. 어쩌면 그건 작가 인생의 행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전거로 여행하기’라고 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일 테니 말이다. 작가가 말하는 자전거 여행의 매력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것,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다는 것, 자기가 여행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 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것”이라 한다. 우리가 삶에서 꿈꾸는 게 바로 저런 것 아닐까? 자전거 여행에 급히 호감이 가는 순간. 자전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그는 동화를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책’이라고 했다. 문학의 큰 힘 중 하나가 치유와 회복이라면 동화야말로 그 힘을 한껏 발휘하는 장르일 수 있다는 것.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정말 작가가 말한 그런 힘을 가진 책이다. 부모의 불화와 파경 과정을 지켜보는 6학년 호진이가 돌연 삼촌의 자전거 여행 팀에 합류하여 겪어내는 1,100킬로미터, 9일간의 여정 그리고 성장, 화해의 모색이 담담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안녕’이라고 쓰자 나는 마음이 울컥했다. 나는 방을 한 번 돌아보고 방문을 잠갔다. 내일 아침까지는 들키지 않을 거다. 나는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고 문을 열었다. 조심했지만 문소리가 났다. 그래도 안방과 작은방 문은 열리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가 나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빠는 엄마가 나간다고 생각할 거다. 무관심이 고마운 건 처음이었다.(p.25)
사회자가 읽어준 대목이다. 짧은 글 안에 많은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이쯤에서 게스트로 참여해 노래 두 곡을 불러준 ‘하찌와 TJ’의 TJ 태준은 자기가 태어나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읽은 ‘두 번째 책’이라며 진한 부산 사투리 억양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웃음이 번졌다. 그러고 보니 ‘하찌와 TJ’는 참 묘한 조합이다. 일본인 뮤지션 하찌(본명 가스가 히로후미ㆍ55)와 TJ(본명 조태준ㆍ30)가 신촌에서 우연히 만나 듀삿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1970년대 일본에서 인기를 누렸던 밴드 ‘칼멘 마키 앤 오즈’(Carmen Maki & OZ)의 기타리스트였던 하찌가 1985년 우연히 한국에 왔다가 꽹과리에 반해 무작정 정착했다는 일화도 예사롭지는 않다. 하찌는 한국 체류를 오랜 휴가라고 표현하면서 이제 한국은 외국이 아니므로 자신은 새로운 여행에 목이 마르다는 식의 이야기를, 꽤 잘하는 한국어로 했다. 유쾌한 두 사람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떠날까? 딸아?
지난 8월 작가는 ‘부모 자녀’ 독자 15쌍과 1박 2일의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책 속 주인공들처럼 아이들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주고 싶었는데, 함께 온 부모들 때문에 그저 즐겁게만 다녀왔다고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울어서는 안 되는 길인데 우는 아이, 쥐가 나면 안 되는 길에서 쥐가 난 아이들이 있었다.”고 했던가?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이 대개는 약하니까. 강함을 끄집어낼 기회조차 우리 아이들에게는 잘 주어지지 않으니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 자전거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솟구친다. 일상에서 해소되지 않는 것들을 가슴에 쌓아두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작가의 조언.
“처음에는 혼자 가지 마라. 가급적이면 먼저 가봤던 사람, 잘 아는 사람과 동행하고 나중에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 혼자 여행해도 된다. 물론 어느 경우에나 떠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하나, 스타일에 따라 비행기 타는 것만큼 비싸게 다닐 수 있지만, 싸게 다니려 하면 거의 무일푼으로도 할 수 있는 게 자전거 여행이다. 몇 차례 경험을 통해 자기 스타일의 자전거 여행이 생기면 그쪽으로 가면 된다. 시골에 사시는 외로운 할머니들을 자극해 그분들 곁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스타일이다.(웃음)”
이쯤에서 중요한 팁 하나. 자전거 여행을 하면 살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할 것. 밥도 두 배로 늘고, 간식, 물, 아이스크림 등 보이는 대로 다 먹어야 자전거 여행이 가능하다는 저자의 천둥 같은 말씀이 있었다. 이어 작가는 실망한 청중을 대상으로 책 한 대목을 읽어주었다.
멀리 떠나 보니 알 것 같다. 우리 식구도 함께 흘리는 땀이 필요하다. 함께 움직여 흘리는 땀. 자전거는 즐겁게 땀을 흘리게 해 준다.(p.215)
만약 문제가 있다면(사실 우리 모두에게 문제는 있다), 자전거 여행 한 번 떠나보시라. 다만, 거기에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작가는 말했다. 문제에 부딪힐 기운이 생긴다고 했다. 책도 좋았지만 작가와 만나서 더 좋았던 대화의 시간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떠날까? 딸아?
하찌와 TJ가 자신들의 노래 중 자전거라는 말이 들어가는 「축제의 밤」(2006년 발매한 음반 <하찌와 TJ - 행복> 수록곡)을 불러주고 내려간 뒤 ‘여자 플라이투더스카이’로 불린다는 여성 듀오 투앤비가 등장해 노래 실력과 그에 버금가는 미모, 재치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지난 11월에 <투앤비 (2nb) 2집 - 2comfortable>으로 돌아왔으며 새 앨범의 3번 트랙 「뻔한 여자」를 열창했다. 가창력으로 승부한다는 사회자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가슴 안으로 덥고 마른 바람을 들여오는 책 - 『엄마를 부탁해』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라고 하는 리스트의 말로 시작되는 책. 최단 기간 밀리언셀러, 올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13개국으로 판권 수출. 바로 『엄마를 부탁해』이다. 작가는 독자 인사를 해달라는 사회자의 요청에 그저 “고마워요.”라고 했다. 사회자의 당황한 표정이라니. 구구절절 무슨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건 신경숙 작가 특유의 어법인 듯이 보였다. 게스트로 참석한 가수 하림은 이 책이 장가 안 간 30대의 아들에게는 효심을 자극하는 책이라고 해, “고마워요”에 이어 큰 웃음을 이끌어냈다.
“사회자 : 작가는 글 쓸 때 어떤 음악을 듣는가?”
“그냥 나를 방해하지 않는 음악. (이때 작가가 하림을 미안한 듯이 쳐다보며 웃음) 『외딴방』 쓸 때는 로스트로포비치와 리오스카 하모니카 연주곡들을 들었다. 정해놓은 건 없고 작품을 쓸 때 떠오르는 음악을 반복해 듣는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때는 노래가 있으니까 들었다. 8시에 떠나는 거지만.(<내 조국이 가르쳐 준 노래 - 아그네스 발챠> 중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사실 ‘나를 방해하지 않는’이라는 건 가사가 없는 피아노, 첼로 등의 연주곡들이라는 뜻이다. 하림 씨가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림: 나도 음악하면서 책 못 보기는 마찬가지다.(웃음)”
“2009년에 뭘 열심히 들었느냐는 질문이 있기에 하림 씨의 노래 「출국」(<하림 Hareem (河琳) - 다중인격자 (多重人格者)> 수록곡)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먹고 나왔는데, 잘 안 됐다. 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은 대단하다. 천재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엄마를 부탁해』를 오디오북으로 제작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문화 가정, 시각 장애인 그리고 글을 읽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100만 부 돌파 시점을 기해 출판사 측에서 오디오북을 제작해 아름다운 재단에 기증한 것이다. ‘판매’가 아니라 ‘기증’이었구나. 언젠가 이 출판사에서 점자 형태로 그림책을 제작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접했던, 손가락으로 읽는 그림책(『나무를 만져 보세요』-스프링북/점자 촉각 그림책)은 감동이었다. 제작에 참여한 성우 서혜정이 무대로 나왔다. 미국 드라마 에 나온 스컬리의 음성으로 유명한 사람. 등장하자마자 스컬리의 음성을 들려주고, 예능 프로그램의 한 대목도 코믹하게 들려주면서 친화력을 뽐냈다. 30만 부 판매 시점부터 이 책의 광고를 녹음하기 시작한 일이 인연이 되어 오디오북까지 함께하게 됐다는 그. 녹음하기 전에 3번 읽고, 책 전체를 3번 녹음했고, 녹음 후에도 반복해 들어서 이 책을 10번 넘게 읽었단다. 한 달 동안 읽은 결과물이 CD로 10장, 8시간 분량이니 생각 이상으로 큰 프로젝트였던 것 같다. 배한성 등의 성우들, 서혜정의 실제 자녀들도 참여하여 녹음 인원만도 30명이 넘었다고 한다.
서혜정은 “이 책의 문장에서 단어를 앞으로 붙여도 말이 되고, 뒤로 붙여도 말이 돼서 읽기 좋았다.”고 했는데, 무슨 말일까 궁금해 책을 뒤적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일까? “뇌졸중이 어떻게 본인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단 말인가.”(p.72) 이것을 ‘뇌졸중이’에서 끊어 읽어도 되고, ‘어떻게’에서 끊어 읽어도 되는 것?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글로만 쓰였을 때와 소리로 읽힐 때가 다르다는 걸 많이 느꼈다.”라고만 했다. 당연히 그렇지 않았을까? 책이 전문가의 목소리로 읽혔을 때 작가가 좀 놀랐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거둔 아들의 겨드랑이를 감싸고 있는 성모의 손가락들이 길게 뻗어 나와 너의 뺨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 그제야 여인상 앞에서 차마 하지 못한 한마디가 너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pp.281~282)
스무 살의 그에게 졸업 증명서를 가져다주려고 무작정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온 엄마와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잔 그 숙직실. 그가 엄마와 그렇게 나란히 누워본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 어서어서 자라라, 했음서도 막상 니가 나보다 더 커버리니까는 니가 자식인데도 두렵데.(pp.92~93)
성우 서혜정의 목소리와 가수 하림의 목소리로, 『엄마를 부탁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대표적인 두 대목이 낭독됐다. 특히 하림은 고향이 해남이라 했는데, 전라도 사투리의 억양을 살려가며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 있을 법한 분위기로 낭독을 시작했는데, 이 역시 뭉클했다. 뭉클한 기분이 삽시간에 사람들 사이를 휘돌았다.
지금 당신의 어머니가 무엇을 할 시간인지 아세요?
어느 독자가 모스크바 다녀온 이야기와 차기작의 계획을 물었다.
“작가들 세미나가 있어 모스크바에 다녀왔다. 10월에 갔는데 날씨가 지금 우리나라와 같아서 추위에 떨다가 돌아왔다. 인터넷 서점에 연재하는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다음 작품이 될 예정이다. 거기에도 쓴 이야기인데, 모스크바는 한 번도 안 가본 곳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곳이라 힘들게 시간을 냈다. 잘 갔다 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인 부분이 많지만 자작나무 밑에다 끊임없이 수선화 알뿌리 같은 걸 심는 사람들, 가죽 장갑을 파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붉은 광장은 붉은색이 아니었다. 러시아에서 ‘붉은’은 아름답다는 뜻이라 했다. 그러니 붉은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인 셈이다.”
또 다른 독자는 어머니와 같이 와서, 어머니에게 퉁명스러워지는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책의 내용이 작가의 경험이냐고 했다. 이미 많이 들어왔을 질문이겠지만 작가는 기꺼이 대답에 응했다.
“내 경험이 맞다. 책에 있는 딸의 입장에서 쓴 못된 말들, 내가 한 번씩 다 해봤던 말들이다. 아마 어머니를 격의 없이 느끼고 너무 가까워서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 게 아닌가 싶은데, 이 작품을 쓰면서 엄마를 아주 조금은 거리감을 두고 생각해보니까 차마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참 많이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소통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고, 지금 이 시간에 엄마를 생각할 때 ‘지금 뭘 하고 계실 것이다.’ 하고 짐작할 수 있는 정도로 사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런 생각조차도 당연히 안 하게 되니까. 이 작품은 효도를 위해 쓴 게 아니어서 민망할 때가 많다. 다만 책에 썼듯이 엄마가 엄마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 그런 걸 한 번도 인식하지 않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고3 수험생 독자 하나는 『외딴방』이 수능 모의고사 문제로 출제됐는데, 작가로서 어떤 느낌이냐고 했다.
“시험문제로 나오면 나를 싫어하게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이다. 누군가 문제를 가져다주면서 답이 어렵다기에 들여다봤더니 정말 어렵더라. 문제로 나와서 기분이 어떻다기보다는 내 작품이 문제로 나오면 한 명도 모르는 사람이 없이 다 맞아서 내 책 때문에 누군가의 점수가 깎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웃음)”
처음보다 시간이 갈수록 작가는 담담하고 찬찬하게, 조근조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의 머뭇거림이나 짧은 대답에 대해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 북 콘서트를 세 번 했더니 어쩐지 내가 할 이야기를 미리 다 알고 계시지 않을까, 거기다 새삼 무슨 이야기를 하면 중언부언이 되지 않을까 해서 좀 긴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책을 생각할 때 기분이 나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도 마음에 들고. 작가로서 나도 내년에 책을 읽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가름했다.
작가의 팬이, 작가가 게재된 신문 기사들을 빼곡히 스크랩한 파일이 소개되고, 하림이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에서 만들었다는 노래 「흙 먼지 바람」의 열창으로 마지막으로 행사가 끝났다. 가격을 올리지 않고 양장본으로 다시 만들어진 『엄마를 부탁해』에 사인을 해주고 있는 작가에게 아주 짧은 인사를 건네고 돌아왔다. 일 년 전 작가 낭독회에서 사인을 받았는데, 일 년 후 다시 작가를 만났다. 2009년 12월 10일. 작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작가를 아주 또렷이 기억하게 된 날이다.
자전거 여행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일까? “새들이 알에서 깨어나오면 처음 보는 것이 엄마인 줄 알고 따라다니는 것처럼, 내게는 어린 시절 이래 늘 눈앞에 있던 자전거가 그런 존재였다.” 과장하면 운명처럼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자전거와 만났던 것이다. 어쩌면 그건 작가 인생의 행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전거로 여행하기’라고 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체득된 것일 테니 말이다. 작가가 말하는 자전거 여행의 매력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것,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다는 것, 자기가 여행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 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것”이라 한다. 우리가 삶에서 꿈꾸는 게 바로 저런 것 아닐까? 자전거 여행에 급히 호감이 가는 순간. 자전거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그는 동화를 ‘아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책’이라고 했다. 문학의 큰 힘 중 하나가 치유와 회복이라면 동화야말로 그 힘을 한껏 발휘하는 장르일 수 있다는 것. 『불량한 자전거 여행』은 정말 작가가 말한 그런 힘을 가진 책이다. 부모의 불화와 파경 과정을 지켜보는 6학년 호진이가 돌연 삼촌의 자전거 여행 팀에 합류하여 겪어내는 1,100킬로미터, 9일간의 여정 그리고 성장, 화해의 모색이 담담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안녕’이라고 쓰자 나는 마음이 울컥했다. 나는 방을 한 번 돌아보고 방문을 잠갔다. 내일 아침까지는 들키지 않을 거다. 나는 고양이 걸음으로 걸어가 신발을 신고 문을 열었다. 조심했지만 문소리가 났다. 그래도 안방과 작은방 문은 열리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가 나간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빠는 엄마가 나간다고 생각할 거다. 무관심이 고마운 건 처음이었다.(p.25)
사회자가 읽어준 대목이다. 짧은 글 안에 많은 의미가 포함돼 있다. 이쯤에서 게스트로 참여해 노래 두 곡을 불러준 ‘하찌와 TJ’의 TJ 태준은 자기가 태어나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단숨에 읽은 ‘두 번째 책’이라며 진한 부산 사투리 억양으로 추임새를 넣었다. 웃음이 번졌다. 그러고 보니 ‘하찌와 TJ’는 참 묘한 조합이다. 일본인 뮤지션 하찌(본명 가스가 히로후미ㆍ55)와 TJ(본명 조태준ㆍ30)가 신촌에서 우연히 만나 듀삿를 이루었다고 하는데, 1970년대 일본에서 인기를 누렸던 밴드 ‘칼멘 마키 앤 오즈’(Carmen Maki & OZ)의 기타리스트였던 하찌가 1985년 우연히 한국에 왔다가 꽹과리에 반해 무작정 정착했다는 일화도 예사롭지는 않다. 하찌는 한국 체류를 오랜 휴가라고 표현하면서 이제 한국은 외국이 아니므로 자신은 새로운 여행에 목이 마르다는 식의 이야기를, 꽤 잘하는 한국어로 했다. 유쾌한 두 사람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떠날까? 딸아?
지난 8월 작가는 ‘부모 자녀’ 독자 15쌍과 1박 2일의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책 속 주인공들처럼 아이들의 눈에서 눈물을 쏙 빼주고 싶었는데, 함께 온 부모들 때문에 그저 즐겁게만 다녀왔다고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했다. “울어서는 안 되는 길인데 우는 아이, 쥐가 나면 안 되는 길에서 쥐가 난 아이들이 있었다.”고 했던가? 그랬을 것이다. 아이들이 대개는 약하니까. 강함을 끄집어낼 기회조차 우리 아이들에게는 잘 주어지지 않으니까.
아무튼 이 책을 읽으면 자전거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솟구친다. 일상에서 해소되지 않는 것들을 가슴에 쌓아두지 않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 사람들을 위한 작가의 조언.
“처음에는 혼자 가지 마라. 가급적이면 먼저 가봤던 사람, 잘 아는 사람과 동행하고 나중에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 혼자 여행해도 된다. 물론 어느 경우에나 떠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하나, 스타일에 따라 비행기 타는 것만큼 비싸게 다닐 수 있지만, 싸게 다니려 하면 거의 무일푼으로도 할 수 있는 게 자전거 여행이다. 몇 차례 경험을 통해 자기 스타일의 자전거 여행이 생기면 그쪽으로 가면 된다. 시골에 사시는 외로운 할머니들을 자극해 그분들 곁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것도 하나의 스타일이다.(웃음)”
이쯤에서 중요한 팁 하나. 자전거 여행을 하면 살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할 것. 밥도 두 배로 늘고, 간식, 물, 아이스크림 등 보이는 대로 다 먹어야 자전거 여행이 가능하다는 저자의 천둥 같은 말씀이 있었다. 이어 작가는 실망한 청중을 대상으로 책 한 대목을 읽어주었다.
멀리 떠나 보니 알 것 같다. 우리 식구도 함께 흘리는 땀이 필요하다. 함께 움직여 흘리는 땀. 자전거는 즐겁게 땀을 흘리게 해 준다.(p.215)
만약 문제가 있다면(사실 우리 모두에게 문제는 있다), 자전거 여행 한 번 떠나보시라. 다만, 거기에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작가는 말했다. 문제에 부딪힐 기운이 생긴다고 했다. 책도 좋았지만 작가와 만나서 더 좋았던 대화의 시간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떠날까? 딸아?
하찌와 TJ가 자신들의 노래 중 자전거라는 말이 들어가는 「축제의 밤」(2006년 발매한 음반 <하찌와 TJ - 행복> 수록곡)을 불러주고 내려간 뒤 ‘여자 플라이투더스카이’로 불린다는 여성 듀오 투앤비가 등장해 노래 실력과 그에 버금가는 미모, 재치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지난 11월에 <투앤비 (2nb) 2집 - 2comfortable>으로 돌아왔으며 새 앨범의 3번 트랙 「뻔한 여자」를 열창했다. 가창력으로 승부한다는 사회자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다.
가슴 안으로 덥고 마른 바람을 들여오는 책 - 『엄마를 부탁해』
“사회자 : 작가는 글 쓸 때 어떤 음악을 듣는가?”
“그냥 나를 방해하지 않는 음악. (이때 작가가 하림을 미안한 듯이 쳐다보며 웃음) 『외딴방』 쓸 때는 로스트로포비치와 리오스카 하모니카 연주곡들을 들었다. 정해놓은 건 없고 작품을 쓸 때 떠오르는 음악을 반복해 듣는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때는 노래가 있으니까 들었다. 8시에 떠나는 거지만.(<내 조국이 가르쳐 준 노래 - 아그네스 발챠> 중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사실 ‘나를 방해하지 않는’이라는 건 가사가 없는 피아노, 첼로 등의 연주곡들이라는 뜻이다. 하림 씨가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림: 나도 음악하면서 책 못 보기는 마찬가지다.(웃음)”
“2009년에 뭘 열심히 들었느냐는 질문이 있기에 하림 씨의 노래 「출국」(<하림 Hareem (河琳) - 다중인격자 (多重人格者)> 수록곡)을 이야기하려고 마음먹고 나왔는데, 잘 안 됐다. 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은 대단하다. 천재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엄마를 부탁해』를 오디오북으로 제작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다문화 가정, 시각 장애인 그리고 글을 읽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100만 부 돌파 시점을 기해 출판사 측에서 오디오북을 제작해 아름다운 재단에 기증한 것이다. ‘판매’가 아니라 ‘기증’이었구나. 언젠가 이 출판사에서 점자 형태로 그림책을 제작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접했던, 손가락으로 읽는 그림책(『나무를 만져 보세요』-스프링북/점자 촉각 그림책)은 감동이었다. 제작에 참여한 성우 서혜정이 무대로 나왔다. 미국 드라마
서혜정은 “이 책의 문장에서 단어를 앞으로 붙여도 말이 되고, 뒤로 붙여도 말이 돼서 읽기 좋았다.”고 했는데, 무슨 말일까 궁금해 책을 뒤적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일까? “뇌졸중이 어떻게 본인도 모르게 지나갈 수 있단 말인가.”(p.72) 이것을 ‘뇌졸중이’에서 끊어 읽어도 되고, ‘어떻게’에서 끊어 읽어도 되는 것?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글로만 쓰였을 때와 소리로 읽힐 때가 다르다는 걸 많이 느꼈다.”라고만 했다. 당연히 그렇지 않았을까? 책이 전문가의 목소리로 읽혔을 때 작가가 좀 놀랐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을 거둔 아들의 겨드랑이를 감싸고 있는 성모의 손가락들이 길게 뻗어 나와 너의 뺨을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 그제야 여인상 앞에서 차마 하지 못한 한마디가 너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pp.281~282)
스무 살의 그에게 졸업 증명서를 가져다주려고 무작정 서울행 기차를 타고 온 엄마와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잔 그 숙직실. 그가 엄마와 그렇게 나란히 누워본 것은 그때가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 어서어서 자라라, 했음서도 막상 니가 나보다 더 커버리니까는 니가 자식인데도 두렵데.(pp.92~93)
성우 서혜정의 목소리와 가수 하림의 목소리로, 『엄마를 부탁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대표적인 두 대목이 낭독됐다. 특히 하림은 고향이 해남이라 했는데, 전라도 사투리의 억양을 살려가며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 있을 법한 분위기로 낭독을 시작했는데, 이 역시 뭉클했다. 뭉클한 기분이 삽시간에 사람들 사이를 휘돌았다.
지금 당신의 어머니가 무엇을 할 시간인지 아세요?
어느 독자가 모스크바 다녀온 이야기와 차기작의 계획을 물었다.
“작가들 세미나가 있어 모스크바에 다녀왔다. 10월에 갔는데 날씨가 지금 우리나라와 같아서 추위에 떨다가 돌아왔다. 인터넷 서점에 연재하는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가 다음 작품이 될 예정이다. 거기에도 쓴 이야기인데, 모스크바는 한 번도 안 가본 곳이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곳이라 힘들게 시간을 냈다. 잘 갔다 왔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인 부분이 많지만 자작나무 밑에다 끊임없이 수선화 알뿌리 같은 걸 심는 사람들, 가죽 장갑을 파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었다. 붉은 광장은 붉은색이 아니었다. 러시아에서 ‘붉은’은 아름답다는 뜻이라 했다. 그러니 붉은 광장은 아름다운 광장인 셈이다.”
또 다른 독자는 어머니와 같이 와서, 어머니에게 퉁명스러워지는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책의 내용이 작가의 경험이냐고 했다. 이미 많이 들어왔을 질문이겠지만 작가는 기꺼이 대답에 응했다.
“내 경험이 맞다. 책에 있는 딸의 입장에서 쓴 못된 말들, 내가 한 번씩 다 해봤던 말들이다. 아마 어머니를 격의 없이 느끼고 너무 가까워서 자기 자신과 동일시한 게 아닌가 싶은데, 이 작품을 쓰면서 엄마를 아주 조금은 거리감을 두고 생각해보니까 차마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참 많이 했다는 걸 알게 됐다. 소통이라는 것은 다른 게 아니고, 지금 이 시간에 엄마를 생각할 때 ‘지금 뭘 하고 계실 것이다.’ 하고 짐작할 수 있는 정도로 사는 게 아닐까 한다. 그런 생각조차도 당연히 안 하게 되니까. 이 작품은 효도를 위해 쓴 게 아니어서 민망할 때가 많다. 다만 책에 썼듯이 엄마가 엄마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 그런 걸 한 번도 인식하지 않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고3 수험생 독자 하나는 『외딴방』이 수능 모의고사 문제로 출제됐는데, 작가로서 어떤 느낌이냐고 했다.
“시험문제로 나오면 나를 싫어하게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농담이다. 누군가 문제를 가져다주면서 답이 어렵다기에 들여다봤더니 정말 어렵더라. 문제로 나와서 기분이 어떻다기보다는 내 작품이 문제로 나오면 한 명도 모르는 사람이 없이 다 맞아서 내 책 때문에 누군가의 점수가 깎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웃음)”
처음보다 시간이 갈수록 작가는 담담하고 찬찬하게, 조근조근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의 머뭇거림이나 짧은 대답에 대해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 북 콘서트를 세 번 했더니 어쩐지 내가 할 이야기를 미리 다 알고 계시지 않을까, 거기다 새삼 무슨 이야기를 하면 중언부언이 되지 않을까 해서 좀 긴장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책을 생각할 때 기분이 나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있는 나 자신도 마음에 들고. 작가로서 나도 내년에 책을 읽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겠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가름했다.
작가의 팬이, 작가가 게재된 신문 기사들을 빼곡히 스크랩한 파일이 소개되고, 하림이 아프리카 칼라하리사막에서 만들었다는 노래 「흙 먼지 바람」의 열창으로 마지막으로 행사가 끝났다. 가격을 올리지 않고 양장본으로 다시 만들어진 『엄마를 부탁해』에 사인을 해주고 있는 작가에게 아주 짧은 인사를 건네고 돌아왔다. 일 년 전 작가 낭독회에서 사인을 받았는데, 일 년 후 다시 작가를 만났다. 2009년 12월 10일. 작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작가를 아주 또렷이 기억하게 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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