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국내 공포영화 중 두 편 <불신지옥>과 <독>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종교, 특히 기독교의 종교적 광기가 하나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즉,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한국 사회를 종교(기독교)적 광신을 통해 드러낸다. 한 리뷰에 따르자면, <불신지옥>이 종교적 맹신의 비극적인 결과를 추론한다면, <독>은 종교적 맹신의 근원을 죄의식으로 설명한단다.
가만 보자. 정확하진 않지만, 한 해 두 편의 공포영화에서 종교가, 특히 한 종교가 소재로 활용된 적은 없는 것 같다. 공포영화적 장치와 연결되는 종교라. 이것은 트렌드라기보다 현재의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어떤 사회현상, 어쩌면 부조리를 드러낸 것? 종교가 다른 장르의 영화도 아닌 공포영화와 결합하는 것, 이것은 뭔가 의미심장하지 않나?
개인적으로 기분 나빴던 종교적 경험과 종교적 커밍아웃도 하고 가야겠다. 과거 한 포털의 영화 섹션에서 네티즌 평론가로 활동하던 시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에 대한 평을 쓴 적이 있다. 시사회를 관람했는데, 이때부터 좀 괴기(!)스러웠다. 기독교 신자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관람 도중 자주 ‘할렐루야’를 외쳐댔다. 그것도 작은 소리도 아닌. 영화 자체의 과도한 폭력성도 짜증났지만, 비신도에겐 너무도 폭력적인 관람 환경은 ‘지옥’에 가까운 경험을 안겨줬다.
이어서 영화 평을 쓰고는 댓글 폭력에 시달렸다. 역시나 광신도(!)로 추정되는 ‘댓글러’들의 댓글 폭격은 종교적 ‘광기’를 절감하게끔 만들었다. ‘불쌍한 어린 양’이라며 혀를 끌끌 차는 댓글은 그야말로 점잖은 수준. 죽이겠다며, 밤길 조심하라고, 미친놈 등등 정말 입에 담자니 같잖기 그지없는 댓글러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정말 갸륵하구나 싶었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를 비난하거나 욕한 것도 아니요, 그저 영화 한 편에 대한 평을 썼을 뿐인데, 자기 일처럼 들고 일어나는 그 열정이라니. 그것은 물론 분별없는 열정. 그런 분별없는 열정과 욕설을 담은 이메일도 수십 통이 쏟아졌다. 물론 겁은 안 났다. 정작 그렇게 할 사람은 굳이 댓글을 달거나 이메일을 보내는 법 없이 바로 실행에 옮길 테니까. 그들은 그저 얼치기 근본주의적 신념 체계를 지닌 맹신도일 뿐. 더구나 그들의 신이, 사랑의 신이 하찮은 날 죽이라고 하명할 리는 없잖은가.
그리고 내가 가진 신에 대한 생각은 이것으로 대신한다. “신은 간절히 원하고 바라는 것을 두 손 모아 기도할 때 이것을 무시하는 작자.”(영화 <아일랜드> 중에서) 공포영화인 <마터스>의 감독 파스칼 로지에가 했던 이 말. “신이 떠나고 없는 사회를 그리고자 했다.” 신이 정말로 있다면, 인류나 시대가 이래선 안 된다. 이런 상황을 신들이 원했다면, 그건 신도 아니다. 하긴 인류사를 관통하며 그렇지 않은 시대가 있기나 했을까. 그러니까, 신은 없는 게지. 있다면, 오로지 당신의 마음속에.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깊은 논의, 『종교전쟁: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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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이 길었다. 사적인 종교적 기억과 경험을 강요하거나 일반화할 생각은 없고. 사실 종교가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특히 과학과의 관계를 따져 묻자면 더욱 그렇다. 여기 이 책, 『종교전쟁: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김윤성?신재식?장대익 지음/사이언스북스 펴냄). 과학과 종교 간의 진지한 대화를 다뤘다. 전공과 입장이 다른 세 소장학자가 주고받은 13편의 편지와 10시간에 걸친 좌담의 기록이 진득하게 나와 있다.
그 주인공들은, 문화이론으로 천주교와 개신교의 한국 전래 과정과 성, 취향, 계급, 인종 차별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연구해 온 종교학자 김윤성 교수(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를 ‘모르쇠’ 하는 한국 교회의 보수성 속에서 진정한 신앙의 길을 모색하는 현직 목사이자 신학자인 신재식 교수(호남신학대학교 신학과), 진화생물학과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인문학과 자연과학, 진화생물학과 인지과학의 통섭의 길을 찾고 있는 과학철학자 장대익 교수(동덕여자대학교 교양교직학부)가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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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종교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와 철학을 가진 이들이 이메일을 교환하게 된, 결국 책까지 내게 된, 시작은 다음과 같이 설명돼 있다. “2005년 겨울 어느 날, 우리는 서울역의 어느 찻집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현대 과학 기술 시대에 종교가 가진 의미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즈음에는 종교에 대한 서로의 미묘한 입장 차이가 조금씩 감지되던 때였다. 매번 감질나게 끝나 버리는 토론이 아쉬웠던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쟁점별로 우리의 견해들을 대비시켜 보자는 제안을 했다. 공동 연구 프로젝트를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고, 적절한 책을 함께 번역하거나 쓰면서 생각의 차이를 정리해 보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그러다가 조금 더 자유로운 형식은 어떻겠냐는 제안에 누군가가 ‘이메일 교환’을 해 보자고 했다. 모두 찬성했다. 이메일로 부담 없이 이야기하다 보면 재밌고 유익한 과정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미 우리 사이에는 이 민감한 주제를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만큼의 인간적인 신뢰가 쌓여 있었다.”(p.18)
그리고 ‘종교전쟁’이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의 의미에 대한 설명. “우리는 종교를 둘러싼 논의가 집안싸움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식 사회에 갇혀 있어서도 안 된다고 본다. 현실 세계에서 종교는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자살 테러와 학살의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지금, 종교는 인간을 추동하는 가장 큰 힘 중 하나이며, 합리적 비판으로부터 가장 쉽게 면죄부를 받아 온 성역이다. 지식인이라면 이 성역에 ‘전쟁’에 가까운 시비를 걸어야 한다. 현대의 무신론자, 합리적 비판으로부터 가장 쉽게 면죄부를 받아 온 성역이다. (…) 대신 그 의미를 좀 더 확장시켜 ‘종교를 둘러싼 전쟁’을 지칭하는 것으로 했다. 이런 넓은 의미의 ‘종교 전쟁’ 안에는 ‘종교 간’의 관계를 둘러싼 전쟁, ‘종교와 인접 분야들(신학, 예술, 문학, 철학, 사회학, 과학 등)’ 간의 전쟁, 그리고 ‘종교와 실천(인권, 평화, 윤리, 환경, 여성 등)’을 둘러싼 전쟁 등이 모두 포함된다.”(pp.20~21)
지난달 26일, 비가 쏟아지던 날의 저녁, 대학로에서 ‘『종교전쟁: 종교에 미래는 있는가?』 저자 초청 특별강연 ‘과학과 종교가 서로에게 말을 걸다!’라는 제목의 강연회가 열렸다. 김윤성 교수와 장대익 교수가 강사로 참여, 독자들과 과학과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신재식 교수는 해외에 가 있는 관계로 참여하지 못했다.
김윤성, 종교의 현황을 말하다
김윤성 교수는 지금 이 시대의 종교(성) 현황을 설명했다. 김 교수가 말하는 종교는, ‘영원하고 초월적인 것에 관해 이와 똑같이 영원하고 초월적인 권위를 동원해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주요 특징으로 하는 담론과 이에 관련된 실천 및 제도’다. 이는 인류 역사 속에서 생성, 소멸, 변화해 왔다. 그렇다면 종교성은 무엇인가. 비일상성, 무한, 초월, 신성 등에 대한 생각과 이에 관련된 행동이며, 경향으로서의 종교성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이 김 교수의 언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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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어느 종교가 가장 많은 신도를 갖고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들겠지만, 단일 종교로 가장 많은 신도를 보유한 것은 이슬람교(19.6%)다. 세계 최대 분포와 최다 신자를 자랑한다. 이어 기독교가 17.4%인데,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기타 종파를 합치면 32.9%로 세계 최대가 된다. 그 다음이 힌두교(13.3%)로 특정 지역 종교로서는 세계 최대를 자랑한다. 인도의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 신자수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불교신자가 가장 많은 것으로 통계청 결과에서 나오지만, 여기에는 허수가 많다. 각 종교별 신자를 더하면, 지금 우리나라 인구를 훌쩍 뛰어넘는다. “우리나라에는 지배적인 종교가 없다. 비사회주의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지배적인 종교가 없는 독특한 경우다. 비종교적 성향이 강한 국가로, 설문을 하면 ‘나는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이 절반가량이나 된다.”
김 교수는 이어 종교의 양극화에 대해 설명했다. 제도로서의 종교가 가진 긍정?부정의 현상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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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새로운 형태의 종교를 크게 네 가지로 나눴다. 여러 종교의 특장점을 혼합하거나 소수와 세계적인 규모까지 다양한 신종교(통일교, 사이언톨로지 등), 제도 종교의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나온 영성주의, 대중문화와 산업화 등을 업고 ‘종교’가 아님을 강조하나 학문적으로 명백하게 종교인 명상운동(오쇼 라즈니쉬, 단월드 등), 사이버 의례나 반종교-무신론운동 등의 온라인 종교까지.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종교성의 미래’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졌다.
- 침팬지에게도 종교가 있을까?
- 인공지능도 종교를 가질까?
- 외계의 지적 존재도 종교를 가질까?
- 슈퍼 히어로는 현대의 신화적 영웅일까?
- 스타디움의 열기는 종교적인 것일까?
그의 대답은 이것.
“침팬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종교’라는 단어를 연결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대익, 종교의 미래를 말하다
장 교수는 종교의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사유했다. 종교의 과거는 즉, 종교의 기원과 진화를 설명하는데, 세 가지 이론이 있다. 특별한 기능을 위해 생겨난 적응론, 다른 것에서 파생해서 생겨난 부산물론, 그리고 생물학적 적응도와 상관없이 문화적으로 전달됐다는 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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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응론의 경우, 장 교수는 이념과 초월적 존재를 생각하는 종교의 구분이 없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파스칼이 확률과 연관 지어 설파한 종교의 필요성에 대해 비판했다. 파스칼은 신의 존재를 믿는 쪽에 거는 내기가 그렇지 않은 것보다 무한대로 유리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신을 잃었다고 해서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재수가 좋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 “파스칼은 틀렸다. 종교를 믿는 것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나. 우리 주변을 봐라. 종교 때문에 고통을 받거나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 파스칼의 주장은 잘못된 가정에서 출발했다.”
부산물론은 종교는 다른 인지 적응들의 부산물이라는 관점이다. 장 교수가 가장 흥미롭게 얘기한 것은 밈론이다. 밈(meme)은 문화유전자, 즉 ‘대물림 가능한 정보의 기본 단위’ 혹은 ‘문화 전달의 기본 단위’를 뜻하는 말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의 10장에서 설파한 것이다. “종교를 믿는 부모 밑의 아이들은 부모 말을 듣지 않으면 생존에 불리하다. 그래서 부모의 말을 들어야 하고, 초월자에 대한 믿음도 믿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접근에는 크게 두 가지 견해가 있는데, 하나는 데닛의 ‘지향적 자세’와 ‘길들여진 밈’이 있고, 다른 하나는 도킨스의 ‘정신 바이러스’ 이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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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교수는 최근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를 만나 재미있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세간에 한국의 스티븐 호킹으로 일컬어지는 분으로, 전신마비 척수장애를 입었지만 6개월 만에 강단에 복귀했다. “사고가 나서 병원에 갔는데, 지겹도록 많은 방문인이 왔다고 하더라. 특히 기독교인들. 기독교인 입장에서는 서울대의 무신론자 교수를 개종시키면 대박이라는 생각으로 왔겠지. 그러면서 하는 얘기들이, ‘하나님은 견딜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거였단다. 어려움이 닥치면 누군가 와서 이런 얘기하잖나. 이분 반응이 재밌었다. ‘나는 사실 기독교 믿지 않는데, 똑같이 생각했다’는 거다. ‘하나님’만 딱 빼고. ‘난 그게 너무 재밌더라. 종교가 없는데도 똑같이 생각했거든’이라고 하셨다.”
말인즉슨, 종교가 가치를 독점했다는 거다. 사실 영역에서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종교가 살아남기 위해 택한 것이 가치의 영역이었다는 것. “종교가 삶의 의미와 실존 가치, 공동체의 아름다움 등에 대해 독점해왔다. 사실의 영역에서는 과학이 다른 분야를 제치고 1인자가 됐다. 왕자다. 그러나 가치 영역에서는 종교가 왕자였다. 심지어 종교가 계속 틀린 얘기를 하는데도 사람들이 왜 떠나지 않았을까. 그것이 종교가 가치를 독점하는 방식이다. 이상묵 교수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렇다면, 사실 영역에서는 이미 승부가 났고, 가치 영역을 둘러싼 경쟁은 어떻게 될까. 장 교수는 가치 영역에서도 서서히 무한경쟁의 시대가 온다고 단언했다. 종교를 위시해 철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영역들이 펼치는 경쟁. 다만 과학이 얼마나 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인지는 열려 있는 문제란다. 그럼에도 종교가 가치 영역에서도 힘을 잃을 것이란 주장을 폈다. “종교를 유지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삼고 싶다면, 종교는 문화 영역에서 계속 지속돼야 할 것이다. 종교가 인류의 자산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Q&A
글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변화가 있었나. 변화가 있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
(김윤성) 기본적으로 공통점이 있기에 만났다. 변화라면, 흰머리가 늘었다?(웃음) 그런데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정의, 즉 어떤 카테고리를 사용하는가가 달라서 애를 먹은 부분도 있다. 용어를 합의해서 쓰기가 어렵지 않나. 개념 차이가 많은 차이를 낳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바꿔볼까 생각도 했지만, 처음부터 개념 규정에서 양보가 안 됐다. 그래도 종교에 대한 과대평가나 독점 등에 대해서는 동의할 부분이 있었다.
(장대익) 대개 종교 논쟁이라고 하면 서로 얼굴을 붉히는 부분이 많은데, 우린 그러지 않았다. 우애가 외려 깊어졌다고나 할까. 신뢰가 쌓인 뒤에는 이런 토론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서로 배우는 점 있고, 서로가 다르구나, 하는 점도 확인하고. 인격적 신뢰가 없었다면 이런 프로젝트가 안 됐을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확실하게 커밍아웃을 했다. 무신론자로 공식 커밍아웃하게 됐다. 재밌는 것은, 한 신앙인으로부터 매일 메일 한 통씩을 받는다. 어찌 보면 무례한 이메일이나 이젠 재밌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머니가 교회 권사님인데, 아들을 생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 책으로 보상을 받고 싶다.(웃음) 내겐 그래서 실존적으로 의미가 있는 책이다.
(장대익 교수에게) ‘밈’의 관점에 대해 좀더 설명해 달라.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을 통해 종교를 박멸하고 싶어 한다. 만약 종교가 인지 부산물이라고 했을 때 없어지겠느냐. 도킨스는 한편으로는 (종교가) 부산물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밈 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 종교라는 밈은 멘탈 바이러스라는 거다. 도킨스는 밈 이론을 전개함으로써 종교도 우릴 힘들게 하고, 정말 자기만을 위해 작동한다고 본다. 그것을 막는 것이 과학이며 과학만이 종교적 병리를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생각이 약간 다른데, 종교를 병리로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종교가 가치를 독점하게 해선 안 되고 자유경쟁을 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것이 인간을 더 좋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 이거다. 그래서 종교를 없애기보다 제자리에 놔야 한다. 없애는 방식보다 좋은 (문화) 유산으로 간직하고 되새기는 ‘문화재화’하는 것이 좋다. 종교는 박멸의 대상은 아니다.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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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