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반의 십자가』
굴곡 많았던 한국 현대사를 종교인이자 사회 원로로서 살아갔던 고 김수환 추기경은 ‘서로 사랑하자.’라는 메시지를 남기셨다고 합니다. 혹자는 사반의 입장에서, 혹자는 예수의 입장에서, 혹자는 로마 주둔군의 입장에서 추기경의 선종을 바라보았습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9.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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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동리는 한국어 순수문학에서 차지하는 그 비중은 차치하고서라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험일 수학능력시험에서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라도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많은 분들이 실제 김동리의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그의 작품들이 대단히 종교적이면서도 한국적 정서를 잘 드러낸다는, 문학 참고서 요약집 수준의 지식은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능용의 요약공부에서 김동리를 정의하라면 아마 ‘향토적’ ‘무속적’ ‘운명적’ 등의 단어로 정리될 듯한데, 그의 작품 중에는 무려 기원전 오리엔트 지방을 배경으로 한 장편 소설도 존재합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사반의 십자가』입니다. 한국적 정서를 대변하는 작가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김동리는 스스로 가장 만족하는 작품으로 오히려 중동 지방의 역사를 다룬 『사반의 십자가』를 꼽습니다. 안타깝게도 김동리 작품 중 『사반의 십자가』는 그 감동과 문학성만큼의 유명세를 얻고 있지는 못하기에, 기회를 얻어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반의 십자가』는 예수가 활동했던 기원 전후의 시대쯤 실제 팔레스타인 땅에서 벌어진 역사를 기초로 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고, 로마 황제의 가혹한 폭정과 유대 민족 특유의 독립심에 의해 민족 독립국가 건설을 강렬히 열망하고 있을 시기였습니다.

오랫동안 선지자들로부터 전승되어 온 유대교의 전통에 따라 그들은 유대 민족을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메시아의 도래는 말 그대로 요원해 보였고, 거세어지는 로마의 폭정에 맞선 무장독립투쟁 단체들이 결성되기 시작합니다.

주인공 사반은 바로 그 무장독립단체의 수장입니다. 한국어로는 열심당熱心黨, 원어로는 젤로트(Zealot, 이 이름은 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프로토스 종족의 기초 유닛을 가리키기도 합니다.)라 불리는 이들은 유대교 근본주의 단체로, 다신교에 기초하고 있던 당시 로마의 지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유일신 야훼만을 섬길 수 있는 국가의 건설을 희망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식으로 무장 투쟁을 통한 체제 전복과 신국가 수립을 꿈꾸었습니다.

사반을 뒤에서 후원하는 예언자 하닷은 사반의 운명을 점치면서, 사반 혼자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이루지는 못하며 또 다른 별 메시아와 손을 잡음으로써 비로소 이스라엘 독립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언을 던집니다. 사반은 이에 자신의 조직을 지하 비밀조직으로 건설하면서 메시아가 등장할 날만을 기다립니다.

서서히 이스라엘 전역에는 메시아가 등장했다는 소문이 나타납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한 청년은 곳곳에서 기적을 행하며 병든 이를 고쳤고,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에게 채찍을 들었고, 구태의연한 율법학자들을 꾸짖은 이야기들이 돌면서 마침내 메시아가 나온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들이 점점 커져 가기 시작합니다.

메시아를 만나야만 혁명이 달성된다고 믿는 사반은 메시아 예수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점차 그에게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직접 예수를 찾아가 먼발치에서 그의 기적을 목격한 사반은 마침내 그가 메시아라고 단정하고 만나 대화를 가지지만, 사반 자신과의 생각과 크게 다른 길을 걷고자 하는 메시아 예수에게 적잖은 실망과 충격을 받습니다.

사반이 걷고자 했던, 유대 민족의 독립은 로마의 압제를 밟고 일어서야만 가능했습니다. 오직 유일신 야훼만을 섬기는 민족들이 스스로 꾸려 가는 낙원 같은 나라를 구성하고 싶었던 사반의 의지는 메시아 예수와는 완전히 다른 길입니다. 예수는 아예 ‘내 나라슴 하늘에 세워질 것이다.’라며 현실 세계에서의 낙원을 이야기하지 않으며, 오히려 ‘원수가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도 내밀라.’는 말로 유대 민족이 아닌 전 인류를 사랑하고 보듬으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비록 예수와의 견해 차이로 인한 실망은 있었지만, 사반은 그가 메시아라는 사실만은 틀림없다고 믿습니다. 사반의 아내가 납치되는 등 여러 제반 상황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사반은 메시아를 만나면 성공한다는 예언에 따라 궐기를 선언하고 로마와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러나 외부 세력과의 연대 문제가 꼬이면서 사반은 배신당해 로마군에 체포되고 맙니다.

한편, 사반과 함께 이스라엘의 해방을 이끌 또 다른 메시아였던 예수는 제자들의 배반에 의해 로마군에 넘겨집니다. 예수의 직속 제자들 중에는 가리옷 유다와 같이 사반의 휘하에서 일하는 열심당원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예수가 체포되어 위기를 맞게 되면, 마침내 기적을 발휘하여 위기를 헤쳐 나오고 로마군을 무찌를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반군의 우두머리 사반은 모진 고문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기적을 일으키리라 믿었던 예수는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받아들이며 순순히 목숨을 내놓는 행보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 해방의 정신적 지주였던 두 사람은 결국 십자가형을 통해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장면이 소설의 제목이 보여주는 클라이맥스입니다.

실제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릴 때 양옆에 두 개의 십자가가 같이 서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날 사형당할 죄수는 총 네 명이었고, 군중의 뜻에 의해 한 명을 풀어주는 제도에 의해 ‘바랍바’ 라는 강도가 풀려납니다. 나머지 세 명은 골고다 언덕까지 자신의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때의 광경을 꽤 상세히 묘사합니다. 예수 옆에 매달린 두 명의 강도 중 한 명은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회개하며, 예수는 그에게 ‘나와 함께 하늘나라로 갈 것이다.’라는 축복을 내립니다. 반면 다른 쪽의 강도는 끝내 회개를 거부하는데, 소설 『사반의 십자가』에서 사반이 바로 이 인물로 설정됩니다.

사반은 오히려 예수를 꾸짖습니다. 너 따위가 무슨 메시아냐고. 제 한 몸도 추스르지 못하면서 오직 허공에 뜬 낙원만을 설파하는 자가, 현실 세계에서 단지 자신과 자기 민족의 낙원조차 구현하지 못하는 자가 어찌 하늘의 낙원을 이야기하느냐며 호통을 치고 사반은 숨을 거둡니다. 그리고 하늘의 이상세계를 꿈꾸었던 예수 또한 곧 숨을 거둡니다.

김동리 (1913 ~ 1995)
소설 『사반의 십자가』가 드라마틱한 이유는 바로 이 구성 때문입니다. 기존 성경에서 단지 부수적 인물로 치부되던 옆자리 십자가의 강도에 작가는 소설적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버무려 예수의 사상과 배치되는, 그러면서도 적어도 유대 민족의 독립이라는 주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의견이 일치하는 새로운 갈등 구조를 만들어 냅니다. 핍박받는 민족이라는 동일한 상황을 놓고 그 해법을 제시하는 두 개의 축, 무장투쟁을 통한 민족독립을 외친 열심당의 사반과 만인에 대한 사랑으로 현실 너머의 낙원을 설파한 예수 두 인물을 대립시키며 작가는 혁명과 종교라는, 실제 인류 역사 속에서 늘 같은 목표를 두고도 반목해 왔던 대주제들이 가진 근본적인 이야기를 독자들 앞에 풀어놓습니다.

주인공인 사반이 고뇌하는 문제는 대립하는 두 주제 중 보다 현실적인 입장에 가깝기에 예수의 입장보다 독자들의 공감을 얻기 쉽습니다. 당장 일제의 오랜 식민지배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의 경우 유달리 그 느낌이 남다를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일제 강점기 역사 속에서는 무장투쟁단체와 외교주의단체, 그리고 그러한 세속적 투쟁을 넘어서 다른 차원에서의 민생 안정을 생각한 종교인들도 존재했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는 누구나 사반과 예수의 입장 앞에서 같은 고민을 만나게 되기에 『사반의 십자가』가 던지는 질문은 묵직합니다.

일각에서는 『사반의 십자가』가 제기하는 문제를 한민족의 역사를 성경에 투영해 만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지나치게 자민족중심주의적인 해석일 수 있습니다. 종교와 혁명의 갈등은 사실 한민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 대단히 보편적으로 발생했던 문제였고, 굳이 김동리라는 역량 높은 작가의 작품을 한반도라는 지역성 안에 가두는 것은 오히려 작품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역으로 오히려 한국어에서 발몱의 재능을 드러낸 한 소설가가 인류 보편적인 문제를 문학이라는 장르 속에 완벽하게 녹여내었다는 점은 세계문학으로서의 각광을 얻을 수 있는 문학적 보편성 부문에서의 최고점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굴곡 많았던 한국 현대사를 종교인이자 사회 원로로서 살아갔던 고 김수환 추기경은 ‘서로 사랑하자.’라는 메시지를 남기셨다고 합니다. 혹자는 사반의 입장에서, 혹자는 예수의 입장에서, 혹자는 로마 주둔군의 입장에서 추기경의 선종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무도 해답을 내지 못했던 『사반의 십자가』 결말처럼, 우리 또한 미처 끝나지 않는 역사의 흐름 속에 그저 한 위인의 마지막만을 지켜볼 뿐입니다. 불현듯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책을 ‘고전 & 스테디셀러’ 리뷰에 꺼내는 이유는 우습지만, 추기경의 선종 앞에서 떠오른 첫 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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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종교
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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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쥐

2009.03.10

김동인과 더불어 우리 문학계의 소중한 분인 김동리를 다시금 기억하게 되어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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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에띠

2009.03.04

내가 읽고 꽤 감명받았지만 그 뒤로 까마득히 잊고있었던 책 이야기를 이렇게 듣게되다니... 가끔씩 생각나곤했었는데 책이름마저 잊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어요. 꽤 오래전에 쓰여진 책이었군요. 이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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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김동리는 한국 근대 작가들 중에서 매우 오랫동안 창작 활동을 유지한 작가다. 1936년 《조선중앙일보》에 「화랑의 후예」로 등단해 1979년 「만자 동경」까지 43년에 걸쳐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김동리 문학은 식민지 시대부터 전쟁을 거쳐 개발 경제 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오늘날 김동리의 소설이 한국 문학에서 차지하는 자리는 넓고 깊다. 그런 만큼 작품들은 언제나 관심과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한국소설사에서 그의 문학이 차지하는 성격을 해명하고자 하는 많은 시도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사상적 측면, 기법적 측면, 미학적 측면, 신화 원형적 측면, 심리적 측면 등 다양한 시각에서 김동리 작품은 분석되고 평가된다. 본명은 김시종으로 1913년 경주에서 태어났다. 경주제일교회 부설학교를 거쳐 대구 계성중학에서 2년간 수학한 뒤, 1929년 서울 경신중학(儆新中學) 4년을 중퇴하고 문학수련에 전념하였다. 이 때부터 박목월(朴木月)·김달진(金達鎭)·서정주(徐廷柱) 등과 교류하기 시작하였다. 193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가 입선하면서 등단하였고, 이후 몇 편의 시를 발표하다가 소설로 전향하면서 1935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화랑의 후예』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산화』당선되면서 소설가로서의 위치를 다졌다. 1937년 「시인부락」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47년 청년문학가협회장, 1951년 동협회부회장, 1954년 예술원 회원,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 교수, 1969년 문협(文協) 이사장, 1972년 중앙대학 예술대학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3년 중앙대학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1년 4월 예술원 회장에 선임되었다. 순수문학과 신인간주의(新人間主義)의 문학사상으로 일관해 온 그는 8·15광복 직후 민족주의문학 진영에 가담하여 김동석(金東錫)·김병규와의 순수문학논쟁을 벌이는 등 좌익문단에 맞서 우익측의 민족문학론을 옹호하기도 하였다. 이때 발표한 평론으로, 『순수문학의 진의』(1946), 『순수문학과 제3세계관』(1947),『민족문학론』(1948) 등을 들 수 있다. 작품활동 초기에는, 한국 고유의 토속성과 외래사상과의 대립 등을 신비적이고 허무하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를 통하여 인간성의 문제를 그렸고, 그 이후에는 그의 문학적 논리를 작품에 반영하여 작품세계의 깊이를 더하였다. 6·25전쟁 이후에는 인간과 이념과의 갈등을 조명하는 데 주안을 두기도 하였다. 또한 김동리는 자신의 문학적 출발이 죽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평생 죽음을 어떻게 초극할 것인지에 대한 인간 삶의 근원적인 문제에 집착했다. 그러나 김동리의 작품에 나타난 죽음의 의미는 단순히 죽음 자체의 추구로 끝나지 않고 여러 가지 원형적 이미지들을 통해 오히려 강렬한 생명 의식을 드러낸다. 저서로는 소설집으로 『무녀도(巫女圖)』(1947), 『역마(驛馬)』(1948), 『황토기(黃土記)』(1949), 『귀환장정(歸還壯丁)』(1951), 『실존무(實存舞)』(1955), 『사반의 십자가』(1958), 『등신불(等身佛)』(1963), 평론집으로 『문학과 인간』(1948), 시집으로 『바위』(1936), 수필집으로 『자연과 인생』 등이 있다. 예술원상 및 3·1문화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1995년 8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배우자 또한 소설가인 손소희였으며 아들 김평우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