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 로버트 우드러프의 1퍼센트 몰입 “콤플렉스를 넘으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스스로 발견한 그 1퍼센트는 기득권의 품속에서 만들어진 99퍼센트의 에너지보다 값지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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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를 꼽으라면 첫째가 ‘OK’이고, 둘째가 ‘코카콜라’라고 한다. 창설 60주년이 된 유엔은 192개국의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지만, 코카콜라는 무려 200개국에 진출해 있다. 코카콜라는 이제 전 세계적인 브랜드이자 가치다.

그 뒤에 로버트 우드러프가 있다. 그는 코카콜라를 전 세계인의 기호품으로 만들었고,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브랜드로 키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두고 카를 마르크스도 이루지 못한 ‘붉은 세계’의 꿈을 코카콜라로 실현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원래 코카콜라는 약국에서 불과 5센트면 살 수 있는 소화제 대용 음료였다.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약국을 경영하던 존 S. 펨버턴 박사가 다양한 약재를 섞어 만든 것이었다. 이 음료의 가치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캔들러라는 사업가였다.

그는 펨버턴이 죽은 후 2,300달러에 사업권 일체를 사들였다. 그리고 회사를 설립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이며 음료 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코카콜라는 애틀랜타 최고의 음료가 되었고, 캔들러는 후에 시장으로까지 선출되었다.

캔들러의 야망은 여기까지였다. 그는 자신이 처음 투자한 2,300달러의 1만 배에 달하는 2,500만 달러에 코카콜라 사업권을 팔았다. 그것을 산 사람이 어니스트 우드러프였고, 매사 불성실한 태도로 말썽만 일으키던 골칫거리 아들 로버트 우드러프가 바로 그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역설의 법칙

프로이트는 “아들은 아버지와의 갈등을 통해 성숙한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독립할 때 진정한 자립심을 얻게 된다는 의미이다. 사르트르는 한술 더 떠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일찍 죽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소위 ‘아버지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로버트 우드러프를 보면 이 명제가 딱 들어맞음을 알 수 있다. 애틀랜타 근처의 부촌에서 자란 그는 고등학교 때 낙제를 거듭하다 끝내 쫓겨나고 말았다. 아버지가 남자답게 키우기 위해 보낸 군사 학교에서도 그는 적응하지 못했다. 마지막 기대를 걸고 보낸 감리 신학원인 에모리 대에서도 추방당했다.

1909년 에모리 대 학장이 그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저는 당신의 아들 로버트가 이번 학기에 학교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만족스러운 성적을 내지 못했고, 그것을 보충할 방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로버트는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며, 게다가 결석도 잦습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당신의 아들은 학생으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만일 학업을 지속할 뜻이 있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를 권고합니다’라고 쓰여 있을 정도였다. 이렇듯 그는 부모에게 언제나 참담함만을 안겨 준 불효자였다.

젊은 시절 로버트 우드러프는 학교를 싫어했고, 아버지와 되도록 멀리 떨어져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안락한 삶의 기반을 물려받는 대신 유리 공장에서 일당 60센트를 받고 삽으로 모래를 퍼 담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후일 이 직업이 참 좋았다고 털어놓았는데, 아버지가 원하던 일과 정반대되는 일이라는 점도 한 가지 이유였다고 했다.

아버지에게 로버트 우드러프는 무능력한 아들이었다. 그러나 화이트 모터스라는 회사의 직원 로버트 우드러프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잠재력이 무엇인지를 발견했다. 아버지와의 갈등에 억눌려 발산되지 못하던 재주를 계발해 그 기량을 맘껏 발휘했다.

화이트 모터스의 고용주는 그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로버트 우드러프의 사업 구역과 권한을 늘려 주었으며, 높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후에 로버트 우드러프는 트럭을 파는 일도 했는데,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본인만의 사업 영역을 넓혀 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기업 경영 전반에 대한 능력을 착실하게 키워 나갔다. 마침내 그는 화이트 모터스의 매니저 자리에서 부사장직에 올랐으며, 중견 기업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위치에까지 이르렀다.


이렇게 로버트 우드러프가 성공을 거듭하는 동안 코카콜라는 경영 위기를 맞고 있었다. 미국 시장에서는 충분한 명성을 쌓았지만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이 여의치 않았다. 코카콜라의 세계화라는 숙제를 두고 아버지는 아들을 떠올렸다.

부자 아들로 살기 싫다며 자신을 떠나 독립적으로 명성을 쌓고 있던 아들 소식을 들으면서 그는 언젠가 아들을 스카우트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적기라고 생각한 어니스트 우드러프는 아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아버지에게서 스카우트 제안을 받을 당시 로버트 우드러프는 화이트 모터스에서 연봉 8만 5,000달러를 받고 있었다. 아버지가 제시한 연봉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3만 6,000달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돈에 개의치 않고 아버지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업 능력을 키우며 자신감을 회복한 그의 첫 번째 바람은 코카콜라 경영 책임자가 되어 아버지에게 자신의 능력을 맘껏 보여 주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영지(領地)에서 아버지보다 더 멋지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온 것이다.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나면서 그는 자신의 잠재력(남을 설득하는 기술)을 발견했다. 늘 부족하다고 여겼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1퍼센트의 잠재력을 찾아낸 것이다. 그는 스스로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풍족한 환경을 거부했고, 오직 자신의 힘으로 잠재력을 찾아냈으며, 끈기 있는 도전을 통해 그 힘을 99퍼센트까지 끌어올린 다음, 마지막 1퍼센트의 몰입으로 성취의 에너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로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현장에서 느끼는 매력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오직 푸른 것은 저 현장의 소나무’라고 했다. 로버트 우드러프 역시 이론보다 현장에 더 매력을 느꼈다.

그는 모래 공사판, 세일즈 시장, 음료 회사 등을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모든 공부를 했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거리에서 아낙사고라스와 같은 뛰어난 학자들을 쫓아다니며 배웠듯이, 그는 무학의 열등감에 시달리거나 신세를 한탄하기보다는 생생한 현장 학습에 매력을 느끼면서 긍정적인 자세로 도전해 나갔다. 이렇듯 능동적인 현장 학습은 그에게 실현 가능하면서도 매력적인 비전을 키워 주었다.

로버트 우드러프는 야전 사령관으로 투입되었다. 그는 현장에서 갈고닦은 순발력과 공격적인 경영 전략으로 코카콜라가 처한 위기를 차근차근 해결해 나갔다. 그는 우선 판매 담당자들을 소집한 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해고했다. 총을 들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쿠데타였다. 그리고 24시간 후 그들을 서비스 부서로 복직시켰다. 다소 느슨했던 조직에 긴장감이 감돌았고, 2세 경영자에 대한 편견은 일순 사라졌다. 단숨에 조직을 장악한 것이다.

로버트 우드러프는 그동안 닦은 실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했는데, 특히 마케팅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의 꿈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전 국민이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코카콜라가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나의 꿈은 내 세대에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코카콜라를 한 잔이라도 맛보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는 늘 코카콜라를 보다 많은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고민했다.

당시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이었기 때문에 수송과 유통, 해외 시장 개척이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로버트 우드러프는 이런 시대적 상황을 오히려 세계화의 발판으로 삼았다.

우선 모든 전장에서 단돈 5센트면 코카콜라를 사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여러 전투 지역에 생산 시설을 갖추고 특별히 기술 감찰관을 임명했다. 군인들은 맥주 대신 코카콜라를 마시며 갈증을 해소했다. 소위 ‘전쟁 마케팅’의 효시인 셈이다.

전장에서 피어나는 휴먼 스토리도 간과하지 않았다. 로버트 우드러프는 코카콜라와 연관된 따뜻한 이야기는 즉시 마케팅 소재로 삼도록 했다. 스코틀랜드에서 훈련 도중 비행기 추락 사고가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비행사는 병원에서 의료진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살아났는데,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던진 첫 마디가 “코카콜라 좀 주세요”였다. 이 말은 종군 기자들의 긴급 타전을 통해 모든 언론에서 기사화됐고, ‘휴먼 스토리 마케팅’의 좋은 사례로 남았다.

비슷한 예로 ‘애국 마케팅’도 있다. 로버트 우드러프는 전쟁을 계기로 아이젠하워와 두터운 친분을 쌓게 되었다. 전쟁 중 누군가가 필요한 게 있느냐고 물어보자 아이젠하워는 “코카콜라 한 잔만 갖다 주겠소?”라고 말했다. 그것도 수십 명의 기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말이다.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이 된 이후 뉴스에서는 그가 해외 순방 중에도 빨대로 코카콜라를 마시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로버트 우드러프는 이를 마케팅으로 이용해 ‘코카콜라는 위대한 미국인의 국민 음료, 미국인의 애국심’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후일 그는 사업 비결을 물어보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혈관 속에 흐르는 것은 피가 아니라 코카콜라입니다.”

그렇다. 로버트 우드러프의 엄청난 열정 덕분에 오늘날 코카콜라는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코카콜라를 맛보는 꿈을 갖고 있었다. 세상 어딜 가든 코카콜라가 도처에 깔려 있기를 희망했다. 그의 희망대로 오늘날 코카콜라는 아프리카의 사막에서부터 중국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다. 로버트 우드러프의 비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스스로를 부족하게 만드는 용기

요즘 젊은이들은 아버지의 성취에 기대거나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잠재력 계발을 방해하고 진정한 경쟁력을 저해할 뿐이다. 우리는 로버트 우드러프에게서 안주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젊은 시절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아버지에게 기대어 풍족한 삶을 살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맨주먹으로 뛰쳐나가 밑바닥부터 뛰어서 스스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했다.

풍족함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부족하게 만들어 보라. 거기서 1퍼센트의 새로운 잠재력을 발견해도 성공적인 출발이다. 스스로 발견한 그 1퍼센트는 기득권의 품속에서 만들어진 99퍼센트의 에너지보다 값지다.

특히 위기 시에 1퍼센트의 잠재력은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99퍼센트를 갖추고도 투지와 마지막 1퍼센트를 투입할 역량이 안 되어 끝내 에너지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로버트 우드러프가 만약 아버지의 품속에 안주하며 자족했다면, 코카콜라를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는 힘을 기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로버트우드러프 #코카콜라 #도전
9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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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2008.09.10

요즘 부쩍 의기소침해 있습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희망적이었던 몇 년전과는 사뭇다릅니다.
이제 서서히 나의 경쟁력을 위해 해야할 일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다녀야 할 때가 온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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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시렁

2008.09.10

넌 뭘잘하는데?? 너의 장점은??? 너만의 경쟁력은???
이런질문에 항상 머리만 긁적이며 부지런한거?...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최고가 될수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생각에서 끝내기만하는 나 아직 늦었지만 무언가
나를 위해 투자할수있는 충분한 30대 나만의 무언가를 위해 무안한 노력을하고싶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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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돌

2008.09.10

내용이 쉽게 마음에 와닿아 좋네요. 내안의 최고의 나를 만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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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현덕

현재 카이스트 지스쿨(KAIST G-School) 원장으로 재직 중으로 ‘인공지능 경영 과정(AIB)’을 설립했고, ‘AI스토리텔링 학습법’을 설계했다. AI의 원리를 기술과 인문, 경영을 아우르는 융합적 관점에서 녹여 깊은 통찰력을 제공하고 있다. 영국 애버딘대학교 교수, 미국 조지메이슨대 석좌교수, 다보스포럼 수석자문역을 거쳐 현재 뉴욕대-카이스트(NYU-KAIST) 혁신캠퍼스 석좌교수를 겸하고 있다. 인공지능 관련 주요 연구로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IEEE(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 국제학술대회에서 “Vision Transformer Equipped with Neural Resizer on Facial Expression Recognition Task”(IEEE, 2022 공저)를 발표했으며, 『인공지능 스토리텔링 학습법』, 『AI 트랜스포메이션 사례 연구』, 『인공지능 시대의 AI영재교육론』 등 다수의 AI 논문과 『나도 피카소 그림을 살 수 있다』, 『AI 싱킹과 협업 지성』 등을 저술했고, 『명탐정 준의 AI 파란노트』를 감수했다. 모두가 잠든 시각, 새벽 3시에 깨어 혼돈스러운 세상의 조각들을 모아본다.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과 삶에 대한 의지를 통찰해야 경영의 세계를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사색하고 글을 쓴다. 비즈니스의 근원이 되는 인간의 욕망, 삶, 정치, 경영 트랜드 등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 대하여 인문경영의 관점에서 융합하고 통찰하려는 노력을 쉼 없이 경주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의 원리와 흐름을 인문+경영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서 공유경제와 긱 워커들(Gig workers)의 미래를 주시해 본다. 블록체인과 인문경영은 세상의 혼란스러운 조각을 모아서 분석한, 새벽의 산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