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2005년산 공포증?
포도의 생산연도를 나타내는 빈티지가 중요한 이유는 와인별로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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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마시거나 고를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와인의 생일을 나타내는 빈티지Vintage다. 포도의 생산연도를 나타내는 빈티지가 중요한 이유는 와인별로 보관할 수 있는 기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포도품종과 제조 방법에 따라 그 보존 기간은 달라진다. 카베르네 소비뇽 같은 품종으로 만든 와인은 상대적으로 오래 보관할 수 있지만, 가메Gamay로 만든 보졸레 누보 같은 와인은 그렇지 못하다. 양조상으로 볼 때도 오크통 속에서 충분히 숙성을 거친 와인과 그렇지 못한 와인은 그 보관 기간이 각각 다르고 언제 마시느냐에 따라 맛도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어떤 해에 생산된 와인을 언제 마시느냐가 중요하다. 빈티지가 무조건 오래됐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최적의 숙성 시기에 마셔야 한다.

빈티지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포도의 발육과 숙성을 좌우하는 그 해의 기후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적절한 시기에, 적당한 강우량과 충분한 일조량은 좋은 빈티지의 필수 조건이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에선 와인의 빈티지를 자신이나 배우자, 자녀가 태어난 해와 연결해 구입하는 사례가 많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난 아이를 늦게 가져서 첫째가 1997년생, 둘째가 2001년생이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와인의 경우 둘 다 그 해의 와인들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최근 10년 동안 프랑스 와인을 살펴보면 론 지방은 비교적 기후가 좋기 때문에 지난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안 좋았던 해가 거의 없다. 대부분 빈티지가 고르고 괜찮았던 것 같다. 부르고뉴는 최근 10년을 살펴보면 1996년, 1999년, 2002년, 2005년이 좋았다. 특히 부르고뉴 2005년산은 세기의 빈티지로 지난 30년 동안 가장 좋았던 해로 꼽힌다. 얼마 전 ‘에세조 2005년산’을 마셨을 때, 그 깊은 맛과 마시고 난 후 피니시(잔향)가 너무 좋아서 그 전에 마셨던 와인들은 전부 잊어버렸을 정도였다. 이에 비해 부르고뉴 2004년산 와인의 맛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다. 같은 프랑스라도 빈티지에 따라 부르고뉴와 보르도의 품질이 완전히 다를 때도 많다. 예컨대 부르고뉴에서 좋았던 해로 불리는 1999년에 보르도 와인 제조업자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보르도의 경우 좋은 빈티지를 꼽는다면 1982년, 1986년, 1990년, 1995년, 1996년, 2000년, 2005년이다. 이 가운데에서 보르도 2005년산은 부르고뉴와 마찬가지로 최근 가장 좋았던 해로 손꼽힌다.

문제는 2005년산의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점이다. 일본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선 ‘보르도 2005년산 공포증’이 번지고 있을 정도다. 2005년산의 가격은 밀레니엄 빈티지에 작황까지 좋았던 2000년산보다도 훨씬 비싼 편이다. 2005년산의 가격 상승 요인은 단순히 포도 작황이 좋았다는 것 외에도 제한된 고급 와인을 한국?중국?러시아 등 신흥 와인 소비국들의 부자들이 매점하려고 경쟁하는 데 있다. 실제 보르도 2006년산의 경우도 품질은 평균 정도인데, 선물시장에서 수요가 넘쳐나면서 가격이 올라간 채 내려가지 않고 있다. 반대로 현재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보르도 2004년산은 한국이나 중국, 러시아 등이 그다지 와인에 주목하지 않던 시기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2004년과 2006년은 비슷한 빈티지로 보인다.

보르도 내에서도 보르도 위쪽에 있는 메독 지방과 보르도 아래쪽에 있는 페삭 레오냥(옛 그라브) 지방의 와인들은 빈티지에 따라 품질의 차이가 크다. 메독 지역의 와인들이 굉장히 좋았던 해이지만 그라브 지역은 의외로 안 좋을 때가 있다. 이처럼 프랑스는 지역마다 좋은 빈티지가 달라 복잡하지만 골라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우리 남매는 매년 보르도의 메독과 그라브, 부르고뉴와 론의 와인을 각각 사서 마셔보고 어떤 것이 좋은지 검토하는 작업을 꼭 거친다. 문제는 역시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지금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빈티지 차이가 이탈리아에서도 현저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1990년대에는 기후가 비교적 안정적이어서 그렇게 나쁜 해가 없었지만,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들쑥날쑥하고 있다. 예를 들면 2003년은 폭염으로 좋은 빈티지였지만, 2002년은 굉장히 험한 빈티지였다. 토스카나 지방은 연일 비가 내렸고, 피에몬테Piemonte의 바롤로와 바르바레스코에는 우박이 며칠째 끊이지 않았다. 동양에서 우박 하면 싸라기눈 같은 것을 떠올리겠지만, 이탈리아 우박은 동양과는 거리가 멀어서 야구공만한 우박들이 엄청난 속도로 떨어진다. 주먹만한 우박이 떨어져서 지붕을 뚫고, 사람들이 맞으면 크게 다치는 경우가 있다. 하물며 포도밭 피해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프랑스 보르도에서 올드 빈티지 중 최고로 꼽히는 것은 1945년, 1961년, 1982년이다. 그 해에 포도 농사가 대풍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최고의 와인이 생산된 해로 유독 주목 받는 빈티지는 1945년산이다.

영국의 유명 와인 잡지 《디캔터Decanter》에서는 ‘죽기 전에 마셔야 할 100대 와인 리스트’를 뽑는데 2004년에 1등을 차지한 와인이 바로 ‘샤토 무통 로쉴드 1945년산’이었다. 미국의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서도 20세기 최고의 와인으로 꼽기도 했다. 이 와인에 대해서만은 저명한 와인 비평가들도 한결같이 만점을 주고 있다. 세계적인 와인 비평가인 로버트 파커도 “최고 점수가 100점이기 때문에 100점을 줄 수밖에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2007년 2월 말에는 소더비 경매에서 1945년산 샤토 무통 로쉴드 4.5ℓ짜리가 무려 26만 달러(약 2억5,000만원)에 팔려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와인이 만들어진 1945년은 2차대전이 마무리되던 해였다. 2차대전 당시 무통 로쉴드 포도원은 전시 상황이라 정부 소유로 귀속돼 있었고, 주인인 바롱 필립 로쉴드는 드골 장군의 자유 프랑스군 소속으로 항전하고 있었다. 부인은 유대인이란 이유로 독일군에 의해 가스실에서 생을 마쳤고 외동딸 필리핀은 겨우 12세였다. 가꾸고 지켜줄 주인이 없는 포도원은 황폐해졌고, 포도밭 가꾸기와 와인 제조에 온 힘을 쏟았던 기술자들도 떠나고 없었다. 그러나 포도들은 스스로 봄 햇볕으로 꽃을 피웠고, 아침 안개와 이슬, 한낮의 태양 열기와 비바람을 맞아가며 송이 송이를 맺어갔다. 전쟁이 끝난 후 바롱 필립 로쉴드가 귀가했다. 그는 우선 거칠어진 포도원을 추슬렀다. 심지어 독일 포로들을 동원해 나무 가지치기와 잡초 제거 등을 시켰다. 봄 서리로 인해 포도송이는 줄어들었고,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다. 평년의 절반도 안 되는 7,000상자 정도의 와인을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와인의 깊고 진한 향, 중후한 맛과 무게를 느끼게 하는 질감에 미소를 지었다. 어디에서도, 어떤 조건에서도 포도밭을 잊지 않았을 주인의 마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포도는 자연의 변화무쌍함 속에 꿋꿋이 버티며 훌륭한 와인의 탄생을 준비해 주었다. 아내를 잃은 고통과 전쟁터에 있으면서도 아내를 그리워 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치유해주는 역할까지 했다.

1982년산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 보르도 생줄리앵 지역의 그랑 크뤼 와인 중 2등급이지만 특급으로 업그레이드 인정을 받고 있는 ‘레오빌 라스카스Leoville Las Cases 1982년산’은 로버트 파커가 7년 동안 5회 이상의 시음을 통해 모두 100점을 던진 명품 중의 명품이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오랫동안 와인을 담당해 온 마이클 브로드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와인의 종류에는 일상적으로 마시는 것, 양질의 와인, 상급 와인 그리고 위대한 와인이 있다. 상급 와인이 되려면 지형, 기후 그리고 와인 제조업체의 기술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정말 위대한 와인의 완성은 이런 요소만으론 부족하다. 천재 예술가가 태어나는 일과 같이 자연에 의해 수많은 우연들이 서로 겹쳐서 탄생할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와인의 기쁨>은 ‘중앙books’와의 제휴에 의해 연재되는 것이며, 매주 수요일 2개월간(총 8편) 연재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와인 #보르도
2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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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4.29

1945년산 와인이 아직도 남아있더니 그 가격 정말 어마어마하겠네요. 그런데 그 와인도 마시는 시기 지금쯤 되면 넘어버리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데. 올드빈티지라는 건 그냥 오래되면 될수록 좋은 건지?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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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나영

2007.12.04

[스크랩완료] 와인의 기쁨" 신의 물방울이라는 것을 잘 몰랐었는데 얼마전 방송에서 와인의 기쁨의 저자 사인회를 보면서 와인의 기쁨책의 내용이 더욱 궁금해지고 와인의 저자 아기 다다시의 와인에 대한 예찬론을 보고 싶어요.저도 와인에 대해 정말 와인맹이지만 이책을 통해 와인의 진정맛을 은미하고 싶고 신의 물방울을 느끼고 싶어 담아갑니다.정말 와인에 대해 배우고 싶고 신의물방울에 대해 감동을 받고 싶어요.또한 와인에 관련된 일을 하는 친구에게 꼭 이책을 선물 해주고 싶어요.이책을 통해 연말 모임에서 와인에 대한 해박한지식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요.이제는 우리도 분위기 있게 신의 물방울을 은미하면서 즐길수 잇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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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케익

2007.12.03

"와인의 기쁨" 신의 물방울의 저자 아기 다다시가 이야기해 주는 와인이야기라니 벌써부터 호기심이 일어요^^ 와인을 마시기만 할뿐 와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이책 "와인의 기쁨"은 와인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는거 같아 꼭 읽고 싶어져요^^ 담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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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타다시

10여 년 전부터 함께 일해 온 기바야시 신(樹林伸), 기바야시 유코(樹林 ゆう子) 남매의 공동 필명으로, 이 외에도 공동 혹은 한 명이 사용하는 아리모리 조지(有森丈時), 아마기 세이마루(天樹征丸), 아오키 유야(靑樹佑夜), 안도 유마(安童夕馬), 이가노 히로아키(伊賀大晃) 등의 필명이 있다. 흔히 누나인 기바야시 유코를 '아기 타다시 A', 동생인 기바야시 신은 '아기 타다시 B'로 나눠 부른다. 이 두 사람은 와인을 소재로 하여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신의 물방물』 뿐만 아니라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 (한국 출간명 『소년탐정 김전일』)』, 『시바토라』 등 대히트작들을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여러 개의 필명을 사용하는 작가이다보니 베일에 가려진 부분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표면상으로 동생인 기바야시 신의 프로필만이 떠올라 있었지만, 두 사람의 공동필명이란 사실이 밝혀지며 세계의 만화시장을 한 번 더 들썩였다. 아기 타다시 A, 누나인 기바야시 유코는 아기 콤비로서의 활동 이외에도 개인적으로는 여성지에서의 만화 원작 및 르포 기사 게재 등 프리 저널리스트로서 정열적으로 활동을 펴고 있다. 아기 타다시 B, 동생 기바야시 신은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 졸업하였고, 1987년 <주간 소년 매거진>에 입사하여 다년간 편집자로 활동하였다. 이후 독립하여 만화 스토리 작가, 소설가, 드라마 기획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아시아 뿐만 아니라 와인의 본고장인 유럽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신의 물방울』은 두 사람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이다. 5분 거리에 살며 아파트 한 채를 빌려 공동의 와인셀러로 만들고, 거의 매일 만나 함께 와인을 마시며 서로의 느낌을 이야기하며 그 과정에서 스토리를 이끌어낸다는 그들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공동 집필을 한다고 한다. 독특하면서도 기발한 스토리로 다양한 팬층을 갖고있는 이들의 행보는 앞으로도 거침없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