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 담다, 이순원의 『나무』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석권한 소설가 이순원의 2007년 신작 『나무』는 모든 연령을 위한 읽을거리다. 허구라는 점에서는 소설을 닮았고, 순수함을 그려낸 투명함은 동화를 닮았고, 나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우화를 닮았다.
200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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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순원의 서재에는 특이하게도 나무로 만든 투박한 물레가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꽤 오래된 물건으로 보이는 물레는 그의 할아버지가 직접 만들어 할머니와 어머니가 사용한 물건이다. 보통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혹은 어머니가 딸에게 물려주는 물레를 남성인 그가 가지고 있는 이유가 재밌다. “물레에서 실이 뽑아져 나오듯 글도 술술 나오라고, 그런 의미로 주셨어요.”
문학잡지와 소설책, 오래된 문학전집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서재는 소설가의 서재다웠다. 한쪽 책꽂이에 그동안 사용한 노트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점도 이채로웠다. “글씨가 워낙 악필이라 처음 소설 쓸 때 타자기로 쓰다가, 그 다음에 워드, 컴퓨터로 옮겨 갔습니다.”
나무 할아버지의 이야기 『나무』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석권한 소설가 이순원의 2007년 신작 『나무』는 모든 연령을 위한 읽을거리다. 허구라는 점에서는 소설을 닮았고, 순수함을 그려낸 투명함은 동화를 닮았고, 나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우화를 닮았다. 나무의 이야기지만 삶의 이야기를 닮았다. 담백하고 청량한 이야기, 따뜻하면서도 긍정적인 힘이 넘치는 이야기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는 1년을 준비해서 15일 만에 원고를 완성했고,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의 집필기간은 한 달이었다. 『나무』는 2년이 걸렸다.
“그다지 긴 글이 아닌데 『나무』는 2년 정도 걸렸어요. 준비기간까지 합치면 4년. 오래 붙잡고 있다고 공을 더 들이는 것도 아니고, 좋은 글이 나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만 『나무』는 방향성 때문에 중간에 여러 번 엎어버려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동화를 생각했지만 글을 쓸수록 장르의 벽은 사라졌다. 그저 나무를 설명하고, 나무의 느낌을 잘 전달해, 사람들이 나무를 친구처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나무처럼 인간과 잘 어울리는 풍경도 없다. 그러나 이순원의 『나무』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사물이 아니라 품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다. 수줍어하는 나무가 있고, 까부는 나무도 있고, 수다쟁이 나무도 있고, 당돌한 나무가 있다. 매년 하나씩 더한 나이테만큼 지혜를 더해간 나무가 있다. 할아버지 집 마당에 있는 밤나무, 앵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매화나무가 정답게 가지를 뻗어가며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들이 복숭아 속살보다 더 보드랍고 달콤하다.
또, 『나무』에는 생로병사의 굽이굽이가 있고, 저무는 세대와 떠오르는 세대의 아름다운 우정이 있고, 춘하추동의 고운 풍경들이 숨겨져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할아버지 마당은 제 고향집입니다. 『나무』는 지금까지 쓴 제 글 중에서 가장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 가족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죠. 이전까지 제가 고향 마을을 모델로 해서 글을 썼지만 그건 배경만 빌려오고 그 속의 인물과 사건들은 모두 허구였어요. 그에 비해 『나무』는 저의 이야기이도 합니다.”
엄마가 읽고 아이에게 주는 책 『나무』
전생에 나무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나무를 사랑한다. 50년 동안 나무 곁에서 나무의 속사정을 함께 나누며 살았다. 『나무』에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작가의 할아버지고, 그가 가꾼 아름다운 나무 정원은 지금도 남아있다고 했다. 작가의 블로그(은비령http://blog.naver.com/lsw0502)에 가면 『나무』의 주인공 할아버지 밤나무와, 밤나무를 심은 조부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어렸을 때는 존경하는 사람은 다 멀리 있는 사람이잖아요. 위인전으로 읽은 이순신 장군 같은. 가족은 친근하긴 해도 존경의 대상이 아니죠. 그런데 커가면서 할아버지에 대해 ‘대단한 분이었구나’ 하고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기억에 남아있는 할아버지가 어떤 모습인지를 물었다. “노동을 즐기는 분이셨어요. 타고난 성실함이 있는 분이었죠.” 그리고 조부는 현명한 분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나무는 후손을 위해 심는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나무를 키워보면 그렇지 않아요. 책에도 썼지만 나무는 당대에 그 덕을 봅니다. 아이들보다 빨리 자라죠. 그런데 사람들은 곡식보다 늦게 자란다고 나무를 심지 않죠. 저걸 심어서 언제 덕을 보나 하면서요. 그런데 묘목을 심으면 3~4년이면 열매를 맺어요. 가끔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언제 저 나무가 저렇게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자랐나 하고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제 아이가 어렸을 때 심은 나무들도 벌써 아파트 2층 높이만큼 자랐더군요.”
『나무』는 3대의 삶을 함께한 할아버지 밤나무가 여덟 살 먹은 꼬마 밤나무와 함께 나누는 대화가 주된 내용이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조곤조곤 삶의 이치를 옛이야기 하듯 풀어놓는 이야기지만 교훈과 감동을 강요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바람이 차도 봄에는 잎이 돋아나는 자연의 순리처럼 『나무』는 흘러간다. 그곳에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것은 독자의 운일 따름이다.
“저는 이 책을 모든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경계했던 점이 ‘유치해지지 말자’ ‘눈높이를 낮추지 말자’는 거였어요. 눈높이는 맞추는 거지 낮추는 게 절대 아니죠. 그리고 교훈을 담으려고 애쓰지도 않았어요. 사람은 살면서 배워야 할 것이 참 많아요. 눈 속에서 피는 매화, 자기 때를 기다리는 대추나무… 교훈적이라면 교훈적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나무의 삶일 뿐이죠. 욕심이 있다면 엄마가 읽고 아이에게 건네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겁니다.”
할아버지 나무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끝맺은 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에는 죽음의 미학이 있습니다. 한 나무의 죽음이 주는, 생명의 끝남 이상의 찡함, 묵직한 울림을 주고 싶었어요. 죽음을 통해 나무가 생의 의미를 완성하는 거죠. 완결이라고 할까요.”
작가 생활 20년, 전업 작가 생활 12년
이순원이라는 이름 앞에는 ‘소설가’라는 타이틀이 제일 먼저 붙지만 요즘에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에도 익숙해졌다.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되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반짝반짝 빛난다’고 평하면서 그들의 새로운 시도를 반겼다.
“제가 30대에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를 발표했을 때 신세대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줬어요. 그 소설이 그 시대에는 기존 소설 문법들과 달랐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우리 문단은 ‘새로운 것은 얕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작가 입장에서도, 젊은 작가들을 끌어주고 싶은 선생님 입장에서도 답답할 때가 많아요. 텔레비전만 해도 불과 몇 ? 전 것보다 지금 것이 훨씬 성능이 좋잖아요. 그런데 문학만큼은 30년 전 문학이 좋다고 고집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문단의 원로 작가들이 자기 방식만을 고집하고, 자신들이 하는 문학이 순정하다고 고집하는 이유가 뭔지… 그리고 선배 작가들이 그런 말을 할 만큼 열심히 글을 썼나요?”
또, 그는 장편을 쓰기 힘든 현재의 문단 분위기에도 일침을 가했다. “젊은 작가들이 너무 단편에만 매달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문단 분위기가 단편에 몰입하게 만드는 거죠. 단편은 그야말로 노블(novel)도 아니고 쇼트 스토리(short story)에 불과해요. 세계 문학사에도 단편으로 기억되는 작가는 셋, 넷… 체홉, 카프카, 모파상, 오 헨리 정도예요. 그런데 우리 문단에는 젊은 작가뿐만 아니라 이제 제대로 된 장편을 내야 하는 중견 작가들도 장편의 실패를 단편으로 만회하고, 단편으로 숨으려고 한단 말이죠. 그러니 발전이 없죠. 툭 까놓고 이야기해보면 대표성을 가진 작가 중에 대표 장편이 없는 작가가 많단 말이죠. 그런 것을 극복해나가는 게 작가의 일입니다. 그게 싫다면 도대체 왜 글을 쓰려는 거죠?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면 ‘너는 얼마나 장편을 썼느냐?’라고 바로 공격이 들어오겠지만.(웃음) 작가에게 슬럼프가 있다면 그건 장편이 안 나올 때라고 생각해요.” 그가 지금까지 쓴 장편 중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하는 게 뭐냐고 묻자 『수색, 그 물빛 무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단어 하나 비문 하나 용서하지 않는 엄한 선생님이다. 엄한 가르침 덕에 제자들의 실력은 날로 일취월장해 신춘문예 사관학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란다. 그가 싫어하는 건 반짝이를 달아 멋을 낸 문장이다. “제가 소설 공부를 하면서 모범으로 생각했던 건 조세희 선생님의 문장이었습니다. 조세희 선생님의 문장은 수사를 배제하면서 내용으로 운율을 드러내는, 문장 자체로 운율을 드러내는 그런 문장이죠. 그런데 문학 지망생들은 반짝이나 수사의 유혹을 못 이겨요. 힘들이지 않고 멋있어 보이니까. 수사는 부족할수록 좋습니다. 문장을 다듬을 때도 ‘그것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두 점 사이에 수많은 점이 있어도 그 점을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건 직선 하나뿐이니까요.”
그리고 ‘전업 작가’가 아니어서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람에게 이런 충고를 남겼다. “제가 전업 작가가 된 지 12년입니다. 다들 전업이면 글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환경의 여건, 작업의 여건이 달라질 뿐이지 전업 작가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사와 글쓰기를 병행할 때의 그 열정이 그리울 때조차 있어요.”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 이순원의 세계
모든 작가는 자기가 그릴 수 있는 세계가 있다. 그것은 주제이기도 하고 공간이기도 하며 시간이나 특정 인물에 고정될 수도 있다. 포크너는 ‘요크나파토파’라는 가공의 마을을 만들어냈다면, 이순원은 ‘은비령’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흔히, 그를 ‘강원도의 작가’라고 부르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강원도라는 특정 지역에 묶여 있지 않다. 그가 작품을 통해 그려내는 세계는 좀 더 근원적이고 시원적이며, 원초적인 것이다.
“작가가 쓸 수 있는 것이 자기 세계라고 할 수 있는데, 넓은 사람이 있고 좁은 사람이 있죠. 30대 때는 사회적인 요소가 작품에 많았는데 40대 이후에는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이 글 속에 담기게 됩니다. 작가의 세계는 태생과 성장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말을 찾아서」나 「아비의 잠」 같은 작품이 제 성장과 태생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작품입니다. 아마 독자들이 기억하는 내 작품은 이런 작품들이 아닐까 싶어요. 이효석의 수많은 작품 중에 「메밀꽃 필 무렵」이 기억되는 것처럼 좋은 작품은 작가의 태생과 성장과 인성과 밀접한 작품입니다. 빛나는 한 작품인 셈이죠.”
열매를 맺는 나무는 그렇지 않은 나무보다 수명이 짧다. 자신의 생명을 열매와 맞바꾸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나무는 예술가와 닮았다. 예술가도 생명을 줄여서라도 작품을 남기기를 열망하니까. 쉰이 넘으면 회사원은 은퇴를 해 제2의 인생을 가진다. 그러나 소설가 이순원에게 쉰이란 나이는 제대로 된 전성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필생의 마스터피스를 쓰는 여정이 비로소 시작될 때이다.
문학잡지와 소설책, 오래된 문학전집이 빼곡하게 꽂혀 있는 서재는 소설가의 서재다웠다. 한쪽 책꽂이에 그동안 사용한 노트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점도 이채로웠다. “글씨가 워낙 악필이라 처음 소설 쓸 때 타자기로 쓰다가, 그 다음에 워드, 컴퓨터로 옮겨 갔습니다.”
나무 할아버지의 이야기 『나무』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등 주요 문학상을 석권한 소설가 이순원의 2007년 신작 『나무』는 모든 연령을 위한 읽을거리다. 허구라는 점에서는 소설을 닮았고, 순수함을 그려낸 투명함은 동화를 닮았고, 나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우화를 닮았다. 나무의 이야기지만 삶의 이야기를 닮았다. 담백하고 청량한 이야기, 따뜻하면서도 긍정적인 힘이 넘치는 이야기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는 1년을 준비해서 15일 만에 원고를 완성했고,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의 집필기간은 한 달이었다. 『나무』는 2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동화를 생각했지만 글을 쓸수록 장르의 벽은 사라졌다. 그저 나무를 설명하고, 나무의 느낌을 잘 전달해, 사람들이 나무를 친구처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나무처럼 인간과 잘 어울리는 풍경도 없다. 그러나 이순원의 『나무』에 등장하는 나무들은 사물이 아니라 품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다. 수줍어하는 나무가 있고, 까부는 나무도 있고, 수다쟁이 나무도 있고, 당돌한 나무가 있다. 매년 하나씩 더한 나이테만큼 지혜를 더해간 나무가 있다. 할아버지 집 마당에 있는 밤나무, 앵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 매화나무가 정답게 가지를 뻗어가며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들이 복숭아 속살보다 더 보드랍고 달콤하다.
또, 『나무』에는 생로병사의 굽이굽이가 있고, 저무는 세대와 떠오르는 세대의 아름다운 우정이 있고, 춘하추동의 고운 풍경들이 숨겨져 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할아버지 마당은 제 고향집입니다. 『나무』는 지금까지 쓴 제 글 중에서 가장 ‘저’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제 가족의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죠. 이전까지 제가 고향 마을을 모델로 해서 글을 썼지만 그건 배경만 빌려오고 그 속의 인물과 사건들은 모두 허구였어요. 그에 비해 『나무』는 저의 이야기이도 합니다.”
엄마가 읽고 아이에게 주는 책 『나무』
전생에 나무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나무를 사랑한다. 50년 동안 나무 곁에서 나무의 속사정을 함께 나누며 살았다. 『나무』에 등장하는 할아버지는 작가의 할아버지고, 그가 가꾼 아름다운 나무 정원은 지금도 남아있다고 했다. 작가의 블로그(은비령http://blog.naver.com/lsw0502)에 가면 『나무』의 주인공 할아버지 밤나무와, 밤나무를 심은 조부를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어렸을 때는 존경하는 사람은 다 멀리 있는 사람이잖아요. 위인전으로 읽은 이순신 장군 같은. 가족은 친근하긴 해도 존경의 대상이 아니죠. 그런데 커가면서 할아버지에 대해 ‘대단한 분이었구나’ 하고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됐어요.” 기억에 남아있는 할아버지가 어떤 모습인지를 물었다. “노동을 즐기는 분이셨어요. 타고난 성실함이 있는 분이었죠.” 그리고 조부는 현명한 분이기도 했다.
“사람들이 나무는 후손을 위해 심는다는 선입견이 있는데 나무를 키워보면 그렇지 않아요. 책에도 썼지만 나무는 당대에 그 덕을 봅니다. 아이들보다 빨리 자라죠. 그런데 사람들은 곡식보다 늦게 자란다고 나무를 심지 않죠. 저걸 심어서 언제 덕을 보나 하면서요. 그런데 묘목을 심으면 3~4년이면 열매를 맺어요. 가끔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언제 저 나무가 저렇게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자랐나 하고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제 아이가 어렸을 때 심은 나무들도 벌써 아파트 2층 높이만큼 자랐더군요.”
『나무』는 3대의 삶을 함께한 할아버지 밤나무가 여덟 살 먹은 꼬마 밤나무와 함께 나누는 대화가 주된 내용이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조곤조곤 삶의 이치를 옛이야기 하듯 풀어놓는 이야기지만 교훈과 감동을 강요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바람이 차도 봄에는 잎이 돋아나는 자연의 순리처럼 『나무』는 흘러간다. 그곳에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는다면 그것은 독자의 운일 따름이다.
“저는 이 책을 모든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경계했던 점이 ‘유치해지지 말자’ ‘눈높이를 낮추지 말자’는 거였어요. 눈높이는 맞추는 거지 낮추는 게 절대 아니죠. 그리고 교훈을 담으려고 애쓰지도 않았어요. 사람은 살면서 배워야 할 것이 참 많아요. 눈 속에서 피는 매화, 자기 때를 기다리는 대추나무… 교훈적이라면 교훈적일 수도 있지만 그건 그저 나무의 삶일 뿐이죠. 욕심이 있다면 엄마가 읽고 아이에게 건네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겁니다.”
할아버지 나무의 죽음으로 이야기를 끝맺은 것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문학에는 죽음의 미학이 있습니다. 한 나무의 죽음이 주는, 생명의 끝남 이상의 찡함, 묵직한 울림을 주고 싶었어요. 죽음을 통해 나무가 생의 의미를 완성하는 거죠. 완결이라고 할까요.”
작가 생활 20년, 전업 작가 생활 12년
이순원이라는 이름 앞에는 ‘소설가’라는 타이틀이 제일 먼저 붙지만 요즘에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에도 익숙해졌다.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되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을 ‘반짝반짝 빛난다’고 평하면서 그들의 새로운 시도를 반겼다.
“제가 30대에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를 발표했을 때 신세대 소설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줬어요. 그 소설이 그 시대에는 기존 소설 문법들과 달랐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우리 문단은 ‘새로운 것은 얕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작가 입장에서도, 젊은 작가들을 끌어주고 싶은 선생님 입장에서도 답답할 때가 많아요. 텔레비전만 해도 불과 몇 ? 전 것보다 지금 것이 훨씬 성능이 좋잖아요. 그런데 문학만큼은 30년 전 문학이 좋다고 고집하는 건 무슨 이유일까요? 문단의 원로 작가들이 자기 방식만을 고집하고, 자신들이 하는 문학이 순정하다고 고집하는 이유가 뭔지… 그리고 선배 작가들이 그런 말을 할 만큼 열심히 글을 썼나요?”
또, 그는 장편을 쓰기 힘든 현재의 문단 분위기에도 일침을 가했다. “젊은 작가들이 너무 단편에만 매달리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문단 분위기가 단편에 몰입하게 만드는 거죠. 단편은 그야말로 노블(novel)도 아니고 쇼트 스토리(short story)에 불과해요. 세계 문학사에도 단편으로 기억되는 작가는 셋, 넷… 체홉, 카프카, 모파상, 오 헨리 정도예요. 그런데 우리 문단에는 젊은 작가뿐만 아니라 이제 제대로 된 장편을 내야 하는 중견 작가들도 장편의 실패를 단편으로 만회하고, 단편으로 숨으려고 한단 말이죠. 그러니 발전이 없죠. 툭 까놓고 이야기해보면 대표성을 가진 작가 중에 대표 장편이 없는 작가가 많단 말이죠. 그런 것을 극복해나가는 게 작가의 일입니다. 그게 싫다면 도대체 왜 글을 쓰려는 거죠?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면 ‘너는 얼마나 장편을 썼느냐?’라고 바로 공격이 들어오겠지만.(웃음) 작가에게 슬럼프가 있다면 그건 장편이 안 나올 때라고 생각해요.” 그가 지금까지 쓴 장편 중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하는 게 뭐냐고 묻자 『수색, 그 물빛 무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단어 하나 비문 하나 용서하지 않는 엄한 선생님이다. 엄한 가르침 덕에 제자들의 실력은 날로 일취월장해 신춘문예 사관학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란다. 그가 싫어하는 건 반짝이를 달아 멋을 낸 문장이다. “제가 소설 공부를 하면서 모범으로 생각했던 건 조세희 선생님의 문장이었습니다. 조세희 선생님의 문장은 수사를 배제하면서 내용으로 운율을 드러내는, 문장 자체로 운율을 드러내는 그런 문장이죠. 그런데 문학 지망생들은 반짝이나 수사의 유혹을 못 이겨요. 힘들이지 않고 멋있어 보이니까. 수사는 부족할수록 좋습니다. 문장을 다듬을 때도 ‘그것보다 더 좋은 표현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야 합니다. 두 점 사이에 수많은 점이 있어도 그 점을 가장 가깝게 연결하는 건 직선 하나뿐이니까요.”
그리고 ‘전업 작가’가 아니어서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는 사람에게 이런 충고를 남겼다. “제가 전업 작가가 된 지 12년입니다. 다들 전업이면 글이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환경의 여건, 작업의 여건이 달라질 뿐이지 전업 작가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회사와 글쓰기를 병행할 때의 그 열정이 그리울 때조차 있어요.”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 이순원의 세계
모든 작가는 자기가 그릴 수 있는 세계가 있다. 그것은 주제이기도 하고 공간이기도 하며 시간이나 특정 인물에 고정될 수도 있다. 포크너는 ‘요크나파토파’라는 가공의 마을을 만들어냈다면, 이순원은 ‘은비령’이라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흔히, 그를 ‘강원도의 작가’라고 부르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강원도라는 특정 지역에 묶여 있지 않다. 그가 작품을 통해 그려내는 세계는 좀 더 근원적이고 시원적이며, 원초적인 것이다.
“작가가 쓸 수 있는 것이 자기 세계라고 할 수 있는데, 넓은 사람이 있고 좁은 사람이 있죠. 30대 때는 사회적인 요소가 작품에 많았는데 40대 이후에는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이 글 속에 담기게 됩니다. 작가의 세계는 태생과 성장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말을 찾아서」나 「아비의 잠」 같은 작품이 제 성장과 태생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지는 작품입니다. 아마 독자들이 기억하는 내 작품은 이런 작품들이 아닐까 싶어요. 이효석의 수많은 작품 중에 「메밀꽃 필 무렵」이 기억되는 것처럼 좋은 작품은 작가의 태생과 성장과 인성과 밀접한 작품입니다. 빛나는 한 작품인 셈이죠.”
열매를 맺는 나무는 그렇지 않은 나무보다 수명이 짧다. 자신의 생명을 열매와 맞바꾸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나무는 예술가와 닮았다. 예술가도 생명을 줄여서라도 작품을 남기기를 열망하니까. 쉰이 넘으면 회사원은 은퇴를 해 제2의 인생을 가진다. 그러나 소설가 이순원에게 쉰이란 나이는 제대로 된 전성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필생의 마스터피스를 쓰는 여정이 비로소 시작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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