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소 시리즈 005번 『연쇄 구직자』는 2024년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정수정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경력단절 이후 반복되는 구직 실패 속에서 흔들리는 여성 ‘최지수’의 일상을 따라가며, 개인의 좌절 뒤에 놓인 노동 구조와 젠더 현실을 예리하게 비춘다.
결혼과 출산 가능성이 채용의 조건이 되고, 여성의 노동이 손쉽게 소모되는 환경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불안과 분투가 섬세하게 포착된다. 이는 단순한 ‘구직 실패기’가 아니라, 지금의 여성들이 마주하는 당혹감과 무력감을 현실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또한 책에는 집필 시기 작가가 남긴 일기 「소설가 정수정의 화요일」이 함께 실렸다. 소설과 일기를 나란히 읽으며, 독자는 한 편의 작품이 태어나는 내밀한 시간을 자연스레 엿보게 된다.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 『연쇄 구직자』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살다 보면 많은 ‘처음’들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작가님께 첫 책은 어떤 의미로 남을지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넷 서점에 등록된 제 책, 그리고 서점에 놓인 제 책을 보고 ‘이제 유희로서 글쓰기는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관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데 그런 건 아니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는 뜻입니다. 원고를 책으로 만들고, 인터넷 서점에 책이 등록되고, 서점에 책이 놓이고, 유통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노력과 공이 들어갔을 테니까요. 그리고 시간을 내서 제 책을 읽어 주실 독자님들도 계실 테고요. 이제는 정말 쓰는 일이 제게 ‘일’이 되었어요.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잘하고 싶습니다.
이 책으로 소설을 쓰는 ‘직업’을 얻게 되었어요. 구직을 계속하는 이야기를 써서 직업이 생기는 게 조금 이상하지만, 이 직업을 오래하고 싶습니다.
소설 뒤에 실린 에세이에서 '구직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글 대신 나와는 다르게 계속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이 주인공인 긴 소설을 써 보기로 결심했다'고 이 작품을 쓴 이유를 밝히셨어요. 실제 집필 과정은 어떠셨나요?
‘연쇄 구직자’는 초고를 쓸 무렵 전염병이 유행하던 시기였고, 집에 있던 시간이 길어지면서 생긴 에너지와 시간으로 썼어요. 구상을 할 시기에 소설 속에 등장할 많은 사건들을 간략하게 타이핑해서 출력했습니다. 그것들을 사건별로 오려서 자른 뒤 퍼즐 맞추듯 바닥에 배치해봤고, 그 사이에 끼워 넣으면 좋을 소재나 이야기들을 자른 종이에 메모해 두기도 했습니다. 주요 인물별 간략한 연혁을 만들기도 했고요.
그렇게 해서 만든 설계도를 가지고 쓰고 고치면서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이 이어졌어요. 이런 세계를 세밀하게 구현하는 게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소설은 경력단절 이후 연달아 구직에 실패하는 여성 ‘최지수’의 시간을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결혼 여부나 임신 가능성 때문에 채용에서 배제되고, 직장에서 쉽게 소모되는 여성 노동의 현실 묘사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이야기를 쓰실 때 작가님의 경험이나 주변의 이야기가 반영된 부분도 있을까요?
생생하다는 말씀을 들으면 기쁩니다. 내가 진짜처럼 보이려고 궁리한 것들이 진짜 같아 보이는구나, 싶어서요. 그러나 곧바로 제가 궁리해서 ‘만든’ 이야기가 현실과 같다는 사실에 씁쓸하기도 해요.
말씀하신 결혼 여부나 임신 가능성 때문에 채용을 꺼리는 분위기는 이미 기혼자들 사이에서는 익숙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 한 명의 경험이라고 할 수 없는, 많은 분이 겪을 법한 익숙한 이야기들을 담으려고 고민했어요.
디테일한 것들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소설에 주인공 지수네 동네에 미진 선배가 찾아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원래 이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배경은 다른 곳이었는데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사는 곳 부근 아파트 단지들을 돌아다녔고, 아파트 근처에서 마실 것을 사기에는 카페나 편의점보다 당시 늘어나고 있던 무인아이스크림 가게가 자연스럽겠다고 결론 내렸어요. 무인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와 앉기에는 벤치와 정자, 놀이터 그네 중에 뭐가 더 적당한지도 살폈습니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경우 벤치가, 그것도 놀이터 근처의 벤치가 무인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가장 가깝더라고요. 잠시 나오는 인물들, 그리고 배경에 대해서도 소설에 안 나오는 부분까지 설정을 조금 과하게 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생생하다고 느끼시는 것 같습니다.
김의경 소설가님의 추천사 속 문장처럼, 작가님은 이 현실을 ‘블랙 코미디처럼 서늘하면서도 기괴하게, 그러나 왜곡 없이’ 그려냅니다. 이 소설의 문체나 분위기를 만들 때 특별히 고민하신 지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오래 전 기자 생활을 할 때 쉽고 정확한 문장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그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항상 문장을 쓰면서 추구하는 것이 ‘쉽고 정확하게 쓰기’입니다. 물론 소설은 허구이지만,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것을 정확히, 쉽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저는 너무 비장하거나 무거운 분위기를 잘 견디지 못합니다. 이미 현실에 닥친 것들이 너무 무거운데, 분위기까지 그러면 너무 힘들거든요. 그래서 세밀하게 묘사하되, 너무 심각하고 무겁게 쓰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곳곳에 나름의 유머를 심어 놨지만……. 알아차리시기 힘들 것 같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기대와는 다른 결말을 맞이하지만, 그 안에서 각자 ‘자신의 걸음’을 찾으려 합니다. 작가님이 앞으로 내딛고 싶은 걸음, 혹은 다음에 쓰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습니다. 이제 겨우 첫 소설을 세상에 내보였으니까요. 사실 제 저장장치에는 이것저것 파일이 쌓여 가는데, 이것들이 과연 세상에 나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무엇이 되었든 쉽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진입 장벽이 낮은 소설을 쓰고 싶어요. 누구나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쭉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리고 즐겁게 오래 쓰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컨디션에 따라 매일 작업량을 조절하고 있어요.
에세이에서 작가님은 자신의 하루를 ‘농도가 낮다’고 표현하셨습니다. 작가님에게 ‘낮은 농도의 하루’와 ‘고농도의 하루’는 어떤 모습인가요?
매일을 저농도로 살고 있습니다. 에세이에 쓴 대로 냉장고 청소도 사흘에 걸쳐 나눠 하는 식으로 살아요. 그런 적은 힘을 아껴서 잘 살아내기 위해 계획을 세워 힘의 안배를 하려고 해요. 물론 계획이 실패할 때가 많지만, 저는 다시 반영할 변수 등을 고려해 성실히 계획을 세웁니다.
제가 생각하는 고농도의 하루는 ‘갓생’ 사는 분들의 하루입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던 적이 있고요. 아침 일찍 운동하고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점심 시간도 잘 활용해 뭔가를 하고, 퇴근 후 자기계발을 하거나 모임에 참석하는 아주 꽉 차게 하루를 사는 걸 시도했던 적이 있어요. 그러다 보면 일주일도 못 넘기고 탈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제 농도에 맞게 잘 살려고 매일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구직이나 커리어, 삶의 속도에 지쳐 있는 독자들에게 따뜻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노력했지만 결국 직장이나 직업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연쇄 구직자’를 통해 하고 싶었어요. 아무리 안 되더라도, 다른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도, 그 사람 자체로 괜찮다는 이야기를요.
자신을 망가뜨리거나 상하지 않게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그러면 된 거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뭔 뜬구름 잡는 소리야’라고 하실 수 있지만, 자신을 잃어버리면 좋은 직장이나 기회가 오더라도 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기회가 올 때까지 우선 그렇게 자신을 꼭 지키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연쇄 구직자
출판사 | 다산책방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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