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연의 장면의 전환
멸종위기우정, <찰스엔터 - 찰수다>
MBTI로 무분별한 경계선을 긋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를 억압과 귀속으로 해석하지 않고, 인공지능의 간편함이 아닌 인간 관계의 수고스러움을 선택하는 우정을 <찰수다>는 최종으로 선택했다.
글: 이자연
2025.12.05
작게
크게

바야흐로 우정 낭만의 시대다. 역사적으로 대중이 갈망하는 것들은 대체로 낭만화돼왔다. 1980년대 온 시민이 들끓었던 민주화 운동은 통기타와 막걸리, 잔디밭과 연합 농성의 이미지로 아늑한 지지대를 만났고, 2010년대 초반 취직난과 노동 불안정을 뜻하는 '88만원 세대'는 모순적이게도 목적지 없는 기차 여행(내일로)과 여기저기 남발되는 청춘이란 단어로 슬픔을 미화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이때 유행했다.) 따라서 한 시대에 떠오르는 낭만은 반대로 그것이 결여된 사회, 그것이 뜨겁게 갈망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증명한다. 오늘날엔 그것이 필연적으로 우정이다.

 

2024년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에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전세대 평소 교류하는 친구 수가 평균 10.3명으로 나타났지만 30대는 7.5명으로 가장 적었다. 빈도수에도 차이가 드러난다. 친구와 교류하는 빈도수로 10대와 70대 이상은 '거의 매일'의 응답 비율이 40%가 넘는 반면, 30대는 4명 중 1명(24%)꼴로 친구와 한 달에 한번 만나거나 거의 교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전 세대 중 30대는 상대적으로 사회적·문화적 활동이 가장 활발한 세대지만 자신의 소라껍질 속으로 웅크려 혼자 있길 택한다. 실제로 교류 방식 또한 30대가 메신저·SNS 등 비대면 방식을 가장 높은 비율(85%)로 응답했다. 교류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만남보다 느슨한 형태의 연결 방식을 선호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유독 우정을 대변하는 집단에 반응한다. 에픽하이 멤버 3인이 서로를 하찮게 여기면 여길 수록, 신화 멤버들이 과거의 싸움을 에피소드화 하면 할 수록, 소녀시대가 N주년을 기념하면 할 수록, 다비치가 (심지어 한 멤버의 결혼 이후에도) 서로를 버팀목 삼으면 삼을 수록 많은 이들은 환호한다. 단순히 팬덤화 된 서사나 관계성에 반응하는 게 아니다. 그것보다는 대중이 '우정의 소생'을 목격한 것에 가깝다.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우정이 바로 이곳에 존재한다고, 구전처럼 내려온 우정이 이들에게 실존한다고 재차 확인하듯 에픽하이와 신화와 소녀시대와 다비치의 역사를 웃고, 퍼뜨리고, 해석한다. 그리고 이 환호는 역설적으로 우정의 결핍, 혹은 우정의 멸종위기를 말한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MBTI의 등장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미리 경계하는 게 더 쉬워진 세상에서 시간과 비용을 기꺼이 감당하는 사이는 암묵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구인광고의 자격 요건으로까지 발현된 MBTI 과몰입은 관계맺음을 손수 선별하게 만들었다. 자존감 회복이 유행처럼 번져가는 동안에는 타인에게 속박되지 않고 개인으로 자유로워지고 싶어진 사회적 욕망이 더 넓게 퍼져나갔다. 챗GPT의 상담력이 증명됐을 땐, 평일 저녁 피로한 친구에게 감정 쓰레기통이 되는 것보다 인공지능의 객관적인 위로를 받는 것을 선택했다. 혈중 우정 농도 부족, 우정 결여, 우정 멸종... 정리하자면 진정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닌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돼버린 오늘이 온 거다. 초조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현실 속에 차라리 혼자 있기를 선택하지만, 미디어에서만큼은 영원불멸의, 서로에게 기꺼이 헌신하는, 너와 내가 너무나 당연해진 친구 관계를 목도하고 싶어한다. 나를 대신하여 이 목마름에 목을 축여주길 계속해 기다린다. 


유튜브 채널 <찰스엔터> 캡처

 

유튜브 채널 <찰스엔터>는 운영자 찰스(김찬미)의 재담이 돋보이는 썰 풀기나 솔직하고 투명한 감상을 전하는 <환승연애> 시리즈 리액션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그의 유쾌함으로 웃기 시작할 때, 모태솔로라는 찰스의 정체성을 디딘 <월간데이트> 또한 채널의 인지도를 안착시키는 중요 요소가 되었다. 구독자가 계속해 늘어나는 동안 찰스가 반복해온 말이 있다. "내 채널에는 방향성이 없어." 이건 기획이나 컨셉이 부재하다는 게 아니라 채널을 고착시킬 전략을 따로 세우지 않겠다는 의미다. 때마다 바뀌는 관심사와 마음 상태에 따라 콘텐츠 구성과 운영 방식이 언제든 변형될 수 있다는 자유로운 소신인 것이다. 모든 게 평화롭게 흘러가던 어느 날, 찰스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선언을 공지한다. 바로 <월간데이트>의 종료. 연예인, 인플루언서 등 유명인이 게스트로 방문해 이목을 끄는 게 요즘 유튜브 콘텐츠의 공식이라면 찰스의 <월간데이트> 종료는 많은 것을 내려놓는 선택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월간데이트>를 지속할 경우 얻는 것은 인기, 조회수, 수익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내가 추구하는 게 아니다. 나는 진정성과 편안함, 이 둘을 중요하게 여긴다." 방향성 없이 바람처럼 흘러가는 채널 성격 덕분에, 나아가 진정성과 편안함이 가장 중요하다는 소신 덕분에 찰스가 <월간데이트>를 내려놓고 꺼내든 카드는 그러니까 다시금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찰수다>였다. 

 

<찰수다>의 기획은 심플하다. 카메라 딱 한 대만 두고 4~5시간을 촬영한 후, 찰스가 직접 편집한다는 게 전부다. 외부인이 침범하지 않은 찰스의 집에서 몸에 좋지 않은 맵고 짜고 단 것을 잔뜩 먹으며 딩굴댕굴 눕다가 테이블을 치며 웃는 게 전부인 것. 마치 오랜 친구의 집에 놀러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 같은 아늑함이 이 안에 필터링 없이 존재한다. 다시 찰스의 말로 돌아가볼까. 인기, 조회수, 수익보다 진정성과 편안함이 더 우위하다던 사람이 결과적으로 친구와의 대화를 선택했다는 것은 결국 사회가 '따라야 하는 것'으로 규정한 것에 흔들리지 않고, 진짜 나다움을 지킬 수 있는 관계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관계란 우리에게 너무 귀해진 우정. MBTI로 무분별한 경계선을 긋지 않고, 타인과의 관계를 억압과 귀속으로 해석하지 않고, 인공지능의 간편함이 아닌 인간 관계의 수고스러움을 선택하는 우정을 <찰수다>는 최종으로 선택했다. 


유튜브 채널 <찰스엔터> 캡처

 

그렇기에 시청자는 정면으로 목도할 기회를 얻는다. 우정이기도 사랑이기도 한 순간을. 단출한 인간관계를 정답처럼 여기는 시대에 너의 안정이 나의 행복이고, 너의 우울이 곧 나의 슬픔인 드문 장면을 목도한다. 기꺼이 번거로워지고, 기꺼이 피로해지길 자발적으로 택하는 사랑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우리는 <찰수다>를 통해 너무도 손쉽게 증명 받는다.    

 

"옛날에는 사랑과 우정을 구분했거든. 그런데 이제는 우정도 사랑이라고 생각해. 사랑에 대한 감정은 같은 거 같아."(수경) "미국에 있었으면 영어도 잘하고 더 좋은 기억도 있겠지만 그랬다면 널 만날 수 없었을 테니 한국에 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찰스) "너를 친구의 범주로 두고 싶지 않은 것도 있어. 친구라는 말로 너를 다 담을 수 없으니까. 너를 정확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도 잘 모르겠어."(찰스)

 

물론 <찰수다>에 찰스의 일반인 친구들만 등장하는 건 아니다. 1회 게스트는 무려 NCT 마크였고, 3회에서는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 엔믹스의 해원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유명인 위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2회에는 (그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많은) 찰스의 단짝 수경이 나와 자꾸만 눈물을 흘렸고, 4회에서는 서로의 내적 평화를 소망하는 친구 동원이 나와 축복의 기도를 올린다. (수경은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고 동원은 안경사다.) 전체 회차의 절반이 무명인으로 이뤄진 편성표는 이제 막 구독자 100만을 달성한 라이징 채널에겐 파격적이고 대범한 선택이다. 이 과정에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새로운 친구가 되든, 오랜 친구의 더께를 보여주든 오직 성실한 우정으로 존재하는 것. 도리어 수경과의 오랜 역사를 입증하는 온갖 형태의 편지와 동원이 시시때때로 보낸 다정한 메시지 모음을 보다 보면 특별할 거 없는, 그러나 한때 내 삶을 구성했던 그리운 존재에 숨이 턱 막히고 만다. 일반인 출연자의 것이기에 더욱 나의 것으로 쉽게 대입하면서.

 

정말 우정이 종말에 다다를까. 외로움에 취약한 나머지 반려돌을 키우는 세대에게 그런 일을 아무래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실종돼버린 우정은 그것을 소생시켜줄 사람을 기다린다. 그저 앉은 자리에서 긴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 빛 바랜 우정조차 영속될 수 있음을 <찰수다>가 보장한다. “Back in the day 한 사람당 하나의 우정이 있었대.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위기우정!”


*사진 : 유튜브 채널 <찰스엔터> 캡처


이자연의 장면의 전환

장면이 현실로 전환되는 순간, 찰나의 단상이 긴 사유로 전환되는 순간,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게 되는 순간. 영상이 자아내는 여러 ‘전환’을 포착해보고자 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Writer Avatar

이자연

가족들이 일터로 떠난 빈집에서 텔레비전과 한 몸처럼 지내다가 어느덧 대중문화 비평을 말하는 어른이 됐다. 페미니즘 미디어 비평서 <어제 그거 봤어?>를 썼고, 한겨레신문 칼럼니스트 공모전에 당선되어 온라인 커뮤니티의 여성 문화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씨네21>의 영화 기자로 활동 중이다. 목동불주먹이자 <슬램덩크> 사랑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