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직전 중소기업에 취업한 것을 시작으로 30여 년간 헬스케어와 제조업, 헤드헌팅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커리어를 쌓아온 ‘선배’가 우리 사회의 일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과 단단한 응원을 건네는 책 『우리의 찬란한 완주를 위하여』가 출간되었다. 건강·육아·사내 정치라는 세 가지 큰 장벽 앞에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자리를 지켜낸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오랫동안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남기 위한 지혜를 엿볼 수 있다.
현재 의료 컨텐츠 기획·제작사 ㈜이어혜다를 창업해 이끌고 있는 이현승 대표가 말하는 ‘커리어 완주’란 정년퇴직이나 고위 임원에 오르는 성공이 아니다. 다른 요인에 구애하지 않고 “원하는 일을, 원하는 만큼, 원할 때까지 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여자들이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면서 ‘이만하면 됐어.’, ‘할 만큼 했어.’라며 자신을 속이지 않기를 바라며 저자는 눈앞에 닥친 난관을 함께 헤쳐나가보자고 다독인다.
‘우리의 찬란한 완주를 위하여’라는 책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어떤 뜻인가요? 이 책을 집필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완주’는 ‘내가 원하는 일을, 원치 않는 외부 요인에 의해서 그만두지 않고, 내가 원할 때까지 하는 것’이란 의미로 붙인 말입니다. 꼭 정년퇴직을 하거나 승진해서 사장이 되거나 하지 않더라도요. 저는 학창 시절부터 회사생활까지 ‘열심히, 더 열심히’를 모토로 달리다가 30대 말에 처음으로 임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나이 50이 되어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제 친구, 동료, 선후배가 일을 그만두었더라고요. 육아 때문에 일찍이 그만둔 사람도 있고, 그 시기를 치열하게 넘기고도 누구는 자궁을 들어내서, 유방암에 걸려서, 더 이상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그만둔 사람도 있고, 아이도 다 키웠고 몸도 건강한데 어느새 사내 정치에서 밀려나서 그 똑똑하던 친구들이 일을 놓아버린 거예요. 사실은 무척 우울해하면서도 ‘이만하면 됐지.’ ‘할 만큼 했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우리만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일하면서 부딪쳤던 난관과 그것을 돌파해온 방법을 나누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한 책입니다.
책에서 여성들이 일을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로 건강, 육아, 사내 정치를 꼽으셨어요. 이 중에서 작가님에게 특히 크게 다가온 건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건강이 가장 크죠. 저도 마흔 살이 되던 해에 한 2주간 꼼짝을 못 하겠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완경 이행기에 접어들면서 생겨난 변화 같은데, 그때는 무엇 때문인 줄도 몰랐습니다. 심각하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알아봐야 하나 생각했었어요. 그 뒤로 40대 중반이 되니까 주변에서 친구들이 하나둘씩 자궁을 들어내고, 암에 걸리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에 한 여성 동료가 그러더군요. “이제 유방암은 젊은 시절을 열심히 살았다는 일종의 훈장 같은 거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살았던 거죠. 하지만 잘못된 거예요. 그렇게 자기 몸 돌보지 않고 일하면 몸은 병들고 정신은 피폐해지더라고요.
1부에서 건강과 체력 관리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셨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인지, 일하는 여성들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꼭 챙겼으면 하는지 알려주세요.
육아로 힘들어지면 그래도 방법을 찾을 수 있어요. 사람을 찾거나 기관을 찾거나. 지금 있는 회사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면 싸워보거나 이직하거나 선택이라도 할 수 있고요. 그런데 갑자기 암에 걸리거나 무슨 수술을 하게 되거나 체력적으로 한계에 도달하면 일을 쉬거나 그만두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요. 제가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그러기 전에 병원에 가자는 거예요. 아니,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얼마나 잘되어 있고, 의료서비스 질이 얼마나 뛰어난데요. 이용할 수 있는 건 충분히 이용해야죠. 동네 병원을 슈퍼처럼 다니면서 자기 몸 상태를 체크하고, 큰 질병으로 발전하기 전에 미리미리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해요. 특히 35세 이상 여성이라면 1년에 한 번 산부인과 건강검진을 꼭 받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갱년기 닥쳐서야 가면 늦어요. 갱년기 10년 전부터 여성암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인자들을 미리미리 확인하고 관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나 슬퍼서 빵 샀어.” 이런 이야기는 그냥 웃어넘기시고, 슬프면 산부인과 옆에 있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꼭 다니시기 바랍니다. 감기에 걸리면 편의점에서 약 사먹어도 되지만, 마음의 감기는 꼭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세요. 그래야 나중에 ‘건강한 마음’으로 오래 일할 수 있습니다. 더 구체적인 방법은 제 책을 보시면 나와 있습니다.(웃음)
2부에서 어차피 일과 육아 모두를 완벽하게 할 수는 없다, 그러니 집중할 한 가지를 선택하고 다른 한 가지는 부족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현실적인 조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일에 좀 더 집중하기로 선택하신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 갈등이나 고민이 없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학생 때부터 공부 좀 한다 소리 듣고, 회사에서도 일 좀 한다 소리 들어온 사람들에게 ‘육아와 살림’은 아마 가장 어려운 난제일 거예요. 뭘 해도 생각만큼 잘 안 되고, 어설프고, 특히 아이들 일이라면 ‘내가 뭔가 모자란가……’ 하는 자책감까지 들어요. 저도 극복은 못 했고요(웃음), 그 상황을 과제로 보고 해결하려 노력했습니다. 살림이야 그냥 던저둔대도, 아이들을 그냥 던져둘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서 결국 내가 잘하는 일로 승부를 본 거죠. 모르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잘 못해도 일단 열심히 하고 보는 성실성과 끈기, 정보 수집과 정리 능력 같은 것들요. 그래도 자식에게 모든 시간을 쏟고 강력한 네트워크를 가진 프로 엄마들에 비해 워킹맘들은 늘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내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도움을 구하는 태도도 필요해요.
요즘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직장 내에서 여성들이 겪는 구조적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회사생활을 하시는 동안 가장 마음에 사무쳤던 경험이 무엇인지, 그 일을 어떻게 이겨내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어느 날 임원회의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한 남자 전무님이 그러시더군요. “이상무는 아마 남자였으면 뒷골목에 끌려가서 한 대 맞았을 거야.” 한 대 치고 싶지만 여자라서 참는다는 대단한 배려(?)였죠. 그런 말을 면전에다 참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다른 사람들 다 있는 자리에서 공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전무님, 그럼 그냥 한 대 치시죠. 치는 데 남녀가 어디 있나요? 세상에 회사일로 맞을 것도 없지만, 그 정도로 뭔가 잘못된 게 있다면 여기서 이야기하시죠.” 이때 포인트는 세 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생글생글 웃으면서, ‘제게 가르침을 주시죠.’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겁니다. 그래야 상대가 상황을 왜곡하지 못하고, 뒤에서 나를 겁박하지도 못합니다. 화가 나겠지만 참고 웃으면서 이야기해야 ‘감정법’에 저촉되어 본질과 상관없는 ‘싸가지 없는’ 태도를 공격받는 굴레에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연기를 ‘종합예술’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사내 정치도 일종의 종합예술입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남자 상사들에게 대응하려면 우리는 전략적인 종합예술가가 되어야 해요. 물론 마음에 상처가 남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서, 저는 요즘도 드라마에 여성 임원 에피소드가 나오면 대성통곡을 하며 봅니다. 최근에는 <에스콰이어>라는 드라마에서 여성 임원은 ‘정무감이 없다’는 소리를 당연하듯 하는 걸 봤는데, 그렇게 서럽더라고요. 씩씩하게 맞서 싸워왔지만 힘들긴 힘들었나봐요.
이제 막 관리자가 되었거나, 곧 관리자가 될 여성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꿀팁’을 전수해주신다면요?
온 우주가 당신을 질시하고 공격할 거예요.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자신이 잘해서 이룬 것들을 후배와 부하 직원의 ‘공(功)’으로 돌려주세요. 내가 만들어준 그들의 공이 결국은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될 거예요. 그들의 성과가 곧 리더인 나의 성과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직장인으로서, 주부이자 엄마로서 이중삼중의 책임을 떠안고 고민하고 있을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부탁드려요.
아니 우리가 일 안 하고 놀고먹겠다는 것도 아닌데, 몸 아파서 그만두지 않고, 부장에게 까여서 물러나지 않고, 아이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그렇게 우리가 원할 때까지 스스로 동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할 수는 없는 걸까요? 우리 세대는 앞에 선배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여성 임원 1호가 나왔다는 게 각 기업의 자랑이던 시절에 팀장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여러분에게는 우리가 있습니다. 더럽고 치사해도 여전히 자리를 가열하게 지키고 있거나, 자리에 있지는 못해도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본인의 경험을 나누어줄 수 있는 우리 세대가요. 그 대표로 제가 이 책을 썼습니다. 족집게 정답을 정리해줄 수는 없지만, 오답을 정리해줄 수는 있습니다. 성공 신화가 아니라 평범한 경험에 의한, 신데렐라가 아니라 어느 학교에나 있는 뭐든 열심히 하는 3등급 언니의 ‘경력 완주 지침서’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우리의 찬란한 완주를 위하여
출판사 | 세이코리아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