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엑시트』는 불평등과 세대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으며 한국 사회에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사회학자 이철승의 <불평등 3부작> 완결판이다.
이철승은 전작 『불평등의 세대』에서 386세대가 구축한 세대 네트워크를 분석함으로써 동시대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의 구조를 파헤쳤으며, 이어 『쌀 재난 국가』에서는 그러한 불평등 구조의 기원을 동아시아의 쌀 경작 문화권에서 발달한 ‘벼농사 체제’라는 앵글을 통해 추적하였다. <불평등 3부작>의 완결작에 해당하는 이 책은 새롭게 떠오르는 불평등의 축으로 인공지능, 저출생/고령화, 이민을 꼽으며, 이 세 가지 구조적 변동과 그 힘들이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social cage’라는 기존의 제도 및 구조와 충돌하는 와중에 생성되는 새로운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고, 개인적 혹은 집합적 대안으로서 ‘엑시트 옵션exit op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오픈 엑시트’라는 제목의 의미는?
오픈 엑시트open exit는 글자 그대로 ‘열린 출구’를 의미합니다. 이 책은 (다음 2번에서 이야기하는) ‘소셜 케이지social cage’에서 엑시트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이고, 왜 엑시트할 필요가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결국 ‘오픈 엑시트’는 이러한 출구가 많이 열려 있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제목입니다. 그러한 사회에서 개인들은 새로운 조직을 경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실험을 더 많이 시도하며 ‘창조’와 ‘혁신’을 더 쉽게 지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동아시아(벼농사 체제)의 소셜 케이지를 간략하게 정리한다면?
소셜 케이지는 내가 현재 처해 있는 사회적 관계나 조직, 구조를 이탈하지 않고 머물도록 만드는 생태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인센티브 메커니즘 혹은 제도입니다. 그것은 산이나 강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일 수도, 혈연으로 결박되어 있는 씨족 공동체일 수도, 언어와 문화, 종교를 공유하는 마을 공동체일 수도, 고임금과 호봉제, 복지, 사내 교육 시스템으로 직조된 기업 조직일 수도 있습니다. 소셜 케이지는 한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 집단, 조직을 탈출하고자 할 때 이를 좌절시키거나 단념시키는 정주 유인 기제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는 장기간 가족과 씨족 단위로 마을 공동체를 꾸려 쌀농사를 지으며 이러한 정주 유인 기제를 극도로 발달시켰으며, 그러한 전근대 사회의 정주 유인 기제를 현대의 기업 조직으로 이식하는 데 성공한 체제입니다.
앞으로 닥쳐올 ‘불평등의 미래’로 인공지능, 저출생/고령화, 이민을 꼽으셨는데요, 그에 대한 진단 및 향후 예상되는 불평등의 미래를 간단히 정리한다면?
‘인공지능’은 기존 소셜 케이지의 룰을 빠르게 허무는 ‘힘’입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메커니즘과 그 효과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먼저 중장년 노동자들의 지식과 노동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대체 효과’라면, 다른 하나는 인공지능을 장착한 청년 세대가 그렇지 못한 중장년 세대의 지식 보유량을 빠르게 따라잡아 궁극적으로는 역전시키는 ‘추격 효과’입니다. 이러한 운동은 자산과 자리를 점유한 중장년 세대와 새로운 인공지능 관련 지식을 깨친 청년 세대 사이의 자산과 지식의 불일치를 야기하는 한편, 인공지능 시대의 ‘세대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저출생은 기존 소셜 케이지의 재생산을 위협합니다. 벼농사 체제 협업의 룰이 시효를 다했음에도 새로운 룰을 정착시키지 못해 일어난 부산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저출생입니다. 저출생은 벼농사의 유산인 긴밀한 협업체제로 인해 잠정적 휴식이나 휴직을 허용하지 않아 발생하는 모성 페널티를 우려하는 청년 여성들이 출산을 거부하거나 유보하면서 더욱 문제시됩니다. 이민은 기존의 소셜 케이지가 재생산에 실패하고 세계화의 압력이 가중되면서 외부 노동력(다른 사회를 엑시트한 이들)이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한국 사회에 유입되는 현상입니다. 이들과 공존하고 융화하는 작업 없이 더 이상의 한국 사회의 유지와 발전은 불가능합니다.
‘엑시트’의 구체적 사례를 말씀해주신다면?
‘탈출 혹은 이탈’은 종종 동시적/집단적 운동의 형태로 일어납니다. 최근의 예를 들면, 여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엑시트는 가부장제로부터 탈출이고, 그것은 일자리입니다. 그래야 파트너가 상호 신의라는 계약을 위반했을 경우, 주저하지 않고 계약 파기를 선언할 수 있거든요. 오늘날 여성들은 가정의 존속/지속이 일자리를 갖는 궁극적 목표가 아닙니다. 가부장제로부터의 엑시트 옵션. 남편과 시댁으로부터의 엑시트 옵션, 심지어는 자기 가족으로부터의 엑시트 옵션인 것이죠. 예를 들어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의 영혜는 가족과 가정으로부터 독립된 곳에서 홀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했더라면, 정신병원에 보내지지 않고 평온하게 채식주의자의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픈 엑시트』는 『불평등의 세대』와 『쌀 재난 국가』에 이은 <불평등 3부작>의 완결작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애정하는 책, 가장 아쉬운 책을 꼽아주신다면?
<불평등 3부작>을 썼다고 해서 그 자체로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3부작은 서로 각각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한 책이 다른 책의 징검다리 혹은 안내자 역할을 하는 구조로 짜여 있습니다(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불평등의 세대』와 『쌀 재난 국가』가 한국 사회(동아시아 사회)의 독특한 위계 구조를 드러내기 위한 개념적·분석적 작업이었다면, 이번 책은 어떻게 그 구조를 개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프로젝트입니다.
가장 애정하는 책은 막 탈고한 『오픈 엑시트』입니다(웃음). 이 책이 많이 읽히고 많이 논의되어, 이 사회의 방향 설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가장 아쉬운 책도 『오픈 엑시트』입니다(웃음). 더 다듬고 조여서 내보냈어야 했는데, 너무 일찍 세상에 내보낸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자식처럼 책도, 때 되면 세상에 내보내야 합니다. 그리고 떠나보내면 자식처럼, 책도 제 인생을 살겠지요.
얼마 전 새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새로운 리더에 대한 바람이 있다면?
그동안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이 한 직장에 더 오래 머물 수 있을까,라는 틀에 갇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에서 노동자들이 엑시트 옵션을 가지고 행사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밥통을 움켜쥐고 나가지도 들어오지도 못하게 자기 영역과 직종과 조직에 벽을 쌓는 사회는 장기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가 개인의 엑시트 옵션을 어떻게 보호하고 촉진시킬 수 있는지 정책적으로 고민해주시길 바랍니다.
한 직장을 그만둔 후 재충전할 할 수 있고, 재충전 후 창업을 하거나 다른 직장, 직종으로 이직하는 과정이 좀더 용이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 개혁을 고민할 때입니다. 그만큼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빨라졌고, 개인이 이 모든 이직, 휴직, 창업을 혼자 감당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사회적으로 이러한 비용을 함께 감당하는 사회가 더 바람직할뿐더러 더 효율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후속작 계획은?
영업 비밀인데요…… 아직 결정은 안 했지만 대략 두 가지 주제를 저울질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 사회의 깊은 골이자 갈등 구조인 지역 대립, 다른 하나는 논문이라는 글쓰기 형식을 통해 조명하는 대학 시스템의 갈 길. 어느 것을 먼저 작업할지의 문제인데, 마음이 동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 청년들 표현으로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썸’을 타야 글이 나오는데, 아직 그 단계는 아닙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