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걷기는 스포츠나 챌린지가 아니다
4,520km 세계 최장 트레킹 구간을 3년에 걸쳐 완주한 완보자가 들려주는 코리아둘레길 이야기입니다.
글 : 출판사 제공
202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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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둘레길이란 남한 국토의 동서남북 가장자리를 잇는 트레킹 길이다. 최초 시작점은 부산 오륙도를 기점으로 전남 해남 땅끝 탑, 인천 강화 평화전망대,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를 연결하면 입 구(口)자 모양이 그려진다. 2016년 해파랑길의 정식 개통 이후 남해안 남파랑길, 서해안의 서해랑길이 조성되었으며 2024년 9월 비무장 접경 지역인 DMZ 평화의 길이 뚫리면서 4,520km 세계 최장 트레킹 구간이 완성되었다. 10개 광역지자체 78개의 기초 지자체가 코리아둘레길에 해당된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미국의 존 뮤어 트레일(JMT),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뉴질랜드의 밀포트 트랙, 네팔의 ABC 트레킹, EBC 트레킹, 안나푸르나 서킷, 페루의 잉카 트레일 등과 같은 세계 유수의 장거리 트레킹 길을 우리나라도 보유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41명의 코리아둘레길을 완보하여 ‘명예의 전당’에 올랐는데 완보자 가운데 쓴 첫 책이 『걷는 이의 축복 코리아둘레길』이다. 

 


코리아둘레길을 완보하는데 어떤 준비가 있었고,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 

아마도 180일 넘게 걸린 것 같다. 햇수로는 3년 가까이 걸렸다. 지난 금요일(2025년 4월 18일) 4개길 다 걸은 그랜드슬램 보유자 자격으로, 부산 오륙도 코리아둘레길 완보자클럽 ‘명예의 전당’에 올랐는데, 헌액식에 초청되어 가보니 현재 나를 포함 41명이 올라와 있었다. 작가로는 내가 유일하고, 인원이 생각보다 많아 놀랐다. 


준비는 장거리 길이니 가능한 가벼운 행장으로 다니고자 했다. 장거리 트레킹의 관건은 짐 무게이다. 철저한 행장 준비는 철저한 고생으로 통한다. 행장의 무게는 몸무게의 10% 넘으면 절대 안 된다. 오래 다닐 수 없다. 가볍게 다니고 일찍 움직이고 밤에 나다니지 않고, 필요 물품은 현장에서 구하는 게 매우 중요한 요령이다. 책 같은 건 가지고 다니지 말고 쓰고 과감히 버리기도 해야 한다. 


코리아둘레길을 걷는 이의 축복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런가? 

우리가 평소 쓰는 감각은 아주 제한적이다. TV가 있는 거실 소파나 집무실이나 서재의 의자, 식당 식탁에서 사용되는 내 몸의 감각을 한번 생각해 보라. 하지만 두 발로 땅을 밟으며 나가면 내 감각의 세계는 무한대로 확장된다. 몸의 감각이 세계와 소통하고, 오감은 저절로 작동한다. 난 비 내리는 날씨를 평소 좋아하는데, 비가 내릴 때 빗소리에 땅을 치면서 후각으로 올라오는 땅 냄새, 풀 냄새가 너무 좋다. 손에 훔쳐 맛보기도 한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게다가 지금은 지독한 무감각의 시대이다. 걷기로 감각을 활용해야 한다. 뛰기나 탈것을 이용한 행위는 감각의 왜곡이 생겨난다. 이 행위는 스포츠나 챌린지로 변화하고, 다시 속도를 통한 경쟁을 불러일으킨다. 오래 걷기는 스포츠나 챌린지가 아니다.

 

코리아둘레길에 포함되지 않은 경기둘레길 구간이 책의 2분의 1 이상 언급되어 있는데 이유는 무엇인가? 

경기둘레길은 비교적 스토리가 풍부하고, DMZ 평화의 길은 생태 문제를 다루기에 적당한 길이라 생각하다. 경기둘레길은 860km이고 이는 DMZ 평화의 길보다 1.5배 이상 더 긴 거리이다. 경기도가 관장하는 길인데, 보통의 경우 지자체의 길은 주변 코리아둘레길에 포함되거나 코리아둘레길과 만나서 이어진다. 해파랑길에는 강릉바우길, 남파랑길에는 남해바래길있다. 코리아둘레길에 거의 대부분 포함된다. 경기둘레길의 경우 대략 1/4 정도가 서해랑길에 포함되거나 만난다. 구간으로 따지자면 고양부터 연천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이 정도라면 전반적으로 코리아둘레길에 연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도 좋으리라고 판단했다. 코리아둘레길이라는 브랜드의 선점된 이미지를 활용하고자 했다. 우리의 주변 둘레길이 코리아둘레길과 특별한 물리적 차별성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내 판단하기로는 걷기 문화의 확산을 위해서는 ‘코리아둘레길’이라는 단일 브랜드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향후의 저작도 코리아둘레길 핵심 코스를 다루며 다른 둘레길도 일부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물론 코리아둘레길이라는 제목으로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씨앗의 이동에 관련하여 ‘훨훨 착 데굴데굴 냠냠~“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식생 동정(同定)을 위해 숲 해설가 공부도 따로 한 걸로 알고 있다. 

요즘 생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고 둘레길도 우리의 세계를 이루는 환경이기에 생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걸으며 보이는 내 주변의 환경이 바로 생태이다. 이를 위해 숲해설가 공부를 하고 숲해설가 자격증도 땄다.


여러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많이 담으려고 했다. 씨앗의 이동, 화야산 참나무, 단월면 보산정 전나무 이야기, 클로버 이야기, 꿀벌과 커피이야기 등등. 이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창조된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는 자신의 마땅한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역할 없는 존재란 없고, ‘유익’과 ‘유해’라는 인간 중심의 개념은 해체해야 할 때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생태 이야기도 기대해도 좋다.


천천히 오래 혼자 걷기에 ‘달인’인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간 우리는 너무 속도에 휘둘려 살았다. 산업화, 정보화 시대는 속도를 강조해 사람을 혼란으로 몰고 간다. 이를 벗어나는 방법은 천천히 걸으며 주위와 주변을 살피는 길이다. 이게 유일하다. 내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세계를 살피면서, 속도에서 낙오된 이들을 안고 가야 한다. 걸으면 내가 보인다. 한데 천천히 오래 걸어야 한다. 내 경우 2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걸으면 그때부터 잊고 있었던 창의적인 착상과 아이디어, 발칙한 상상과 의미 있는 고전 이야기들이 점점 머리로 올라온다. 


2~3일 정도 짧게 가는 일정이나 혹은 청소년의 단체 활동은 연대해서 동행해도 좋다. 청소년기라면 더불어 살아가는 방식을 배울 수 있다. 하나 성인의 장거리 걷기는 자아를 점검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굳이 동행하여 취향, 체력, 관심사의 차이와 각자의 우선순위로 인해 서로의 정신과 육체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현재 산티아고 카미노에는 단체로 몰려온 한국인 시니어들로 인해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가톨릭교회가 아닌 이상 외국인들에게 단체 순례란 없다. 한국 시니어들은 혼자 있으면 불안해하는 것 같다. 이거 큰 문제이다. 혼자 있을 줄 알아야 한다. 자신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걷다 보면 날씨가 신경 쓰이지 않은가? 또 혼자 걷다 보면 길을 잃거나 사고가 나는 일도 생기지 않나?

한국과 같이 사계절이 뚜렷하고 변화가 있는 날씨는 엄청난 축복이다. 날씨 변화는 걷기의 당연한 과정이고, 아주 주요한 핵심 요소이다. 그대로 받아들여 적응할 줄 알아야 한다. 코리아둘레길은 사계절에 따라 날씨 변화가 많은데 그것 그대로가 축복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길을 잃을 염려란 거의 없다. 코리아둘레길은 지자체와 관련 단체를 통해 정비와 관리가 잘 되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리본이나 방향 표시, ‘두리누리 앱’의 따라가기 기능도 아주 탁월하다. 길을 잃어도 어두운 밤만 아니라면 다 해결된다. 낯선 지방길에서는 밤에 나다니지 말아야 한다. 상식이다. 길을 잃었다면 간 길을 다시 되짚어 가면 다 해결된다. 


미국의 PCT나 아팔래치안 트레일 같은 장기 산악 트레일에 비하면 우리 둘레길의 접근 경로는 퍽 쉽다. 아주 쉽다. 오히려 문제는 여성 트레커에 대한 편견이다. 여성이 혼자 다니는 경우를 아직도 백안시한다. 여성 트레커들은 자신의 체력 문제를 좀 더 면밀하게 체크할 필요가 있다. 목줄 풀린 개, 마을 주민의 지역 이기주의, 숙박 바가지 등 엉뚱한 데에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2021년 당시 걸었을 때는 코로나 시기가 막 끝난 때였다. 글도 못 쓰고 숙식 문제로 고생을 심하게 했다. 지금은 여러 면에서 여건이 많이 좋아졌다. 코리아둘레길 중 해파랑길 숙식 인프라는 훌륭하다.

 


당신은 길 위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현장성을 글에 담으려고 한다. 트레킹 문학과 답사 여행기는 어떻게 다른가.

분명하게 말해 트레킹 문학은 ‘길 위’이어야 한다. 산티아고 카미노의 경우 모든 이야기는 길 위 그 바로 위의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그렇듯이 ‘길’이 만들어지면, 그 위에 ‘숙식 인프라’가 깔리고, 또 그 위에 ‘스토리’가 형성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추려면 물론 시간이 필요하다. 걷기 여행의 조건이다. 물리적인 길, 숙식 인프라, 그리고 스토리. 이 모두는 ‘길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길만 뚫어 만들면 숙식 인프라와 스토리는 저절로 형성된다고 이해한다. 오해이다. 모든 것은 길 위, 적어도 가까운 그 주변이다. 멀리 떨어진 관광지나 문화유산, 사적(史蹟), 읍내의 이야기가 아니다. 트레킹은 답사가 아니다. 그러니 트레킹과 답사를 겸하여 수행할 수 없다.

 

걷기 여행 문화가 확산된 건 2000년대 후반부터이다. 국내엔 600여 개, 2만km의 걷기 여행길이 조성돼 있다고 한다. 이 숫자는 2021년 기준이니 현재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코리아둘레길이 한국을 대표하는 길이 되려면 보완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문화적 차원으로의 발전이다. 산티아고 길은 순례길이면서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그 길에는 천년의 문화가 담겨 있다. PCT 트레일 아팔라치안 트레일 같은 미국의 트레일은 산악 트레일이다. 그 지원 방식이나 숙박 로지, 트레커 간의 소통 방식 그리고 지역 커뮤니티의 문화가 아주 확고하게 녹아있다. 


반면에 우리의 둘레길은 문화적 측면이 ‘길 위’에 아직 정착되지 못한 점이 약점이나, 물리적으로 접근성이 좋다는 것은 아주 큰 장점이다. 길은 마련되었는데 아직 문화적 차원으로의 발돋움은 부족하다. 이건 서두르면 안 된다.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다. 좋아서 모인 사람들, 숙식의 독특성, 소규모 예술관 등이 종횡으로 연계되어야 한다. 나는 지리산둘레길에서 그 문화적 가능성을 엿보았다. 

 

딱 한 사람에게 이 책을 영업해야 한다면 누구에게 하고 싶은가?

집사람이다. 일단 그 영업이 진행 중이다. 저번 책과는 달리 이번 신간은 아내가 밑줄을 그어가며 정독 중이다. 부부 장기 트레커들이 간혹 있긴 있더라. 그간 코리아둘레길을 걷다 이런 부부팀을 만나면, 일견 반갑고 일견 너무도 부럽더라. 관찰해 보자면 아내분이 적극적이지 않으면 부부가 장기 트레킹에 나서기란 쉽지 않다. 거의 없는 것 같다. 나름의 오랜 경험으로 내린 나의 결론이다. 내 아내는 밖에 나가 오래 걷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허나 이번에는 책을 읽고 아내의 마음이 바뀌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최종 영업의 성공 여부는 아내가 길을 나서자고 내게 제안하는 경우일 것이다. 그날의 영업 완료를 기다리고 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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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이의 축복 코리아둘레길 : 입문편

<이화규> 저/<이세원> 사진

출판사 | 나무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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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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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규

고려대학교 국문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했다. 대 학원에서는 한국한문학을 전공했는데, 대학 4학년 재학 중, 선경 그룹 SK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학을 공부한 것이 그 계기가 되 었다. 여행, 트레킹, 순례, 음악, 오디오, 영화, 음반, 공연 등 문화 전방위 적 놀이에 관심이 많다. 1950~1970년대의 고전영화를 좋아하며, 1940~1950년대의 스윙과 모던재즈를 즐겨 듣는다. 청년기까지 1960~1970년대의 영미 대중음악을 섭렵했고, 사회생활 중에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음악을 즐겨 들었다. 한때 오디오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여러 수집 매체를 활용하여 커뮤니티 멤버들과 역사지리 모임을 진행한 것은 현재진행형인 빛나는 추억이다. 평생 길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 시안에서 로마에 이르는 실 크로드 길을 대부분 답사했다. 국내 둘레길 7,000km 이상을 걸 었는데, 그 중 4,520km 코리아둘레길 4개길 전 구간을 완보하여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 시기 표박漂迫의 몸 훈련, 고독이라 는 마음 훈련을 통해, 내면 고독과 육체 단련의 중요성을 절감했 다. 이 훈련으로 75일간 3개 산티아고 카미노를 완보 순례할 수 있 었다. 32년간 교육계에 있으면서, 현장 교육과 EBS 활동을 병행했다. 지은 책으로 《즐거운 교실공부》, 《산티아고 카미노 블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