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선 작가는 양극성장애, 불안증, 수면장애, 메니에르를 겪는 일상에서 질병을 수긍하고 자기 몸을 토대로 어떻게 사회를 인식하고 하루를 보내는 지 등 다양한 단상을 산문 형태로 기록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쩌면 불안을 달고 사는지도 모릅니다. 딱히 질환이 아니어도 말이죠. 또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저런 심리적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많습니다.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무척 공감하고 배울 부분이 많은 책이라 생각합니다. 한정선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스미는 목소리』가 첫 단독 저서입니다. 이전에 공저로 참여했던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출간 소회를 들려주신다면.
아무래도 무게감이었던 것 같아요. 그 전 작품들이 하나는 일상 에세이이고 하나는 칼럼이었다는 점에서 분위기는 달랐지만, 함께 작업하는 작가님들이 있어서 제 개인적인 어려움, 이를테면 갑자기 공황장애와 울증으로 작업을 이어갈 수 없을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너무나 죄송하면서도 너무나 감사한 기억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해야 할 일로 가슴은 무거운데 시체처럼 있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어요.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어려운 무기력에서 헤매일 때, 죄책감은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지만 제가 해내야 할 일이었어요. 다행히도 출판사에서 오래 기다려 주고 묵묵히 함께해 주셨어요. 제 느린 호흡과 느닷없는 박자감을 맞춰주셨고, 괜찮다 해주셨어요. 돌이켜 보면 무게감에 허덕였는데 그걸 출판사 쪽에서 같이, 아니 더 많이 짊어지고 함께 버텨주신 거라, 부끄럽기만 합니다.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사연을 모두 밝힐 수 없는 일들로 완전히 무너지던 시절의 이야기예요. 십여 일을 수면 속에서 허덕이며 인간의 존엄은 완전히 무너지기도 했어요, 잠시 5시간 정도 깨어나 먹고 다시 잠들어버리는 시간 동안 씻지도 못하고 치우지도 못하고 깨어나지도 못하고 짐승처럼 살았어요. 어느 겨울엔 50시간 가까이 위가 멈춰서, 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고 약도 먹지 못해서 잠도 잘 수 없던 시간을 버텨내던 시절이 뒤섞여 있어요. 잠들지 못하고 아무것도 못 먹는 것도, 잠만 자고 겨우 아무것이나 먹고 다시 잠만 자던 시절 모두 공포였죠. 때로는 약물 부작용으로 쓰려졌다 이틀 만에 깨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공황장애로 눈, 코, 입이 모두 젖은 종이로 덥힌 듯한 환각 속에서 죽을 것 같은 시간이 무작위로 찾아왔어요. 조각이 나면 기워서 다시 형상을 만들 수 있는데 가루가 되면 게워낼 수도 없어요. 완전히 가루가 된 시간이었어요. 해서... 다시 빚어야 했어요, 내가 나를 빚어내어야 하던 시절이었어요. 울면서 빚었던 것 같고 당위로 빚었던 것 같아요. 그게 글이 됐어요.
질병 당사자의 삶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삶과 어떤 면에서 좀 다를까요?
아무래도 이해받지 못하다는 점이 서글프죠. 가령 공황이 찾아와도 매번 설명할 수도 없고 그때 곁에 아무도 없는 경우가 많아요. 너덜너덜해져서 어떻게든 일상을 영위해야 하는데 타인은 모르는 영역이잖아요. 자주 아프고 자주 허물어지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자신이 받아들이는 것과 타인이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니까요. ‘그럴 수도 있다’라는 사회적 인식이 우리나라엔 아직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하곤 해요. 이런 건 노동자의 환경과도 연결돼 있어서 씁쓸해요. 아픈 건 미안한 게 아닌데, 그게 죄인처럼 만드는 환경. 치밀한 신자유주의 사회인 이곳에선 질병인들은 짐이 되고 나쁜 존재가 돼요. 지독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다면, 조금만 더 노동 친화적인 사회였다면, 한 사람의 몫이란 것이 조금 헐거운 사회였다면,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지독한 자멸감에서 더 많은 사람이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좀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생각하곤 해요.
지금까지 작가님은 어떤 삶의 지향으로 살아오셨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저는 “착하게 살자.”(웃음)가 진심으로 삶의 지향점이에요. 착하고 싶어요. 바르고 맑고 착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일상이 정치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부분에서는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일상은 정치적이고 모든 정치는 일상에 맞닿아 있어요. 거기 바로 그 지점에서 착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다행히 제 주변엔 그런 존경스러운 분들이 많아서 아, 이게 바로 복받은 거구나 해요. 그들의 선함과 그들의 지식과 그들의 꾸준함과 그들의 다정함을, 가진 사람이 저도 되고 싶어요.
자신의 일상을 글로 옮기려는 분들이 아주 많은데요, 일상에서 글쓰기에 관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일상적 글쓰기에 대한 조언이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당황스러운데요. 그냥 매일 혹은 자주 쓰는 것밖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음, 각 잡고 쓰는 것도 매우 중요해요. 적어도 한 주에 한 편은 완성도 있는 글을 써보려 애쓰는 것. 하지만 평소에 아무 말인 것 같아도 단 몇 줄이라도 글을 써보는 게 기본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매일매일 긴 글을 쓰기는 어렵고 부담스럽지만 너덧 줄 정도의 글을 쓰는 것은 덜 부담스러울 테니까요. 단어만 던져지던 글이, 이어지는 글로 되고 어느덧 하나의 완성된 문단이 되는 걸 경험하고 나면 그 다음은 조금 쉬워져요. 그때까지 뻔뻔하게, 좀 창피해도 막 쓰는 거죠. 저처럼요.
이 책의 독자 중에 작가님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실제 이 책의 독자 후기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죠. 이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전혀 괜찮지 않을텐데도…. 잘 버티셨어요. 살아 있어 주어서 고마워요. 저는 이 말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그들의 주변인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손가락이 다친 것과 발가락이 다친 것이 다르고 심장병에 걸린 것과 신장 질환이 있는 것이 다르듯, ‘정병’(정신질환)도 다 다르고 사람마다 증상도 다 달라요. 그러니 정병 하나로만 분류하여 보통과 다른 존재로 구별하고 차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이렇게나 다양하고 다채로운데 소위 정상성에 묶여서 그 수많은 층위의 사람을 다 쳐낸다면, 낙오된 그들보다 낙오해 온 사회가 낡고 혐오스러운 것 아니겠나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함께 공존할 수 없는 사회는 그래서 낙인찍는 사회는, 내쳐진 존재들에겐 삶을 저버리는 것밖에 결론 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이에요. 낙인찍지 말고 다정해졌으면 좋겠어요.
끝으로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큰 계획은 없어요. 혼자 책 제목하나 만들어 두고 후후 혼자 웃고 있지만 구체적인 것은 없어요. 음, 기회가 닿는다면 현재 쓰고 있는 칼럼을 묶어서 출간해 보고 싶은 욕망은 있어요. 욕망이요. 이런 게 없던 세월이 길었는데요, 불란서책방 덕분에 책에 대한 욕망이 생겼어요. 기쁘고 설레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스미는 목소리
출판사 | 불란서책방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zidanetribal
2025.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