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듯 가볍게 떠난 발리에서 뿌리를 내렸다
해외 이주가 아니더라도, 정말 원하는 게 있다면 시도는 해보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믿고, 인생의 회복력을 믿으면서요.
글 : 출판사 제공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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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완전하게』, 『사물의 중력』, 『나는 나를 사랑한다』 등으로 동시대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이숙명 작가가 한국을 떠나 8년간 발리에 정착해 살면서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삶에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거창하게 생각하고 두려워하기보다 실험하듯 가뿐히 앞으로 한 발 내디뎌 보기를 권하는, 『발리에서 생긴 일』 이숙명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여러 나라, 여러 지역에 여행을 다녀보셨을 텐데요, 발리에 정착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지요? 

2016년에 여행차 발리에 와서 5개월을 머물렀어요. 서울에서 혼자 살면서 재택근무를 오래 했기 때문에 삶이 상당히 흐트러진 상태였거든요. 생활이 불규칙하고 항상 집에 있는 사람으로 인식되니까 불필요한 인간관계가 많아졌고, 술도 너무 많이 마셨고, 그러다 일을 할 땐 확 몰아서 하느라 며칠씩 밤을 새우기도 했어요. 도시인 특유의 막연한 불만족, 불안, 조급증 같은 것도 있어서 늘 숨이 가쁜 느낌이었고, 삶이 전혀 건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번 생활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살던 곳에서는 그게 어려우니까 환경을 바꿔서 혼자 지내봐야겠다 한 거고요. 마침 발리에서 마음에 드는 숙소를 발견해서 여기로 온 거지, 그때는 발리에 딱히 관심이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 여행 동안 지금 함께 사는 파트너를 만났어요. 그가 발리의 부속 섬 누사프니다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던 참이라 저도 이곳으로 왔죠. 


누사프니다는 발리에서 배로 45분 정도 걸리는 섬인데요. 당시만 해도 이주민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개발이 거의 안 된 곳이었어요. 섬 인근 수중 환경이 다채로워서 스쿠버다이버들이나 지명을 들어본 정도였고요. 수입 식재료도 전혀 없고, 인터넷 쇼핑은 꿈도 못 꿨죠. 전기와 수도도 자주 끊기고요. 그런 곳에 사니까 삶이 굉장히 단순해지더라고요. 최소한의 물자만 소유하고, 재래시장이나 로컬 상점을 이용하고, 유흥거리가 없으니까 집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최소한의 사람만 만났어요. 삶을 리셋하고 싶다는 제 욕구에 딱 들어맞는 환경이었죠. 러닝머신을 최고 속도로 맞춰놓고 헐떡헐떡 뛰다가 땅에 내려와서 제 속도로 걷기 시작한 듯 호흡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어요. 


저는 여기 사는 걸 ‘정착’보다는 ‘적응’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이제는 누사프니다에 적응을 해버려서 한 달에 한두 번 발리에 나가면 그곳조차 피곤하게 느껴져요. 만일 다시 한국에 살게 된다면 도시보다는 여기처럼 한가한 시골로 가야겠다 생각하고요. 하지만 한국에서 여기에 올 때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 다른 곳으로 언제든 훌쩍 이동을 할 수도 있다고, 미래를 열어놓고 생각해요. 삶은 고여 있을 때보다 흘러갈 때 건강하다 믿고, 그래서 별 부담 없이 외국살이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 자세를 항상 유지하려고 해요. 이건 제가 디지털 노매드라서 가능한 마음가짐일 거예요. 좋은 사람과 인터넷이 있는 곳이면 거기가 내 집이다라고 생각을 하죠. 

 

누사프니다에 정착한 후 가장 기쁘고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요즘입니다. 누사프니다 초창기에는 공동주택에 살았는데 코비드19 팬데믹 동안 이웃이 모두 실직을 하는 바람에 집이 24시간 술집이 되어버렸어요. 소음도 소음인데, 매일 취해서 해롱거리는 사람들을 보는 게 싫더라고요. 그 무절제함에 제 생활까지 오염되는 느낌이었어요. 몇 년 살다 보니 짐이 늘어서 공간도 더 필요했고요. 그래서 집을 짓기 시작했어요. 


별 욕심 없이 최대한 단순하게 짓겠다 결심했는데 ‘하는 김에 이것도’, ‘하는 김에 저것도’ 하다 보니까 일이 커졌어요. 원래도 인부 구하기가 어려운 동네인데 경험이 부족한 시공사를 선택하고 물류대란이 벌어지고 어쩌고 하다 보니까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버렸어요. 공사 차량이 대문을 들이받아서 다 지은 대문이 무너지고 그걸 수습하느라 2년이 걸린 건 책에 쓰지도 않았을 정도로 다른 우여곡절이 많았죠. 그 바람에 제가 성격이 엄청 나빠졌어요. 우울하기도 했고요. 격한 스트레스를 겪고 나니까 집을 완공한 후에는 카타르시스가 몰려왔어요. 말씀하신 대로 기쁘고 즐거웠고요, 무엇보다 ‘편하다’라는 단어의 의미를 재발견했어요. 아, 이런 게 편한 거구나, 평생 몰랐던 감정이다, 하고요. 그런데 그게 과했던 나머지 ‘슬슬 다른 일을 저질러 볼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을 쓰겠다고 결심을 해버렸어요. 발리의 역사, 사회, 지역성을 공부하면서 갑자기 개안한 듯 후련해진 경험이 있거든요. 왜 이런 정보가 여행자들에게는 쉽게 닿지 않을까 고민했고, 언젠가 그 내용을 에세이와 접목해서 쉽게 써봐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기존에 제가 쓰던 글과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집필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2년 동안 개학이 코앞인데 방학 숙제가 잔뜩 밀린 기분으로 살았죠. 


책이 나온 지금은 공백 상태인데, 진심으로 기쁘고 즐겁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궁산이 어둠에서 깨어나는 걸 조망하고 있노라면 이게 천국이구나 싶어요. 또 뭔가 일을 저질러서 이 차분한 행복 상태를 망가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한국에 있지 못해 아쉬웠던, 혹은 한국이 가장 그리웠던 순간은 언제였는지도 궁금합니다.

변태 같은 소리일 수 있지만, 뉴스를 보면서 국가적 이벤트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아쉽습니다. 저는 아직 한국 사회에 소속감이 있는데 그 사회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변화의 에너지를 현장에서 체감할 수 없다는 게 아쉽고, 소외감이 들어요. 그걸 무시하기에는 한국이 너무 다이내믹하고 이벤트가 많아요. 


개인 수준에서는 이따금 한국의 겨울이 그립습니다.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난방을 하는 가게들, 붕어빵, 포장마차의 어묵탕 수증기 같은 것이 만들어내는 고유의 정취가 있어요. 예전에 한류 팬들이 한국에서 해보고 싶은 활동으로 ‘포장마차에서 소주 마시기’를 꼽은 걸 보고 의문에 사로잡힌 적이 있는데, 외국에 살아보니까 이해가 가요. 그게 대단히 개성 있고 인간미 넘치는 풍경인 거죠. 

 

발리에 정착한 이후 스스로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이 있다면요?

잘 도망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원래도 진인사대천명이 아니라 진인사런어웨이의 자세로 살아왔어요. 당장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하되 한계에 봉착했다고 느끼면 더 이상 그것에 매몰되지 않도록 한발 물러서서 인생을 재정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나은 환경을 찾아 떠나고, 그곳에 오래 머물러 본 경험 덕분에 ‘삶에는 언제든 솟아날 구멍이 있다’라는 확신이 생겼어요. ‘인생의 회복력을 믿게 되었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 


‘그때 그곳’이라서 가능한 점도 분명 있었어요. 발리는 독특한 지역 문화로 유명한 곳이지만 세계 각국에서 온 거대한 이주민 집단이 존재하는 다문화 사회기도 해요. 개개인에 이목이 집중되지 않죠. 그래서 내 존재 자체로 인한 스트레스가 덜해요. 물가가 많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물가를 돌파해서 살아갈 샛길들이 존재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물심양면 여유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죠. 하지만 발리도 변하는 중이고, 앞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은 전혀 다른 감흥을 받을 수도 있어요. 각자 자신에게 맞는 곳이 따로 있을 거예요. 잘 찾아보시길 바라요. 

 

올해로 발리 누사프니다에 정착한 지 8년이 되셨는데요. 요즈음 발리의 풍경은 어떤가요? 또 작가님 마음의 풍경은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그사이 발리는 많이 개발이 되었어요. 8년 전에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속 발리처럼 소박한 전원 마을을 기대하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상업적이다’라고 실망을 하곤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훨씬 더 개발이 되어서 우붓, 짱구, 울루와투의 번화가에 가면 카페-옷 가게-기념품 가게-카페-옷 가게-기념품 가게가 끝없이 늘어선 걸 볼 수 있어요. 누사프니다 저지대 해안가도 비슷하고요. 그게 꼭 단점은 아니에요. 과거에는 발리의 정신문화, 낮은 물가, 자연 등이 여행자들을 끌어당겼다면 요즘은 아기자기한 가게, 패셔너블한 젊은이들, 인플루언서들로 북적거리는 활기찬 분위기에 매료되는 사람이 많죠. 다만 후자는 다른 여행지가 개발되면 대체될 수도 있는 특성이라 걱정은 됩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투자자 비자 발급 기준 금액을 대폭 상향하면서 거대 자본만을 환영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것도 두렵고요. 하지만 발리는 워낙 큰 섬이라 번화가를 벗어나면 아직 때 묻지 않은 열대림이 나오고, 힌두 문화, 서핑 비치, 스쿠버다이빙 스팟 등 대체할 수 없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다음 변화가 무엇일까 궁금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세계적 관광지라는 건 관광업 종사자들에게는 전쟁터라는 의미기도 해요. 제가 이곳에서 사귄 이주민도 대개 관광업 종사자기 때문에 도시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의외로 굉장히 치열하고 바쁘게 살죠. 발리의 미래는 뭘까를 늘 토론하고요. 제 삶은 정적이지만 주변은 항상 동적이에요. 그래서 심심할 날이 없죠. 

 

발리 같은 세계적인 여행지에서 살면 매 순간이 여행하는 기분일 것 같은데요, 지금 계신 누사프니다에서도 때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발리에 정착한 이후 다른 나라나 지역으로 여행을 가신 적 있을까요? 가셨다면 어디로 다녀오셨는지, 혹은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로 가시고 싶은지요.

서울과 발리에서 각각 오래 살다 보니까 요즘은 두 곳의 장점을 합친 지역들에 관심이 가요. 대도시의 질서, 편의, 대중문화 접근성은 그것대로 존재하면서 세계화에 덜 휩쓸린 개성 있는 지역들이요. 과거에 가본 곳 중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와 포르투가 그에 가까워서 요즘 부쩍 그립습니다.


발리에 사는 동안 여행한 도시 중에는 쿠알라룸푸르가 좋았습니다. 민족 구성이 다양하고 구도심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블록을 지날 때마다 분위기가 확확 바뀌는 게 재미있었어요. 음반사에서 주최한 스튜디오 워크숍 참가자들과 동행한 덕에 공장지대에 위치한 간판 없는 술집이라든가 아직 지도에 오르지 않은 갤러리 등을 둘러본 것도 좋았어요. 과거 서울처럼 감각 있는 젊은이들이 소자본으로 꼼지락거려 볼 여지가 남아 있는 도시 같아서 일종의 향수를 느꼈습니다. 서비스직 종사자들이 무미건조한 듯 정중한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내향인에게 잘 맞는 환경이죠. 꼭 다시 방문해 보고 싶은 도시입니다.

 

한국에서의 삶에 염증을 느껴 다른 나라로의 이민이나 이주를 꿈꾸거나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누사프니다에 살면 시즌마다 유명 관광지를 옮겨 다니며 노매드로 사는 친구들을 자주 볼 수 있어요.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 그러면서 매일 다이빙하고, 파티하고, 자유롭게 지내요. 그러다 몇 년 지나 보면 누구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되어 있고, 누구는 버스 운전사가 되어 있고, 누구는 대학에 진학했고, 누구는 집안 사업을 물려받았다 그래요. 인도네시아의 한국 회사에 다니다가 더 좋은 기회를 찾아서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 발리에서 30년 이상 지내다가 외로워져서 다시 이주를 꿈꾸는 분들도 만났어요. 인생의 고민을 영원히 해결해 줄 단 한 번의 선택, 단 한 번의 성취, 단 한 번의 인연 같은 건 없더라고요. 늘 새로운 고민과 선택이 나타나죠. 이건 선택의 순간마다 절체절명의 사안처럼 비장해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해요. 각자의 인생엔 각자의 고충이 있는 거니까 저처럼 ‘일단 저지르고 안 되면 철수하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다만 그것이 해외 이주가 아니더라도, 정말 원하는 게 있다면 시도는 해보시길 바랍니다. 자신을 믿고, 인생의 회복력을 믿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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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