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엉큼한 녀석의 실체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멀리 있는 행복이 아닌 가까운 곳의 불편을 제거하는 일 같아요.
글 : 출판사 제공 사진 : 출판사 제공
2025.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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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인류가 문명사회로 접어든 이래로 가장 오래된 화두이자 삶의 목표다. 각자의 삶을 버텨내고, 견뎌내고, 이겨내기 바쁜 와중에도 행복의 흔적을 억척스럽게 찾아내며, 흔적을 찾지 못한 날은 으레 불행한 날로 여긴다. 행복하지 않았던 하루 그리고 삶은 불행한 나날들이 되는 걸까? 행복하지 않았던 당신의 오늘이 불편하다면, 나만 행복에서 멀어지는 것 같다면, 괜찮다는 말보다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고 싶다면? 행복에 이르는 길은 ‘행복을 집중하지 않는 것에 있다’는 에세이『어쩌면 행복일지도』의 저자 왕고래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왕고래 작가님의 신간 『어쩌면 행복일지도』 출간 축하드립니다. ‘행복’이라는 내용에 근본적인 내용을 담아낸 도서 내용이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오는데요. ‘행복’이라는 것 자체에 관한 내용의 에세이를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글을 쓰던 당시의 제목은 <내 베개 밑에는 불행이 있다>였어요. 힘든 시기를 보내던 어느 새벽, 긴 악몽을 꾸고 일어났는데 문득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것은 마치 베개 밑에 있는 것처럼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부단히 노력해야 뒤꽁무니인지 뭔지 보일락 말락 밀당하는 ‘행복’과 달리, 불행은 조금만 방심해도 매일 머리를 대는 베개 밑으로 쏙 들어와 버렸죠. 퍽 부지런하게.

그래서 내 삶이 더 나아지려면 막연한 행복보다 가까이 있는 불행을 선명하게 바라보고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행복보다 불행이 더 잘 보였던 오늘이 불편하지 않도록 말이죠.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행복'이라는 엉큼한 녀석의 실체도 파헤치게 되었고, 발견한 것들을 적다 보니 감사하게도 책이 되었어요.

 

도서만큼이나 작가님의 ‘왕고래’라는 필명이 눈에 진하게 남는데요. 그냥 고래도 아닌 ‘왕고래’라는 필명을 사용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너무 단순해서 입 밖으로 꺼내기 민망하네요. (웃음) 고래를 좋아합니다. 우영우 변호사님만큼은 아니지만 저의 개인 공간에도 많은 고래템들이 있어요. 고래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그들이 무척 독특하기 때문이에요. 물속에 사는데 어류가 아닌 포유류예요. 우리처럼 물 밖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데 물속에 살며 바다 깊은 곳을 유영하죠. 오직 고래만이 지구에서 가장 깊은 바다의 비밀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고래는 알이 아닌 새끼를 잉태하고 낳은 후 젖을 먹여 키워요. 새끼 역시 당연히 물속에서 숨을 못 쉬겠죠?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수면으로 내달리는데 힘이 부족하면 어미고래가 뒤에서 밀어준답니다. 멋지지 않나요!!!? (다른 멋진 점들도 많지만 공적인 자리니 이쯤에서 진정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들의 겸손함이에요. 덩치는 현존 동물 중에 제일 큰데, 상어와 다르죠. 포악하지 않고 오히려 바다 생태계의 균형을 조절해요. 제가 고래처럼 덩치가 큰 건 아니지만, 그들 면면을 닮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고래라는 필명을 택하게 되었어요. '왕'이 붙어있는 이유는 그런 고래 중에서도 가장 겸손한 고래가 되고자 하는 (다소 오그라드는) 포부 때문이에요.

 

책의 내용 중, ‘행복은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문장이 인상 깊은데요. 그럼에도 작가님께선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특별한 비법’ 같은 것이 있을까요?

고백하자면 ‘비법’이라고 할만한 건 없습니다. 다만 이 질문에 그나마 가까운 습관이 두 개 있어요. 첫 번째는 ‘예쁘게 말하기’예요. 이것은 제가 지금보다 미숙하던 시절에 더 나은 삶을 위해 시도했던 노력 중 가장 큰 효과를 본 행동이에요. 시작하는 방법은 간단해요.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는 거예요. 아주 사소하더라도, 뱉기 시작하니 내 일상에 숨어있던 좋은 것들이 더 잘 보이더라고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소 무난하거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좋은 면을 발견하고 예쁘게 표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됐어요. 의도적이되 사소한 행동의 반복이라도, 조금씩 그런 삶으로 데려다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백종원 씨께서 '착한 척을 하다 보니 몸에 배어 좋은 일을 하고 결국 행복감이 생겼다'는 말씀을 하신 걸 봤는데,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의 습관은 유머를 잃지 않는 거예요. 마하트마 간디는 "내게 유머 감각이 없었다면 나는 오래전에 자살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유머가 가진 힘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말인 것 같아요. 저 역시 이런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힘든 상황에서도 유머를 뱉기 위해 노력하곤 해요. (아재 개그나 정신승리로 끝날 때도 많지만….)

습관은 아니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멀리 있는 행복이 아닌 가까운 곳의 불편을 제거하는 일 같아요. 일상엔 꽤 많은 불편이 존재하는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들을 감수하고 있거든요. 예컨대 베개를 더 좋은 것으로 바꾸거나 발이 더 편한 신발을 신는 일 등이에요. 저는 최근에 손이 편한 마우스를 사보았어요. 이런 얘길 하면 "뭐야 돈으로 때우라는 거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저도 만 원짜리를 한 개씩 두 개씩 모아서 실현하는 거예요! 좋은 제품을 찾고 돈을 모으는 것부터 구매하고 불편을 제거하는 순간까지 모두 하나의 과정인데, 더 편해지는 것 이상의 좋은 점은 그 과정에서 나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는 점이에요.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나를.

 

행복과 불안. 이 두 가지는 종종 같이 따라오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온전히 행복에 집중하기 위해 ‘불안’을 약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서 잠재우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다만 '불안'이라는 정서를 조금 더 나은 상태로 조정하는 방법은 알고 있어요. 불안은 우리가 느끼는 ‘슬픔, 환희’와 같이 ‘정서’ 중 하나예요. 이 '정서'는 신체적 상태인 '흥분-차분' 사이의 어디쯤, 그리고 동시에 정신적 상태인 '좋음-나쁨' 사이의 어디쯤에 위치한다고 해요. 예를 들면 '슬픔'은 '차분/나쁨', 환희는 '흥분/기쁨', 분노는 '흥분/나쁨'에 위치한 상태인 것이죠. 여기서 '불안'은 '약간 흥분/약간 나쁨'에 해당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어요.

불안이 지속될 때 보통은 긴장감을 주는 신체적 상태를 ‘흥분’에서 ‘차분’으로 조절하려고 하는데, 더 효과적인 방법은 정신적 상태를 조절하는 거예요. 그것을 '약간 나쁨'에서 '약간 좋음'으로만 바꾸면 우리가 잘 아는 '설렘'이라는 상태가 될 수 있거든요. 여기서 핵심은 '약간'이에요. 행복한 지금 상황에서 작더라도 분명한 것들을 상기하다 보면 그 불안이 설렘으로 바뀔지도 몰라요. 저의 경우 오늘 저녁에 먹게 될 맛있는 음식이라던가 마음 맞는 친구와의 약속처럼 소소하게 좋은 순간을 떠올리곤 해요.

 

작가님이 보셨던 영화 중,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행복’에 대한 이미지를 가장 잘 담아낸 영화가 있을까요?

<미스 리틀 선샤인>이요. 이 영화는 7살 딸인 올리브의 미인대회를 위해 온 가족이 작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고군분투하는 여정을 보여주는데요. 그 과정이 매우 험난해요. 보통의 영화라면 이토록 많은 위기와 불행이 이어지면 결국 그것들을 모두 압도할 만한 행복을 만나면서 끝나겠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모든 문제를 그대로 안은 채 끝나죠. 그런데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불행해 보이지 않아요. 심지어 제가 빌런이 되어 아무리 노력해도 깨뜨릴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사랑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그 모습에서, 행복이란 게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 머물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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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