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역사의 힘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5.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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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행』은 팩션, 호러, SF, 미스테리, 스릴러, 청소년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200여 편 이상의 소설을 선보여 온 정명섭 작가의 야심작이다. 비극적 운명의 굴레를 그대로 감내해야만 하는 주인공, 장대한 영웅 서사의 배경으로서 갖가지 괴이한 사건들을 만들어 내는 오컬트 판타지 세계관, 주인공을 돕는 각기 다른 능력의 개성 강한 캐릭터들, 주인공을 가로막고 시련과 고통을 안기는 빌런들, 그리고 목적을 짐작하기 어려운 배후와 음모까지. 『암행』은 다크 판타지 장르가 요구하는 요소들에 충실한 웰메이드 엔터테인먼트 소설인 동시에, 혼란한 시대의 어둠 속을 걸으며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묵직하면서도 희망적인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사회적 함의 또한 짙은 작품이다.


 작가는 말한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그러니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하지만 혼자 걸어서는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으니 우리가 서로를 도우며 지탱해 줘야 한다고. 『암행』은 우리의 ‘암행’을 도우며 지탱해 줄 이야기이다.


 

그동안 시대와 역사를 다루는 콘텐츠를 소설과 비소설 영역으로 넘나들며 작업해 오셨는데 이번 『암행』은 조선 다크 판타지 장르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기획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우연찮게 암행어사의 ‘암행’이 ‘어두울 암(暗)자’에 ‘움직일 행(行)’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원래는 비밀리에 다닌다는 뜻이지만 저는 그게 어둠을 걷는다는 뜻으로 이해되더라고요. 그래서 일반적인 암행어사가 아닌, 괴이한 일을 해결하는 암행어사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가 주인공에게 시련과 고통을 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더해졌고요. 그리고 오랫동안 조선 시대 괴담과 전설에 대해서 조사를 하면서 이야기의 살을 덧붙였습니다. 

조선 시대의 괴담은 인간의 감정을 다양하게 보여주면서도 기존의 질서를 존중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장화홍련전>이 대표적인데 원초적인 복수심을 보여주는 한편, 사또를 찾아가서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암행』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감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괴담과 전설들에, 원한과 복수를 더해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주인공 송현우는 어둠을 걷습니다. 송현우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밝았던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어둠 속을 헤매는 인물인데요, 이 인물은 어떻게 구체화 하셨나요?

저는 인생에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쌍둥이처럼 따라다닌다고 믿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이 있고, 나쁜 일이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기는 식으로요. 송현우는 겉으로는 행복한 삶을 살았고, 그 삶은 영원히 이어질 것 같았지만 하루 아침에 사라져버리고 당사자는 어둠에 빠져들었습니다. 극단적인 형태이긴 하지만 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현실에서 겪는 일이기도 하죠. 

문학은 인간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장르가 어떻고, 시대가 어디건 상관없이요. 그래야만 문학을 통해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저의 개인적인 삶에 이런 생각들을 얹어서 만들어낸 인물이 바로 송현우입니다. 제 삶 역시 송현우처럼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교차했던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은 쉽게 풀리지 않지만 본인만 정신을 차리고 있으면 쉽사리 나락으로 떨어지지는 않더라고요. 『암행』의 송현우 그리고 이명천 역시 그러한 길을 걷고 있는 중이죠. 

 

네. 대한민국의 현재 상황을 둘러보면 ‘하루 아침에 어둠에 빠져든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목인 것 같은데요. 그럴 때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싶은 것을 작품으로 구현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께 『암행』이 그런 작업이었을까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2024년 12월 3일은 지워버리고 싶은 악몽일 겁니다. 이런 불가항력적인 일들은 종종 인생에서 벌어지곤 하는데요. 어떻게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일을 겪으면 포기하고 좌절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최악의 순간이라고 해도 결코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제가 살면서 얻은 교훈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으면 결국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죠. 송현우 역시 한 순간에 모든 걸 잃었지만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삶이 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송현우라는 캐릭터를 만들 때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고, 결코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아울러, 제주항공 참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저 역시 사고 소식을 듣고 한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송현우는 가족을 모두 잃고 어둠을 걸어가는 존재입니다. 그는 진실을 규명하려고 하고 있고, 나쁜 일을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죠. 그가 그 길을 멈추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어둠 속에서도 그와 함께 하는 동료, 멀리에서 진실을 좇으며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지만 우리로서 함께 할 때 그 길이 조금 더 걸을 만한 것이 됩니다. 모두 우리의 ‘암행’ 속에서 포기하지 않는 길을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송현우만큼이나 흥미로운 인물이 이명천입니다. 가장 친한 벗에게 여동생을 시집 보냈으나 그 벗이 여동생은 물론 그 일가족을 학살했다는 정황이 명징해 보이는 상황에서 복수심을 갖고 임금의 명령 하에 지독한 추적을 이어 갑니다. 이명천은 어떤 인물로 그리고자 하셨나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마음 속에 폭풍을 가진 인물입니다. 친한 친구가 넘사벽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잘 챙겨주기까지 하면 고맙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질투가 없을 수 없거든요.  그런데 그가 사랑하는 여동생을 죽인 살인자가 되었으니 질투라는 감정이 폭발해 버렸고, 거기에 복수심까지 더해져서 물불을 안 가리는 존재가 되어버린 겁니다. 평범한 사람이 복수심을 품으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면서 만든 캐릭터입니다. 송현우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가는 존재라면 이명천은 빛 속에서 어둠을 향해 걷는 인물이죠. 둘이 대척점에 서 있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요한 두 기둥으로 생각합니다. 

 

두 캐릭터의 대비를 통해 어둠과 빛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는데요. 특히 어둠을 그려내시는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까마귀, 검은 안개, 검정개, 검은 눈동자, 검은 태양 등이 주는 다크한 이미지와 정서가 좋았는데요. 시각적 연출에 있어 어떤 점들을 고민하셨나요?

텍스트는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각적 이미지를 너무 상세하게 설명하면 오히려 혼란을 주게 되죠. 그래서 아주 간략한 단서를 주고 독자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좋아합니다. 『암행』에서도 그런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특히, 어둠을 상징하는 검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냥 색깔보다는 어떤 존재감을 더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검정을 상징하는 까마귀와 원래 검정색이 아닌데 검정색을 더한 안개를 사용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텍스트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 시켜야만 합니다. 사실 시각적 장치 중에서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게 색깔입니다. 누구나 색깔을 알지만 막상 설명을 하면 잘 와닿지 않기 때문이죠. 현실에서는 빛에 따라 한 가지 색으로만 보이지는 않으니까요. 

 

색깔이라고 말씀하시니 ‘정명섭’이라는 작가의 색깔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작가님은 여러 팩션 작품들을 쓰셨고 좀비물 전문가로 불리시기도 합니다.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셨고 SF작품도 쓰셨습니다. 역사를 소재로 한 비소설 책도 많이 쓰셨고요. 이번에는 세계관이 큰 본격 다크 판타지 장르 작품을 쓰셨습니다. 작가님은 본인의 색깔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나요?

저는 무채색입니다. 작가는 글로 표현하고 설명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글을 썼고, 지금도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야기를 쓰고 담아내는 그릇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편을 쓰고 나면 깨끗하게 비워버리고 다시 이야기를 담는 거죠. 이야기 역시 아무 색깔이 없습니다. 그걸 본 독자들이 거기에 자신들이 보고 느낀 색깔을 넣어서 완성하는 것이죠. 

저는 다양함을 좋아합니다. 이야기는 한 두 가지의 형식으로 규정될 수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암행』을 쓰면서 어둠을 담은 검정색을 드러냈지만 독자들이 어떤 색깔로 받아들일지는 강제할 수 없다고 믿고, 지금의 저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진부하지만 “『암행』을 기대하실 독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요청드리려고 했었는데요. 독자가 완성하길 바란다는 말씀을 듣고 나니 우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 요청으로 갈음하겠습니다. 모두가 어둠을 걷는다고 할 수 있는 이 시대에, 모두가 자신만의 빛을 찾고자 애쓰는 이 시대에,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역사가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 힘을 발휘하려면 사람들의 염원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세상은 그냥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더해져야만 바뀌었으니까요. 그리고 조금만 방심하면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을 최근의 일들이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하지만 혼자 걸어서는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겨내는 건 결국 우리가 서로를 도와주면서 지탱해주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 보면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만나게 될 겁니다. 그들과 함께 걸으면서 서로 도와야만 우리는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암행』이 거기에 힘을 보태는 이야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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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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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대기업 샐러리맨과 바리스타를 거쳐 2006년 역사 추리 소설 『적패』로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픽션과 논픽션, 일반 소설부터 동화, 청소년 소설까지 다양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현재 전업 작가로 활동 중이다. 대표작으로는 『빙하 조선』, 『기억 서점』, 『미스 손탁』, 『어린 만세꾼』, 『유품정리사 ? 연꽃 죽음의 비밀』, 『온달장군 살인사건』, 『무덤 속의 죽음』 등이 있으며 다양한 앤솔러지를 기획하고 참여했다. 그 밖에 웹 소설 『태왕 남생』을 집필했으며 웹툰 『서울시 퇴마과』를 기획했다. 2020년 『무덤 속의 죽음』으로 한국추리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암행어사의 암행이 어두울 암(暗)에 움직일 행(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줄곧 ‘어둠을 걷는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 왔다. 그러던 중 꿈속에서 어둠 속을 걸어가는 한 남자를 보게 되었다. 그때 ‘어둠의 길을 걷는 어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야기를 떠올렸고, 오랜 시간을 거쳐 조금씩 완성해 나갔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송현우가 아니라 이명천의 포지션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쫓는 쪽보다는 쫓기는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었고, 조선 시대의 다양한 기담과 전설들을 더해서 이야기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