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김사월X이훤 - 세 번째 편지
싱어송라이터 김사월과 시인 이훤이 서로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글ㆍ사진 김사월, 이훤
202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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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2일 수요일

이훤 인터뷰

<사진과 시에 대한 구차하고 평범한 질문들>

 

사월     「집은 어디에나 있고 자주 아무 데도 없다Home is everywhere and quite often nowhere, (2019- 2022)」시리즈를 보면서 느낀 건데 너의 사진이 너무 붕 떠 있는 거야. 작업물 퀄리티의 밀도를 말하는 건 아니야. 무거운 걸 찍어 놨는데 진짜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워. 너의 공허감.

 

        맞아, 맞아. 실제로 붕 떠 있었기 때문인지… 이런 불화의 느낌을 대구에서도 많이 느꼈어.

 

사월     나 같은 경우엔, 대구에서는 붕 떠 있는데 바깥으로 탈출할 수 없어서 갇혀 있는 것도 싫은 부유감이었던 것 같고, 서울에서는 기반이 없으니까 어디 날아가 버리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아서 내가 나를 붙잡으면서 떠 있는 느낌.

 

        진짜 다르네.

 

사월     근데 난 스스로 드는 생각은 이거야. 내가 진짜로 뿌리내리고 싶긴 한가.”

 

        (웃음)

 

사월     나는 사랑을 하면서도 뿌리내리기를 굉장히 거부했거든. 너는 지금 뿌리를 내렸다고 느끼지?

 

        나는 이대로 쭉 살고 싶은 걸 보니 뿌리내린 것 같다. 내리고 싶고.

 

사월     그러니까. 이대로 쭉 살고 싶다는 기분이 뿌리내림인가 봐. <이대로 정착하면 안 돼!>가 뿌리 없음인 거임그런 거 있잖아, 공중 뿌리*라고. (폭소)

 

        (폭소) 그런 게 있어?

 

사월     난 행잉 플랜트**야.

 

        너무 웃기네. 사실은 시리즈 제목을 바꿀 수도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공중 뿌리 정말 재미있는 단어다. 공중에 떠 있는 뿌리들은 어디로든 정착하려면 정착할 수 있지만 부유하고 있는 거야. 이게 우리 모두의 상태인 거 같아.

 

사월     현대인의 상태임. 그리고 몬스테라를 키워 보면 아무리 흙을 잘 정리해 줘도 뿌리가 나와. 왜냐하면 이파리가 너무 무겁잖아.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요가처럼, 춤처럼 다른 무게 중심을 뻗어 줘야지 설 수 있는 거야. 뿌리내리기 위한 뿌리가 아니고 중심을 잡기 위해서 뿌리를 내려 버린다는 거죠. 너무 끔찍한 우리의 삶이야. (웃음)

 

* 정확한 명칭은 공기뿌리, 기근이라고 한다. 식물의 땅위줄기 및 땅속에 있는 뿌리에서 나와 공기 가운데 노출되어 있는 뿌리로 기능에 따라 지지뿌리, 부착뿌리, 흡수뿌리, 호흡뿌리 따위로 나눈다.

** 공중에 걸어서 키우는 식물.

 

***

 

사월     만약 너의 그 많은 무기 중에 정말 하나만 남기면 넌 뭘 남길 거야? 시, 사진, 수필 너를 표현할 수 있는 너의 도구가 여러 가지 있잖아. 그중에 정말 잔인하게도 하나만 해야 한다고 가정한다면?

 

        하나만 해야 한다…. (잠시 생각) 옛날에는 사진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요즘은 시인 것 같아. 처음엔 시를 문장으로만 경험할 때가 많았어. 이후에는 시가 이미지라는 걸 기억하면서 쓰려고 했고. 근데 사진이라는 직접적인 시각 언어를 손에 쥐니까 언젠가부터는 시가 만드는 이미지의 가능성에 대해 더 조심스러워졌던 것 같아.

요새 시집 작업을 다시 시작했어. 다음 원고를 쳐내듯이 서둘러 작업하고 싶지 않아서 반년 동안 시를 안 썼어. 오랜만에 써서 그런가, 좀 깨끗하게 남아, 시가 내 안에. 붙들리고 싶은 이미지들이 좀 더 선명해진 것 같고. 뭔가 문장이나 기교로만 완성하려 하지 않고 다 정돈되지 않은 채로 이끌려 가는 느낌.

 

사월     그거를 하려고 네가 약간 시를 참은 것 같고 참고 있는 동안 시가 너에게 다시 들어올 거라는 걸 알아서 참고 있었나 보다. 시를 좋아하는 게 느껴져. 그 장르는 너를 무척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엄청나게 아껴서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진다.

근데 참 아이러니해. 난 시가 정말 모호…. (웃음) 나는 시라는 게 참 모호한 것 같은데 그게 너를 잘 나타내는 거라니.

사실 내 안에는 시를 이해하는 부품이 없거든.  산울림이나 김일두처럼 간단한데 그 안에 모든 게 들어 있는 가사를 무척 좋아하지만 정작 시에서 함축된 이야기는 따라가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는 기분? 가사와 시가 비슷하다고들 하지만 나로서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긴 해.

 

        맞아. 어떤 가사들은 시를 닮았는데 명료하게 느껴지지. 그런 가사들은 대체로 함의가 분명한 것 같아. 함의가 많아지면 이제 여기저기로 튈 수 있으니까

 

사월     그 튀는 것이 너는 어렵지 않은 거지? 그러니까 튀는 것을 반기는 거지?

 

        응, 재밌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같은 문장을 썼는데 누가 그 문장 때문에 낙원상가 가고 누군가는 이란에 가고 이런 게 너무 재밌어. 사월은 어때?

 

사월     문장을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넓게 가는 건 반기는 것 같은데, 쓰는 입장에서는 최대한 쉽고 명확하게 쓰려고 하거든. 넌 애초에 네가 쓰는 문장의 폭 자체도 엄청나게 넓혀 버리는구나. 정말 더 예측 불가능한 걸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맞는 것 같아.

 

사월     근데 예측 불가능한 게 좋아?

 

        좋은 것 같아. 

 

사월     왜?

 

        왜 좋지? (잠시 후)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고 싶은 것 같아. 사람들이 놀라는 방식을 보면서 나도 또 놀라고 싶고 그러면 내가 쓴 작품이 계속, 계속 새로워지니까. 그걸 읽는 사람 때문에.

 

사월     나 지금 너의 대답에서 나의 구정물을 발견했어. 나는 그렇게 누가 놀래라고 만든 문장에 놀라고 싶지 않은 나의 구정물이 있어. 뭔지 알겠어?

 

        하하하, 뭔데?

 

사월     “밤은 화살이다” 그러면 이거 놀래라고 썼지? 나 놀래지 않을 거야. 밤이 어.떻.게 화살이 돼? 라는 나의 구정물이 있어.

 

        맞아. 또 그런 새초롬한 마음이 있지 우리 안에.

 

사월     근데 너는 그런 게 없는 거네? 순수하게 그거를 기뻐하는 거잖아. 그치? “아, 이 사람의 밤은 화살이고 돌이구나!” 이렇게.

 

        안 되는 날도 있지…. 어떤 날은 되게 새초롬해. (웃음) 이 시인이 뭘 하려고 했는지를 자꾸 생각하게 되면 멈추는 것 같아. 너무 기술적으로만 느끼게 되면 갑자기 폭삭 식어 버리기 때문에. 반면에 어떤 풍경이 그려지면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느껴.

 

사월     너는 정말 이미지를 찾는 사람이구나얘기를 들으니까 너는 이미지적인 것을 재밌어하고 나는 이야기적인 걸 재밌어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너의 수필이 너무 재밌거든. 그래서 솔직히 너의 시를 읽을 때는 <이야기 듣고 싶은데 이게 무슨 내용이야…. 이야기해 주세요~>.

 

        너무 웃기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고…. 근데 모든 시인이 그렇게 쓰진 않아. 김상혁 시인이나 김승일 시인처럼 좋은 이야기로 시적인 공간을 만드는 시인들도 꽤 있어. 그러잖아도 얼마 전에 『유심』이라는 문예지에 보낸 시가 있는데 그 시는 내 생각에는 서사 중심적으로 쓴 것 같아. 혹시 이것도 어려운지 한번 봐봐.

 
인터뷰 전문은 2월 중 발간될 책에서 공개됩니다.


*필자 | 김사월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정규 앨범 「수잔」, 「로맨스」, 「헤븐」, 「디폴트」를 발매했다. 잘 웃고 잘 울다가 뭔가를 기록하는 사람.


*필자 | 이훤

시집 『양눈잡이』와 산문집 『눈에 덜 띄는』 등 여섯 권의 책을 쓰고 찍었다. 「We Meet in the Past Tense」 등의 전시와 『끝내주는 인생』,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의 출판물에 사진으로 함께했다. 시선을 만들고 정지된 장면을 잇고 모국어를 새삼스러워하는 사람. 사진관 <작업실 두눈>을 운영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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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피

2025.02.03

아 너무 귀여워요... 저도 제 안에 시를 이해하는 부품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인지라 사월님의 말씀이 다 와닿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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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9166

202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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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4419

2025.01.18

저는 사월의 글이랑 음악은 전달하고 싶어하는 알맹이 같은게 있다고 생각해서 좋아해요. 그래서 “밤이 어.떻.게 화살이 돼?”하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공감가면서도 김사월 답다고 느껴져서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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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 이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