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2일 수요일
이훤 인터뷰
<사진과 시에 대한 구차하고 평범한 질문들>
사월 「집은 어디에나 있고 자주 아무 데도 없다Home is everywhere and quite often nowhere, (2019- 2022)」시리즈를 보면서 느낀 건데 너의 사진이 너무 붕 떠 있는 거야. 작업물 퀄리티의 밀도를 말하는 건 아니야. 무거운 걸 찍어 놨는데 진짜 날아갈 것 같이 가벼워. 너의 공허감.
훤 맞아, 맞아. 실제로 붕 떠 있었기 때문인지… 이런 불화의 느낌을 대구에서도 많이 느꼈어.
사월 나 같은 경우엔, 대구에서는 붕 떠 있는데 바깥으로 탈출할 수 없어서 갇혀 있는 것도 싫은 부유감이었던 것 같고, 서울에서는 기반이 없으니까 어디 날아가 버리면 정말 큰일 날 것 같아서 내가 나를 붙잡으면서 떠 있는 느낌.
훤 진짜 다르네.
사월 근데 난 스스로 드는 생각은 이거야. “내가 진짜로 뿌리내리고 싶긴 한가.”
훤 (웃음)
사월 나는 사랑을 하면서도 뿌리내리기를 굉장히 거부했거든. 너는 지금 뿌리를 내렸다고 느끼지?
훤 나는 이대로 쭉 살고 싶은 걸 보니 뿌리내린 것 같다. 내리고 싶고.
사월 그러니까. 이대로 쭉 살고 싶다는 기분이 뿌리내림인가 봐. <이대로 정착하면 안 돼!>가 뿌리 없음인 거임. 그런 거 있잖아, 공중 뿌리*라고. (폭소)
훤 (폭소) 그런 게 있어?
사월 난 행잉 플랜트**야.
훤 너무 웃기네. 사실은 시리즈 제목을 바꿀 수도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공중 뿌리 정말 재미있는 단어다. 공중에 떠 있는 뿌리들은 어디로든 정착하려면 정착할 수 있지만 부유하고 있는 거야. 이게 우리 모두의 상태인 거 같아.
사월 현대인의 상태임. 그리고 몬스테라를 키워 보면 아무리 흙을 잘 정리해 줘도 뿌리가 나와. 왜냐하면 이파리가 너무 무겁잖아.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요가처럼, 춤처럼 다른 무게 중심을 뻗어 줘야지 설 수 있는 거야. 뿌리내리기 위한 뿌리가 아니고 중심을 잡기 위해서 뿌리를 내려 버린다는 거죠. 너무 끔찍한 우리의 삶이야. (웃음)
* 정확한 명칭은 공기뿌리, 기근이라고 한다. 식물의 땅위줄기 및 땅속에 있는 뿌리에서 나와 공기 가운데 노출되어 있는 뿌리로 기능에 따라 지지뿌리, 부착뿌리, 흡수뿌리, 호흡뿌리 따위로 나눈다.
** 공중에 걸어서 키우는 식물.
***
사월 만약 너의 그 많은 무기 중에 정말 하나만 남기면 넌 뭘 남길 거야? 시, 사진, 수필 너를 표현할 수 있는 너의 도구가 여러 가지 있잖아. 그중에 정말 잔인하게도 하나만 해야 한다고 가정한다면?
훤 하나만 해야 한다…. (잠시 생각) 옛날에는 사진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거든. 요즘은 시인 것 같아. 처음엔 시를 문장으로만 경험할 때가 많았어. 이후에는 시가 이미지라는 걸 기억하면서 쓰려고 했고. 근데 사진이라는 직접적인 시각 언어를 손에 쥐니까 언젠가부터는 시가 만드는 이미지의 가능성에 대해 더 조심스러워졌던 것 같아.
요새 시집 작업을 다시 시작했어. 다음 원고를 쳐내듯이 서둘러 작업하고 싶지 않아서 반년 동안 시를 안 썼어. 오랜만에 써서 그런가, 좀 깨끗하게 남아, 시가 내 안에. 붙들리고 싶은 이미지들이 좀 더 선명해진 것 같고. 뭔가 문장이나 기교로만 완성하려 하지 않고 다 정돈되지 않은 채로 이끌려 가는 느낌.
사월 그거를 하려고 네가 약간 시를 참은 것 같고 참고 있는 동안 시가 너에게 다시 들어올 거라는 걸 알아서 참고 있었나 보다. 시를 좋아하는 게 느껴져. 그 장르는 너를 무척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엄청나게 아껴서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진다.
근데 참 아이러니해. 난 시가 정말 모호…. (웃음) 나는 시라는 게 참 모호한 것 같은데 그게 너를 잘 나타내는 거라니.
사실 내 안에는 시를 이해하는 부품이 없거든. 산울림이나 김일두처럼 간단한데 그 안에 모든 게 들어 있는 가사를 무척 좋아하지만 정작 시에서 함축된 이야기는 따라가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는 기분? 가사와 시가 비슷하다고들 하지만 나로서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긴 해.
훤 맞아. 어떤 가사들은 시를 닮았는데 명료하게 느껴지지. 그런 가사들은 대체로 함의가 분명한 것 같아. 함의가 많아지면 이제 여기저기로 튈 수 있으니까
사월 응. 그 튀는 것이 너는 어렵지 않은 거지? 그러니까 튀는 것을 반기는 거지?
훤 응, 재밌는 것 같아. 그러니까 내가 같은 문장을 썼는데 누가 그 문장 때문에 낙원상가 가고 누군가는 이란에 가고 이런 게 너무 재밌어. 사월은 어때?
사월 문장을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넓게 가는 건 반기는 것 같은데, 쓰는 입장에서는 최대한 쉽고 명확하게 쓰려고 하거든. 넌 애초에 네가 쓰는 문장의 폭 자체도 엄청나게 넓혀 버리는구나. 정말 더 예측 불가능한 걸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훤 맞는 것 같아.
사월 근데 예측 불가능한 게 좋아?
훤 좋은 것 같아.
사월 왜?
훤 왜 좋지? (잠시 후)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고 싶은 것 같아. 사람들이 놀라는 방식을 보면서 나도 또 놀라고 싶고 그러면 내가 쓴 작품이 계속, 계속 새로워지니까. 그걸 읽는 사람 때문에.
사월 나 지금 너의 대답에서 나의 구정물을 발견했어. 나는 그렇게 누가 놀래라고 만든 문장에 놀라고 싶지 않은 나의 구정물이 있어. 뭔지 알겠어?
훤 하하하, 뭔데?
사월 “밤은 화살이다” 그러면 이거 놀래라고 썼지? 나 놀래지 않을 거야. 밤이 어.떻.게 화살이 돼? 라는 나의 구정물이 있어.
훤 맞아. 또 그런 새초롬한 마음이 있지 우리 안에.
사월 근데 너는 그런 게 없는 거네? 순수하게 그거를 기뻐하는 거잖아. 그치? “아, 이 사람의 밤은 화살이고 돌이구나!” 이렇게.
훤 안 되는 날도 있지…. 어떤 날은 되게 새초롬해. (웃음) 이 시인이 뭘 하려고 했는지를 자꾸 생각하게 되면 멈추는 것 같아. 너무 기술적으로만 느끼게 되면 갑자기 폭삭 식어 버리기 때문에. 반면에 어떤 풍경이 그려지면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느껴.
사월 너는 정말 이미지를 찾는 사람이구나. 얘기를 들으니까 너는 이미지적인 것을 재밌어하고 나는 이야기적인 걸 재밌어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너의 수필이 너무 재밌거든. 그래서 솔직히 너의 시를 읽을 때는 <이야기 듣고 싶은데 이게 무슨 내용이야…. 이야기해 주세요~>.
훤 너무 웃기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고…. 근데 모든 시인이 그렇게 쓰진 않아. 김상혁 시인이나 김승일 시인처럼 좋은 이야기로 시적인 공간을 만드는 시인들도 꽤 있어. 그러잖아도 얼마 전에 『유심』이라는 문예지에 보낸 시가 있는데 그 시는 내 생각에는 서사 중심적으로 쓴 것 같아. 혹시 이것도 어려운지 한번 봐봐.
* 인터뷰 전문은 2월 중 발간될 책에서 공개됩니다.
*필자 | 김사월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정규 앨범 「수잔」, 「로맨스」, 「헤븐」, 「디폴트」를 발매했다. 잘 웃고 잘 울다가 뭔가를 기록하는 사람.
*필자 | 이훤
시집 『양눈잡이』와 산문집 『눈에 덜 띄는』 등 여섯 권의 책을 쓰고 찍었다. 「We Meet in the Past Tense」 등의 전시와 『끝내주는 인생』,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의 출판물에 사진으로 함께했다. 시선을 만들고 정지된 장면을 잇고 모국어를 새삼스러워하는 사람. 사진관 <작업실 두눈>을 운영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김사월, 이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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