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는 할머니의 치매를 돌보는, 쉽지 않은 매일의 일상 속에서 샅샅이 기쁨을 찾아낸 김영롱의 첫 에세이집이다. 14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롱롱TV’의 유쾌하고 밝은 모습의 영상 너머 수차례 무너졌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할머니와 함께 찾아나선 행복의 여정이기도 한 이 책은 어두워져가던 가족의 얼굴이 어떤 계기로 밝아졌는지, 할머니가 세상과 다시 가까워지며 어떤 표정을 보였는지,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깨닫게 된 것들에 대해 담백하고도 진솔하게 담아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94세 치매 할머니와의 일상을 담은 채널 ‘롱롱TV’를 운영 중인 손녀 김영롱입니다. 최근에는 그간 영상에 다 담지 못했던 우리 가족의 이야기와 할머니가 치매를 진단받으신 후 겪었던 돌봄의 암흑기, 그리고 영상을 촬영하면서 서로를 더욱 사랑하게 된 과정을 담은 책,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를 출간했습니다.
치매 진단을 받은 할머니와의 일상을 유튜브로 올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제 채널에는 종종 ‘동화에서 튀어나온 사람들 같다’는 댓글이 달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할머니의 치매를 돌봤던 지난 5년 중 4년은 그 일이 무척 버겁게 느껴졌고, 답답한 마음에 엄마와 저는 누가 더 힘든지를 겨루는 의미 없는 싸움을 이어가기도 했었죠. 치매를 앓고 계신 데다가 귀까지 어두우신 할머니와 대화를 할라치면 똑같은 말을 반복해야 해서 아예 대화가 단절된 시기도 있었어요. 서로를 바라보는 우리 가족의 얼굴이 무표정해지고 관계가 삭막해진 걸 실감했을 때 어떤 돌파구가 절실했습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유튜브였어요. 유튜브는 영상을 주기적으로 올려야 하니까 할머니와 함께 즐거운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을 테고, 그러다 보면 이 어두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유튜브를 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관계의 개선과 회복입니다. 영상을 편집하면서 같은 장면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사랑받고 싶고,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보였습니다. 엄마 역시 제 영상을 계속 돌려보다가 저와 같은 걸 본 거 같아요.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는 단순한 행위는 곧 ‘이해’로 이어졌습니다. 시간은 걸렸지만 서먹했던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영상을 보신 친척들과 이웃들도 할머니와 더욱 가까워졌고요. 물론 서서히 진행 중이긴 하지만, 할머니의 치매 진행 속도도 부쩍 느려졌습니다. 결국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할머니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았던 시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예요.
일하랴, 유튜브 영상 편집하랴, 할머니 돌보느라 시간을 쪼개 글을 쓰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집필 기간 중에 느꼈던 어려움, 그리고 또 기쁨이 있었다면 이야기해주세요.
영상 편집과는 다르게 글쓰기는 벼락치기가 안 되더라고요. 묻어두었던 기억을 현재의 제 앞에 꺼내 조심스럽게 바라봐야 했고, 그때의 감정을 차분히 떠올리면서 글로 찬찬히 풀어가야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생각나지 않아서 한 시간 동안 노트북 앞에 멍하니 앉아 있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힘들었어요. 그러나 한 편, 한 편의 글이 쌓일수록 과거의 기억이 지금의 나와 우리 가족에게 밑거름이 되었다는 걸 느끼는 시점이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과정이 아니었다면 단순한 기억으로 남았을 일이 나와 엄마, 그리고 우리 가족의 성숙으로 이어졌다는 걸 깨닫게 되었을 때 홀가분하면서도 기뻤습니다.
치매에 가려졌던 할머니의 삶을 세상에 꺼내놓으며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는 말하고자 했던 게 없었어요. 단지 탈출구를 찾고 싶었을 뿐이었죠. 그런데 촬영을 계속하다 보니 말하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우리는 치매 환자를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 ‘사람다움을 잃어버린 사람’으로 너무 쉽게 단정 짓는 거 같아요.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치매의 아프고 처절한 모습은 주로 말기 단계에서 자주 보게 되는 증상들인데 말이에요. 치매 중기 단계를 지나고 계신 우리 할머니에게서 내가 사랑하는 ‘노병래 할머니’를 보게 되고, 여태 몰랐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서부터는 치매가 모든 걸 앗아가지는 않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글은 조금 달랐어요. 글을 쓰다 보니 할머니와의 기억과 추억,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일상을 통해 제가 배운 건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책에는 우리가 정말로 간직해야 할 기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습니다.
작가님의 유튜브 댓글에 보면, 소중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글들이 많아요. 이 책을 출간된 뒤에도 그런 리뷰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이 책을 읽으면서 아팠던 상처들을 꺼내 보기도 하고 과거의 기억을 추억하며 울고 웃고 되새겨보았다는 리뷰를 봤습니다. 아릿한 기억을 마주 봄으로써 치유의 과정을 경험한 것 같다는 글이었는데요. 제가 글을 쓰면서 같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 그런지 그 리뷰가 기억에 많이 남아요. 제 마음이 전해진 것 같아서요. 며칠 전에는 저희 삼대가 다 같이 이 책의 사인회 자리에 나갔는데, 거기 오신 분들이 자신의 할머니, 또는 엄마를 추억하며 책을 읽었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분들이 제게 마음을 전해주실 때의 눈빛이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오래 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은 거 같아요. 너무 익숙한 사람이라 멋쩍기도 하고, 상처가 많아서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준다면요?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오래 보는 일은 마음먹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하지만 막상 바라보다 보면 상대방의 얼굴에서 나의 얼굴이 보여 끌어안고 쓰다듬게 되더라고요. 우리 가족의 변화는 자신의 상처만 바라보던 엄마, 저 그리고 할머니가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면서부터 시작되었어요. 상처투성이인 관계일지라도 분명 변화가 찾아올 수 있는 상황과 계기는 생길 거예요.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의 상처가 너무 아팠을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려오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때 용기를 내어보는 건 어떨까요?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