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속 발휘되는 관심과 다정함의 힘
어쩌면 이 소설은 제가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바치는 러브레터인지도 모르겠어요. 노인의 좀비화를 통해, 노인의 사랑과 욕망에 대해서 더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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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물거품』 『해저도시 타코야키』 등의 베스트셀러로 사랑받아온 김청귤 작가가 첫 청소년소설로 찾아왔다. 망가진 세상 속에서도 서로 보듬으며 성장하고, 행복을 찾는 따뜻한 서사를 선보여온 김청귤 작가는 자신의 이러한 특장이 청소년소설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인다. 신작 『달리는 강하다』는 65세 이상 노인 좀비화로 도시가 폐쇄되면서 그곳에 남겨진 평범한 고등학생 ‘강하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용기 있게 세상 밖으로 달려 나가는 이야기다. 봉쇄된 좀비 도시 속 약자들만 남은 상황을 설정하고, 더 나은 행복을 찾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여정을 감동적으로 그린 이번 작품은 세대를 넘어서는 연대, 노인에 대한 인식 개선, 대안적 가족 공동체 등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고민거리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한다.



『달리는 강하다』는 작가님의 첫 청소년소설인데요,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이전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청소년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특별히 다르게 느껴졌던 점이나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부분, 어려웠던 점이 있었는지도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제가 단순히 등장인물의 성격, 혹은 그로 인한 특징이라고 생각한 부분을 편집자님이 청소년 독자가 읽기에 좋지 않을 것 같다고 수정을 요청하신 부분이 몇 군데 있었어요. 교정교열 하면서 청소년소설은 더 섬세하고 다정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65세 이상 노인이 좀비가 되는 설정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설정은 마치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결정권을 박탈당한 고령층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노인 문제를 좀비화 현상으로 비유하여 보여 주게 된 작가님만의 특별한 계기가 혹시 있을까요? 


부모님은 계속 부모님이고, 저는 계속 자식이라 생각하며 뻔뻔하게, 철 없이 지냈거든요. 문득 부모님이 나이 드신다는 걸 깨달았어요. 할아버지, 할머니도 한 해 한 해 건강이 다르세요. 저는 여전히 저인데, 작년이나 재작년의 나와 별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 나이만 먹고 있고요. 나이를 먹는다는 건, 몸과 마음이 달라진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그런데 나이를 먹는다고 이전에 하던 것, 하고 싶었던 것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저희 할머니만 해도 제 옷이나 신발을 보면 예쁘다, 어디서 샀냐 관심을 보이곤 하세요. 할머니한테 예쁘냐고, 그럼 가져가시라고 해요. 어떨 때는 그냥 예뻐서 물어봤다고 하시고, 어떨 때는 좋아하며 가져가세요.


어느 날 문득 할머니랑 이런 사소한 얘기를 했던 추억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사랑하는 할머니, 예쁜 걸 보면 관심 보이는 할머니, 김치를 비롯해 뭐든 맛있게 만드는 할머니, 한 해 한 해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가 섭섭해하실까 할아버지의 이름 한 자를 넣어 ‘현동 할아버지’로 했고요. 어쩌면 이 소설은 제가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바치는 러브레터인지도 모르겠어요. 노인의 좀비화를 통해, 노인의 사랑과 욕망에 대해서 더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소녀 ‘강하다’는 외면적으로는 타인에게 냉정하고 까칠한 모습을 보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누구보다 강한 의지와 용기를 발휘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 냅니다. 하다 캐릭터를 구상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냉정하고 까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한 점이요. 툴툴거리면서도 다른 사람을 챙기고,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조금씩 성장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람은 언제든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현대 사회에서 아파트는 종종 소통이 단절된 공간으로 그려지곤 하는데요, 작품에서는 마당발 할머니를 중심으로 이웃들이 서로를 돌보며 세대가 통합되는 열린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특히, 저마다의 사연으로 봉쇄 도시에 남겨진 같은 아파트 사람들을 ‘식구’라고 부르며 웃음과 사랑이 피어나는 한 끼를 나누는 할머니의 역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명 ‘오지라퍼’ 할머니 캐릭터를 통해 작가님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요? 


하다의 입장에서는 여기저기 참견하고 말하고 다니는 할머니가 ‘오지라퍼’처럼 보이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관심’이라고 생각해요. 소설 속에서 할머니가 지민이 외할머니와 아는 사이였기 때문에 지민이가 할머니에게 마음을 연 것처럼, 할머니의 다정함이 꽃으로 돌아온 것처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면 언젠가 다정함이 돌아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 가족에게 받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 하다가,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사랑과 가족의 의미를 깨닫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달리게 됩니다. 이처럼 달리기가 단순한 수단을 넘어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특별히 ‘달리기’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무런 도구 없이 언제, 어디서든 몸과 운동화만 있으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달리기’를 선택했어요. 친한 작가님 중에 달리기를 좋아하는 분이 있는데 달리기가 앞으로 ‘전진’하는 운동이라 좋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하다는 달리면서 물리적으로도 앞으로 전진하고, 그러면서 주변을 살피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몸만이 아니라 마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언제, 어디서든 달릴 수 있다는 건,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는 거잖아요.

게다가 저는 달리기를 못해서 하다만이라도 잘 달리면 좋겠다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재난 속의 소박한 유토피아’를 그린 이 소설은 좀비물임에도 불구하고 의외의 결말을 보여 줍니다. 원래는 다른 버전의 결말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결말을 변경하신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초고는 800매 정도였거든요. 원제목은 『봉쇄 도시』로 청소년이 주인공인 소설이지 청소년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쓴 소설이 아니었어요. 삭제된 분량에는 노인 캐릭터에 대한 에피소드가 더 있었어요. 나이를 먹었어도 욕망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거든요. 조금 어두운 이야기였기 때문에 다 삭제했습니다. 분량을 줄이고 청소년소설로 변경하면서 경쾌하고 밝은 느낌으로 끝나는 게 아름다울 거라 생각했어요.


하다와 친구가 된 청소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하다가 좋은 친구가 되었을까요? 하다는 앞으로도 가끔 툴툴거리고, 냉정하고, 이기적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고, 또 달릴 거예요. 청소년 독자분들도 지치고 힘들 때가 있겠지만, 잘 달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잘 달리길 바랄게요!


*작가 | 김청귤

아주 오랫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글을 쓰고 싶은 사람. 소설집 『해저도시 타코야키』 『미드나잇 레드카펫』, 중편소설 『제습기 다이어트』 『초코 좀비』, 장편소설 『재와 물거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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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