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4일은 퍽 고요하게 지나갔다. 그 고요함은 내게 다소 침울한 기분을 주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이날은 지난 1989년 중국 베이징에서 일어난 천안문 항쟁, 보다 정확히는 항쟁에 대한 중국 공산당의 무자비한 학살이 35주년을 맞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의 통제적인 체제가 굳어지게끔 만든 사건이자, 80년대 당시 새로운 계몽운동이었던 ‘문화 붐(文化熱)’의 절정인 동시에 끝자락인 사건이며, 무엇보다 한 국가의 수도에서 (아직까지도 정확히 추산되지 않는) 무수한 수의 민간인 사상자가 다름 아닌 자국의 공권력에 의해 발생한 사건. 아무리 타국의 일이라고는 해도, 이 고요함 앞에서 침울함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마치 요즈음의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 대해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물론 온 세상이 고요했던 건 아니었다. 이날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선 이와 관련한 청문회가 열렸다. 미 의회 중국위원회에서 항쟁 35주년을 맞아 몇몇 운동가들을 초청해 증언을 구한 것인데, 그 중 특히 내 주의를 끈 것은 양루후이라는 인물이었다. 현재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며 시민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그는 스스로를 전직 소분홍으로 소개했다. 소분홍이란 시진핑의 집권 이후 등장한 극단적 청(소)년 국수주의자 세대를 비하하듯 이르는 말로, 직간접적으로 당의 지원을 받고 성장한 이들은 시진핑에 대한 강력하고 맹목적인 충성으로 똘똘 뭉쳐 비뚤어진 중화사상을 표출하거나 그에 따른 과격 행동을 보이곤 한다. 스스로의 그러한 이력을 밝히고 또 자신의 사상적 변화를 경유하여 중국 인민들의 변화 가능성을 논하는 양루후이의 발언은 나름의 설득력을 가졌다.
하지만 사실 그의 발언 중 내게 진정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따로 있었다.
"제게 가장 충격적인 것은 중국 공산당이 사람을 쏴 죽였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티베트인, 위구르인, 그리고 홍콩인에 대한 탄압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를 가장 움직였던 것은 1989년 당시 사회의 자유와 개방성이었습니다." (인터뷰 전문)
이는 양루후이의 의도를 넘어 아주 흥미로운 징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바로 국가폭력에 대한 증명이 그 자체로는 정치관이나 윤리관을 바꿀 만큼의 설득력을 지니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소분홍 시기의 그에게는 ‘타자’들에 대한 국가폭력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익숙하며 나아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으리라. 여기서 나는 자연스레 이 발언을 가능케 한 조건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독일의 중국사학자 클라우스 뮐한은 (전에도 여기에 소개한 적이 있는) 『현대 중국의 탄생』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운동[천안문 항쟁]이 중국 최고위층 정치에 미친 정확한 충격이 아직 완전히 분석되지는 않았지만, 그 효과는 사회적 정치적 활동의 모든 영역에 나타났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이 사건을 지우려고 했지만, 사려 깊은 관찰자라면 누구나 그것이 오늘날의 생활에 미친 영향을 느낄 수 있다. (676쪽)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이후의 정세에 대한 항쟁의 영향력 대신, 항쟁에 대한 이후의 정세의 영향력을 논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한편으론 벤야민적으로, 다른 한편으론 라캉적으로, 어떤 사건의 의미란 그 자체로 고정된 게 아니라 항상 ‘사후적으로’ (재)구성된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말이다. 가령 10년 전의 세월호 참사가 처음 몇 달 동안은 ‘의도가 불순한 자식 팔이’가 아닌 ‘국민적 비극’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처럼.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오늘날의 천안문 항쟁의 위상에 대한 서구 열강, 특히 미국의 책임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천안문 항쟁은 보통 미국에서 중국공산당을 비판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곤 한다. 중국이 얼마나 폭력적인 체제의 국가인지, 또 그에 비해 미국은 얼마나 자유롭고 민주적인지를 역설하면서 말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적 편향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닌데,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듯 중국에 대한 반역자가 된 민주화 운동가들에겐 (이용의 목적이 더 크다고 해도) 하여튼 탄탄한 지원을 해줄 세력이 있는 게 훨씬 좋기 때문이며 또한 그것이 바로 정치이기 때문이다.
하나 그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항쟁의 본질로부터 떨어트리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무시하는 외설적인 사실은, 민주화 투쟁으로서 천안문 항쟁의 '민주'가 (한국 현 대통령의 말버릇인) 우파적 자유민주주의보다는 중국 내부의 오랜 정치적 화두인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물론 차이링처럼 미국으로 망명한 항쟁의 대학생-지도자들은 대개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색을 띠곤 했으나, 당시 천안문에 집결한 시위대가 진압을 위해 파견된 인민해방군과 대치한 상태에서 저 유명한 노래 ‘공산당이 없으면 신중국도 없다’를 불렀듯이 항쟁에 참여한 많은 일반 시민과 노동자들은 당과 정부가 아닌 자신들이 중국식 공산주의의 정통성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애초에 천안문 항쟁은 대학생들만의 투쟁이 아니었으며 반공 투쟁만도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주요 국내 연구로는 이홍규 교수의 「1989년 천안문 운동의 성격과 역사적 의미」를, 중화권 연구로는 김모두가 번역한 지한의 「1989년 봄?여름의 항쟁은 ‘두 개의 운동’이었다」를 참고하라.)
보다 외설적인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미국이 천안문 항쟁 직후 중국에 제재를 가하는 데에 있어 소극적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조지 H. W. 부시 정권은 국제 무역상 최혜국 대우를 빌미로 중국을 압박할 만큼 대외적으로 재빠르며 강경한 입장을 표했었다. 하나 그 당시 중국 외교의 선봉에서 활약했던 첸치천과 우젠민은 부시 정권이 전화와 특사 파견을 통하여 덩샤오핑에게 제재에 대한 양해를 구했다고 훗날 폭로했다. 물론 이 발언들은 중국공산당의 원로들에게서 나온 것이니 순전히 믿기 어렵긴 하나, 미국이 최혜국 대우를 박탈하는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았으며 1991년 즈음에 열강들의 대중 제재가 거의 멎었음을 염두에 두면 이를 불신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천안문 항쟁의 담론적인 위상에 있어 미국의 책임이 아예 없다고 할 순 없을 터이며, 또한 이를 무시하고 중국공산당을 비판하는 데에만 마냥 열을 올리는 미국인들을 너그럽게 봐줄 수도 없을 터이다.
그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소분홍들의 ‘감성’이다. 문화대혁명 시기의 홍위병이나 장쩌민 시기의 분청에 대한 소분홍의 주요한 차별점은 무엇보다 월등한 정보 접근력일 것이다. 인터넷을 아주 자연스러운 환경으로 경험하며 자라온 그들은 당에 충성을 표하는 동시에 당이 공식적으로 금지한 해외 콘텐츠들을 마음껏 접하고 또 활용하곤 한다. (단적인 사례로 ‘공식적으론’ 중국에서 볼 수 없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삼체>에 가해진 소분홍들의 비난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우리의 편견과 달리 다수의 소분홍들은 당국이 지워버린 1989년의 역사를 나름 잘 알고 있다. 당장 레딧이나 쿼라 같은 웹사이트의 천안문 항쟁 관련 글에 달린 댓글들을 확인해 보시라. "그게 실패하고 진압된 운동이어서 기쁘다" 같은 빈정거림이 적지 않을 터이니.
이렇듯 소분홍 중엔 천안문 항쟁에 대한 윤리적 고민을 아예 갖지 않은 이들이 있는 것이다. 공공연하며 죄의식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말하자면 ‘비밀 아닌 비밀’로서 항쟁. 그렇다면 중국 안에서 진정 봉쇄된 것은 항쟁의 진실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항쟁을 파국으로 인식할 수 있는 감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끔찍하게도, 이는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스라엘 극우파 크리에이터들이 가자 지구에서의 학살을 조롱하는 틱톡 ‘챌린지’를 떼거지로 게시했듯, 또 얼마 전 광주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는 온라인 미니 게임이 만들어졌다가 삭제됐듯, 국가폭력에 대한 폭로 자체가 폭로의 성격을 갖지 못하며 사람들이 실제로 죽어도 충격이나 설득이 안 되곤 하는 상황에 ‘지구인’인 우리는 처해있는 것이다. ‘인터넷 이후’라는 시점 때문인 걸까? 나로서는 확언할 수 없지만 의심을 완전히 거둘 수도 없을 것 같다.
미국의 간접적인 책임과 소분홍의 ‘감성’. 우리는 사건을 입과 손에 올리는 이후의 사람들이 사건의 역사적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형하기도 한다는 걸 이렇게 체감한다. 또한 항쟁을 비극으로 치환하며 중국공산당을 비판하기’만’ 하는 발언이나 미학적 재현들이 사실 이러한 문제들을 무시하거나 은폐함으로써 가능해진다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 분노나 비관으로 일관하지는 말자. 그 대신 우리에게 어떤 과제들이 주어졌는지를 끈질기게 숙고해보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싸우고 죽었는지를 구체적이고 핍진하게 제시하는 것 역시 중요한 과제겠으나, 그만큼 신경 써야 할 것은 그런 제시조차 무색하고 무용하게 만드는 역학을 직시하고 대응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일 테다. 이 과제를 수행할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그리고 그에게 연대할 수 있기를 열렬히 고대해본다. 어쩌면 그 누군가가 바로 당신일지도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윤아랑(평론가)
비평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을 주로 다루며, 주체성과 현실 감각을 문제 삼는 문화비평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2022),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2023), 『악인의 서사』(공저, 2023)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