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얼마 전에 『슬픔에 이름 붙이기』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장을 무심코 넘기다가 ‘룩카이룬루어’ 라는 단어를 만났는데요. 이 단어의 뜻이 ‘푹 빠져서 했던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마치 머리가 자동으로 그것 모두를 꿈으로 단정 짓고는 벌써 기억에서 지우기 시작하기라도 한 듯, 그것이 머릿속에서 재빨리 사라져가는 걸 느낄 때의 기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단어에 머물렀던 것은 아마도 오늘이 <오은의 옹기종기> 마지막 녹음이라는 것, 공교롭게도 이번이 <책읽아웃> 400회 방송이라는 것, 2276일 전에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첫 녹음을 하던 날이 여전히 생생하다는 것 때문이겠지요. 아니, 어쩌면 청취자 여러분과 쌓은 6년이 넘는 시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아직은 모르기 때문일 겁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읽고, 이야기하겠죠. 그럼에도 우리는 또 좋은 곳에서 만나겠죠.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는요, 저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하고 소중한 두 분, 김민정 시인님과 황인찬 시인님을 모시고 <오은의 옹기종기>의 지난 시간들과 마지막 시간을 추억하려고 합니다.
<인터뷰 – 김민정, 황인찬 편>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마지막 방송입니다. 첫 방송 때 엄청 떨렸거든요. 근데 오늘도 떨리네요.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이 일의 무게가 갑자기 확 끼쳐 오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이 자리에 두 분이 오셔서 남다른 자리가 된 것 같습니다. 두 분, <오은의 옹기종기> 마지막 방송에 섭외 되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오은의 옹기종기>에 가장 많이 출연하신 분이 김민정 시인님이시고요. 제가 없는 한 달 동안 진행을 맡아주신 분이 황인찬 시인님이시잖아요.
황인찬: 마지막 방송에 제가 와도 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왔어요. 그렇지만 오은 시인님도 제가 너무 좋아하고, 김민정 시인님도 아주 좋아하는 선배이자 누나이기도 해서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이 하는 뜻 깊은 자리에 초대받았다고 생각하면서 왔어요. 오은 시인님이 마지막 방송에 나를 생각했구나, 생각하면서요. 웃으면서 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은: 김민정 시인님은 출연하신 기분이 어떠세요? 말씀드렸듯이 <오은의 옹기종기> 첫 방송에도 함께해 주셨기 때문에 더 각별하시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더구나 김민정 시인님은 <책읽아웃>에 나오실 때 항상 아프셨던 것 같아요. 오늘도 그렇고요.
김민정: 그건 아니고요. 아픈 척을 하면 조금 말이 허투루 나와도 이해 받지 않을까, 하는 꼼수예요.(웃음)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를 2주에 한 번씩 녹음했으니까요. 일종의 루틴이 됐지만, 햇수로 따지고니까 6년을 꽉 채운 데다가 몇 개월을 더 하고 있는 셈인데요. 내 인생에 이렇게 성실한 적이 있었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황인찬: 초등학교 졸업하셨어요.(웃음)
오은: 그러네요. 게다가 한 달 동안 방학도 있었잖아요. 그때 황인찬 시인님이 여기 와 주셔서 <황인찬의 신변잡기>를 한 달 동안 진행해 주셨어요. 두 번의 방송이긴 했지만 고정 코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당시 진행하고 나서 욕심이 좀 생기거나 하지는 않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황인찬: 오은 시인님이 하던 재미와 그 맛이 있으니까요. 제가 거기에 폐를 끼치지 않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고민을 하면서 진행했어요.
오은: 그때도 김민정 시인님께서 나와주셨죠.
김민정: 저는 열일 제치고, 만사 제치고, 하는 마음이 좀 있는 것 같아요. 첫 방송이 컸던 것 같은데요. 처음이라는 것을 같이 관통했잖아요. 사실 그때는 오은 시인님께서 이렇게까지 오래 하게 될 줄을 몰랐을 텐데요. 저는 오래 하실 줄 알았어요. 왜냐하면 오은 시인님이 대단히 성실하니까요.
오은: 마지막 방송이긴 하지만요, <책읽아웃>은 책 방송이잖아요. 때마침 따끈따끈한 책이 도착했다고 해서 그 책을 먼저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저자분도 와 계시고, 이 책을 펴낸 분도 와 계시니까요. 책을 펴낸이로부터 이 책,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의 소개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김민정: 이 자리에서 황인찬 시인님이 진행할 때 게스트로 나와서 ‘시의적절 시리즈’ 예고를 했었죠. 그리고 이렇게 황인찬 시인님의 책을 들고 마지막 방송을 하게 됐네요. 난다 출판사의 시의적절 시리즈 중 7월을 황인찬 시인님이 맡아주셨고요. 제목은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이에요. 시의적절 시리즈에 참여한 시인 분들의 글을 보면요. 어떤 분은 다양한 장르의 글이 많은가 하면 어떤 분은 시가 많은데요. 황인찬 시인님은 후자였어요.
이 책을 만들면서 정말 황인찬은 ‘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에세이인데도 어떻게 보면 시론에 가까운 이야기들, 시에 대한 자기 고백 같은 이야기들이 많았고요. 황인찬 시인님이 또 여름의 시인이잖아요. 그래서 여름을 느낄 수 있는 시들을 묶었어요.
오은: 지금 목차를 보고 있는데요. 정말로 여름 기운이 물씬 느껴지는 제목들이 많네요.
김민정: 책 만들 때 조판을 하시는 디자이너 선생님이 “정말 좋은 제목 있어요”라고 말씀하신 게 ‘반바지는 언제부터 여름은 그때부터’였어요.
황인찬: 제가 뽑은 원래 제목도 그거였어요.
김민정: 그 제목도 참 좋은데요. 책 전체를 아우르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어요. 『잠시 작게 고백하는 사람』은 본문에 있는 구절인데요. 이런 사람이 시인 같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래서 이 제목을 짓자마자 이 작품을 또 떠올렸어요. 여름에 차가운 물에 발 담그시고, 수박 같은 거 드시면서 한 편씩 읽으시면 좋을 책이에요.
오은: 황인찬 시인님은 이 책을 손에 쥔 게, 어제인가요?
황인찬: 오늘 아침에 딱 받았어요. 실은 아직 책을 펼쳐보지도 못했어요. 하지만 일단 책의 색깔이랑 표지랑 그림이 다 너무 예뻐서요. 예쁜 책이 생겨서 기분이 좋다, 이런 생각이 컸어요.
저 역시 시의적절에 참여하겠다고 얘기할 때만 해도 여름으로 가득한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쓰니까 알겠더라고요. 제가 정말 시 말고는 하고 싶은 말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말이에요. 결국에는 여름 향이 끼얹어진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죠. 또 하나 키워드가 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감각이기도 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다 엉켜 있는, 시와 시간과 여름에 대한 책이 되었어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를 떠올리면 드는 생각들도 있을 것 같아요. 두 분은 출연도 하셨고, 진행도 하셨으니까요. 이 방송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가요?
황인찬: 김민정 시인님께서 오은 시인님이 성실하다는 얘기를 하셨는데요. 저는 늘 오은 시인님이 이 많은 책들을, 그리고 이 사람들을 계속 마주보는 일을 어떻게 이렇게 오랫동안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왔어요.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요. 저는 한 1년까지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작가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저한테는 생각하면 할수록 어렵고 무거운 일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또 발랄하고 산뜻하게, 사실은 또 진짜로 성실하게 해오셨잖아요. 오은 시인님 참 대단하다, 그리고 나라면 못 하겠다, 이런 생각들을 했죠.
김민정: 저는 오은 시인님이 이 방송을 오래 하는 게 좋았어요. 그 이유가 이 사람이 살아있구나, 목소리를 계속 내고 있구나, 하는 점들 때문이었는데요. 특히 오은 시인님은 출연자의 책을 한 권만 사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은 흔치 않아요. 그 점을 되게 많이 배우기도 했죠. 첫 방송을 시작할 때도 그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요. 오은 시인님의 아팠고, 어려웠던 때를 제가 알고 있었기 때문에요. 이렇게 목소리가 남는다는 게 좋았어요. 그런 부분을 오은 시인님 앞에서는 직접 말한 적 없지만요. 너무 뭉클하고요. 많이 감사했던 것 같아요.
오은: 지난 7년 동안, 생각해 보면 저는 늘 읽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데요. 그런 시간에 책을 보는 몸이 만들어졌어요. 그게 참 개인적으로는 대견한 부분이기도 하죠.
김민정: 오은 시인님이 이 방송을 하는 7년 내내, 물론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되게 많이 만나게 됐잖아요. 그런데 곁에서 들어보면 싫거나 불편하거나 한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늘 너무 좋아, 너무 재밌어, 라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사람에 대한 설렘과 그의 장점을 빨리 캐치하는 능력이 오은 시인님에게 있는 것이죠.
오은: 사실 불편한 적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대화를 한다는 건 단순히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것뿐 아니라 말 사이에 눈빛이 오가면서 어떤 마음씀을 같이 하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너무 정형화된 답변을 하시는 분을 만날 때면, 어떻게 저 안쪽으로 더 들어갈 수 있을까 엄청나게 궁리를 해야 했어요. 아마 7년이 그런 궁리를 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이 다 자양분이 된 것 같고요. 지금은 사적인 대화를 할 때도 상대방이 마음을 닫고 있으면 어떻게 저 문을 열 수 있을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