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해서 더욱더 치열한 여름 이야기
우리나라에는 사계절이 있고 가을이 흘러갈 무렵이면 여름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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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름의 한복판에 땀띠가 돋은 채 태어난 여름형 인간이 있습니다. 크게 웃고, 하고 싶은 말은 사정없이 뱉고, 망설임 없이 행동하는 아이로 자랐죠. 거침없는 아이는 어려서부터 미지의 세계를 꿈꿨습니다.


여름형 아이는 여름형 어른으로 자랐습니다. 베트남의 뜨거운 햇볕 아래 오토바이를 타고 끝없이 달리고, 그러다 사고를 당해 얼굴을 다쳤을 때도 다시 일어나 달렸습니다. 핀란드에서는 돈 봉투를 잃어버리고 남의 집 소파를 전전하는 카우치서핑을 하며 여행을 이어갔고, 서울에서 정식 취직한 첫 회사에서 번아웃이 오자 과테말라 안티과로 훌쩍 떠났습니다. 도쿄에서는 뜨거운 불 앞에서 가장 동그란 호떡을 빚는 데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이토록 뜨거운 햇볕, 숨막히는 더위, 끝없는 갈증의 계절, 여름. 여름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삶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기와 꼭 닮아 있습니다. 땀을 흠뻑 쏟아내도 시원한 물 한 잔에 괜찮아지는, 쉬이 잠들 수 없는 무더운 열대야를 겪어도 내일이 있기에 괜찮은, 끝없이 실패해도 감히 허송세월이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치열했던 시절의 이야기.


아플 것을 알면서도 직접 부딪혀야 직성이 풀리고 좌충우돌하는 여름형 인간, 조서형 작가와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여름이 너무해』는 사계절 시리즈 『봄은 핑계고』 다음 주자로 나온, 두 번째 에세이집인데요. 어떻게 ‘여름’을 맡아 책을 쓰게 되셨는지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계절 시리즈의 봄 편을 쓴 이주연 작가님과 2022년에 기후위기대응 매거진 <일점오도씨> 4호를 같이 만들었어요. 『봄은 핑계고』라는 제목과 먹고 마시고 풍류에 취하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고 있었는데 여름 편을 써주면 좋겠다고 작가님께 연락을 받았죠. 몇 해 전 여름을 주제로 한 짧은 소설집을 써서 플리마켓에 팔았던 기억이 나서 하겠다고 했어요. 여름은 단 한 번도 바뀐 적 없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하고, 할 말이 가장 많기도 해서 얼마든지 즐겁게 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작가님은 유년 시절 필리핀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베트남, 핀란드, 일본 등에서 치열하게 고군분투하셨죠. 어찌 보면 대학교를 졸업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정석적인 루트에서 벗어난 길을 걸으셨는데요. 그 용기와 실행력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초등학생 때 두어 달 필리핀에서 지낸 시간을 어학연수라 하긴 거창해서 민망하네요. 하하. 다른 국가에서의 에피소드도 고군분투와 거리가 있는 바보 같은 에피소드가 전부라서.


돌아보면 궁금했던 것 같아요. 이 밖엔 뭐가 있을까? 이 다음엔 뭐가 있을까? 제가 지오디 노래를 들을 때 한 살 터울의 사촌언니는 에이브릴 라빈의 팝송을 들었어요. 지오디와 신화 말고도 저런 음악을 하는 가수가 있구나, 알게 된 거죠. 그리고 영어를 배우면 그 음악이 무엇을 노래하는지 알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면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 해리포터 다음 편을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요. 제가 알고 있는 세상 밖에는 뭐가 있을까,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이후 20대 때는 거의 자의식 과잉 상태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는 남들과 다른 것 같고,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자기 멋에 취해서 용기가 튀어 나왔던 것 같아요.


무더운 여름을 나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름이면 바다에 수영하러 가는 것도 좋고 휴양지 느낌이 물씬 나는 곳으로 해외 여행도 물론 좋겠지만, 저는 엄마의 피서법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먼저 도서관에서 재밌어 보이는 책을 잔뜩 빌려옵니다. 읽어야 하는 책보다는 그냥 재밌어 보이는 책을 빌려요. 만화책이나 DVD도 좋습니다. 보다가 부족하지 않을 만큼 넉넉한 게 좋아요. OTT 영화보다는 한 번 고르면 그대로 봐야 하는 형식이 좋고요. 수박 한 통을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밀폐용기에 나눠 담습니다. 김치냉장고에 넣어두면 가장 시원한데 없어서 냉장고 가장 안쪽에 보관해요. 전날 해두면 더 좋습니다. 집 문을 다 열어서 환기하고 땀을 흠뻑 쏟으며 대청소를 합니다. 이때 거실엔 최대한 아무 물건도 나와 있지 않도록 해요. 수박 껍질과 쓰레기를 버리고 온 다음에 방문을 모두 닫고 에어컨을 켭니다. 에어컨이 거실을 식히는 동안 샤워를 하고 나와요. 차가운 수박을 먹으며 선풍기 바람에 머리를 말리며 책을 봅니다. 이만한 여름이 없어요. 자취하던 시절 에어컨이 없을 때는 냉방 부분을 생략했는데, 선풍기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개인적으로 전주시 인후동에 사는 정연자 할머니는 달랐다나에게 늘 속이 깊고 착한 아기라고 말해줬다라는 문장이 나오는, 할머니 이야기를 담은 일화가 가장 좋았는데요. 이 책에 담긴 열아홉 개의 여름 장면 중 작가님에게 좀 더 마음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저도 할머니 얘기 좋았어요. 그다음엔 겨울형 동생과의 이야기를 담은 장면이 마음에 들었고요. 평소엔 가장 가까운 가족에 대해 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것 같아요. 한참 동안 제게 일과 친구 관계와 사회생활이 전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글을 쓰다 보니 애틋해하고 그리워하는 많은 부분이 가족인 걸 알게 되었어요. 동생이 집에서 필리핀 모닝빵을 구울 때만 해도 ‘별 걸 다하네’ 정도로 말하고 말았는데요. 동생 얘기를 쓰다보니 지금은 저보다 10cm가 넘게 큰 그 애가 한때는 하얗고 작았지 하고 돌아보며 애틋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오랜 시간 품고 있던 꿈을 의 에디터가 되어 결국 이루셨는데요. 블로그에 끄적이던 시절부터 시작된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오늘날까지, 그 오랜 기간 동안 터득한 글쓰기 비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때그때 느낀 기분을 써두면 가장 좋아요. 휴대폰 메모장이나 노트에 써놨다가 남이 볼 수 있는 블로그나 SNS에는 한 번 더 살펴보고 다듬어서 올리면 더 좋은 것 같아요. 저도 글쓰기는 여전히 어려워요.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안 읽히기도 하고 멋만 잔뜩 부린 게 부끄럽기도 하고요. 비법이 담긴 책을 엄청나게 사고 빌려 읽었는데도 여전히 좋은 글에 대한 실마리조차 얻지 못했으니까요. 그래도 뭔가 써놓은 게 있으면 나중에 글을 써야 할 때 실마리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한여름처럼 치열한, 고군분투하는 시절을 지나고 있는 독자분이 작가님에게 위로나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우리나라에는 사계절이 있고 가을이 흘러갈 무렵이면 여름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고군분투중인 사람에게는 가까이서 조언하기보다는 멀리서 진하게 응원을 해주고 싶어요. 멀리서 보니까 너 지금 진짜 멋있다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작가님의 다음 여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습니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무한도전> 박명수 선생님 말씀처럼 꿈은 없고요, 그냥 놀고 싶습니다. 서울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종종 가족과 함께 자전거 여행이나 다닐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남부럽지 않게 일도 많이 하고 남부럽지 않게 놀고 싶어요.


그동안 남부럽지 않다는 말을 착각해왔던 것 같아요. 부러운 사람이 없을 만큼 많은 걸 이룬 사람으로요. 남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열등감이고 남을 부러워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커지면 우월감이 되며, 그 둘은 붙어있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어요. 열등감도 우월감도 없이 그저 나로 살고 싶어요. 주변 사람들의 예쁘고 좋은 면을 많이 칭찬하면서요!


*조서형

8월 초, 여름의 한복판에 전주에서 태어났다. 미지의 세계에서의 삶을 꿈꾸며 무역학을 전공했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교환 학생을, 베트남 하노이에서 무역 회사 인턴을 거쳤으며, 과테말라 안티과와 멕시코 과달라하라를 거쳐 일본 도쿄에서 호떡을 굽다가 에디터가 되었다.

그래픽 디자인 매거진 《CA》, 아웃도어 매거진 《GO OUT》을 거쳐, 볼드 피리어드에서 모던 파더를 위한 매거진《볼드저널》과 기후 위기 대응 매거진 《일점오도씨》를 만들었다. 지금은 서울 한복판에서 남성 패션 매거진 《GQ》의 디지털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영원한 건 절대 없어’라는 문장을 가훈으로 삼고 있으며, 가족 구성원 중 유일하게 자동차 운전을 할 줄 안다. 가끔 낯선 자전거 여행자를 ‘볼트하우스(@bolthouse_seongsu)’라 불리는 집에 들이며, 축구 실력이 나아질 날을 상상한다.

인스타그램 @veenu.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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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