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특집! 단어의 정의부터 시작하는 병렬 독서
한자: 병렬 독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좀 했어요. / 단호박: 인문대생들은 뭔가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의 정의부터 시작하곤 하죠. / 그냥: 너무 모범생 스타일이에요. (웃음) / 단호박: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아요. (웃음)
글ㆍ사진 임나리
2024.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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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황정은): 오늘은 특집입니다!

단호박: 병렬 독서 특집이라고 이름 붙였었죠. 이름은 거창하게 붙여놨지만 그냥 ‘요새 뭐 읽고 사는지’ 얘기를 나누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요새 뭐 읽고 사셨나요?

한자(황정은): 일단 저는 병렬 독서란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좀 했어요. 그런데 책을 좀 읽고 사는 분들은 그게 그냥 일상 아닙니까?

단호박: 그게 인문대생들의 문제인 거예요. 뭔가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의 정의부터 시작을 해요.

그냥: 너무 모범생 스타일이에요. (웃음)

단호박: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아요. (웃음)

한자(황정은): 그래요? 그게 굉장히 필요한 질문 아닙니까? 모든 일을 하기에 앞서서 항상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그것이 대체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서. 게다가 저는 인문대 생활을 딱 한 달만 했기 때문에 정확히 인문대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웃음)

단호박: 인문학적 특성이라고 하죠. (웃음)


한자(황정은): 아무튼, 두 분은 병렬 독서를 하지 않으세요?

단호박: 저는 병렬이 아닌 것 같아요. 제 독서 습관을 생각을 해보면 분명 여러 가지 책을 읽고 있긴 한데 하나의 책을 시작을 해놓고 책갈피를 끼워놓고 그 책이 다시 빛을 보게 되기까지는 아주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책갈피가 꽂혀진 책이 집에 한 260만 권쯤 있고 그것을 끝내지 못하는 상태인 거죠. 그래서 그래프를 그려보면, 병렬 열이 동시에 가야 되잖아요. 병竝적으로 가야 되는 거 아닙니까?

한자(황정은): 그것도 병렬 독서의 정의 아닙니까?

그냥: 그러니까요. 지금 정의부터 명확하게 하는 게 필요해요. (웃음)

단호박: 저는 동시에 잘 안 가요. 그냥 깔짝깔짝, 모든 줄이 좀 짧을 뿐 뭔가 동시에 읽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한자(황정은): 독서를 멀티태스킹하지는 않는다는 거군요. 그런데 넓은 의미에서는 그것도 일종의 병렬 독서인 것 같기는 해요. 왜냐하면 (한 권을)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또 다른 책을 시작하는 거잖아요.

단호박: 짧고 굵은 진한 선이 잠깐 시작되고 그 이후에 아주 가느다란 실선이 그냥 무한히 반복되는 형태의 독서라면 저는 그 무한한 실선들이 200만 권쯤 쌓여 있는 거죠.

한자(황정은): 그냥 님은 어떠세요?

그냥: 병렬 독서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단 단호박 님의 정의로 보자면 저는 단호박 님과 정확히 일치해요. 저도 읽다가 덮고 그 책을 다시 만나기까지 시절 인연을 엄청 오래 기다리는 편이고. 다른 의미의 병렬이라고 하면, 한 권의 책에서 발견한 또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이런 경우를 병렬 독서라고 정의한다면, 저는 그걸 못해요. 늘 표시는 해놔요. ‘이 책 다음에 읽어봐야지’ 하고 덮은 후에 그 책을 다시 펼치는 일이 거의 없어요. 독서 노트를 쓴다거나 따로 메모를 해서 그걸 정리를 해놔야 되는데 거기까지 못 가서 (병렬 독서를)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제 바람 중에 하나는 제가 언젠가 이 일을 그만두고 일과 상관없이 책을 읽을 시간이 됐을 때 쭉 쌓아놓고 한번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거예요.

한자(황정은): 저도 그런 바람이 있고, 병렬 독서를 진행을 하더라도 항상 못 읽고 남는 책들이 있기 때문에 언젠가 마감의 압박이라든지 꼭 해야 하는 일들의 압박에서 좀 자유로워지면 그 책들의 목록을 쫙 작성해놓고 그것만 읽으면서 지내고 싶다는 바람이 저도 있거든요.

그리고 그냥 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책을 읽다 보면 다른 책으로 연결이 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특히 에세이 같은 걸 읽을 때 그 책에서 소개하는 다른 책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 책으로 이동을 하지 않으면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 책이 무슨 내용인지 손으로 만져보기라도 해야 되거든요. 그게 너무 즐겁고 일종의 중독인 것 같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가지가지 쳐서, 한 가지에서 여러 가지로 갈라지는 쾌를 즐기는 것이 일종의 중독 단계까지 와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집에 책상이 여기저기에 있는데 그 책상마다 책들이 쌓여 있거든요. 그래서 책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요. 병렬 독서를 이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완독의 개념이 별로 없어요. 책을 끝까지 다 읽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읽다가 유예를 계속 시키는 거죠. 특히 좋을수록 속도를 늦추는 경향이 있는데 『도어』 같은 경우도 제가 다 읽는 데 거의 4년이 걸리지 않았습니까? 그런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에요. 다양한 이유로 읽다가 중단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 식으로 책이 쌓여 있고. 그래서 저는 병렬 독서 특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생각이 났어요. 책을 반드시 끝까지 다 읽어야 되는 건 아니다. 많이들 압박을 느끼지 않습니까?  책 한 권을 샀는데 도저히 취향에 맞지 않는다거나 내용에 공감을 못 하겠고 못 읽겠는데 어쨌든 끝까지 읽어야지 생각하고 붙드는 경우도 있단 말이죠. 그럴 필요는 없다는 얘기는 꼭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가 오늘 갖고 온 책은 제 책상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작은 책꽂이에서 빼온 책들이에요. 4권을 가져왔는데 다 에세이입니다. 이 중에 한 권은 일기를 기록한 책이에요. 그리고 이 3권의 책이 모두 작년과 올해 저에게는 정말 최고의 책이에요. 작년에도 최고였고 올해에도 최고였고. 이 책들을 제가 한 5개월째 읽고 있거든요. 아껴서 천천히, 다 읽지 않았어요. 아직 절반이나 혹은 2/3 정도 읽은 상태입니다. 그렇게 아끼는 책들을 오늘 가지고 왔습니다. 문제는 제가 이 책들이 어떤 책이라고 소개하기가 정말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서 간단한 정보랑 책 뒤에 실린 축약된 내용들로 소개를 해볼게요.

첫 번째 책은 레슬리 제이미슨이 쓰고 송섬별 번역가가 옮기고 반비에서 출간된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입니다. 제목이 정말 강렬하지 않습니까? 저는 제목 때문에 이 책을 골라서 읽었거든요. 너무 좋아요. 레슬리 제이미슨은 심각한 알코올 중독을 경험해서 그 경험을 아주 두꺼운 책으로 쓰기도 한 작가거든요. 『리커버링』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시가 돼 있고요. 『공감 연습』이라는 제목의 산문집도 출간이 되어 있어요. 저는 그 책들도 병렬 독서로 읽으려고 제 책꽂이에서 순번을 기다리고 있고요. 지금은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부제가 ‘갈망, 관찰, 거주의 글쓰기’예요. 갈망 관찰 거주라는 챕터로 책이 나눠져 있는 에세이고요. (뒤표지에) 이렇게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에세이의 본질에 관한 통렬한 사유” “타인의 삶을 어떻게 쓸 것인가? 타인의 삶으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타인을 경유해 ‘나’에 관해 쓸 때, 우리는 어떤 문제에 연루되는가?”라고 소개가 되어 있는데, 소개문이 굉장히 광범위하잖아요. 내용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떤 특정한 주제를 잡아서 쓴 글이 아니라 그냥 레슬리 제이미슨이 일정한 기간 동안에 쓴 글을 모은 에세이집이거든요. 그 주제가 대단히 다양합니다. 너무나 풍성한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짧게 간추려서 소개하기가 대단히 애매하기는 하지만 이 에세이 자체의 내용이 타인의 삶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타인의 삶을 글이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만나는 사람들이, 독자나 시청자겠죠, 그런 사람들이 타인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글들이 많이 실려 있어요. 제가 최근에 여러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굉장히 탁월합니다.

두 번째는 디디에 에리봉이 쓰고 이상길 번역가가 옮기고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랭스로 되돌아가다』예요. 책에 소개가 이렇게 돼 있습니다. “계급 정체성과 성 정체성은 어떻게 교차하는가?” “게이로서, 지식인으로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재발명’하기 위해 노동 계급 가족을 떠났던 한 사회학자의 극단까지 밀어붙인 자기 분석”이라는 글이 실려 있습니다. 자전적 기록과 비판 이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들었다고도 해요. 디디에 에리봉은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이고 1956년도에 파리 교외인 랭스의 노동 계급 가정에서 태어났고요. 지식인 그리고 동성애자로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노동 계급의 탈주자라고 느꼈는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자신과 가족의 계급적 과거를 탐사해 나가는 회고록인 이 책을 발표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나와요.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가족들하고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지배 매커니즘에 관해서는 그렇게나 많은 글을 써댔던 내가 사회적 지배에 관해서는 왜 쓰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디디에 에리봉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관해서 사회로부터 받는 압박이라든지 수치에 관해서 계속해서 글을 써왔는데, 그 주제에 대해서는 자기가 계속해서 글을 써왔으면서도 자신이 속한 계급 계층에 대한 것 가난에 대한 것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거죠. 그것이 본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의식적인 일이었다는 걸 자각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에요. 그러면서 이걸 깨닫게 되었다는 서술이 나옵니다. 왜 다루지 않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거예요. ‘내게는 사회적 수치에 관해 쓰는 것보다 성적 수치에 관해 쓰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계급적으로 노동 계급 가정에 속한 한 개인으로서 자신이 겪은 사회적 수치에 대해서 쓰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에요. 대단히 탁월한 에세이고요.

그 다음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책은 『늑대의 시간』입니다. 하랄트 얘너가 쓰고 박종대 번역가가 옮기고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된 책입니다. 저는 오늘 갖고 온 4권의 산문집 중에서 올해 꼭 하나의 에세이만 남기라면 이 책일 것 같아요. 여태껏 제가 알지 못했던 영역의 지식을 주는 책이기도 했고, 서술도 대단히 좋았고,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어떤 거리감이랄까 그런 것도 대단히 좋았어요. 이 책은 이렇게 소개가 돼 있어요. “이것은 우리가 본 적 없는 독일의 모습이다” “우리가 ‘독일’이라 부르는 나라의 시작점, 홀로코스트에 대한 집단적 침묵과 차단된 죄책감, 뜨거운 삶의 기쁨과 수상쩍은 행복의 나날들”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의 무게에 짓눌려 사라졌을지도 모를 인간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라고 소개를 하고 있어요. 제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뒤표지에 소개된 문구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소개가 돼 있습니다. “전후 시대 대다수 독일인의 의식에서 홀로코스트는 충격적일 만큼 역할이 미미했다. 물론 일부 사람은 동부전선에서 자행된 그 범죄를 알고 있었고, 자신들이 전쟁을 일으킨 것에 대한 근본적인 잘못을 인정했지만, 수많은 사람의 생각과 감정 속에는 유럽의 유대인 수백만 명을 학살한 사실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라는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전후 독일에 대해서 제가 알고 있던 사실에 반하는 이야기라서 되게 흥미로웠어요. 그리고 1945년 이후의 독일의 상황에 대한 책들은 그 피해의 역사에 비해서는 적은 편이기도 하거든요. 최근에야 좀 나오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서 좀 드문 저작인 것 같아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대단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책의 한 이야기가 조금 전에 소개한 『랭스로 되돌아가다』의 어떤 이야기와도 또 연결이 되거든요. 비슷한 주제의 책을 읽다 보면 연결이 되는 지점들이 있어요. 저는 딱히 이 주제에 관심이 있어서 주제를 따라서 읽은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읽은 책 속에서 이 이야기들이 연결되는 게 너무나 놀랍고, 이게 병렬 독서의 큰 장점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전혀 연결을 고려하지 않고 읽은 책들인데 서로 연결될 때 느껴지는 어떤 전율 같은 게 있고, 저는 그래서 병렬 독서를 단념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그냥: 저는 굳이 병렬 독서라기보다는 최근 관심 갖고 있는 주제의 책들을 우연히 연달아 발견하게 돼서 읽었어요.

첫 번째 책은 『생각 중독』입니다. 이 책 이미 요즘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아요. 닉 트렌턴 쓰고 박지선 번역가가 옮기고 갤리온에서 만든 책입니다. 제가 이 책을 발견하고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때 ‘내가 생각을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하고 있다’라는 자각이 일어났기 때문인데요. 책을 읽어보니까 저는 평소에도 좀 필요 이상으로 생각을 많이 하는 유형이더라고요.

요즘 이 주제에 관심을 갖다가 우연히 배종빈 저자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이 분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신데요. 저는 EBS의 <평생학교>에서 이 분의 강의를 보다가 『생각의 배신』이라는 책을 내셨다는 걸 알게 돼서 읽었습니다. 서사원에서 나온 책이고요. 분량 자체가 『생각 중독』보다 컴팩트해요. 그래서 저는 더 좋았어요. 더 빠르게 많은 분량을 읽었고요. 왜냐하면 생각이 많은 상태에서는 분절된 생각들이 머릿속에 혼재되어 있어 가지고 긴 문장이나 호흡이 길거나 분량이 많은 내용을 따라가기가 좀 힘들더라고요. 『생각의 배신』에 비해서 『생각 중독』은 일단 번역된 문장 특유의 스타일이 있고 굉장히 서서히 내용을 쌓아 가는데 집중이 잘 안 되는 시기에는 따라가기가 버거웠어요. 『생각의 배신』은 내용을 전개하는 속도가 빠르거든요. 컴팩트하게 이렇게 핵심만 얘기해서, 지금의 저는 『생각 중독』보다 『생각의 배신』을 더 빠르게 많이 읽었어요. 아직 다 읽은 건 아니에요. 해결 방법에 대한 내용은 읽지 못했고 매커니즘을 이해하는 데까지만 와 있어요. 그런데 이미 도움을 받은 게, 뇌가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나오거든요. 괴로웠던 어떤 순간을 계속 반복해서 복기한다든지 앞으로 닥칠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서 계속 상기를 한다든지 상상을 한다든지 하면 뇌는 이게 상상인지 현실인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괴로움이 머릿속에서 그리고 신체 반응으로 나타난다는 거죠. 두 책에서 그 사실을 알고서 나한테 미안하더라고요. 내가 나의 뇌와 몸과 감정을 괴롭혔구나 싶더라고요. 이거 나쁜 짓이다, 그만둬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그만둘 수 있는지는 앞으로 읽어보겠습니다.

그리고 또 읽고 있는 책은 테오리아 출판사에서 나온 두 권의 책이고요. 시리즈예요. 첫 번째가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 두 번째가 『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입니다. 둘 다 앤솔로지예요. 시인 소설가 기자 등의 에세이를 모았고요. 『마음의 일렁임은 우리 안에 머물고』의 부제는 ‘나의 첫 영화 이야기입’니다. 대부분 내가 기억하는 내 삶의 첫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최고로 꼽을 수 있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습니다. 아주 많은 분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박연준 시인님의 글이었어요. 시인 님이 이 글에서 아주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하시거든요. 극장에서 가장 처음 본 영화가 묘하게 그 자신과 닮았다는 거예요. 시인님께서 이 에세이를 써야 하는 시기에 사람들한테 물어보셨나 봐요. 너는 영화관에서 처음 본 영화가 뭐야? 이렇게 많이 물어보셨는데, 그 데이터를 수집해 보니까 왠지 그 당사자하고 어울리는 느낌이 있었다는 거죠. 박연준 시인님이 극장에서 제일 처음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저는 그 영화가 시인님과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시인 님의 가설이 좀 타당하더라고요. (웃음)

『제법, 나를 닮은 첫 음악』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첫 음악으로 기억되는 것 아니면 ‘내 생에 하나의 음악을 꼽는다면 이것을 남길 것 같다’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서윤후 시인 님의 글도 실려 있어요. 시인 님이 보아 팬이시더라고요. 보아랑 연배가 비슷하신데, 학창 시절에 나와 또래인 아이가 고군분투하면서 뭔가를 쟁취해가고 그 과정에서 좌절도 하고 하는 걸 같이 겪으면서 그 뮤지션을 사랑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저는 이 책에서 송지현 소설가의 글을 읽으면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작가님이 이야기하는 감정과 시간이 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많이 놀랐어요. 송지현 작가님의 글이 이런 첫 문장으로 시작하거든요. “나의 첫 음악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아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어지는 문장은 이거예요. “아마 이것이 내가 오래도록 이 글을 쓰지 못하고 망설인 이유.”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기억하고 있고 나를 이루고 있는 음악들이 누구를 거쳐서 나한테 왔지? 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저도 아버지를 통해서 많이 오기도 했고, 또 더듬어 보면 저보다 나이가 많은 사촌들을 통해서도 많이 왔거든요. 그들을 통해서 우연히 접한 게 지금의 나를 이루는 데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게, 운명 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호박: 마지막으로 단호박이 최근에 무슨 책을 읽고 있는가를 들려드릴 차례군요. 제가 2주 전에 읽었던 책은 TRPG 룰북인데요. 게임을 하기 위한 매뉴얼을 책으로 내더라고요. 그 게임의 모든 종류의 세부 사항들이 책에 정리가 되어 있어요. 여기서 캐릭터가 뭐가 나오고, 그 캐릭터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고, 캐릭터의 성향이나 특징 같은 것들이 다 정리가 돼 있는데, 약간 백과사전 느낌이고요. 계속해서 그 게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묶음집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도 이번에 룰북을 처음 읽어봤는데 사람들이 재미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룰북이) 한 명만 만들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정말 수많은 검수자들과, 이걸 한 번 만들고 나서 게임을 계속해서 돌려가면서 수정을 한단 말이에요. 게임 하나를 즐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만들어 왔는가 생각하면 놀랍더라고요. 룰북이 우리나라에서는 초여명 출판사에서 주로 나오고 있고요. 관심 있으시다면 그 출판사를 검색해보시면 아주 많은 책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최근에 화장실에 『한겨레21』이랑 『시사IN』 잡지를 놔두거든요. 그래서 중간 중간 주간지를 보고 있습니다. 화장실에 있을 때는 안 보게 되고요. 출근할 때 간단하게 읽기 좋죠. 가방에다가 넣어가지고. 출퇴근 시에 읽고 버리기가 좋더라고요. 그래서 사실은 다 못 읽고 있어서 엄청 쌓이고 있거든요. 주간지다 보니까 한 달 동안 못 보면 8개가 쌓이는 거예요. 그래서 몰아서 읽게 되는 시즌이 있습니다. 10권쯤 쌓이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되게 과식하는 사람처럼 주간지를 읽고 치우고는 합니다. (웃음)

그리고 최근에 박연준 시인 님의 『사랑이 죽었는지 가서 보고 오렴』이라는 시집이 나왔는데, 이건 사실 병렬 독서라고 하기가 좀 그런 게, 사놓고 제가 아직 안 펴봤습니다. 하지만 시집은 놔두면 언젠가 분명 읽게 되기 때문에 저는 그것까지도 병렬 독서 개념에 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읽었던 책은 또 피아노 얘기인데요. 『피아노 조율사』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습니다. 궈창성이라는 타이완 작가의 책인데, 대만 소설을 제가 안 읽어본 것 같더라고요. 일단 피아노가 제목에 들어가면 제가 혹하는 면이 있기 때문에 ‘대만 피아노 소설 읽어봐야지’ 하고 지금 읽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조율사가 있고 60대의 아주 성공한 사업가가 있고 그 사업가에게 상대적으로 젊은 아내가 있었는데 아내가 죽은 다음의 이야기가 이어지고요. 초반까지 읽었고 앞으로 그 조율사와 60대 사업가 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직 모르는 상태입니다.

이 책은 독서 모임 때문에 읽었던 책인데 『돈이 필요 없는 나라』라는 제목의 책이에요. 샨티 출판사에서 나오고 나가시마 류진 저자가 지었고 최성현 역자가 옮겼는데 ‘돈이 필요 없는 세계가 온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약간 사고 실험적으로 풀어낸 책이거든요. 이 책은 끝까지 읽게 됐는데 개인적으로는 ‘이렇게까지 낭만적으로 생각을 한단 말이야?’라는 부분이 좀 있었습니다. 한 가지 제가 이 저자와 궤를 달리했던 부분은 돈이 없어진다고 해서 교환 개념이 없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 저자는 교환의 개념까지 거의 없어진 세상을 상상하고 있더라고요. 모든 이들이 무상으로 자신의 서비스와 재산과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공유경제 세계를 상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감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뇌과학』이라는 책이 있어서 갑자기 혹해가지고 사서 읽고 있는데요. 최근 제 관심사 중에 하나가 감정이기도 해서, 사람들의 감정이나 피드백이 어느 정도나 나한테 영향을 주는가에 대해서 한참 생각을 했었는데, 제가 그렇게 감정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이런 걸 좀 읽어보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사서 읽고 있는데요. 거의 프롤로그까지만 가고 아직 안 읽었습니다. 이 책은 북트리거 출판사에서 나왔고요. 딘 버넷 저자가 지었고 김아림 역자님이 옮기셨는데, 저는 띠지가 좀 혹하긴 했어요. “나는 왜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도 울지 못할까” 이렇게 쓰여 있는데, 저는 울기는 울거든요. 최근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건 아니고, 어떤 슬픈 것이 닥쳤을 때 울긴 우는데 그 타이밍이 되게 늦는 것 같아요. 이것도 약간 뇌랑 뭔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어가지고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집에서 읽는 병렬 독서랑 회사에서 읽는 병렬 독서랑 좀 다른 것 같은 게, 회사는 출판사에서 계속 책을 보내주시다 보니까 가장 최신 책을 훑어보는 수준에서 멈추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가장 최신으로 제가 사무실에 둔 책은 『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건너 서로를 만났고 이 삶을 함께하고 있어』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알레 출판사에서 나왔고 최하늘 저자가 지었는데 펫로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자가 심리상담사고 펫로스 자주 모임 같은 걸 운영하시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 만났던 사람들의 사례랑 펫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 있었고요. 그 다음에 창비에서 책을 보내주셨는데 다드래기 작가님이 『불씨』라는 만화를 내셨어요.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이라는 시리즈의 일부고 『불씨』는 부마민주항쟁을 다루고 있어요. 어제 따끈따끈하게 훑어보고 나왔습니다. 그 밖에 제가 테이블에 놔두고 아직 끝내지 않은 책으로는 위스덤하우스에서 나왔던 『타이틀 나인』이 있는데요. 미국에서 있었던 법률 제정 운동에 관한 책인데, 미국 내 교육계에서 성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제정됐던 법률이 있다고 합니다. 편집자 분이 이 책을 정말 칼을 갈고 만드셨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엄청 두꺼운 양장본에 많은 내용을 넣으셔서, 아주 아주 천천히 엉금엉금 보고 있는 상태입니다. 법률의 개요가 ‘미국의 어떤 사람도 교육과정에서 성별로 인해 제외되거나 혜택을 거절당하거나 차별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이런 내용인데, 이 법이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이랑 이 법을 제정하고 나서 실질적으로 실생활에 적용이 되었을 때 생겨난 일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한자(황정은): 다음에 저희가 같이 읽을 책은 엘리자베스 길버트 작가의 『모든 것의 이름으로』라는 제목의 소설이고요. 민음사에서 출간됐고, 변용란 번역가가 번역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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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