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에 젊은작가상을 탄 「연필 샌드위치」에는 원래 부제가 있었다. ‘악몽에 붙인 다섯 개의 각주.’ 하지만 원래 내가 이 소설에, 그러니까 내 악몽에 붙인 각주는 총 여섯 개였으므로 나는 떠나보낸 각주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부제를 없앴다. 퇴고 과정에서 삭제되었던 여섯 번째 각주를 아래에 공개한다.
“소나무 어린 가지의 겉껍데기를 벗겨내고 허옇게 드러난 속껍질을 찬찬히 벗겨내 자루에 담아 오면 거칠고 질긴 데다 송진이 묻은 이것을 그냥 먹을 수는 없었으니 잿물에 삶아서 방망이로 탕탕 두드려 빨아 물에다 오래 담그어 우려낸 다음 혹 있다면 쌀하고 섞어서 밥도 지어 먹고 아니면 밀가루와 섞어 비벼 솥에 넣고 찌거나 그런 호사를 바랄 수 없는 형편에는 그냥 멀뚱하게 죽을 쑤어 먹기도 하는 송기. 이것은 절량의 농가에 소중한 양식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소나무가 서 있는 산이면 산마다 칼을 들고 나무껍질을 벗기는 사람들이 무슨 일 난 것처럼 박히어 들어차 있었고 나무들은 하루가 다르게 벌거벗기어 먼 데서 보면 온 산이 희었다.”1
작가 최명희가 1980년부터 17년간 지은 대하소설 『혼불』 5권의 한 대목이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2에는 가난과 배고픔에 대한 묘사가 아주 많이 나오는데, 위의 인용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해당 단락에서 민중은 힘써 거둔 농작물을 권력 있는 자들에게 다 빼앗기고 너무 배가 고파 나무껍질을 벗겨 먹는다. 철마다 산과 들에 돋아나는 것들의 이름을 다 부를 줄 알던 당시의 백성들이 나무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는 것은 더 이상 나물죽을 끓일 나물 한 포기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상황이 몹시 절박했다는 의미일 터였다.
나는 이 각주와 함께 음식과 가난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애초에 먹는 일을 다루는 글을 쓰면서 음식의 질과 양, 분배와 계급의 문제를 논하지 않기란 애초에 불가능할 터였고, 그렇다면 이를 좀 넓게 풀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문단 중간에 위치한 “탕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에서 내가 도무지 빠져나올 수가 없었던 거였다. 분명 나무로 만들었을 방망이로, 삶은 나무껍질을 “탕탕” 두드려 빠는 이미지는 한때 유행한 ‘수능 금지곡’의 중독성 있는 후렴구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나는 몇 번씩이나 나무를 두드리는 공상에서 깨어나기 위해 박수를 치거나 힘껏 도리질 쳐야 했다.
다행히 나는 내가 이 청각적 심상에 이토록 강하게 사로잡힌 이유를 곧 생각해 냈다. 예전에 읽은 로빈 윌 키머러의 『향모를 땋으며』에 등장한, 나무 끈으로 바구니 짜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위스가크 고크 페나겐: 검은물푸레나무 바구니」라는 제목의 이 수필은 “둥, 둥, 둥. 정적. 둥, 둥, 둥.”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소리는 장이 바뀌며 “쩍, 쩍, 쩍,”과 “텅” 소리로 이어지는데, 모두 도끼가 통나무를 때리는 소리다. 도끼를 든 사람은 ‘존’이다. 그는 나무에서 나무 끈을 채취하는 법을 이 책의 작가에게 가르치고 있다.
“통나무를 두드리면 벽이 얇은 춘재 세포가 으깨져 추재와 분리된다. 통나무는 춘재와 추재를 나누는 선에서 갈라지므로 벗겨낸 나무끈은 나이테 사이의 목질부다. (…) 바구니 장인은 나무를 두드리고 벗겨내면서 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나무의 삶이 그의 손에서 한 겹 한 겹 벗겨진다. (…) 존이 우리에게 손짓한다. ‘이거 보세요. 어린나무 시절까지 전부 벗겨냈어요.’ 그는 우리가 모아놓은 커다란 나무끈 더미를 가리킨다. ‘잊지 마세요. 저기 쌓인 것은 나무의 일생이랍니다.’”3
대체로 춘재란 봄에 자란 부분을, 추재란 가을에 자란 부분을 가리키는데, 생장에 적합한 봄에 자란 목질은 연하고 두꺼운 데 반해 겨울을 앞두고 자란 부분은 단단하고 얇아 이 대비가 나이테를 이룬다. 이 모든 성장을 이루어내는 부분을 나무의 ‘부름켜’라고 부르는데, “영구적인 배아 상태여서 늘 분열”하는 이것이 바로 수피 안쪽에 위치한다. 나무의 두껍고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껍질을 벗겨내면 드러나는 희고 부드럽고 연한 속부분. 그렇다. 『혼불』 속 굶주린 이들이 먹은 소나무의 살이 바로 부름켜인 것이었다.
‘생존 매뉴얼’ 같은 것을 찾아보니 소나무의 부름켜를 먹을 때에는 되도록 여러 나무를 조금씩 깎아내 먹으라고 권하고 있었다. 부름켜를 회복하는 일이 나무에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 『향모를 땋으며』에서 작가는 검은물푸레나무의 생장과 포타와토미족의 바구니 제작 전통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낸다. “바구니 장인들이 숲에 많”을 때에는 그들이 어른 나무를 베어 쓰는 게 오히려 “햇빛이 아기나무에 도달하도록 틈을 열어주”는 역할을 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 공생의 가능성이 혹시 우리 선조와 소나무 사이에도 있지 않았을까. 희망을 품고 여러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지만, 당시 일본이 국가적 규모로 조선의 소나무들을 깡그리 벌목하고 훼손한 기록들에 묻혀서인지 잘 보이지 않았다.
1 최명희, 『혼불 5』, 매안, 2009, 123쪽.
2 해방 이후의 근현대사까지 다룰 계획이었으나 작가가 1998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1943년을 배경으로 안타깝게 마무리되어야 했다.
3 로빈 윌 키머러 지음, 노승영 옮김, 『향모를 땋으며』, 에이도스, 2019, 215면.
현호정(소설가)
『단명소녀 투쟁기』 『고고의 구멍』, 『삼색도』 등을 썼다. 2020년 박지리문학상, 202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