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라이덜 샤워가 정말 싫거든? 근데 친구들이 깜짝으로 브라이덜 샤워를 해 줬으면 좋겠어.”
결혼을 앞둔 친구는 한 손으로 앞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완벽한 모순이었지만, 누구도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지 않았다. 다 이해한다는 듯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화사한 꽃들, 야경이 펼쳐진 호텔, 가장 예뻐 보이는 각도에서 찍힌 수십 장의 사진... 결혼하는 친구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며 인스타그램에는 ‘친구들이 해준 깜짝 브라이덜 샤워, 생각지도 못했는데... 너무너무 고마워’라는 게시글이 하루걸러 하루 보이기 시작했다. 그 치밀하게 짜인 완벽한 ‘브라이덜 샤워’ 콘텐츠의 욕망 대상은 처음에는 ‘친구’로 한정되지만 만약 본문에 ‘그리고 이 모든 비용을 대준 남편! 너무 고마워’라는 문구라도 올라온다면, 평화롭기만 했던 당신의 ‘예랑(예비 신랑)’에게도 불똥이 튀는 것은 시간문제다.
“프러포즈 같은 건 하지 말자고 진작 합의했는데 ‘혹시 오늘인가?’ 하고 기대하게 되더라니까” 하는 다른 친구의 고민도 있었다. ‘프러포즈’ 콘텐츠는 처음부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러니까 ‘예랑’이 마땅히 센스 있게 해 내야 할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지곤 한다. 고가의 브랜드 가방과 ‘Would you Marry Me?’가 프린트된 종이, 그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눈물을 닦았는지 조금 부은 듯한 얼굴의 사진이 종종 올라오는 걸 보면 대개 그런 식으로 원만하게 해결되는 듯 보인다.
눈에 자주 띄는 게 이렇다 보니, 이런 모든 것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신물이 난다고 생각했던 사람도 누군가의 깜짝 서프라이즈를 은근히 기다리게 됐다. 그리고는 그 역시 이런 서프라이즈라도 받는 날엔 ‘내가 이런 걸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라는 (진심 어린) 피드를 올리기를 반복한다. 이는 곧 또 다른 한 예비 신부의 잠 못 이루는 밤, 어둠 속 빛나는 인스타그램 화면으로 찾아가 어스름한 욕망으로 스며든다. 한 번도 바란 적 없는 욕구는 순식간에 우리 모두의 몫이 되어버렸다. 일상의 단면을 소셜 미디어에 공유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기꺼이 관찰하고 소비하게 둠으로써, 우리는 왜곡된 욕망을 가장 가까운 친구들의 머릿속에 쑤셔 넣고 있다.
누군가의 지극히 평범한 ‘일상 기록’, 그것은 처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을 것이다. 그저 친구들과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을, 또 영상과 사진으로는 다 담지 못한 많은 이야기를 나만의 개인 공간에 남겨두고 싶은 것이었을 테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 모든 일상 기록이 쌓이고 쌓이는 소셜 미디어에서 우리는 서로의 결핍을 자극하고 욕구를 조장한다. 평범했던 일상의 기록은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어 서로를 치밀하게 소비하고 또 소비하게 만들었을까. 내 몫이 아니던 욕구는 서로의 평범한 일상을 지지대 삼아 위태로운 젠가처럼 계속 쌓여가고 있다. 이내 무너질 것이 명백한 채로.
집에 오는 길, 네이버 블로그에서 최근 발견한 특이한 현상이 하나 떠올랐다. 대학교 시절, 교환학생이나 해외여행을 주제로 글을 써 오던 이웃 블로거들이 결혼을 할 때가 된 것인지 하나둘 ‘웨딩 기록’으로 주제를 바꾸기 시작했다. 또 새롭게 이웃을 추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블로그의 첫, 그리고 유일한 콘텐츠가 '#결혼준비'인 사람들도 많아졌다. 글의 제목은 이런 식이었다. “OO 본식 스냅 예약 후기, XX 청담 변형헤어 실장 추천, 2부 드레스 투어 후기…” 심지어 이런 콘텐츠들은 '준비편/실전편' 등으로 시리즈로 연재되고 'W1, W2' 혹은 ‘Chapter 1, 2’ 등으로 표기되어 주차별, 주제별로 꼼꼼하게 기록된다. 글쓴이들은 공통적으로 승모근 관리를 하며, 제모를 하고, 피부 관리도 빼놓지 않는다. 대부분 친절하고, 상냥하며, 적당히 귀엽고 유머러스한 짤을 사용하는 친근함도 잃지 않는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결혼 생활을 자랑하기 위한 글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정신없이 지나가는 순간을 기록해 두고자 하는 목적도 아니었다. 대부분은 “웨딩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다고 동기를 소개했다. 블로그 광고비만으로는 돈을 크게 벌 수 있는 것도 아닐 텐데, ‘결혼의 수익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비결은 간단했다. 각 서비스를 받은 ‘예신(예비 신부)’이 블로그에 후기글을 써서 해당 추천 코드로 새로운 사람이 유입되면, 해당 업체로부터 페이백을 받는다.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를 비롯한 청첩장, 스냅 사진, 심지어 ‘예신’용 네일아트나 피부관리까지 이 모든 비즈니스가 철저히 ‘만들어진 입소문’으로 운영되는데, 이 가운데 ‘예신’들이 있었다.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 혹은 “결혼식은 신부가 주인공이죠”라는 허울 좋은 말 아래, 정작 신부들은 사람을 끌어오면 돈을 주는, 소비자가 판매자가 되는 ‘다단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웨딩 산업 아래, 예비 신랑과 신부의 순간은 ‘인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이유로 산업의 큰 숙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는 그 대가로 남은 영화 속 한 장면만이 아름답게 남았고, 다음 타깃 예비 신부들은 값싸게 식을 치를 수 있는 정보를 찾아 다단계 마케팅이 넘쳐나는 인터넷 세상을 이리저리 헤맨다.
브라이덜 샤워는 신부 친구들의 우정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사정이 어려워 결혼식을 치르지 못하는 신부를 위해 생활용품과 자금을 모아 선물로 건네던 것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오늘날, 결혼을 앞둔 이들에겐 과연 어떤 마음의 비가 쏟아지고 있을까. 다신 돌아오지 않을 단 한 번의 순간, 그 순간들을 모아 살아가는 삶. 진심 어린 축하나 사랑, 우정은커녕 누구도 바란 적 없는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비가 내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소연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자)
싼 가격에 ‘득템’하는 재미에 푹 빠져 기쁘나 슬프나 옷을 사다, 2019년부터 새 옷을 사지 않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에서 3년간 에디터로 일하며 기후위기, 환경, 포스트팬데믹 뉴노멀에 대한 글을 썼다. 바닷속과 바닷가의 쓰레기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 코리아 활동가가 됐고, 스쿠버다이빙을 통해 바다 깊은 곳에 버려진 폐어구를 수거하는 정화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생태전환 매거진 [바람과물]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릿터] [코스모폴리탄] [1.5도씨매거진] 등 다수의 매체에 기후위기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2019년 아산정책연구원 영펠로로 선발돼 워싱턴에서 미국의 분리배출 및 폐기물 정책 디자인을 연구했고, 2020년 제2회 아야프(아시아 청년 액티비스트 리서처 펠로십)에서 국내 재활용 정책 및 현황을 연구했다. 그 밖에 스브스뉴스 「뉴띵」, 모비딕 「밀레니얼 연구소」, EBS FM 「전효성의 공존일기」, KBS 라디오 환경의 날 특집 같은 예능·교양 콘텐츠에 출연하거나 환경 교육 및 특강을 진행하는 등 일상적인 방식으로 기후위기, 그린워싱, 패스트패션의 허와 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