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클리셰를 전복하고 재해석해 위트와 풍자를 얹어낸 소설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드래곤 역시』와 『잼 한 병을 받았습니다』로 신선한 재미를 줬던 홍락훈 작가의 세 번째 SF·판타지 초단편소설집 『러브 앤 티스』.
이번에는 드래곤과 고블린, 마녀, 인공지능들의 삶의 애환과 모순적인 세계관을 그득히 담는 동시에 판타지와 SF 세계에 블랙코미디를 짙게 가미해 이야기를 한층 더 진화시켰다. 덕분에 메이드 카페에서 일하는 귀여운 괴짜 마녀도, 전기톱을 들고 메탈 음악에 맞춰 굿을 하는 엘프 보살은 물론, 이세계로부터 밀려온 공산주의 혁명까지 목도할 수 있다. 전작에 이어 이번 『러브 앤 티스』에서도 여전히 위트가 넘쳐나지만,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그 안에 숨겨진 날카로운 한 방이 현실에 잠식당한 우리를 그대로 겨냥하고 있을 테니.
작품을 트위터(현 ‘X’)에 연재하기 때문일까요. 트위터 성격이 그대로 작품에 반영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연재처로 트위터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요? 구체적으로 트위터의 어떤 면이 작품에 반영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종종 길을 잃기도 하거든요. 워드프로세서를 켜고 하얀 창에 검은색 프롬프트가 깜빡이는 걸 보고 있으면 겁이 나요. 모니터에 떠 있는 화면만큼이나 제 머리도 하얘지죠.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거든요. 반면 트위터는 모든 게 한눈에 보여요.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가 한번에 보이죠. 부담이 적어요. 220자 제한 게시물을 끝내고 다음 타래를 이어갈 때는 새로운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기분이라 즐겁기도 하고요.
스테이지라고 해서 말인데, 트위터에 글을 쓰는 건 게임하는 기분과도 비슷해요. 큰 이야기를 만들다가 사이드 퀘스트처럼 곁다리 이야기를 넣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여서 전혀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도 하고요. 그게 트위터로 글을 쓸 때의 가장 큰 특징인 거 같아요. 텍스트로 모두가 함께 즐기는 놀이, 게임, 즐거움. 아마도 이게 제가 트위터를 연재처로 고집하는 이유고, 또 작품에도 반영되는 가장 특징적인 부분 아닐까 싶어요.
작품의 아이디어는 보통 어디서 얻나요? 또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어떤 방식으로 집필하는지도 궁금합니다.
트위터에서 많이 얻어요. 수많은 사람이 모이잖아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도 다 다르고요. 쉴 새 없이 다양한 이야기가 올라오죠. 잠깐 쉬면서 가볍게 트위터를 열고 스크롤을 오르내리다 보면 어느 순간 꽂히는 소재가 있어요.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가지를 뻗어 나무가 되어버리죠. 그럴 때 바로 트위터에 이야기를 적어요.
물론 꼭 트위터에서만 영감을 받는 건 아니에요. 걸어 다니다, 꿈을 꾸다가, 목욕탕에서, 화장실에서, 이야기는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서 가지를 뻗거든요. 운전하다 도로에 칡넝쿨이 집어삼킨 전봇대가 보이는 순간, 별안간 칡넝쿨이 전기선을 잡아먹는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그 이야기가 『잼 한 병을 받았습니다』에 실린 ‘알리바이’라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식이죠.
같은 책에 실린 ‘개척 행성 평화 회복 센터’도 비슷합니다. 운전 중에 농업용 수로를 보았는데 하필 또 듣고 있던 노래가 Redgum의 ‘I was only 19’이었거든요. 문득 참호가 수로가 되는 상상을 했어요. 그 즉시 차를 멈추고 바로 이야기를 적었죠.
독자들이 특별히 좋아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 드래곤 역시』에 수록된 ‘K사 동물어 번역기’랑 『잼 한 병을 받았습니다』의 ‘주식회사’ 시리즈, 그리고 신간 『러브 앤 티스』의 ‘양자역학적 세자’가 많은 사랑을 받은 거 같아요.
‘K사 동물어 번역기’ 시리즈는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준 것 같아요. 트위터에 올렸을 때 많은 분이 진짜 동물어 번역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주셨고, 함께 사는 반려동물에게 듣고 싶은 말도 적어주셨는데 무척 감동이었어요.
‘주식회사’ 시리즈는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잇는 일을 과장되게 쓴 이야기인데, 그게 공감을 산 거 같아요. 사실 과장되었을 뿐이지 우리 모두 비슷한 경험은 하나씩 가지고 있으니까요.
‘양자역학적 세자’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뇌를 잠깐 꺼내놓고 의식의 흐름대로 쓴 이야기거든요. 앞선 두 이야기의 반응과 정반대였어요. “내가 지금 뭘 본거지?”, “이런 건 아무도 보면 안 된다. 그러나 내가 본 이상 모두가 봐야 한다”라는 대답이 기억에 남네요. 예, 그러니까 혼자 보지 마시고 여기저기 소문내주셔서 꼭 같이 봐주세요.
독자들의 피드백이 작품에 반영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요.
트위터의 멘션과 인용 기능을 통해서 독자분들께서 반응을 남겨주시면 거기서 새로운 이야기가 뻗어 나오기도 해요. 때로는 독자들께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주시기도 하는데, 저도 거기 화답하듯 이어지는 이야기를 써드리기도 하고요.
‘좀비, 아포칼립스 그리고 프로이트’는 원래 한 편이었는데 어떤 독자께서 궁금한 내용을 인용으로 남겨주셨어요. 그에 대한 해설을 달려다가 그것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로 답해드리면 보다 입체적인 느낌일 것 같겠다는 생각에 저도 인용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썼죠. ‘고속도로 (3)’은 원래 짧은 광고지 느낌의 글로 썼어요. 여기 독자분이 질문을 던지셨고,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해설 형식으로 짧게 이야기를 써나갔죠.
그렇게 이야기가 편지처럼 오고가면, 그 순간은 이야기 속에서 살아가는 기분이에요. 무척 즐겁습니다.
전작부터 『러브 앤 티스』까지 여러 캐릭터들이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그중 특별히 아끼는 캐릭터가 있나요?
왕립 세금징수원 조합 식구들 파이팅입니다! 매번 어처구니없는 일감을 던져줘서 고생시키고 있지만, 그게 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답니다. 그리고 매번 세금징수원들에게 피 같은 돈을 뜯기고 있는 우리 바보 드래곤들!(특히 골드투스) 제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들입니다. 아! 그리고 그런 바보 드래곤들과 매번 호흡을 맞추고자 고생하는 마녀 친구들도 너무 너무 아끼고 있고요! 또, 또 누가 있을까요? 아! 맞다! 엘프들!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재미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엘프 친구들 제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애정하고 있습니다!
전부 일일이 이야기하기 어렵겠지만, 여러 번 나오는 친구들부터 한번 나오는 친구들까지 모두 애정을 담아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모든 캐릭터를 사랑하고 있어요.
판타지나 SF 장르를 차용하고 있지만 현실 참여적인 면면이 돋보이는 작품이 종종 눈에 띕니다. 최근 특별히 관심 가지고 있는 사안이 있나요? 그건 어떤 이야기로 구현할 수 있을까요?
요즘에는 소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있어요. 제가 사는 곳은 매년 인구가 줄어들고 있거든요. 노령인구의 비율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요. 예전에는 제가 죽기 전에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어쩌면 제가 죽기 전에 제 고향이 지도에서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앞으로 제가 사는 곳의 공동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서서히 사라져가는 곳에서 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공동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직은 이걸 가지고 어떻게 이야기를 써야 할지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다만 이야기를 써야 한다면 저는 뭔가 희망적인 이야기, 소멸이 결정된 땅에서 마지막까지 무언가 의미를 찾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을 거 같아요.
각 작품마다 느슨한 연결고리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도 독자의 큰 재미 중 하나입니다. 특히 종말, 신세계, 차원 간 전쟁과 같은 에피소드들은 자연스레 여러 세계의 이야기를 하나로 아우르는 듯합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이런 각각의 퍼즐을 좀 더 정교하게 직조한 스타일의 장편소설도 기대할 법하구요. 만약 이미 계획 중이라면 어떤 작품, 어떤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있나요?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트위터에서 게임하는 기분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이야기의 세계에서 보물찾기하는 기분으로요. 제 이야기를 읽어주시는 분들도 모두 저와 같은 기분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이런 이야기들이 더 정교하게 직조되면 더 멋진 그림이 완성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저도 아쉬울 때가 있거든요. 더 놀리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기죠.
그래서 조금 더 다양한 글을 써보고 있어요. 단순히 몇 줄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단은 형태를 온전히 갖춘 단편작부터 도전해보고 있어요. 틈날 때마다 시놉시스를 쓴 다음 살을 붙이고 있죠. 현대 요괴와 음모론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이렇게 긴 글을 쓰는 건 처음이다 보니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있어요. 마치 새로운 게임을 시작한 거 같아요. 이렇게 즐겁게 글을 쓰다 보면 언젠가 더 긴 이야기도 쓸 수 있겠죠? 아직 하지 못한 이야기가 정말 많아요. 왕립 세금징수원 조합 친구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주고 싶어요. 드래곤과 함께 날아다니는 마녀들의 이야기도 더 하고 싶고요. 돈만 밝히는 엘프들과 머릿속까지 근육으로 가득 찬 엘프들을 모두 하나의 무대에서 만나게 해주고 싶어요. 그 이야기를 빨리 독자들께 보여드릴 수 있으면 합니다.
*홍락훈 격동의 1980년대에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태어났다. 고양이와 라쿤을 좋아하며, 만성 거북목 증후군으로 고생하고 있다. 2015년부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망상들을 이야기로 만들어 트위터에 올리고 있다. |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