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의 정상에 올라 본 이들이 공통적으로 털어놓는 고백이 있다. 전력으로 꼭대기에 오르고 나면, 원하던 곳에 비로소 다다랐다는 기쁨만큼 커다란 크기의 공허함에 맞닥뜨린다는 것.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경험이 아니니만큼 공기 중을 떠도는 허황된 도시 전설 같은 것도 사실이지만, 살다 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로 모든 게 수렴해 버리고 마는 걸 경험한 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싶다. 즉, 지금까지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삶은 인간이 살아가는 틈틈이 잽을 날리다 그들이 원하던 모든 걸 가진 순간 기쁨과 함께 허무를 뿌린다. 이렇게 고약한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트와이스를 떠올린다. 2015년 10월 20일 데뷔한 이들은 올해로 데뷔 9년 차 그룹이 되었다. 처음부터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엠넷에서 방영된 서바이벌 프로그램 ‘SIXTEEN’으로 데뷔 전 멤버 하나하나에 대중의 눈도장을 찍은 이들은 데뷔곡 ‘OOH-AHH하게(우아하게)’부터 즉각적으로 사랑 받았다. 전문가와 대중 모두 이견의 여지없이 그 해 최고의 신인 그룹으로 트와이스를 꼽는 가운데, 2016년 ‘CHEER UP’(
뚜렷한 성장이었다. 며칠만 안 봐도 팔다리가 쑥쑥 자라있는 어린아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자란 이들은 2019년 변화를 시도한다. 방향은 노래와 콘셉트가 잡았다. 2019년 발표한 노래 ‘FANCY’는 톡톡 터지는 별사탕만 같던 트와이스가 버터 스카치 캔디처럼 부드럽고 느긋한 외피를 두른 첫 곡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 ‘이런 내 맘 모르고 너무해 너무해’라며 ‘흥칫뿡’ 해버리거나, 제자리에서 눈짓, 손짓, 표정으로 온갖 시그널만 보내던 트와이스가 ‘누가 먼저 좋아하면 어때’라며 선뜻 먼저 손을 건넨 첫 노래였다. 변한 건 사랑에 대한 태도뿐만이 아니었다. 네가 있어 다시 웃을 수 있는 순간(‘Feel Special’),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마음(‘MORE & MORE’, ‘I CAN’T STOP ME’), 사랑 안에서 비로소 찾은 자유(‘SET ME FREE’), 때로는 모든 걸 잊고 즐겁게 취해버리는 이국의 낮과 밤(‘Alcohol-Free’)까지. 상대의 사랑과 관심을 갈구하는 것이 아닌, 살아가며 느끼는 다채롭고 솔직한 고백들이 이어졌다. 스타일이나 소화할 수 있는 장르도 그에 맞춰 늘어났고, 멤버들의 곡 참여도 부쩍 늘었다.
다만 여기에서 고약한 경우가 하나 더 등장한다. 바로 성숙은 성장보다 대체로 덜 주목받는다는 점이다. 앨범 퀄리티와 퍼포먼스 완성도는 날이 갈수록 ‘성숙’했지만, 트와이스에 대한 주목은 흡사한 콘셉트를 반복하며 화려한 조명 아래 놓여 있던 ‘성장’의 시기보다 상대적으로 고요했다. 쑥쑥 자라는 팔다리보다 표정이나 주름의 미묘한 변화가 눈에 띄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정상에 오른 순간 극도의 희열과 공허를 동시에 느끼는 인류의 오랜 습속이 형성된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천신만고 끝에 오른 마지막 계단에서 흔들리지 않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했습니다’를 꾸준히 말하는 건 하나씩 쌓여가는 성취를 보며 어제와 다른 오늘을 즐기는 짜릿함보다 몇 배는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노력했는데 앞으로 더 기약 없이 노력해야 한다니.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두렵다.
현기증 날 정도로 빠르게 올라버린 정상에서 이들이 찾은 다음이 ‘우리’라는 것에 안도한다. 트와이스가 오는 23일 1년여 만에 발표하는 앨범 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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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제워니
202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