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면서도 성장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돌이 처하는 흔한 딜레마다. 꼭 초인이나 요정 같은 특별한 존재로서의 운명을 부여받지 않았다 해도 마찬가지다. 반 발짝 높은 곳에서 살짝 떠오른 채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아이돌의 모습은, 아이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취향은 달라도 누구나 한 번쯤 바라본 이상 가운데 하나다. 슬픔은 그곳으로부터 온다. 아이돌은 수많은 사람의 땀과 노력으로 완성형에 가깝게 태어난 존재이지만, 그를 지탱하는 건 오직 사람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인 면 모두 자랄 수밖에 없고, 자라야만 한다. 이렇듯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듯, 황당하게도 아이돌의 성장은 한때 그 사실만으로 아이돌로서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했다. 불편한 만큼 확실하게 지금까지 이 세계를 지탱해 온 생각의 한 축이었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건 최근 들어서다. 아이돌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들의 음악이 한국 대중음악계의 주류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돌의 수명도 연장되었기 때문이다. 활동이 일정 궤도에 들어서기까지 이전보다 두 세배는 넘는 긴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고, 10년 이상 활동하는 장수 아이돌도 속속 등장했다. 이제 아이돌은 생산과 소비 모든 파트에서 10대만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가 아니었다. 1세대 아이돌 문화를 접한 이들은 슬슬 40대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새롭게 아이돌 문화에 영입된 이들도 사회적 지위와 나이에 큰 편차를 두었다. 어디에 가도 아이돌 팬 한 명 없는 집단을 찾기 힘들어진 현재 안에서, 아이돌의 성장에 대한 접근도 다채로워지기 시작했다.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라며 은근한 제스처를 취하는 게 성장인 시대는 이제 타임캡슐에 박제되고도 남았다는 이야기다.
지금 아이돌의 성장은 음악과 사람 그리고 그 세계를 굳게 떠받치고 있는 유일한 공동체인 그룹의 성장, 그 모두를 뜻한다. 이제는 상식이 된, 그룹에서 앨범까지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커다란 세계관은 이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만 하는 가장 큰 근거가 되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그 안을 채우는 음악과 사람 역시 세계의 확장과 함께 발맞춰 성장해야만 한다. 그래야 맞다. 귀엽다, 섹시하다 같은 욕망의 주체마저 불분명한 추상적 묘사로는 어떤 매력도 전달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귀엽거나 섹시해도 좋지만, 귀여움과 섹시함에도 역사와 맥락이 있어야 한다. 그를 행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무대 위의 퍼포머로서, 짧지 않은 시간 불특정 다수의 큰 사랑을 받아온 직업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성장이 기반이 되어야 더 오래고 깊은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뀌어 온 것처럼, 아이돌의 성장도 그렇게 변화해 왔다.
트와이스의 세 번째 정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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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