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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단색화의 거목(巨木)이자 최근 국제적 인지도가 높은 작가로 지속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윤형근.
메가 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David Zwirner)와 함께 현대미술 메카인 뉴욕, 유럽 예술의 중심 파리를 점령해 그 입지를 증명했죠. 뉴욕 3대 갤러리 중 하나인 데이비드 즈워너는 본점인 뉴욕에서 1970~80년대 작품을 소개하며 선보인 2017년의 첫 전시를 시작으로 2020년 2번째 개인전을 개최했고, 2023년 1월에는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 넘어가 데이비드 즈워너 파리 지점에서 3번째 개인전을 선보이며 윤형근을 소개합니다.
파리 전시 오픈 당일에는 무려 1,000여 명이 방문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는데요. 유럽에서 선보인 윤형근의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프랑스 파리뿐 아니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도 그의 작품은 빛났는데요. 2018년 MMCA(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되어 성황리에 마쳤던 회고전<윤형근>이 2019년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열린 200여 개의 크고 작은 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었죠. 회고전 <윤형근>은 베니스의 시립 미술관인 포르투니 미술관(Fortuny Museum)을 가득 채우며 2019년 5월 11일부터 11월 24까지 진행되었는데요.
해당 전시는 세계적인 미술 전문지인 <프리즈(Frieze)>,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비엔날레 외부에서 열리는 주요 전시로 주목받는 영광을 누립니다. 그뿐만 아니라 방문했던 수많은 외신 기자들이 호평을 쏟아내기도 했죠.
이탈리아의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La Repubblica)>에서는 제50회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은 영향력 있는 미술인이자, 이탈리아의 원로 평론가인 프란체스코 보나미(Francesco Bonami)가 윤형근을 주목하며 리뷰를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답니다.
윤형근의 작품을 살펴보면 ‘오묘한 검은색’을 풍기며 큰 붓으로 푹 찍어 내려 그은 듯,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할지도 모릅니다. 마치 오랜 시간 세파를 견뎌낸 고목(古木)과도 닮아 있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흙의 정취를 전하는 듯한 그의 작품은 담담하면서도 서정적인 편안함을 전해옵니다.
이처럼 수수하고 겸손한 ‘미덕’을 추구하는 한국 전통 미학을 현대적 회화 언어로 풀어낸 윤형근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윤형근의 대표 시리즈인 <천지문(天地門)>은 동양의 미를 담고 있어 작고한 이후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조선 말기 추사 김정희의 서화에 근간을 두고 화풍을 정립한 그의 작업은 작위적인 모습 없이 기교가 배제되어, 고매한 인격의 자연스러운 발현으로 여겼던 옛 선비정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BLUE는 하늘이요, UMBER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天地)라 했고, 구도(構圖)는 문(問)이다.”
- 윤형근
<천지문> 시리즈를 설명할 때는 ‘청다색 (靑茶色)’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작가는 극도의 단순함을 위해 하늘을 뜻하는 ‘청색(Ultra-marine)’과 흙의 빛깔인 ‘다색(Umber)’의 혼합으로 만들어진 청다색을 통해 린넨, 캔버스, 한지 위에 자연스럽게 스미고 배어 나오도록 연출합니다.
이로 인해 청다색으로 세워 올린 천지문(天地門) 기둥은 마치 먹을 연상시키는 동양적인 정신과 색을 작품에 담아냈다는 평을 받고 있죠.
2023년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개인전은 보다 그 의미가 깊습니다.
윤형근은 일제강점기부터 굵직하고도 치열한 정치·사회 변혁기를 몸소 겪으며 파생된 고민을 작품에 녹여냈는데요. 당시 한국 군부 정치에 대한 분노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화업을 이루고자 체류했던 파리에서 제작된 작품을 중점적으로 전시했습니다.
전시된 25점의 작품은 대부분 첫 공개가 되어 1979년부터 1984년까지의 체류 기간 동안 윤형근 작업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 그림이 1973년부터 확 달라졌다.
서대문 교도소에서 나와 홧김에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전에는 색을 썼었는데 색채가 싫어졌고 화려한 것이 싫어
그림이 검어진 것이고, 욕을 하면서 독기를 뿜어낸 것이고, 그림에 살아온 것이 배인 것이다."
- 윤형근 일기 중에서
그의 작품은 동양화에서 쓰이는 *발묵과 *선염 효과를 활용해 한국적인 회화 기법을 선보입니다. 이렇듯 윤형근만의 고유한 방식과 작품세계를 관철시키고 있으나, 시기에 따라 미묘한 특징이 보입니다. 특히 쉽게 접하기 어려운 70년대 후반부터 80년 초반까지의 작품은 더욱 소중한데요.
특히 윤형근의 파리 체류 시기는 그가 다룬 소재 중, 특히 ‘한지(韓紙)’에 대한 작가의 각별한 애정을 느낄 수 있던 때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지 작업에 보다 주력했기에 다른 작품들보다도 ‘번짐’을 눈여겨볼 수 있는데요. 이는 장인이자, 예술적 스승이었던 김환기의 한지 작품에서 안료가 한지에 스미고 번지는 부분에서 영감받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하던 당시 상황 속에서 벗어나 제작된 작품들은 전 세계 관람객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발묵 : 먹물이 번지어 퍼지게 하는 산수화법
*선염 : 원단(캔버스)을 만들기 전에 원사(실)를 염색해서 제작하는 방법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이후 1980년대에는 체류한 이후 프랑스 미술계에서 나름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색의 사용이 보다 투명해지고 현대적인 시도가 가미됩니다. 특히 그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여파로 국민들의 희생에 대한 착잡함을 작품에 풀어냅니다. 점차 여백이 사라지고 점차 간결해지죠. 작품에 묻어난 간결함과 절제된 선, 면들은 마치 무언의 침묵과도 같이 그 무게와 묵직함이 전해집니다.
1990년대의 작품은 보다 순도 높은 검은색을 주로 사용하며, 미묘한 농담 차도 잘 보이지 않고, 오일의 비율이 줄어들며 건조한 화면으로 구성합니다. 이는 되려 깊이를 알 수 없는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오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이후 1973년 이후부터의 작업은 큰 변화 없이 전개되지만, 캔버스 위 묵직하게 올리는 붓터치는 각기 다른 모습을 띕니다. 물감과 오일의 비율, 천의 컬러감, 면직 직조 두께, 건조 시간 등 모든 면에서 매일같이 변화합니다. 더불어 시대별 작품마다 당시 시대 배경의 아픔에서 비롯된 작가만의 의지와 감정을 엿볼 수 있죠.
이처럼 윤형근은 타계했을지라도 그의 작품은 당시 작가의 감정을 고이 간직한 채, 전 세계 곳곳에서 묵묵히 숭고한 울림을 전할 것입니다.
아티피오(ARTiP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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