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할까?
내가 여러분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하자. 이 행동은 나쁜 것일까, 좋은 것일까? 그리고 이 행동은 어떻게, 왜 일어났을까?
첫 번째 질문의 답은 언뜻 쉬워 보인다. 거짓말은 당연히 나쁜 짓 아닌가? 하지만 거짓말이 때로 좋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회인은 안다. 어떤 행동의 옳고 그름이 궁극적으로는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안다.
한편 두 번째 질문의 답은 쉽지 않다. 나는 방금 전에 뇌를 다쳐서 갑자기 습관적 거짓말쟁이가 된 걸까? 아니면 최근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때문에 정동이 불안정한 걸까? 요 몇 년 만성적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사고 조절이 둔해진 건 아닐까? 그도 아니면 유년기에 겪었던 트라우마가 원인일까? 혹시 내 유전자에 뭔가 이상이 있는 걸까? 혹은 내가 속한 문화가 거짓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곳인가?
이 중 하나만 아는 것도 힘들 텐데, 생물학과 문화에 광범위하게 걸친 이 모든 요인들을 알아야만 위의 질문에 정확히 대답할 수 있는 걸까?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란 이처럼 어렵다. 작은 거짓말보다 더 복잡한 행동을 이해하기란 무한히 더 어렵다. 인간이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타민족을 집단학살하는 행동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인간이 제 목숨을 걸고서 집단학살당하는 사람을 돕는 행동은 또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런 이해가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왜 과학과 인문학으로 인간을 연구하는 것일까?
이 연구는 어쩌다 ‘벽돌책’의 탄생으로 이어졌나
『행동 – 인간의 최선의 행동과 최악의 행동에 관한 모든 것』이라는 거대한 제목을 단 책은 이처럼 난무하는 물음표들에 용감하게 도전한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생물학과 신경학을 연구하는 저자 로버트 M. 새폴스키가 특히 초점을 맞추는 것은 인간의 ‘폭력적’ 행동이다. 타고나길 비관주의자라는 새폴스키는 인간의 폭력성이 너무 무섭고 절망적인 나머지, 그것을 제 능력껏 샅샅이 해부함으로써 일말의 이해를 얻고 대처 방안을 알 수 있기를 바라서 책을 썼다고 서두에서 밝힌다. 이런 목표는 과학자라서 품는 순진한 발상인지도 모르겠지만, 무서운 것을 직시함으로써 대응해보려는 노력은 (그 심연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용감하다.
그러면 새폴스키는 이 복잡한 주제를 어떻게 다루겠다는 걸까. 과학자들이 흔히 쓰는 방법은 가장 중요해 보이는 요인을 하나만 골라서 그것을 깊게 파헤치는 것이지만, 이 책에서 새폴스키는 정반대로 접근한다. 모든 차원과 분과를 아울러서 살펴보겠다고 작정하고, 시공간적으로 작은 차원부터 큰 차원까지 순서대로 다루는 것이다.
맨 처음은 어떤 행동을 최종적으로 지시하는 뇌의 차원, 즉 신경생물학이다. 다음은 그 뇌에 영향을 미치는 감각 자극의 영역, 그다음은 그 자극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 즉 내분비학의 영역, 그다음은 개체가 발달하고 성장한 아동기와 태아기의 영역, 그다음은 유전자의 영역이다. 유전자가 끝이냐고? 결코 그렇지 않다. 행동의 유전자가 진화해온 과정은 곧 인류라는 종의 진화를 뜻하고, 게다가 유전자는 늘 환경과 상호작용하기에, 결국은 문화와 문명의 영향까지 알아봐야만 이야기가 끝난다. 그러고 보면 저자가 이 책을 7,000쪽이 아니라 1,000쪽으로 마무리한 게 대단하다.
‘인간 행동의 원인’을 밝히는 엄청난 이야기꾼의 재능
큰 주제를 크게 이야기하는 책을 잘 쓰기는 어렵다. 과학책 분야에서는 십 년 전 『사피엔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류와 문명의 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는 이른바 ‘빅히스토리’ 서술이 유행했고, 사회생물학 분야에서도 인간의 협력이나 갈등 같은 행동을 주제로 해석을 시도한 역작들이 꾸준히 있었지만, 복잡한 이야기를 복잡하게 설명한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을 잘 모은다고만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이야기꾼으로서의 재능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 점에서 새폴스키는 믿음직한 저자다. 사실 『행동』은 내가 번역하고 싶어서 손을 번쩍 쳐들고 마구 흔들었던 책인데, 그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저자가 새폴스키라는 점이었다. 새폴스키의 전작 『스트레스』는 700쪽이 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첫 쪽부터 끝까지 ‘스트레스’라는 말이 너무 많이 나와서 스트레스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오락처럼 읽혔다. 개코원숭이를 대상으로 현장 관찰과 신경생물학 실험을 병행하는 새폴스키가 스트레스 전문가임은 물론이거니와 박람강기한 인문학적 지식과 유머를 갖춘 빼어난 작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과학책 번역가로서 새폴스키의 책을 한 권은 옮기고 싶다는 소망을 이룰 수 있다니! 아마 새폴스키가 ‘개코원숭이 행동의 모든 것’이라는 주제로 책을 썼더라도 옮기고 싶었을 텐데, ‘인간 행동의 모든 것’이라니 고맙기까지 했다.
『행동』을 번역하고 싶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나는 몇 년 전에 역시 인간의 폭력성을 깊게 파헤친 책을 번역한 적이 있다. 역시 1,400쪽이 넘게 두꺼운 그 책은 인지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였다. 인류의 폭력성이 본성에 내재된 것인지 문명으로 갈고닦인 것인지를 고고학적, 역사적 자료를 근거로 알아본 그 책은 우리의 이성과 문명이 폭력성을 제어함으로써 갈수록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주장으로 많은 독자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그 결론은 사실일까? 이후 이어진 뜨거운 학술적 논쟁을 소개하지 않더라도, 저 낙관적 결론의 허점을 찾아내기는 어렵지 않다. 오늘날의 뉴스만 봐도 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쟁을 벌이고 있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지도에서 지우려고 하며, 난민은 어느 때보다 많다. 현실이 핑커의 주장을 반증한 것으로 보아야 하나? 그렇다면 인간의 폭력성은 문명으로 다스려지지 않는다는 걸까?
『행동』의 후반부는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며 그 질문에 새롭게 대답하는 내용이다. 전반부의 생물학적 탐구가 하나의 생물종으로서 인간에게 내재된 폭력성의 메커니즘을 알아본다면, 후반부의 고고학적/역사적/문화적/심리적 탐구는 문명과 문화를 진화시킨 사회적 종으로서 우리 폭력성의 메커니즘을 알아본다. 그 결론을 여기에 적는 것은 스포일러 같아서 그만두겠는데, 어차피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최악의 행동이 최선의 행동이 되도록
하지만 미리 밝히고 싶은 결론이 하나 있다. 새폴스키의 탐구로부터 홀로그램처럼 떠오른 인간의 모습이 한없이 못난 것만은 아니고, 생물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구제불능인 상태만도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폭력성이란 우리에게서 간단히 도려낼 수 없는 속성이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떤 맥락에서는 긍정적 효과를 내는 성질이고(모성의 한 측면인 방어적 폭력성, 즉 새끼를 보호하고자 보이는 공격성을 생각해보라), 폭력의 생물학과 사랑의 생물학은 많은 면에서 같은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동원하는 과정이며,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아주 작은 요인들을 조정하기만 해도 우리 최악의 행동이 오히려 최선의 행동이 되도록 앞뒤를 뒤집고, 방향을 바꾸고, 대상을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할까? 폭력의 생물학을 사랑의 생물학으로 바꿔놓는 방법을 알 수 있다고? 그 해답은 독자가 이 책을 읽고 각자 내려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역자로서나 독자로서나, 이 책을 만나서 천만다행이라고 여긴다. 내 행동에 내재된 편향을 아는 것, 유전자는 중요하지만 운명은 아니란 사실을 아는 것, 인간의 가장 훌륭한 행동은 배변 활동처럼 몸에 익힌 자동성에서 비롯할 때가 많음을 아는 것, 자기도 모르게 편을 가르고 남을 배척하는 본능을 자제하는 능력 또한 우리에게 갖춰져 있음을 아는 것… 이런 것을 이해하고 나서 보는 인간은, 세상은, 전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김명남(번역가)
카이스트 화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환경 정책을 공부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팀장을 지냈고, 지금은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로 제55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경험 수집가의 여행』 『비커밍』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면역에 관하여』 『틀리지 않는 법』 『지상 최대의 쇼』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