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남을 향한 질문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G. 권여선 소설가)
"걔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 탓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자기를 빼놓고 하는 허공에 뜬 것 같은 질문들은 내용을 채워갈수록 자기 몫이 점점 생기는 것일 수밖에 없어서 (결국은) 연루감으로 끝나는 것이죠.
글ㆍ사진 임나리
2023.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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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여행을 생각하면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정원에게 전해들은 사슴벌레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강촌 마을 숙소에 도착해 커다란 방에 짐을 들여놓고 정원과 내가 뒷마당에서 강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정원이 숙소 방을 비질하다 커다란 벌레를 발견한 얘기를 했다. 처음엔 휴지로 감싸서 밖에 내놓으려 했으나 벌레가 너무 크고 우람해서 휴지로 감싸기가 두려워 빗자루로 살살 밀어서 밖으로 쓸어냈다고 했다. 그런데 빗자루에 닿을 때마다 벌레가, 하고 말하는데 숙소 주인여자가 지나가다 듣고 깜짝 놀라 물었다.

방에 벌레가 많아? 약을 쳤는데. 

많진 않고요, 무지하게 큰 벌레 한 마리가 있더라고요.

정원이 벌레의 크기와 생김새를 설명하자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음, 사슴벌레네. 그럴 땐 비닐봉다리 있지? 봉다리에 쌀쌀 기어 들어오게 유인해서 바깥에 떨궈주면 돼.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그런데 방충망도 있는데 도대체 그렇게 커다란 사슴벌레가 어디로 들어오는 거예요?

정원의 질문에 주인이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내 득도한 듯 인자한 얼굴로 대답했다. 

어디로든 들어와.

권여선 작가의 소설 「사슴벌레식 문답」에서 읽었습니다. 오늘은 이 작가를 만나볼게요.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인터뷰 - 권여선 소설가 편>

오늘은 '의미보다 울림을 좋아하는 소설가'를 모셨습니다. 오랜만에 <책읽아웃>을 다시 찾아주셨는데요. 

소설집 『각각의 계절』로 돌아온 권여선 소설가입니다.

황정은 : 어서 오세요.

권여선 : 안녕하세요.

황정은 :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권여선 : 저는 소설 쓰는 권여선이라고 하고요. 이번에 일곱 번째 소설집을 내게 돼서 영광스러운 <책읽아웃>에 나오게 됐습니다. 

황정은 : 반갑습니다. 저희는 대단히 오랜만에 만났어요. 몇 년 만이죠?

권여선 : (코로나 때문에) 공식 석상에서 만나는 자리가 없어지고 나서는 거의 본 적이 없고, 그 전에도 아마 3~4년은 못 본 것 같아요.

황정은 : 그렇죠. 제가 작가님을 초대해서 술 같이 먹자고 한 자리가 마지막이었습니다.

권여선 : 괘씸한 자리.(웃음)

황정은 : (작가님을) 불러놓고 제가 먼저 사라졌죠.(웃음)

권여선 : 정말 용서받지 못할 자입니다.(웃음)

황정은 : 2018년이었나요. <오은의 옹기종기>에 출연을 하셨죠.

권여선 : 네, 그때는 산문집이 출간돼서. 

황정은 : 그렇습니다. 산문집으로 인터뷰 자리에 나설 때 하고 소설로 인터뷰 자리에 나설 때 좀 다를 것 같은데, 어떠세요?

권여선 : 다르죠. 산문집은 수다를 떠는 느낌? 저도 좋아하는 산문집 내용 가지고 얘기하는데, 소설집은 '어떻게 읽히나?' 또는 제가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그런 걱정이 많고, 자꾸 얘기하고 싶지가 않아요.

황정은 : 소설에 대해서요?

권여선 : 네.

황정은 : 그렇죠, 저도 그렇습니다. 반응에 대한 민감도랄까요, 그것도 좀 다르지 않나요? 

권여선 : 네, 달라요.

황정은 : 예컨대, 몹쓸 예이지만, 욕을 먹는다고 할 때 산문에 대해서 비판을 들을 때와 소설에 대해서 비판을 들을 때 어느 쪽이 더 힘드신가요?

권여선 : 당연히 소설이죠. 산문집은, 제가 워낙 음식이나 술 얘기를 많이 써놓은 산문집이라, 거기서는 뭐 '왜 이렇게 술을 마시냐, 주정뱅이냐' 이런 욕을 먹어도 괜찮은데, 제 소설 속 인물이 주정뱅이여서 욕을 먹으면 좀 견디기가 힘들고. 소설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아주 깊이 받아들이게 돼요. 산문집에 대한 평가는 '그럴 수 있어, 다 다르게 읽을 수 있지' 이게 되는데 소설에 대한 평가는 곱씹게 된달까. 그래서 칭찬도 '이게 과연 칭찬인가?' 생각하게 되고 비판도 더 깊게 생각하게 되고, 뭔가 못난 자식 내놓는 것 같은 느낌이 늘 있으니까. 그래서 얘기를 아예 안 하는 게 제일 좋죠.

황정은 : 말씀 듣고 보니까 저랑은 정반대세요. 저는 오히려 소설은 '그렇게 읽을 수도 있지'라고 생각을 하는데, 물론 산문집을 딱 한 권만 내긴 했습니다만, 산문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들으면 내 삶에 대한 모욕 같은 그런 것도 좀 느끼고...

권여선 : 그게 산문의 내용이나 테마가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음식 술 이런 거여서 사람들의 호오가 갈려도 상관이 없는 것인데, 황정은 작가 산문집은 어떤 삶의 스타일, 태도, 또는 어떤 사회 현상에 대한 감정, 이런 것들이 들어가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그런 산문집이었다고 하면 얘기를 받아들이기가 좀 많이 껄끄러웠을 것 같아요.

황정은 : 아이고, 왠지 위안이 됩니다. 작가님도 그렇다니.

권여선 : 네, 그럴 것 같아요.

황정은 : 오늘은 3년 만에 출간된 소설집 『각각의 계절』을 두고 이야기를 나눠볼 텐데요. <월간 채널예스> 2월호에서 권여선 작가님의 신간 소식에 이런 해시태그를 달았더라고요. #다크권여선의귀환 #현실감넘치는모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권여선 : '현실감 넘치는 모녀'는 제가 이 소설집에 모녀 관계나 가족 관계를 다룬 소설들이 있으니까 '음, 그렇군' 하는데, '다크 권여선의 귀환'이라는 건 누가 뽑았는지 모르겠지만 너무 멋진 거예요. (저의) 소설이 초창기보다 점점 약간 밝고 너그러워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크 권여선이라고 하니까 '이게 멋있는데 내가 좀 다크해져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이번 소설집이 다크하지 못해서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해시태그를 붙이신 분이 참 저를 높이 평가해 주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해요.

황정은 : 다크하다는 것이 높은 평가로군요.

권여선 : 저는 좋아 보여요. 다크 권여선, 하니까 뭔가 저 아닌 저보다 더 나은 어떤 작가를 말하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주정뱅이 작가' 이런 것보다 다크라는 말로 말할 수 있구나.

황정은 : 그런데 저는, 말에 사로잡히는 것 같기는 합니다만, 권여선 작가님의 소설은 언제나 다크했습니다. 

권여선 : 어떤 의미에서요?

황정은 : 읽고 나면 마음을 뭐랄까 마음이 막 발랄해지지는 않잖아요. 생각도 되게 많아지고...

권여선 : 비발랄이 다크인가요? 그러면 황정은 작가도 만만치 않은 다크죠.(웃음) 

황정은 : (웃음) 그럼 둘 다 멋진 걸로 합시다.


황정은 : 소설집 제목이 『각각의 계절』인데요. 왜 이런 제목을 선택하셨나요?

권여선 : 이 제목은 「하늘 높이 아름답게」라는 단편의 마지막 문장인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에서 뽑아왔는데요. 제가 살다 보니까 사람마다 어떤 시절들을 겪는데, 그 시절이 계절처럼, 각각의 시절을 나는 각각의 힘이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20대 때 겨우 갈고 닦은 힘이 있으면 그걸로 30대를 넘길 수가 없어요. 다른 힘이 필요하고. 우리가 계절을 날 때 여름을 나는 힘과 겨울을 나는 힘이 다르듯이 그렇게 다르고. 그래서 각각의 시절에 맞는 힘을 스스로 길러내야 되죠. 자기 속에서. 그래서 그 문장이 좋아서 (소설집의 제목을) 『각각의 계절』로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자꾸 인터뷰할 때 '각각'거리게 되더라고요. 각각의 계절, 각각의 시절, 각각의 힘, 이러면서 자꾸 각각거리는 경향이 있는데, '앞으로 많은 독자 분들이 각각거리시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황정은 : (웃음) 요즘에 작가님이 사는 데 필요한 힘은 충분합니까?

권여선 : 음... 이 소설을 쓰던 시절의 힘은 반추였던 것 같아요. 기억하고 반추하는 힘이 필요했거나, 그게 생겨났거나. 그래서 이 소설집에도 그런 테마의 소설들이 실리게 됐고, 앞으로는 또 다른 힘이 필요하겠죠.

황정은 : 『각각의 계절』에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등장을 합니다. 각자 과거를 기억하고, 또 타인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고 느끼고,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면서 불면을 겪는데요. 소설 쓰는 동안에 알고 계셨죠? 내 인물들이 이렇게 불면을 겪고 있구나...

권여선 : 그렇죠, 제 불면을 준 거죠.

황정은 : 아, 주신 거군요.(웃음) 줬더니 좀 낫습니까?

권여선 : 같이 겪으니까 좀 낫죠.

황정은 : 그 중에 특히 여성들, 딸과 어머니들이 불면을 많이 겪는데 작가님의 소설에서 왜 여성들이 이렇게 불면을 하는 중일까요?

권여선 : 남성들도 당연히 불면을 겪겠죠. 제 소설에도 여성 때문에 불면을 겪는다고 생각하는 남성도 나와요. 어머니나 여동생 때문에...

황정은 : 맞아요, '오익'이라는 인물이죠. 

권여선 : 그렇죠. 그래서 남성도 불면을 겪긴 하지만, 제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여성이고 이들이 불면을 겪는데, 겪는 이유들이 다 다르긴 한 것이고 그 증상도 다른데요. 아무래도 더 예민하고 더 두려움이 많고 걱정이 많고 그만큼 자기 검열도 심하고 이런 다민한 성격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그런 경향을 강요 받기 때문에, 그래서 불면이 좀 더 그렇게 드러나고 또 그렇게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황정은 : 이야기가 나온 오익이라는 사람이 「어머니는 잠 못 이루고」라는 단편에 나오는 주요 화자잖아요. 이 소설집에서는 드물게 불면하는 남성 화자입니다. 그런데 그의 불면의 이슈마저도 사실은 여성 이슈였거든요. (오익이) 친구하고 고기를 먹으면서 본인들은 여자 문제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남성 문제인 거예요. 고기를 구우면서 이들 사이의 대화는 대단히 공회전하고 있고 핵심과 사실에 근접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문제는 여전히 그대로 문제로 남아 있는데 이 남성은 그냥 무지 상태로 남아 있는. 이거는 여성 문제라기보다는 남성 문제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권여선 : 네, 맞아요. 그 인물에 대해서 조금 더 얘기하자면, 자기는 어머니나 여동생 때문에 고민이 많아졌고 자기 생활이 뭔가 불안정해지고, 어머니의 전화 때문에 살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서 불면이 많아지고 환청에 시달린다고 생각하는데, 본인 스스로의 사회생활 자체가 온전치가 않거든요. 겉돌고 있는 관계들을 계속 맺고 있고, 자기가 제일 진정성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던 선배들과의 관계에서도 헛소리만 서로 오고 가고. 자기의 사회성이라는 것이 사실 파탄 난 상태이고 그런 와중에 자기 불신과 이런 거에 휘말려서 불면이 온 건데, 그것의 빌미나 이유, 핑계를 여동생 또는 어머니에게 전이시키면서 자기의 잘못들을 전치하는 사고에 있는 거죠. 

황정은 : 그러네요. 화자들이 환멸을 자주 겪기도 하죠. 인물들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항상 담기는 질문들이 있는데요. '도대체 저 인간은 왜? 어떻게?' 이런 질문들을 하는데, 마지막에는 항상 그 질문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단 말이죠. 화자의 질문이 결국 자신을 향하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권여선 : 처음에는 '걔는 왜?', '너는 도대체', '납득할 수 없다'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데요. 사실은 '우리'라고 하는 관계, 자기를 넣고 구성한 관계로 생각을 해야 되는데 거리를 두고 자기는 격리시키고 분리해놓고 '너는', '그 사람은' 이렇게 하는 거거든요. '걔가 왜 그랬을까?' 하면서 탓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그 사람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무엇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기를 빼놓고 하는 허공에 뜬 것 같은 질문들은 내용을 채워갈수록 자기 몫이 점점 생기는 것일 수밖에 없어서 그런 연루감으로 끝나는 것이죠.



*권여선

1965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인하대 대학원에서 국문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6년 장편 소설 『푸르른 틈새』로 제2회 상상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솔직하고 거침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상처와 일상의 균열을 해부하는 개성있는 작품 세계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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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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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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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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