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혜진 작가 "노화는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
죽음이 없다면 애초에 삶 자체가 있을 수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삶 속에서 죽음이나 노화를 밀어낼 수 있다고 믿곤 합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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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진 작가

어느 날 엄마에게 조현증이 찾아왔다. 딸은 조현증을 앓는 엄마를 돌보았던 혼란스럽고 두려운 시간 속에서 나이듦과 노년, 죽음과 돌봄에 대한 성찰을 길어 올린다. 『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쓰인 생활 철학 인문서이다. 우리는 누구나 부모의 나이듦을 마주하고, 시간이 흘러 자기 자신의 나이듦과 마주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다가오는 나이듦과 노년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과 인문학적 성찰로 나이듦을 또렷이 응시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책, 『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의 저자 유혜진을 만났다.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먼저 독자분들에게 간단히 선생님과 책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중국어 특채로 일반 기업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 광고 회사로 업종을 바꾸고 수년간 일하다가 프리랜서 자유 기고가로 글과 관련된 직업을 전전한 후, IT 회사에 입사해 웹 기획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모 은행 인터넷 뱅킹 팀에서 수년 동안 근무했는가 하면 제약 회사에서 일하기도 했고, 보험 회사에도 있었습니다. 일에서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한 가지 일관된 점은 야근이나 약속이 없는 날에는 주로 근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 것 정도 되겠네요. 

지금은 생태적 지혜를 위해 다양한 연구와 저술, 강의 활동을 실천하는 영등포 지역 공동체에 몸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한마디로 체험과 사유의 콜라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갑자기 희귀한 병에 시달리는 엄마와 그 엄마를 돌보는 가족의 고군분투'라는 외양을 하고 있지만 이 책의 구조처럼 체험과 사유는 동시에 굴러가는 바퀴같이 서로 연쇄 작용을 일으키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가족, 상처, 아픔, 돌봄, 치유 같은 준거점을 정립해 가는 각각의 체험은 사유를 통해 새로운 질문과 창안을 불러일으키고, 그렇게 형성된 사유는 그 이후에 이어지는 체험에 대한 지침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 경험을 글로 써내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셨으리라 짐작됩니다. 『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을 쓰기로 마음먹기까지의 과정에서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어버리고 좋은 기억만 남기를 바라는 습성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아픔을 복기하는 것은 한 번 더 아프기를 무릅쓰는 일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여전히 이어지는 아픔을 가능한 한 더 세게 털어 내기 위한 행위이기도 합니다. 글쓰기는 어쩌면 온전한 치유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한 의식 같은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제가 진행했던 글쓰기 강의를 통해 많은 분들이 비관에 빠졌던 자신과 화해하고, 가족들과의 관계도 회복한 사례들을 보았습니다. 자신과 주변부를 객관화하기 위한 글쓰기를 통해 삶에 더 깊이 들어간 것입니다. 처음에는 머뭇거렸지만 용기 있는 내딛음으로 변화와 파장을 일으킨 그러한 과정은 또한 나눔의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각자의 글을 함께 읽고 공감과 의견을 나누고 서로 다른 시각에 귀를 기울이여 여러 겹의 스펙트럼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분들의 용기는 저에게 이어졌고, 그렇게 얻은 용기를 또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확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책에서 나이듦과 노년을 단순히 쇠퇴나 하락으로 보며 부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고 이야기하셨는데요. 그럼 나이듦과 노년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나이듦과 노년을 다른 시선으로 보려 해도 막상 저 자신이나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의 나이듦·노년을 생각하면 저절로 부정하게 되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데요. 어떻게 하면 그런 마음을 이겨 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여쭤 보고 싶습니다.

어린아이의 죽음에 대한 반응을 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태생적·내재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회가 만들어 내는 것이며 이와 동시에 개인을 복종시키는 데 이용됩니다. 근대를 거쳐 현대 사회에서는 이를 상업적으로도 잘 이용하기도 합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말했듯이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회가 정해둔 대로 인생의 사소한 문제들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삶과 죽음의 문제라는 어려움에서 벗어납니다. 그는 이런 사람을 '직접성의 인간', '속물'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정상적 행동', '정상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과 자신에 대해 심각한 속박을 이루어 낼 때 가능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정상성의 본질은 일종의 '실재 거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재생산 행위자로서 종 차원의 불멸을 얻거나 사회 집단의 일부로서 집단적 또는 문화적 불멸을 얻는 데 암묵적으로 강력하게 동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두가 직면해야 하는 실재적 죽음 앞에서 이와 같은 '성공적으로 보이는 자기 위장'은 점점 힘을 발휘하기 어려워집니다. 어떻게 보면 어니스트 베커의 말처럼 개인의 삶과 참된 성숙의 중요한 기획 중 하나는 노화 과정에 순응하는 것일 것입니다. 자신의 젊음을 항변하거나 인생에 끝이 없는 척하기를 중단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노화는 불멸에 대한 도착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는, 모두에게 주어진 기회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셨다가, 우여곡절 끝에 어머니를 집에서 돌보기로 결심하고 병원을 나오는 대목에서는 현대 의료, 병원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도 엿보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더 해주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모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지속성을 추구하기 위한 행위에는 어느 정도 정당성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취할 수 있는 행동의 범위에 대한 한계도 있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생명을 다루는 분야에서 그 한계를 어떤 식으로 보완하느냐입니다. 의료 행위와 돌봄 행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병원과 같은 현장에서는 그 부분이 더 도드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급속한 노령화로 돌봄 인구가 현저히 모자랄 것이 뻔한 현실에서 의료 강국이라는 안일한 지위도 곧 빛이 바랠 것 같습니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의 엄마가 된다는 것』에서도 말씀하고 계신 것처럼, '나이 들어 간다는 것, 산다는 것'은 곧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인데요. 죽음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대목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 죽음이 의미하는 유한성을 직시해야 삶에 대한 애착을 있는 그대로 살려 낼 수 있다는 부분, 그리고 삶과 죽음의 분리가 자연과 인간의 분리와 유사하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는데요. 이에 대해서도 조금 더 설명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생태 철학에서 말하는 생태계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편의상 임의로 구분된 것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인간 세계 안에서도 늘 발생하는 대상화·타자화가 인간 대 자연으로 형성되면 자연 없는 인간이 마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삶과 죽음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죽음이 없다면 애초에 삶 자체가 있을 수 없는데 많은 사람들이 삶 속에서 죽음이나 노화를 밀어낼 수 있다고 믿고는 합니다. 동전의 양면 중 한쪽 면만 볼 수 있다고 해서 반대쪽 면을 부정한다면 동전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존재를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삶은 공허하거나 겉돌 수 있습니다. 삶을 더 충일하게 채우기 위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이 꼭 필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말씀해 주신 내용만큼이나, 책의 구성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각 장마다 선생님의 경험을 논픽션 형식으로 먼저 보여 주고, 이어서 여러 철학·사회학·심리학·의학적 개념과 화두를 넘나들며 인문학적인 담론을 제시하고 계시는데요. 이런 독특한 방식으로 책을 구성하신 배경이랄지, 까닭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독자를 고려해야 하는 글쓰기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이유는 상상력에 대한 욕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상상으로 안내하는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도구일 것입니다. 저는 어떻든 스스로의 욕망을 따라 생성된 상상력에 사유가 같이 종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독서를 통한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나름대로 해온 경험들을 기록물 보관소같이 차곡차곡 쌓아 두지 않기 위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현재까지의 개인적인 방식으로 이 책을 통해서 구현되었지만, 독자들은 자신만의 또 다른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을 쓰시는 과정도 녹록지 않으셨을 듯하고, 여러 우여곡절도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머리말에서 읽기와 쓰기에 대해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그럼에도 계속해서 읽고, 선생님의 경험을 글로 쓰신 일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읽기와 쓰기가 선생님께 어떤 변화를 불러왔는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의 읽기와 쓰기에는 뚜렷한 목적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서, 단기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소일거리로 같은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원초적으로 표현하자면 답답했고, 궁금했고, 괴로워서 책을 읽었고 더 나아가 쓰기로 이어졌습니다. 세계가 복잡계인 것만큼 감정이나 생각도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 명료하게 정의하더라도 일시적일 뿐 또다시 이합집산을 하는 정동을 읽기와 쓰기가 순간 포착하여 가라앉혀 주었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읽기는 그렇게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연결 고리 역할을 했습니다. 책을 읽고, 사람을 읽고, 사람들이 벌이는 일을 읽어 나가는 것은 궁극에는 나를 읽는 일로 되돌아옵니다. 그렇게 시간을 두고 쌓인 것들로 인해 뚜렷한 신념 없이도 이전보다 덜 동요하는 삶을 살게 된 것 같습니다.

끝으로, 책의 머리말에서 '삶 전체를 쥐고 흔들 만한 아픔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티 나지 않게 크고 작은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적으셨는데요. 자신과 소중한 이의 나이듦, 노년을 마주하며 아픔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가장 어려운 질문 같은데요. 우선은 직시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많은 일에 대해 과대 포장하거나, 평가 절하하거나 왜곡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어야 하겠지요. 이성적으로만 생각할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공감이든 연민이든 직시에 도움이 되는 감정과 그렇지 않은 감정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나서는 사건들 주변으로 형성되는 크고 작은 정동의 자장을 살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직시 후에 살펴보면 크든 작든 누군가의 걱정하는 눈빛과 말 한마디, 도와주는 손길과 마음은 많은 도움이 됩니다. 미세하지만 강렬한 그 흐름을 따라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과 그 곁을 지키는 사람, 그리고 그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유혜진

20개가 넘는 명함을 부끄러워하며 프리랜서에서 대기업까지 다양한 직종을 경험하고 탐색했다. 10개가 넘는 도서관증을 부담스러워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섭렵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영등포 지역공동체 생태적지혜연구소에서 사람들과 배우고 소통하고 때로는 가르치면서 노마드적 탐색을 돌봄과 유대의 실천으로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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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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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