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음악 평론가 미묘의 ‘언박싱 케이팝’ 칼럼이 격주 수요일 연재됩니다. 최신 이슈부터 앨범 패키지에 담긴 이야기까지 지금 케이팝의 다채로움을 전합니다. |
에이티즈에 붙는 이름표 중, '마라맛'이라는 게 있다. 이 맛은 대체로 어둡고 극적인 콘셉트와 격렬하고 자극적인 곡, 혼란도를 가중하는 장난끼나 이를 음악적으로 담아내는 극단적인 구조와 장치 등을 그 성분으로 한다. 에이티즈가 데뷔 초기에는 친구들을 사랑하는 낙천적인 해적이었던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어쨌든 매우 탈일상적인 콘셉트를 비중 있게 지니고 출발했으니 아주 엉뚱한 데로 튄 것은 아니다. 또, 사람이 모험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이 있게 마련 아닌가.
신곡 'HALAZIA'도 상당한 '마라맛'을 전해준다. 어둡고 절박한 어조와 내용의 가사, 포스트아포칼립스 세계를 무대로 삼는 뮤직비디오, 개성이 뚜렷한 래핑들의 교차, 날카로운 고음과 으슥한 저음이 공존하는 보컬 같은 것들이다. 후렴이 전통적인 팝의 문법에서 친숙함과 안심감을 주는 대목이라면, 이들에게 후렴은 혀를 더 아프게 할 시간이다. 특유의 주술적인 테마로 은근하게 긴장을 주다가는 느닷없이 새로운 빌드업이라도 하는 양 8비트로 킥이 떨어지며 BPM을 두 배로 올리는 고양감을 주는 가운데 고음을 연타한다. 그런 후렴의 마지막 한 줄은 2분 48초를 지나면서 새로운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내는 데에 재활용된다. 긴박한 브레이크비트와 거친 챈팅, 찢어질 듯한 신스의 난동으로 이어지는 후반부는, 마지막에 새로운 결정타를 쏟아붓는다. 에이티즈가 이미 몇 번 멋지게 선보인 바 있는 방식이다.
'HALAZIA'가 수록된 싱글
‘HALAZIA’의 가사나, 쇠사슬을 끄는 인간의 근력으로 (아마도) 초자연적인 존재를 거스르는 장면 같은 것은 사실, 싱글 제목이 주장하는 ‘증인의 말’보다는 영웅 서사 주인공의 시점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커버아트의 깃털처럼, 홀연히 사라진 것의 실낱 같은 흔적이라는 모티프는 작품 전체에 잘 스며들어 있다. 리미널 스페이스와 폐허의 개념적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뮤직비디오 속 공간이 패키징에서도 스케치처럼 등장하고, 뮤직비디오도 ‘있었던 것’과 ‘남은 것’의 대조를 꾸준히 보여준다. 마침 이것은 서사의 스핀오프이자 아이돌의 싱글이다. 많은 것을 제공하지만 또한 얽매일 필요는 없는 가벼움에도 잘 부합하는 모티프다.
이 싱글은 CD가 포함된 'WITNESS Ver.'과 두 가지의 'POCAALBUM Ver.'로 발매됐다. 최근 환경 재앙과 관련해 케이팝 산업에서는 대안적인 패키징 포맷이 더러 등장하고 있다. CD를 빼고 패키징을 간소화하며 음원은 전용 플랫폼에서 디지털 감상권을 제공하되, 음반이 갖는 또 한 가지 매우 중요한 가치, 즉 소장품으로서의 물성은 유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싱글은 포토카드를 진열하는 프레임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또한 미니 CD 사이즈의 '미니어처 디스크'가 포함돼 있는데 이것이 조금 애매하다. 물론 두꺼운 포토북의 탄소 발자국도 무시 못하나, 대안적 패키징의 중요 어젠다는 플라스틱 소비 감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만 아무 것도 기록되지 않은 이 작은 원반이, 오늘날 판매되지만 감상되지 않는 수없이 많은 CD들과, 음반이자 '굿즈'로서의 가치 측면에서 사실상 전혀 차이가 없다는 점만은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리믹스에 다소 인색한 케이팝에서, 에이티즈는 데뷔 1년을 조금 넘긴 2019년 말에 리믹스 앨범을 발매한 바 있었다. 또한 국내 커리어와 별개로 진행되기 십상인 일본 발매반을 세계관 연작에 포섭해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발매한 국내곡의 일본어 버전을 수록하며 이뤄진 재배치는, 리패키지의 ‘기술’을 새롭게 하는 시도로 볼 만했다. 그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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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