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당하는 신해경의 멜로디
<최저낙원>에서 신해경이 어느 정도 지속 가능성을 체득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개별 작품 단위를 넘어 그의 이름 자체가 충분한 브랜드 효과를 갖춘 것이다.
글ㆍ사진 이즘
202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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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게이징이나 드림 팝 장르는 사람을 종종 헷갈리게 만든다. 좋다는 감상이 온전한 작품의 퀄리티 대신 리버브나 냉랭한 기타의 음색 등 준필수적 요소에 의한 조건 반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해경의 음악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러한 '고정된 수'를 지휘하는 그의 솜씨가 탁월하다는 사실이다.

장르의 태생적인 자가 복제 양상을 벗어나기 위해 정규작 <속꿈, 속꿈>이 트랙 간 다변화로 수평적인 확대를 취했다면 신보 <최저낙원>은 살짝 본류로 돌아왔다. 무기력한 목소리 톤이 일관되게 등장하며 몽환성을 퍼뜨린다. 그렇다고 마냥 기본 틀에 의존하지는 않는다. '반달리즘'과 '감정둔마' 등의 트랙에서 기습적으로 등장하는 화려한 연주가 자칫 늘어질 흐름을 끊으며 집중도를 높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식의 구조적인 뒤틀기가 피로감을 낳기도 한다. 다소 강박적으로 반전을 꾀하는 구성이 반복되어 청자를 긴장케 하는 탓이다. '나의 크로노스'가 대표적이다. 먹먹한 보컬과 속도를 높인 경쾌한 드럼의 이질적 결합만으로도 충분한 곡이, 중간중간 멈칫대는 구간과 조성 변화를 만나 생동감을 일부 상실한다. 시작부터 끝까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는 엔딩 트랙 '줄무늬 카네이션'이 오히려 돋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연속되는 일련의 자극이 반복 청취 시 감흥을 무디게 하는 구석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탄탄한 짜임새 때문에 이른바 알고도 당하는 게임이 된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감정둔마'의 날카로운 기타 멜로디나 구슬픈 후렴의 '인디에게' 등이 단번에 각인되며 계속해서 앨범을 찾는 요인으로 기능한다. <나의 가역 반응>과의 유사성이 분명히 있으나 답습보다는 아티스트의 고유한 색채라 할 수 있는 단계로 들어섰다.

시작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뮤지션은 늘 데뷔작의 그림자에서 사투를 벌인다. <나의 가역 반응> 같은 음반을 내놓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래도 <최저낙원>에서는 신해경이 어느 정도 지속 가능성을 체득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개별 작품 단위를 넘어 그의 이름 자체가 충분한 브랜드 효과를 갖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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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