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번역가인 황유원 작가에게 번역은 곧 '혼자서 추는 춤'입니다. 번역을 통해, 세계 곳곳을 누비고 먼바다를 항해합니다. 번역가의 충실한 가이드를 따라 다채로운 세계 문학 이야기에 빠져 보세요. |
며칠 전 한 편집자 선생님이 보내온 메일에서 난생처음 '바다 사나이'라는 말을 들었다. 번역이 아니라 시와 관련된 메일이었는데, 우연히 내가 『모비 딕』, 『바닷가에서』를 번역했고, 『노인과 바다』도 작업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나더러 바다 문학을 평정하셨다고, 진정한 바다 사나이가 되신 듯한 느낌이라는 것이었다.
'바다 사나이'라니! 본론의 끝에 여담으로 붙어 있는 그 말에 나는 혼자 한참을 킥킥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날씨 좋은 날이면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고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최근 몇 년간 바다와 관련된 몇몇 유명 작품을 번역하기도 했지만, 겉모습은 누가 봐도 바다 사나이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머니까.
노래방 같은 데도 다니던 이십대 후반까지는 노브레인의 '바다 사나이' 같은 노래도 곧잘 부르곤 했지만, 지금은 글쎄... 아무리 인상을 쓰고 어깨에 힘을 주고 면접을 봐도 나를 배에 태워줄 선주는 없을 듯하다. 『모비 딕』에서 화자로 등장하는 '이슈미얼'과 그의 친구 '퀴퀘그'가 피쿼드호 면접을 보는 장면을 옮기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형이상학적 취향이 강해서, 실은 절대 배에 태우면 안 되는 평선원 이슈미얼은 300번 배당 — 항해 전체 순이익금의 300분의 1에 해당하는 몫 — 을 받고 유능한 작살잡이 퀴퀘그는 90번 배당을 받는 계약 조건으로 피쿼드호에 오르는데,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777번도 받기 어렵겠다고 말이다.
나의 실체는 '바다 사나이'보다는 '집사람'에 가깝기 때문이다.(참고로 '집사람'은 국어사전에 '남에게 자기 아내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지만, 나는 집사람을 '집에 있(으면서 집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보다 더 넓은 뜻으로 사용한다. 집이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또 집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사람이라면 '집사람'이라는 합성어를 발음할 때마다 거의 숭고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바깥 활동이 많은 아내보다 집에 머물며 집을 돌보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청소, 설거지, 빨래, 식물 돌보기 등은 대부분 집사람인 나의 몫이고, 매일 그런 형편이니 동해든 서해든 가서 바닷바람을 쐬는 날은 일 년에 이삼일이나 되려나.
그리고 그건 나의 직업이 다름 아닌 번역가이기 때문이다. 아직 따로 작업실을 구할 형편은 못 되는 번역가. 방에서 책에 둘러싸여 고르고 고른 단어들로 저글링을 하며 문장을 짜 맞추다가 세탁기가 멀리서 띠리링 말을 걸면 잠시 밖으로 나가 건조대에 빨래를 너는 집사람.
물론, 처음부터 번역가가 되려던 건 아니었다. 번역가라니?! 초등학생 때는 곤충학자, 중고생 때는 팝 칼럼니스트, 대학생 때는 여행 작가가 꿈이던 내가 어쩌다 자발적으로 집에 갇혀 사는 삶을 택하게 됐을까. 아마도 팝 칼럼니스트가 문제였던 것 같다. 당시 최고로 핫하던 푸지스(Fugees)의 신보
번역가가 어떤 건지는 잘 몰랐지만, 어쩌면 지금도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어쨌든 해외 배낭여행에 푹 빠져서 한국을 여행을 위한 베이스캠프 정도로 여기던 나로서는 아무리 번역, 아니 해석에 관심이 있어도 책상 앞에 앉아서 긴 시간을 보내는 생활은 절대 사양이었다. 이국적 정취에 거의 미쳐 있던 나는 자유롭게 국경을 건너다니며 글을 쓰고 매일 잠자리를 바꿀 수 있는, 한마디로 '집이 없는' 인생을 동경했다. 땅을 베개로 삼고 하늘을 이불로 덮고 잔다는 자이나교 수행자들의 자유를 동경했다. 집은 집착의 온상이었다. 나는 집 밖에서 쓴 글만이 진짜 글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 마지막 학기를 보내던 2000년대 말에 여행책은 이미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고, 어떻게 겨우 책 한 권을 써서 출판사에 투고한다고 한들 그걸 출판해줄 곳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여행 잡지 기자가 되기로 하고는 매일 '잡코리아'에 들어가 '여행 잡지'를 검색했고, 그러다 다행히 어느 여행 잡지사에 수습기자로 들어가긴 했는데...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개인적인 여행관의 소유자인 내가 잡지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국, 편집장님은 나를 부르더니 "유원아, 우리가 왜 너를 데리고 있어야 하는지 이유를 세 개만 말해봐"라고 물었고, 늘 그랬듯 신박한 대답을 못 내놓고 혼자 우물대고 있던 내게 그는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그건 네가 영어를 잘하기 때문이야. 첫 번째 이유도 영어, 두 번째 이유도 영어, 세 번째 이유도 영어!"
'아하, 그렇구나!'
그리하여 그 후로 이런저런 회사를 짧게 전전하며 영어 관련 업무만 하다가 우연히 알게 된 출판사 직원의 제안으로 이탈리아에 관한 번역서 작업도 하게 되었다. 원고는 무사히 잘 넘겼고(놀랍게도 챕터별로 마감을 했다), 생각보다 번역 퀄리티가 좋아서 잘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말까지 들었건만... 출판사는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망해버렸고, 나는 그 사실을 어느 날 입금된 '백만 원' 때문에 알게 되었다. 번역료를 다 받지 못한 것은 둘째 치고 열심히 옮긴 첫 책이 공중분해된 것이 무척 속상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백만 원이라도 챙겨준 게 고마울 따름이다. 늦게나마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표합니다. 덕분에 저의 첫 번째 번역서가 저 위대한(!) '밥 딜런'의 책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덕분에 저는 지금까지도 혼자 춤을 추듯 책상 앞에 앉아 매일 문장을 쌓아올리고 있답니다. 며칠 전에는 무려 '바다 사나이'라는 말까지 들었고요.
나를 결정적으로 바다 사나이로 만든 첫 번째 번역 작품인 『모비 딕』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자신보다 계급이 높은 선원들이 모두 식사를 하러 내려간 후, 혼자 남은 플래스크가 바로 식사하러 내려가지 않고 갑판에 남아 혼자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삼등 '토후'는 이제 뒷갑판에 자기 혼자만 남은 것을 알고 묘한 구속감에서 벗어난 기분이 들었는지, 사방으로 잘 알겠다는 듯한 눈짓을 보내고 신발을 마구 벗어던지더니, 술탄의 머리 바로 위쪽에서 갑자기 격렬하지만 소리 없이 한바탕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능숙한 솜씨로 모자를 던져 뒷돛대의 가장 낮은 받침 위에 올려놓더니, 적어도 갑판에서 보이는 데까지는 그렇게 까불고 날뛰며 아래로 내려간다.
물론, 플래스크는 식탁에 가장 마지막으로 와서 앉음에도 가장 먼저 일어나야 하는 말단 항해사여서 늘 '불멸의 허기'를 안고 사는 가엾은 존재이지만, 그래도 저 순간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유롭게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 갑판에 남아 혼자서 추는 춤!
번역도 어찌 보면 혼자서 추는 춤이다. 함께 추는 춤에 익숙한 사람들이 봤을 때는 외롭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인간관계에 서툴러서 차라리 혼자일 때가 편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 홀가분하고 괜찮은 직업이 없다. 게다가 가끔 너무 깊어져 위험 수위에 이르는 외로움은 책상 여행길에서 만나는 저런 귀엽고 사랑스러운 문장을 옮기는 기쁨으로 충분히 보상받는다. 물론, 인세로 계약한 번역서가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그보다 더 큰 보상이 없겠지만... 그런 일이 평생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최선을 다했다면 일단 그걸로 된 거니까. 이 성격에 그래도 영어로 밥벌이를 하고 있으니 그거면 된 거지. 오늘도 이렇게 혼자라도 춤출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오늘도, 아니 오늘은 에세이를 썼으니 이만 쉬고, 내일도 나는 춤출 것이다. 홀로 있음이 홀로 버려져 있음이 되지 않도록, 버려진다는 생각 자체가 머리에 내려앉을 틈이 없을 만큼 신나게! 글자들에 부딪히지 않게 조심조심하며 혼자서 춤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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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원
시인, 번역가.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초자연적 3D 프린팅』, 『세상의 모든 최대화』, 옮긴 책으로 『모비 딕』, 『바닷가에서』, 『폭풍의 언덕』, 『밤의 해변에서 혼자』, 『짧은 이야기들』,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시인 X』 등이 있다.
pmsmq
2023.01.12